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8)
이세계 편돌이-157화(158/331)
157화. 앞발은 무겁게, 뒷발은 가볍게 (2)
* * *
여기까지 말한 멍멍이가 날 올려다보며 낮은 어조로 덧붙였다.
“이제야 생긴 것 같소이다. 단호한 결의라는 것이….”
라고 하는데, 솔직히 별로 동의하고 싶진 않은 결의였다. 매장 이사 간다고 하면 이 녀석 성격상 무조건 따라오겠다 할 텐데,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도 없어지는 거 아냐?
따라오지 않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말이 빤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미 전력이 있으니까. 전에도 게이트 영향으로 흉폭해진 흑풍파 놈들한테 끝장토론을 제안하러 갔다가, 토론 생략하고 끝장만 날 뻔했던 녀석이다. 그렇긴 해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이 녀석 이야기도 들어는 봐야 한다. 나도 중간에 이야기 끊고 내 감정만 쏟아내다, 필요 이상으로 이 녀석을 의기소침해지게 만든 전력이 있다.
묻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돌아보는 멍멍이.
진돗개, 푸들, 삽살개, 맬러뮤트. 이 넷이 어느새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는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털은 너 나 할 것 없이 꼬질꼬질하고, 얼굴은 못 먹어 핼쑥하다.
“…진도 나으리께서는, 본견이 이 공원에 처음 자리 잡을 때 큰 도움을 주셨던 분이오. 햇볕이 잘 드는 곳 몇 군데를 일러주셨거든.”
“흠….”
“푸들 나으리께서는 본견이 먹을 걸 못 구할 때면, 늘 자기 먹을 것을 반씩 나눠주셨었소. 삽살개 나으리와는 서로 털이 눈을 가려 앞이 안 보인다는 공통점으로 친해졌고….”
맬러뮤트 나으리는 신문지 여러 장을 겹쳐 푹신푹신하게 만드는 법을 알려줬고, 여하튼 받은 게 많단다.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진즉에 떠돌이견 생활을 포기했을 정도로.
“본견, 저분들께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하오.”
“갚아야 한다?”
“맞소. 갚고 싶은 게 아니오. 갚아야 하는 것이란 말이오. 그래야만 본견이 비로소 밤하늘 아래에서도, 사장님께도 떳떳해질 수 있소이다.”
말하며 내 등 뒤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돌아보자, 먼 거리의 잔디밭 위에서 도베르만 십수 마리가 나란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채였다.
“그러니 지켜봐 주시오, 사장님. 본견, 저자들과 이번에야말로 결착을 짓고 말겠소이다.”
이러고는 내 다리 사이를 지나, 흑풍파 녀석들을 마주 보는 멍멍이. 솔직히 결착은 개뿔, 저놈들 앞발에 치여 장난감 신세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긴 하지만….
“…야, 멍멍아.”
“말씀하시오. 사장님.”
“내가 이번에 말리지는 않을 텐데, 그 전에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긴 한다. 이게 잘 풀릴진 모르겠지만, 하수도 밑에서는 잘 풀렸으니 이번에도 잘되지 않을까.
“어떤 것 말이오?”
“무작정 쌈박질부터 하지 말고 대화를 먼저 해 봐. 말이 전혀 안 통하면, 그땐 앞발질을 하든 귀를 깨물든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건… 저자들,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상태여서 말이오….”
“아 글쎄, 속는 셈 치고 일단 해보라고. 우리 잠깐 저기 가 있는다.”
멀지 않은 곳에 여길 지켜볼 수 있을 만한 벤치가 놓여 있다. 하나 손을 잡아 벤치로 데려간 뒤 옆자리에 앉혀놓자, 그제서야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조씨. 멍뭉이가 딴 멍뭉이들이랑 다투려는 거애여?”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어조였고,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난 저 녀석한테 매장 이사 간다고 언질이나 주러 온 건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거냐?
“그런 것 같다.”
“안대여. 멍뭉이, 엄청 다칠 텐대….”
“엄청 다치고 그러진 않을 거야. 아마도.”
상황이 생각대로 풀릴 경우의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잔디밭 언덕 위에서 멍멍이를 내려다보던 흑풍파 놈들이 천천히 멍멍이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보행자 출입금지’라 적힌 팻말을 건너뛰어서는, 자연스럽게 멍멍이를 둘러싸는 흑풍파 놈들. 이후, 검은 흑풍으로 추정되는 놈이 중앙으로 걸어 나와서는….
멍멍이 앞에 선 뒤, 읊조리듯 짖는 소리를 냈다.
“멍. 멍.”
뭔 소리래.
검은 흑풍의 짖음에 멍멍이가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치켜들고는 대답했다.
“…물론 기억하고 있소. 다시 한번 눈앞에 나타나면, 그땐 본견을 가만두지 않겠다 했었지.”
방금 냈던 짖는 소리가 ‘내가 분명 경고하지 않았냐―’ 따위의 의미였나 보다.
이후로도 개 짖는 소리와 멍멍이의 목소리가 주고받듯 번갈아 들려왔는데, 내가 양측 언어에 다 통달한 게 아니다 보니 간접적으로 대화 흐름을 유추할 수밖에 없겠더라. 그러니까….
“그르르….”
“그것도 기억하고 있소. 하지만, 당신도 알지 않소이까! 비루하고 험난한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멍! 멍!”
“그건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소. 당신이 날카로운 이빨과 긴 다리를 가지고 있듯, 본견에게도 쓰다듬기 좋은 풍성한 털이 있단 말이오!”
“월?”
“모르는 척하지 마시오. 본견, 당신이 캠핑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알고 있소.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찾아가서는, 간절한 눈빛으로 관광객들을 올려다보았었잖소!”
멍멍이가 이 말을 한 직후, 멍멍이를 둘러싸고 있던 흑풍파 졸개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대장이 우리 몰래 고기 구걸을 했었다고?’ 같은 의미가 아닐까.
“왈! 크르르… 컹! 컹!”
검은 흑풍 놈이 정곡을 찔린 것인지, 멍멍이에게 다가가서는 이빨까지 드러내 가며 위협 가득한 울음소리를 냈다. 허나, 멍멍이는 전혀 굴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소! 고기를 굽던 여자아이는 당신 이빨이 너무 날카롭다며 울었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발길질로 당신을 쫓아냈지!”
“월, 그르르….”
“그거야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실 일이오. 본견도 그 고기 냄새를 맡고 찾아갔기 때문이오. 그때 그 여자아이가 본견에게 무어라 했는지 아시오?”
“…….”
“와, 꼬마야, 혹시 고기 냄새 맡고 찾아온 거니? 였소. 그 고기는 본견이 다른 분들과 맛있게 나눠 먹었다오. 맛이 아주 훌륭했지.”
내가 대체 뭔 얘기를 듣고 있는 건가 싶었으나, 멍멍이랑 몇 번 말을 섞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대화 흐름이 유추가 되긴 하더라. 우선은….
도베르만 외견이 꽤 무섭게 생겼다. 길에서 목줄이 채워진 놈을 만나도 무서운데, 목줄 풀린 채 무리 생활을 하는 놈들은 오죽하겠어.
반면 포메라니안, 푸들은 애완견 선호도 측면에서 탑 클래스에 속한다. 맬러뮤트도 털이 문제지 선호도가 꽤 높은 편이고, 삽살개와 진돗개는 시골 어르신들의 영원한 벗이다.
멍멍이가 지금 주장하는 게 이 점인 것 같다. 한 줄로 요약하면, ‘늬들은 쓰레기통 뒤지는 것 말고는 방법 없지만, 우린 직접 가서 달라고 하면 주는데? 귀여우니까. 부럽지?’
“당신들은 그 악력, 도약력의 대가로 포옹력과 털을 잃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요. 그 이빨, 그 발톱을 보시오. 어느 관광객이 당신들을 귀엽게 봐주고, 아무 거리낌 없이 고기를 줄 수 있겠소?”
“그르르….”
“본견, 이제는 검은 흑풍 당신이 우릴 미워하는 이유가 짐작이 가오.”
“…….”
사납던 분위기가 잦아들고, 검은 흑풍이 멍멍이 말을 귀담아듣는 구도가 되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대화를 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멍멍이가 말만 좀 더 잘하면….
“당신은… 우리의 털이 부러웠던 것 아니오? 단모종 대형견으로서 이 거리에서 살아가려면, 다른 개를 찍어누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털을 자라게 할 수도 없으니까―”
저건 핀트를 좀 잘못 잡은 거 아닌가?
난 대화가 겉돌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검은 흑풍 놈은 멍멍이 말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나 보다. 꼬리라도 밟힌 것처럼, 사납기 짝이 없는 울림통으로 짖어대는 검은 흑풍.
“월! 월월! 월!!”
치켜든 앞발로 멍멍이의 얼굴을 후려치고는, 몸통을 통째로 물어 옆으로 내동댕이친다. 바닥을 두어 바퀴 나뒹굴어 납작 엎드린 멍멍이가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캥! 아니, 도대체 왜!!”
난 저 이유도 왠지 알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니던 때, 머리숱 없는 놈한테 대머리라고 놀렸을 때 반응이 딱 저런 느낌이어서다. 아주 같다고는 못 하겠지만….
“월! 컹컹!”
“크르르릉!! 컹!”
“월! 월!”
흑풍파 졸개 놈들이 동시에 눈이 벌게져서 짖어대는 걸 보면, 털이 없다는 게 대머리까지는 아니어도 쌍욕에 준하는 모욕이긴 한 모양이다.
“아우우우―!!”
“아우우―!”
검은 흑풍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지른 하울링에 졸개들이 동조하고는, 네 마리가량이 멍멍이에게 달려들어 앞발로 몸을 짓눌러댔다.
나머지 열 마리가량은 남자화장실로 득달같이 달려 들어가 버렸고, 잠시 후에는 입에 목덜미, 꼬리 등을 문 채로 다른 네 마리를 질질 끌고 나왔다.
“끼잉… 끼잉, 끄응…!”
“캥! 캐엥!”
“그만… 그만, 멈추시오! 이 일은 그분들과는 관련이 없소!”
앞발에 짓눌린 멍멍이가 애처롭게 외쳤으나, 눈이 돌아갈 대로 돌아간 놈들이 말을 들어줄 리가 없다. 이 시점에서 하나가 내 옷깃을 꾹꾹 당겨대며 물었다.
“아조씨, 아조씨. 멍뭉이 얘기가 잘 안 댔나 바여.”
“그러게 말이다….”
“저러다 다칠 것 같은대!”
“…잠깐만 있어 봐라, 하나야.”
일이 쉽게 풀릴 거라곤 생각 안 했지만, 이렇게 개판으로 흘러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아무 대비 없이 무작정 끼어들기는 위험하고….
아주 잠깐 생각한 뒤, 폰에서 어플을 하나 검색해 다운받았다. 설치가 완료되길 기다리는 사이에도 상황은 더욱더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멍! 멍!”
“하, 하지 마시오! 삽살 어르신께서는 이제 털갈이조차 힘드신 연세란 말이오! 차라리 본견의 털을…!”
“월, 월월! 월!”
“멈추시오. 부탁이오! 멈춰달란 말이오! 부디…!”
흑풍파 졸개 넷이 버둥대는 멍멍이의 몸통과 꼬리, 다리를 사정없이 짓눌러댔으며, 다른 두 마리는 삽살개의 목덜미를 문 채로 멍멍이의 눈앞으로 데려왔다.
그러고는 똑같이 몸을 짓누른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네놈의 주제넘은 행동 때문에 다른 이들이 피해를 보는 거다, 전부 네 잘못이다―’
“참 개같은 상황이구만.”
대화를 하라고 한 내가 잘못이다. 하긴, 그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폰을 바라보니, 다운받은 어플의 설치가 끝났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대로 실행시킨 뒤, 원하는 항목을 띄워 조작하려던 찰나.
“본견이… 멈추라고…!”
살짝 멀미가 밀려왔다. 고개를 들어 멍멍이를 바라보니, 멍멍이 근처가 일렁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정확히는, 멍멍이의 입가 부근.
“멈추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이 외침과 동시에, 흑풍파 들개 놈들이 일제히 ‘멈췄다.’
이 상황에서 멈추라고 하면, 보통은 짓누르고 있는 앞발을 내려놓거나 물고 있는 목덜미를 놓거나 할 거잖은가?
헌데 그게 아니다. 앞발을 누르는 자세 그대로, 목덜미를 문 그대로 얼어버린 듯 동작을 멈춰 버렸다. 정작 일을 저지른 멍멍이는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됐는지, 떠오르는 걸 죄다 입에 담듯 버럭대기만 했다.
“이 앞발도 좀 치우시고, 본견 목덜미도 놓으시고!!”
이 외침에 흑풍파 놈들이 칼같은 군무로 앞발을 치우고, 목덜미를 물고 있던 입의 힘을 풀었다. 이제서야 자유로워진 멍멍이가, 네 발을 딛고 서서는 털을 부르르 털고는 마저 외쳤다.
“본견,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소. 당신들 다 똑똑히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