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0)
이세계 편돌이-159화(160/331)
159화. 집 구하러 왔는데요 (1)
* * *
하나가 머뭇머뭇 설명해오길, 엄마가 밀린 일을 다 끝낸 것 같단다. 밖에서 점심 먹고 집에 들어가려 하는데, 회사 육아실에 자기가 보이질 않아서 전화한 것 같다고.
설명하는 중에는 틈틈이 점장 눈치를 살폈는데, 점장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초콜릿 상자를 다시 계산대 밑에 집어넣는 참이었다.
“나 이러다 삐질 거 같아.”
“헛.”
“점장님. 저 엄마한테 얘 데려다주고, 그다음에 지하철 타고 가보든지 하겠습니다.”
이번 건 점장이 삐진 척을 하고 있다는 티가 났다. 말을 돌리자, 표정을 풀고는 하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점장.
“초콜릿은 잘 보관해둘 테니까, 나중에 만나면 그때 같이 먹자.”
“내… 제송해여, 언니야.”
“괜찮아, 잠깐 척만 해본 거니까. 찬이는 하나 바래다줘도 안 늦겠어?”
“애매하긴 한데… 한 정거장 앞 지하철 타러 간다고 생각하고 말죠, 뭐.”
사실, 이 녀석을 끝까지 바래다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줄곧 찜찜하긴 했었다. 그리고….
“모처럼 멍멍이도 왔으니, 햄버거나 하나 배달시켜야겠다. 얘 양파 먹어두 돼?”
“저도 몰라서 여태 안 먹였는데, 계속 안 먹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야겠다. 잘 다녀와, 찬아.”
“옙.”
이참에 애 엄마가 어떤 드래곤인지 좀 봐두고 싶기도 했고. 밖으로 나와 회사 앞까지 걸어가며, 우선은 해야 될 말을 했다.
“하나야. 너 학원지구 쪽 지하철역 어디 있는지 알아?”
“내. 엄마야가 대리러 오실 때, 그 앞애서 기다리셔갖구….”
“우리 그 지하철역 앞으로 이사 갈 거니까, 나중에 찾아오거든 헷갈리지 말라고. 알았지.”
“아. 내.”
다음은, 알아야 될 걸 물어봤다.
“그런데 너희 어머니, 여기 도로 폭보다 크시냐?”
“폭이여?”
“방금 건너온 횡단보도보다 크시냐― 작으시냐를 물어본 거야.”
내 말에 길 건너편을 힐끗 바라보고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가 4차선 도로고 도로 폭이 차선당 1.5m니까… 흠….
“왜여, 아조씨. 엄마야 만나 보시려구여?”
“아니. 방금 얘기 들으니까 만나 뵈면 안 될 것 같다.”
7살 꼬마와 놀고 있는 29살 아재를 애 엄마가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 같지도 않고, 다 떠나서 그냥 무섭다. 몸길이가 최소 6m면, 앞발톱은 대체 얼마나 큰 거냐?
“엄마야, 평소애는 짝게 다니새여. 차 타고 다니시구.”
“그러냐? 작으실 때는 어떠신데?”
자연스럽게 엄마 외형을 물어볼 수 있게 됐다. 눈을 안 마주치려면 대상이 누군지부터 알아야 할 텐데, 그렇다고 ‘네 엄마 어떻게 생겼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긴 좀 그렇잖아.
“그게, 키는 아조씨랑 비슷하구….”
계속 걸으며 하나가 이런저런 걸 설명해줬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온통 까맣댄다. 뿔 빼고.
외의 특징으로는 뿔이 제법 크고 머리가 길며 정장을 입고 지내신다는데, 사실 얘가 설명을 잘 못했다. 의식을 안 하고 살던 부분이라서인지 말이 좀 두서가 없더라고.
“그리구여, 또….”
“그 정도면 됐다. 고맙다, 하나야.”
그래도 지침을 세우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그냥 여자랑 눈을 마주치질 말자. 이건 평소 나 살던 세상에서도 잘해 오던 짓이라 여기서도 잘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마저 걸어 회사 건물 앞 거리까지, 길 건너편에 위치한 회사 건물을 올려다봤다. 멀리서 봐도 더럽게 크던 건물을 코앞에서 올려다보려니 목이 다 아플 지경이다.
눈을 가늘게 떠도 건물 꼭대기가 잘 보이질 않는다. 여기가 대체 뭘 하는 곳인지를 잠깐 상상하는 사이, 하나가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중얼거렸다.
“앗. 엄마야다.”
바라보는 곳을 따라서 바라봤는데, 건물 앞 갓길에 주차된 자동차 한 대만 보일 뿐이었다. 운전석과 뒷좌석 문 간격이 2m 정도는 떨어져 있는, 추정 수억 원은 나갈 듯한 리무진 한 대가….
“…설마 저게 너희 엄마 차냐?”
“내.”
하나가 대답하는 동시에 운전석 문이 열리며 선글라스를 낀 누군가가 내렸는데, 뿔이 달려 있긴 했어도 흰색은 아니었다. 엄마 차인데, 운전을 딴 사람이 한다고?
내린 누군가가 우리 쪽을 잠깐 바라보는 듯하더니, 뒷좌석 앞으로 가서는 뒷짐을 진 뒤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야이 씨, 그러니까 저게….
“저 가 바야 댈 거 가타여, 아조씨.”
“저분은 운전기사분이시고…?”
“내. 운전사 아조씨. 왜여?”
“…아니. 아니다. 나중에 보자.”
더 묻지는 않고 등만 토닥여줬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횡단보도 앞에서 좌우를 두리번거린 뒤, 오른손을 들며 길을 건너는 하나.
그걸 바라보던 운전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어줬고, 문 앞까지 가서는 고개를 크게 꾸벅인 하나가 리무진 뒷좌석에 탑승했다.
그 탓에 자동차 내부는커녕 안에 엄마가 정말 타고 있는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게 됐다. 이제 와선 별 의미 없긴 하지만….
“…어.”
멍하니 바라보던 도중, 뒷좌석 창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창문이 열리며 보이기 시작한 게, 처음에는 자작나무를 연상케 하는 흰색 뿔, 그다음엔 긴 생머리, 그리고 눈동자.
리무진과 나 사이의 거리가 육교 한 개 분량 정도는 된다. 아주 멀다고는 못 해도, 뒷좌석에 탄 사람의 눈동자 정도는 볼 수도 없고, 보더라도 인상에 남지 않아야 정상일 거다.
그런데도 보였다. 아주 뚜렷하게. 밧줄에 매인 듯한 포박감과 오한, 약간의 일그러짐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
저게 애 엄마일 듯한데, 느닷없이 왜 저러냐. 갑자기 마법은 왜 써?
생각하는 순간,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고개를 돌리며,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 보내는 척을 했다.
느낌이 싸한 게, 지금 눈 마주쳤다간 일이 복잡해질 것 같다. 폰의 메인 화면을 의미 없이 꾹꾹 눌러가며, 곁눈질로는 차가 떠나는지를 틈틈이 확인했다.
폰에 찍힌 시간이 1분, 체감상 십수 분이 지나고 나서야 시야 구석의 창문이 닫혔고, 잠시 뒤엔 리무진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는 거리를 내달리는 소리.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찬아. 하나 잘 갔어? ]“예. 잘 간 것 같긴 합니다….”
[ 다행이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렇게 떨려? ]“그게… 아니지. 지하철 타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5분만요.”
* * *
오는 길에 지하철역이 있는 걸 봐뒀다. 꽤 가깝다.
출입구와 개찰구를 지나 스테이션에 선 뒤, 도착한 지하철에 타고 나서야 다시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했는데, 다 들은 점장이 말이 없다가 지하철이 출발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꽤나 당혹스럽다는 어조였다.
[ 그분이 찬이한테 그걸 했다구? 왜? ]“그거야 저도 모르… 예? 그걸 했다뇨?”
[ 마력 감지하는 거 말야. 하나가 몇 번 했던 그거.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나가 몇 번 했던 그걸 할 때마다 늘 바로 옆에 있었지만, 방금 같은 느낌을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 느낌이 정확히 어땠길래? ]“그… 기묘한 압박감 같은 거였는데요. 혹시 입사면접 보신 적 있으십니까?”
[ 난 없지. 그래도 어떤 느낌인지는 대충 알겠어. ]이후엔 이 압박감의 정체도 바로 설명해줬다. 특정 대상에게 대놓고 감지 마법을 사용할 경우, 그 대상이 받는 느낌이 내가 받은 것과 똑같다고.
[ 드래곤분들한테는 그게 마법이 아니기는 해. 하나도 의식하고 마법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니까. ]“마력 감지하는 게 드래곤들 원래 종족 특성이다― 라는 말씀이시죠.”
[ 개인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응. 근데, 이번엔 찬이가 이게 궁금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합니다.”
마법적인 건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감지를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라, 왜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건지가 의문이다.
“물론 짐작은 합니다. 하고는 있는데….”
하나가 말해줬었다. 자기한테 붙여 준 반창고를 엄마가 직접 봤고, 누가 붙여 줬냐고 자기한테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회사나 집, 유치원 외에 다른 곳의 누군가가 애를 돌봐주고 있다, 의심 정도야 당연히 할 수 있다 생각한다. 의심을 안 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지, 애한테 관심이 없는 거니까.
또, 그 거리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이라곤 나랑 하나, 단둘뿐이었다. 붙어 있다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창밖에 우리 둘이 동시에 보인 시점에서 당연히 내가 수상하게 보이긴 했을 거다.
“그래도, 이건 좀….”
[ 과민반응이다? ]“아니, 생각해 보십쇼, 점장님. 제가 유치원 다니는 애 데려다가 어버이날 선물 만들어 주고, 뿔도 좀 만져 주고 반창고 붙여 주고 한 것 말고는 없….”
[ 좀 많지 않아? ]“…사실 그렇긴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과민반응 같진 않기도 하고… 아니지. 하나가 엄마한테 이걸 다 말하진 않았을 거 아냐.
내가 정확히 뭘 했는지 알고서 한 짓이 아니라, 순전히 내가 자기 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감지 마법 비스무리한 걸 썼다고 해석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걸로 뭘 감지하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몸뚱어리가 마력도 없고 마법도 안 통하는 몸이니 당연히 별 소용도 없었을 거고.
“이 정도면 그냥, 애 근처에 누가 같이 있는 것 자체를 달갑지 않아 한다고 보는 게 맞지 않습니까? 점장님?”
[ 글쎄. 드래곤분들이 성격이 좀… 특이하기는 해. 종잡기 힘들 정도로. ]“하나는 안 그렇잖아요.”
[ 하나도 또래 애들에 비해선 특이한 편이긴 하지. 많이 착하잖아. ]그 특이한 걸 말하는 거라면, 그렇긴 했다. 1주일에 한 개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을 남 주는 7살 애가 흔하지는 않으니까.
이후로도 도중에 내려서 환승도 하고, 계단도 오르내리고.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점장과 이런저런 의견을 내 봤는데, 어떤 의견을 내놓더라도 귀결되는 결론이 한 가지밖에 없었다.
[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모르니, 이렇다― 얘기할 수 있는 게 없네. ]“예. 점장님 말씀대로 종잡기 힘들다는 건 확실한데….”
애를 아낀다는 건 알겠다. 이 썩는다는 말을 하면서도 1주일에 한 번씩 초콜릿 준다고 하고, 애가 찾아온다는 얘기 듣고 회사 건물 앞에서 기다려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꼬인 것 같기도 하다. 하나가 지금 이렇다 할 친구가 없다.
뿔을 통해 이종족들 마음을 볼 수 있고, 때문에 또래 애들이 드래곤인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먼저 접근도 못 하고 있었고, 악순환이었다.
헌데, 애 엄마는 그걸 축복이라고 여긴단다. 나중에 커서 훌륭한 드래곤이 될 거라고. 난 잘 모르겠다. 7살 애한테 친구랑 노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기나 한가? 세뱃돈?
[ 그분, 나중에 매장에 찾아오실 것 같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말 섞어 본 건 아니지만, 딱 봐도 평소에 엄청 바쁠 것 같이 보이긴 하던데.”
[ 응? 찬이, 잠깐 봤다구 하지 않았어? ]“리무진 뒷좌석에 타고 있었고, 운전기사도 따로 있더라고요. 하나 엄마가 회사 사장 같던데요?”
[ 오오…. ]점장이 감탄한 반면, 난 별생각 안 들었다. 아무튼 풍족하게 살고 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고, 내가 앞으로 걔 엄마 회사를 다닐 일도 없을 테고.
솔직히, 포트폴리오에 고교 졸업 한 줄 말고 적을 게 없는 놈을 어느 인사과에서 미쳤다고 뽑겠어?
[ 그건 모르지. 어쩌면 그 회사에서 특채로 반마법사들 뽑을 수도 있잖아. ]“그것도 생각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저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습니다. 점장님.”
[ 정말? 거길 길 안 잃구 한 번에 갔어? ]“뭐… 한번 와본 곳이니까요. 이따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점장님.”
마음에 둔 곳이 몇 군데 있긴 하다. 나중에 살거든 꼭 이런 곳에서 살아 봐야지― 생각하면서 찜해 둔 곳들.
[ 어떤 곳?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더라고요. 관리비도 싸고 역에서도 가깝고 해서, 우선 이런 곳들부터 좀 가보려 했는데―”
[ …찬아. ]“예.”
[ 혹시 집 구해 본 적 이번이 처음이야? ]“아니,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