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
이세계 편돌이-15화(16/331)
15화. 2일 차의 편돌이 (3)
동물 심리학자 스텐리 코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치와와의 지능 지수는 약 100여 마리의 견종 중 67위.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는 힘든 순위다.
물론 사실이 아닌 연구 결과이니만큼 완전히 신뢰할 수야 없겠다만, 최소한 67위라는 치와와의 지능 지수만큼은 믿어도 되겠다 싶었다. 왜냐면 말이다, 이 치와와 지능이 평균 이상이었다면 어제 칫솔 사갈 때 치약도 같이 사 갔을 테니까!
“치약 어딨냐고!”
“어제 칫솔 사신 곳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그래도 첫날을 겪어봐서 그런지 그때보단 여유가 좀 있었기에, 한번 추측을 해봤다.
이 치와와는 양복을 입고 있고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다. 즉, 이 근처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복장의 손님이 한 번 다녀가고 이후 또 방문을 해온다면, 어지간해선 단골이 될 확률이 높다. 단골이 늘어나는 게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긴 한데, 왜 하필이면 내 근무 시간대에….
“그게 어딘데?”
“네 번째 코너 뒤편에 있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아?”
대체 얼마나 더 잘 설명을 해주라는, 아. 모르겠다.
전처럼 다시 일어나서 치약 있는 곳까지 같이 가줬다. 이번에는 술 냄새가 그리 심하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하는 짓이 똑같다. 그냥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네 번째 코너 뒤편에 도착한 뒤, 몇 종류 되는 치약을 빤히 내려다보던 치와와가 물었다.
“이 중에 어떤 치약이 좋냐?”
“글쎄요?”
“여기서 일하면서 그것도 몰라?”
이런 경우가 자주는 아니어도 간혹 있다. 알바생한테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물어보는 거.
그리고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나도 몰라. 내가 써보고 파는 게 아닌데 어떻게 알아?
알바생이 그나마 아는 게 있다면 도시락 맛 정도다. 폐기로 나온 거 한두 개 주워 먹다 보면 이건 왜 잘 팔리는지, 이건 왜 안 팔리는지 대충 감이 오거든. 특히 소스 부어 먹는 종류의 도시락이 폐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 것들은 폐기여도 번거로워서 손이 잘 안 가.
“제가 상품 성능을 다 아는 게 아니라서요.”
“그래도 대충은 알 거 아니야.”
“제가 아는 건 이게 다 1+1 상품이라는 것들뿐이에요. 이번 달 이벤트 상품이라.”
“두 개는 필요 없는데.”
“그래도 하나 공짜인데요. 그냥 가져가시는 게?”
그냥 가져가지 말고 제발 가져가. 나중에 치약 사러 또 오지 말고….
잠시 고민하던 치와와가 집어 든 건, 가장 비싼 치약 두 개였다. 카운터로 가져와서는 치약 두 개를 내려놓고, 카운터 위의 숙취해소제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불쑥 내게 묻는다.
“이거 효과 괜찮냐?”
숙취해소제도 난 먹어본 적이 없다. 가격이 더럽게 비싸기 때문이다.
3개들이가 5,500원인데, 그 돈이면 싼 계란 한 판을 사 먹을 수 있다. 이거 먹을 바에 그냥 계란 한 판 부쳐 먹는 게 숙취 해소에도, 건강에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에이 씨, 한번 먹어보지 뭐. 이것도 줘.”
“이것도 1+1이에요, 손님.”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냐?”
이것도 내가 당연히 모르는 거라, 하나 집어서 뒷면을 한번 살펴봤다. 술 먹기 전에 한 번, 술 먹은 뒤에 한 번 먹으면 술 잘 깬다고 적혀있다. 그렇게 읊어주자, 치와와가 곧장 말했다.
“너 가져. 난 두 개는 필요 없다.”
“네?”
“치약도 가지고.”
“아니, 이걸 왜 절 주십….”
“내 알 바냐고. 나중에 돈 달라 안 할 테니까 그냥 가져, 새끼야.”
내가 돈 달라 할까봐 무서워서 이러는 게 아니라, 치약이랑 숙취해소제를 알바하면서 대체 어디에 어떻게 써먹으라는 건데….
아까 점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손놈이 날 사람으로 안 보면 나도 손님 대우해 줄 필요 없다고.
이놈 상대하면서 그 말이 계속 떠오르긴 했는데, 이 치와와는 손놈 손님 분류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미친놈 같아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계산을 마친 치와와는 짧게 중얼거린 뒤.
“나 간다.”
가버렸다.
계산대 위에 올려진 숙취해소제와 치약을 치운 뒤, 치와와라는 견종이 대체 왜 인기가 있는 건지 잠깐 고민을 해봤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고민을 했는데, 이건 답이 바로 나왔다. 오늘 근무도 거지 같을 게 분명하다는 것.
근무 30분도 안 되어 어제 온 손님 중 둘이 방문했으니, 어제 왔던 손님들 중 대다수가 오늘 다시 방문할 것이라 추측해도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제 온 손님들 대부분이 정상이 아니었고. 난 알바 첫날에 취객이 토해놓은 오바이트 치우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 인생의 스토리 담당이 누군지는 몰라도 일 참 더럽게 못 하는….
“싸장뉨.”
이건 또 뭔 소리야.
벌떡 일어나서 앞을 바라봤다. 이 말 어눌한 손님이 상당히 특이했는데, 전체적인 신체 구조는 사람이었으나 얼굴 생긴 것은 인형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기계로 된 인형?
또한 공장 작업복을 입고 있었는데, 몸이 온갖 더러운 무언가에 절여져 있었고. 뭐 도축이라도 하다 왔나.
“네, 손님.”
“이거….”
말하며 손님이 스마트폰을 건네왔다. 일단은 받아 들어 화면을 살펴봤는데, 어디 문화권인지 짐작조차 힘들 정도로 꼬부라진 글씨들이 가득했다.
“어… 이게 뭡니까?”
“쑤얏.”
쑤얏은 또 뭔, 이 기계인형 외노자라도 돼?
편의점에 외노자들이 엄청나게 찾아오긴 한다. 편의점이 의외로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공과금 납부도 가능하고, 택배도 보낼 수 있고, 잠깐 점심 먹으러 올 수도 있지.
이 기계인형 양반도 그런 이유에서 찾아온 것인 듯한데, 글씨를 알아먹을 수 없는 탓에 뭘 하려는지도 짐작이 안 됐다.
답답함에 화면을 위아래로 슬라이드 해보니, 지폐와 비행기가 새겨진 로고 같은 게 보였다. 이걸 보니까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
“혹시 해외송금 하시는 겁니까?”
“네! 쑤얏! 쑤얏!”
놀랍게도, 편의점에서는 무려 해외 송금이 가능하다. 내가 직접 해 본 적은 없고, 몇 년 전에 알바하던 친구가 ‘넌 누가 해외송금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해라’라며 귀찮아하던 걸 겨우 떠올렸을 뿐이긴 하지만….
난 일 걸러 가며 할 생각은 없다. 이것도 일이니만큼 해줘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눈만 어지러울 뿐이라 글을 읽어서는 답이 안 나오겠다 싶었다. 이럴 때 방법은 하나뿐이지.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
임기응변. 글을 읽어서 해결이 안 되면 아이콘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우선, 화면에는 동전이나, 달러, 등등. 총 여섯 개의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그중 건물 모양 아이콘이 있길래 눌렀더니, 이번엔 지폐 다발과 편의점 브랜드 로고가 나타났다. 이 지폐 다발이 은행이고, 편의점 브랜드 로고가 편의점 아닐까?
편의점 로고를 누르자 빈 공백란 하나가 나타났으며, 오른쪽에는 금액을 입력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기계인형 양반에게 물었다.
“얼마 송금하시는 거예요?”
“?”
“하우… 하우 머치?”
“아. 오쓉마넌, 오쉽마넌.”
“오케이, 오쉽마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금액은 내가 50만 원 입력해 줬고, 다음에는 밑에 파란색 버튼과 회색 버튼이 나타났다. 보편적으로는 파란색이 확인, 회색이 취소 버튼이니까….
파란색 버튼을 누르자, 이번엔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듯한 창이 나타났다. 스마트폰을 돌려주자 기계인형이 화면의 글을 읽고는 고개를 갸웃해왔다.
“입력, 캐야 해요? 캐인정보?”
“예.”
의아해하면서도 손으로 화면을 가리고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더니, 다시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어왔다. 이번엔 바코드 찍는 화면이 떠오른 상태다.
바코드기로 찍자, POS기 화면에 잘못된 바코드라는 에러문구가 출력되더라. 이걸 바로 찍을 게 아니라, 미리 추가적인 조작을 해놓으라는 것 같다. 이런 경우엔 어지간하면 서비스 항목 눌러서 들어가 보면 있던데….
“쏴장님. 잘 되구 잇쒀요?”
“잠깐만요. 해봐야 알 거 같아서….”
“?”
“낫 슈어. 웨잇… 웨잇 어 세컨.”
또다시 고개를 갸웃해온다. 나도 영어 잘한다곤 말 못 하지만 이 기계인형은 나보다 가방끈이 더 짧은가 보다. 일단 계속 해보자고.
POS기 터치스크린의 버튼 십수 개 중 서비스 항목을 찾아 이것저것 눌러보는 와중, 아까 화면에서 봤던 편의점 로고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콘이 보였다.
눌러보자, 아무튼 바코드를 찍어보라는 화면이 떴다. 바코드를 찍었더니, ‘현금 결제만 가능합니다. 결제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가 떠올랐, 오?
“뭐야, 이거 진짜 된 거야?”
“예? 쏴장님?”
“아, 손님. 일단, 어. 그… 돈 주십쇼.”
“네.”
5만 원짜리 10장을 내밀어 온다. 받아서 센 뒤, 확인 버튼을 누르고 금액을 입력하자 영수증이 출력되었다. 매출액 액수는 딱 50만 원이 늘어나 있었고.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는데 잘 풀린 모양이다.
“된 거 같습니다. 영수증 나왔어요.”
“이거… 이거.”
허나 기계인형은 영 불안하다는 얼굴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문자 화면을 켜서는 내게 내밀어왔기 때문이다. 송금이 제대로 되면 문자메시지가 날아오는 구조인 듯한데, 아직까진 수신된 메시지가 없다.
“해외 송금하시려는 거면 시간이 걸릴 테니 좀 기다리셔야 되지 않을까요.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네?”
“결제 잘 된 거 같으니까, 저기 앉아서 잠시만 기다리셔요.”
편의점 테이블을 가리키자, 기계인형은 얌전히 테이블로 가 앉으면서도 걱정스러운 듯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그러길 2분.
“쑤얏!”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고는, 내게 다가와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잘됐나 보다.
“쏴장님, 조아요. 조아요!”
“좋으시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러니까 이제 가주면 안 될까?
허나 기계인형은 내게 손바닥을 내밀어 보이더니, 편의점 밖으로 문을 활짝 열고 나가서는 한쪽 방향을 향해 외쳤다.
“쑤얏! 베르떼 까뚬!”
“쑤얏??”
“쑤얏! 뽀르뚜 베르떼 까뚬! 까뚜움!”
동시에 우르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편의점 쇼윈도 밖으로 보이기 시작한 기계인형이 5명, 10명… 아니, 대체 몇 명이야.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친 듯이 기계인형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장 들어온 게 다섯 명, 이후에 또 다섯 명. 계산대 앞이 점점 메워지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기계인형들이 서로 뭐라 뭐라 씨부리며 서로 밀치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쑤얏! 쑤얏!”
“쑤야앗!”
그리고 난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야이 씨, 그만 좀 들어와! 너희들 목적이 뭔지 알아. 날 엉망진창으로 만들려는 거지?!
제발 그만 좀 들어오라고 속으로 수십 번을 빌어도 기계인형들의 행렬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꾸역꾸역 편의점에 들어온 기계인형들의 수가, 대충 세어봐도 40명. 자리가 없어서 과자 진열대 뒤로 넘어간 양반들도 제법 됐으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이제야 정황이 대충 짐작이 됐다.
이 기계인형들 이거 해주는 곳 찾아서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던 거다. 근데 보여준답시고 내미는 화면이 꼬부랑 글씨 천지니, 알 리가 있었겠는가? 여기서 안 된다고 내쫓았겠지.
근데 그걸 내가 해 줘버렸네…?
기계인형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들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내밀어 오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맨 앞의 기계인형에게 물었다.
“혹시 무슨 일 하세요?”
“네?”
“왓 유얼 잡?”
“아. 슬래터. 몬스터 슬래터.”
아. 몬스터 도축 일 하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