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9)
이세계 편돌이-158화(159/331)
158화. 앞발은 무겁게, 뒷발은 가볍게 (3)
* * *
내가 저걸 보겠다고 지금까지 지켜보고만 있었다. 하수도에서 거대 문어를 상대로 해냈던 협상을 흑풍파 놈들 상대로 똑같이 해내는 거.
허나 상황이 내가 상상한 그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우선, 멍멍이의 꼬리와 귀를 물어뜯던 흑풍파 놈들이 동작을 우뚝 멈추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본견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소. 당신들은 약자를 괴롭히고, 털을 물어뜯는 게 그렇게도 즐겁소이까?!”
멍멍이는 구석구석 털이 뜯겨 땜빵이 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분한지 땅을 꾹꾹 밟아대거나, 흑풍파 놈의 앞발 발목을 덥석 깨물기도 하는 등….
“그걸 업으로 삼을 정도로?! 당신들이 부리고 있는 횡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기엔 너무 과하오. 본견의 몸을 보시오. 이게, 이게… 본견 털 어디 갔소. 본견 털 어디 갔냔 말이오!”
흑풍파들 다리 옆을 뽈뽈뽈 돌아다니며 자기 할 말을 해대고 있는데, 말이 두서없는 걸 보면 이성보다 감정이 한참을 앞서있는 상황인 듯했다.
반면 흑풍파 놈들은 무덤덤하다. 털이 어디 갔냐는 멍멍이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흑풍파 졸개 A.
“멍, 멍.”
“본견이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소이까, 당연히 배 속으로 들어갔겠지! 그래서 무슨 맛이었소, 솜사탕 맛?! 진흙 맛?!”
“멍.”
“그렇게 맛대가리 없어 할 거면서!! 본견 털은 도대체 왜 물어뜯은 거요!! 차라리 맛이라도 있다고 하시오!!”
“멍.”
“이미 늦었소!!”
이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들으며 생각해 봤다. 누나는 이걸 언령이라 불렀고, 점장은 ‘진심이 통한 거 아닐까?’라고 해석했지만….
방금 멍멍이가 진짜로 궁금해서 털 맛을 물어본 건 아닐 터다. 눈을 끔벅이며 저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하나가, 내 옷깃을 다시금 꾹꾹 잡아당기고는 물었다.
“아조씨. 멍뭉이들이 왜 저러는 거애여?”
“글쎄. 하나 네 눈엔 저게 어떻게 보이냐?”
“에… 말을 잘 들어주는 거 가타여.”
말을 잘 들어주는 건 아니다.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다. 말을 잘 들어주는 거였으면 털이 어디 갔냐는 질문에 사과부터 했겠지.
이미 늦었다는 말은 ‘차라리 맛이라도 있다고 해라’라는 말에 ‘맞아, 맛있었어’ 같은 뉘앙스의 대답이 나와서일 테고….
저 재주의 정체가 정말 언령인지 진심 대화인지는 모르겠다만, 저 재주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건 명백했다.
“이분들을 좀 보시오! 당신들이 끌고 온 삽살 나으리, 다른 세 분도! 다들 당신들 횡포에 치가 떨려서 말을 잇지를 못하고 있잖소!”
“…….”
저 재주가 피아식별이 안 된다.
멍멍이가 멈추라는 말을 해서인지, 흑풍파 놈들 외의 네 마리도 그대로 멈춰 버렸기 때문이다. 나야 뭐, 그냥 어이만 없을 뿐이고….
“…하나야. 너는 막 멈추고 싶은 기분 같은 거 안 드냐?”
“어뜬 기분?”
“아니다. 내 손 계속 붙잡고 있어.”
“내.”
내가 손을 잡고 있어서인지, 멍멍이 말에 영향을 안 받는 것 같다. 손을 떼 보면 좀 더 명확해지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은 안 들더라고.
마저 지켜보니, 상황이 파국에 치달았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구려! 아니면 본견이 그만치 하찮은 존재라서 이러오?! 이 순간조차 한낱 유흥거리밖에는 못 된다 이 말이지!”
저 꼴을 보면, 멍멍이 놈도 저 재주의 부작용으로 사고회로가 살살 녹아내리고 있는 듯했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니란 걸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그 잠깐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
“좋소! 그렇다면 본견, 그저 얕잡아 보기만 할 존재가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겠소. 흑풍파 나으리들, 한 줄로 똑바로 서시오!”
멍멍이 말에 일렬종대로 헤쳐모이는 흑풍파와 들개들. 그중 맨 앞엣 놈을 올려다보며, 몸을 낮추고는 자세를 잡았다.
“그저 겁에 질려 떨기만 해 왔던 겁쟁이는, 오늘부로 사라질 것이오!”
“슬슬 저 녀석 말려야 될 것 같다, 하나야. 이 가방 잠깐 가지고 있어 봐라.”
“에… 내. 잘 다녀오새여.”
“당신들이 날 비웃는 찰나의 순간이 본견에게는 영겁과도 같았소. 당신들이 내 머리를 바닥에 짓누르고 떠날 때면, 늘 코에 묻은 마른 모래를 앞발로 털어내며 분을 삭여야 했지! 허나!!”
앞발은 무겁게, 뒷발은 가볍게.
언제라도 달려들 수 있도록 임전 태세를 취하며,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멋져 보이는 대사를 내뱉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조곤히 중얼거렸다.
“강한 개는 쉽게 짖지 않는 법이오!”
“멍.”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차례대로 덤비시오! 본견, 이대로 가죽이 벗겨진다 하더라도 오늘에야말로 사생결단을―”
멍멍이가 말을 맺기 직전, 머리를 툭 건드렸다.
손이 닿자마자 멍멍이가 헛, 하고는 먼저 정신을 차렸고, 이어서 일렬종대로 서있던 흑풍파 놈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코를 킁킁대거나 하고는 날 올려다보았는데, 하나같이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인간 놈이 여긴 갑자기 왜 왔나― 하는 표정들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단 얘기다. 왠지 어색한 기분이라,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아까 깔아둔 어플을 실행시켰다. 소리 증폭 어플.
이후엔 동영상을 하나 틀었다. 30분짜리 폭죽 터지는 동영상이다.
― 탕! 투두둑, 치이익. 펑―!
개들이 이 소리만 들으면 환장을 하거든. 도베르만들은 태생이 경비견인 놈들이라 청각이 다른 개들보다 특히 더 예민하다.
“깨갱! 깽, 깨갱!”
“월월! 월!”
공원을 쩌렁쩌렁 울리는 폭죽 소리에, 흑풍파 놈들이 얼마 없는 털마저 쭈뼛 세워가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2m가량 튀어 오르기도 하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을 듯하다 벌떡 일어나 발을 구르기도 하고. 어디로 갔는지를 봐두려 했는데, 눈 깜짝할 새에 몇 마리가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시야에 잡힌 한 놈이 사라지는 걸 지켜보다, 잔디 저편으로 사라질 즈음 어플을 끈 뒤 코를 손으로 부여잡았다. 나도 지금 걸로 고막이 2mm 정도는 찢어진 것 같다.
틀어막은 코에 열심히 바람을 불어넣고 있자니, 바닥에 엎드려 와들와들 떨고 있던 멍멍이 놈이 중얼거리더라고.
“사… 사, 사장님. 방금 그게 무슨 소리외까…?”
“나중에 알려줄게. 흑풍파 놈들 다 도망갔으니까 일어나도 된다.”
말해도 일어날 기미가 없길래, 아예 끌어안아서 직접 주변을 보여줬다. 몸을 돌려주는 방향을 미동 없이 바라보기만 하다, 꼬리를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리는 멍멍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일이오?”
“큰일 날 것 같아서 중간에 말리러 왔다. 인마.”
이 녀석이 마지막에 ‘차례대로 덤벼라’라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그걸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지금쯤 남은 털까지 몽땅 뽑혀 솜 없는 솜사탕이 되어 버렸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말리긴 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설명을 해주는 게 맞는 건가, 아닌 건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 멍멍이가 삽살개와 맬러뮤트, 푸들과 진돗개가 모여있는 곳을 바라보며 딱 두 글자를 읊조렸다.
“…뭔가….”
이러고는 내 손 위에서 픽 늘어져 버렸다. 이것도 하수도에서 있었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기절해 버리는 거.
눈꺼풀을 엄지로 살짝 밀어 올려 봤는데, 검은자위가 위로 까뒤집힌 게 아주 곤히 기절해 버린 모양이다. 바라보다, 하나에게 돌아갔다.
내 품 안에 늘어진 멍멍이를 바라보며 묻는 하나.
“아조씨. 멍뭉이 자여?”
“어. 하나야, 가방 잠깐 열어봐. 이 녀석 포장 좀 하게.”
* * *
삽살개, 푸들, 맬러뮤트, 진돗개.
공원 밖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이 네 마리가 우리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중간에 몇 번 뒤를 돌아봤는데, 이 녀석들이 멍멍이가 든 부직포 가방에서 눈을 떼지를 않더라.
내가 이놈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아나 보다. 공원 출입구에 도착해서는 나도 찝찝해져서, 잠깐 멈춘 뒤 이 녀석들한테 말을 걸어봤다.
“나 얘 안 잡아먹어, 이놈들아. 그러니까 그만 좀 쫓아오면 안 되냐?”
“끄응….”
물론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이대로 계속 갔다간 이놈들 매장까지 쫓아올 것 같은데….
“얘두라.”
도중에 하나가 말을 걸고는, 자기 책가방을 뒤적여 또다시 무언가를 꺼냈다. 빵이었고, 개수가 꽤 여러 종류였다. 단팥, 크림, 기타 등등.
“이거, 이따가 아조씨랑 언니야랑 먹으려구 아껴둔 건대….”
“끼잉.”
“애들 줘두 댈까여? 아조씨?”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빵 포장지를 뜯어 그나마 깔끔한 바닥에 내려놓는데, 빵 앞까지 다가오기는 해도 눈치만 볼 뿐 먹으려고 들지는 않았다.
“우리 가야대, 얘두라.”
“…….”
“그러니깐, 이걸로 바 주면 안 댈까?”
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 건지, 맬러뮤트가 작게 울음소리를 내더라고.
“우프.”
이후에야 다들 빵을 입에 가져가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 10분쯤 걸었을 즈음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그 빵은 또 어디서 난 거냐?”
“그개여, 실은 아조씨한태 비밀루 햇다가, 배고프실 때 짠― 하구 꺼내려구 했는대….”
“아하.”
“쟤내가 훠얼씬 더 배고파 보여갖구. 제송해여.”
“아니다. 더 배고픈 녀석들이 먹는 게 맞지.”
아까 겪은 일에 진이 다 빠져서 뭘 입에 집어넣고픈 기분이 아니기도 했다. 내가 오늘 대체 뭘 본 건지 모르겠네….
이렇다 할 대화 없이 20여 분을 마저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매장 안에 여전히 손님은 없었고, 점장만 카운터에 홀로 앉아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벨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우릴 바라보고는, 과자를 꿀꺽 삼킨 뒤 묻더라.
“좀 오래 걸렸네. 멍멍이는 잘 만나구 왔어?”
“잘 만나진 못했는데, 그래도 포장은 잘 해서 왔습니다.”
“포장?”
계산대 위에 부직포 가방을 올려놓은 뒤, 가방 안에 발라당 누워 버린 멍멍이를 가리키며 아까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 멍멍이 녀석이 또 멍멍이 했다.
“전에 봤던 그걸 한 번 더 했다는 얘기지?”
“네. 근데, 과정이 좀 다르기는 해요.”
하수도 심해에서는 상황이 대충 이랬었다. 문어에게 똑같이 ‘멈춰 달라’라고 부탁했고, 이 부탁을 들은 문어가 우릴 방해하는 걸 멈춰 줬다.
그때는 점장이나 누나, 어르신께서 멀쩡했단 말이다. 이번처럼 피아식별 없이 망부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아니라.
“그건… 내 생각엔, 아마 목적성 문제가 아닐까 싶어.”
“목적성?”
“그때는 멍멍이가 바라는 게 하나뿐이었잖아? 길 비켜 주는 거.”
하지만 이번에는 멍멍이가 그간 쌓인 한을 풀고 싶었을 뿐, 딱히 특정 대상에 특정 목적을 가지고 말을 건 게 아니라는 거다. 그 때문에 대상도 무작위로 정해져 버린 거고….
“이런 형태로 발휘되는 마법들이 엄청 예민한 마법이기도 하구. 목적성만이 아니라 어절, 어조, 맥락, 호흡. 전부 다 신경 써야 되니까.”
마법에 대입한다면, 말을 하는 과정 자체가 연산식으로 작용하는 셈이라고. 설명을 마친 점장이 마지막에 덧붙였다.
“물론 이게 마법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니,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예….”
점장은 이 녀석이 자기 재주를 깨우쳐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게 보이는 것 같다. 내 솔직한 감상은, 부탁하는 걸 다 듣게 해 준다는 게 무척 위험한 재주가 아니냐는 생각이긴 하지만….
언젠가 말을 해 주긴 해야 할 것 같다. 이 녀석이 재주를 부리는 족족 기절해대고 있는데, 자기가 왜 기절하는지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지금은 말고. 가방 안에서 간간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가방을 들어 품에 안은 점장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찬이, 이제 바로 집 구하러 갈 거야?”
“네. 지금 시간도 좀… 벌써 12시 다 됐네.”
“그럼 찬이는 다녀오구, 하나는? 언니랑 초콜릿 먹구 있을까?”
점장이 초콜릿 곽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는 도중, 하나가 멘 책가방 안에서 웬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기본음이다.
“앗. 엄마야한태 전화왓서여!”
하나가 전화랑 문자만 되는 피쳐폰을 들고 다니기는 했었다. 바로 책가방을 벗어서는 폰을 꺼내 펼친 뒤, 귀에 가져다 대는 하나.
“엄마야! 응!”
― …….
“응. 응, 으응… 정말루?”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다, 잔뜩 놀란 표정이 되어 버린다.
“에… 그러니깐… 아. 맑은 공기!”
― …….
“응! 바루 갈께.”
이후 전화가 뚝 끊어졌고, 미안하다는 얼굴로 점장을 올려다보는 하나.
“언니야. 그게….”
“어머니께서 찾으시나 보네.”
“내. 엄마야가, 일 다 끝낫스니깐 빨리 오라구… 아니면 직접 오시겟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