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2)
이세계 편돌이-161화(162/331)
161화. 집 구하러 왔는데요 (3)
* * *
들은 직후엔 말이 좀 이상하다 싶었다. 난 집 둘러보러 왔을 뿐인데, 대체 뭘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는 거야.
그래도 얘기를 해 준다고 하니, 갈 땐 가더라도 얘기는 들어 보자는 생각에 집주인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내 마음속 의심암귀가 빼꼼 고개를 내밀게 할 만한 요소들이 여럿 있었는데, 첫째는 우편함. 101호부터 402호까지 여덟 개 우편함 중 우편이 들어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
둘째는, 가스계량기에 찍힌 숫자가 0이었다는 것.
학원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6분, 보증금 없이 딸랑 25만 원 월세를 받는 투룸 건물에 거주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라는 거다. 이게 말이 돼?
셋째는 집주인이 보여준 투룸 그 자체였다. 안에 들어서서 신발 벗고 내부를 돌아다니는 동안 날 따라다니던 집주인이 슬쩍 물어보더라고.
“어떻소. 괜찮아 보이오?”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이곳 월세가 왜 이렇게 책정됐는지 전혀 짐작이 안 될 정도로 말야.
내가 어젯밤 방 구해 보려고 알아본 게 꽤 많다. 우선, 세탁기나 냉장고를 비롯한 가전제품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
켜 보니 잘 돌아갔다. 심지어 세탁기는 드럼세탁기야.
외에도 채광, 벽지, 화장실 상태가 어떻다든가, 집 창문은 몇 개인가, 좁아터진 곳을 억지로 투룸으로 개조한 곳은 아닌가, 등등….
하자가 하나라도 있거든 집주인한테 꼬치꼬치 따질 작정이었는데, 내 기준으로는 따질 게 없었다. 채광? 창문과 발코니가 남향으로 나 있다.
벽지는 새로 도배한 티가 나지 않음에도 깔끔했다. 최근에 일부만 도배한 흔적이 있는 곳은 곰팡이를 감추려고 급하게 도배를 한 곳이니 특히 주의하라고 하더라고.
외에 화장실 수도꼭지나 변기, 샤워기는 몇 번이나 동시에 틀어도 물이 잘만 나왔고, 방음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확인 못 했다. 위아래 층에 거주하는 이종족이 하나도 없는데 층간소음은 무슨.
마지막으로 텅 빈 침실에서 주변을 둘러보다, 집주인에게 물었다.
“집주인 아저씨, 여기 혹시 급하게 내놓는다거나 해야 하는 상황이세요?”
눈에 보이는 조건이 워낙 좋다 보니, 보이지 않는 조건을 자연스레 묻게 된다. 왜, 집주인이 부채가 많아서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 상황이라거나….
“애초에 보증금이 없는데, 보증금을 어떻게 돌려주라는 말이오.”
“그럼 가격이 책정된 기준이 대체 뭡니까? 월세도 지나치게 저렴하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세입자 신분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단 건 안다. 얕잡아 보이기 딱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아, 그럼 다른 더 좋은 집 있는 건 안 보여줘도 되겠구만―’이라든가.
하지만 나로선 물어보지 않고는 문제를 도저히 못 찾겠더라. 정말 문제가 없는 거면 아예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고 반쯤 마음을 정하기도 했고.
묻자, 집주인이 오히려 어이없다는 얼굴로 내게 되물어왔다.
“문제가 많으니까 세를 낮춘 거지, 뭔 이유가 더 필요하겠소.”
“그러니까 대체 어떤 문제가 있단 건지를 좀….”
“그건 이제부터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알아서 할 일요? 전 집 구하러 온 건데?”
“나도 알고 있소.”
미치겠네. 지금 이야기가 헛도는 거야, 아닌 거야?
상황이 여러 방면으로 이해가 안 된다. 머릿속으로 한창 헛다리를 짚는 찰나, 느닷없이 가벼운 무언가가 바닥으로 덜그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와 확인해 보니, 천장 형광등을 덮고 있던 커버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더라. 이건 또 갑자기 왜 떨어진….
― 똑똑.
이번엔 노크 소리.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 봤는데, 문밖 어디를 살펴봐도 인기척은커녕 계단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조차 안 들리고 있다.
― 똑똑.
와중에 한 번 더 노크 소리가 들려왔는데, 내가 현관문 코앞에서, 문 앞뒷면을 동시에 보고 있는데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여기에 많다는 문제라는 게, 설마….
“이젠 좀 문제가 보이오?”
현관 앞까지 따라 나온 집주인이 내 등 뒤에 대고 물었다. 질색을 하는 표정인 걸 보면, 커버가 떨어지고 블루투스 노크 소리가 들려온 현상을 이미 알고 있다는 기색이었다.
이젠 나도 좀 알겠고. 아까 들어오기 전에 집주인이 말했었다. 헌터 사무소에서 온 사람이냐고. 적당히 대답했다.
“예. 보이네요. 저 혼자서 좀 더 둘러보고 있어도 될까요?”
“문단속만 잘해 준다면 상관없소.”
“그럼 마저 확인해 보고, 이따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처 좀 주세요.”
내게 연락처를 건넨 집주인은 ‘도어락은 1111이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고, 이제 집에는 나와 떨어진 형광등 커버, 그리고….
집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뭔가가 남았다. 집주인이 계단을 내려가는 걸 지켜보던 도중, 화장실 내부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쏴아아….
화장실로 들어가 봤더니, 욕조 쪽의 샤워기가 한창 욕조 안으로 물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수도꼭지가 닫혀있음에도 말이다. 샤워기를 바라보며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이찬. 거기 상태는 괜찮냐? ]“잠깐 봤는데, 여기 허위매물 같어. 누나.”
[ 그래? 어떤 점이? ]“마귀 들린 점.”
열려있는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느닷없이 형광등 커버가 떨어지고, 물이 제멋대로 틀어지고 있다. 이게 귀신 들린 게 아니면 뭐겠어?
지금도 욕조 안에 계속 물이 쏟아지고 있는데, 마개로 막아두지도 않은 욕조에 점점 물이 고여가고 있다. 저 물은 어떻게 꺼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수도꼭지도 잠겨 있는데….
이후, 누나에게 마저 물었다.
“누나, 나 궁금한 것 좀 물어보자. 집주인이 아까 나한테 헌터 사무소에서 연락받고 온 사람이구만― 이러던데, 누나한테 집주인이 여길 뭐라고 말했어?”
[ 어? 그거 내가 말 안 했냐? ]“안 했는데?”
이 대화 후에야 누나가 집주인이 해왔다는 말들을 내게 읊어줬는데, 원래는 이 집을 지금 내놓을 생각이 없었단다. 내부 리모델링을 거친 뒤, 좀 더 비싼 값에 팔아먹을 생각이었다고.
그래서 인부들을 불렀는데, 이 인부들이 작업을 시작하려고 하기만 하면 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천장 벽지를 들어내려고 사다리를 세워놔도 올라가려고 하기만 하면 자빠지고, 전기를 써 보려고 하면 차단기가 쉴 새 없이 내려가 버리고….
[ 그런 현상이 자꾸 일어나니까, 인부 십장이 마귀부터 잡고 나서 부르라며 철수해 버렸댄다. 이후에는 마법사들, 반마법사들 몇 번 불러다 마귀 잡으려고 했는데 못 잡았다고 하고. ]“그럼 누나 사무소에 연락은 왜 했대. 누나 사무소 마귀도 잡아?”
[ 잡으라면 잡아 주기는 하는데, 우리한테는 마귀 잡아 달라고만 연락한 건 아냐. ]누나 왈, 반년 동안 마법사랑 반마법사들 부르는 비용만 몇천 단위로 깨졌을 거란다. 그럼에도 이 마귀 놈을 못 잡은 상태고. 마귀 놈이 숨바꼭질에 도가 텄나 보다.
집주인으로서는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을 수도 없으니, 리모델링을 포기하는 대신 세입자로서는 기가 막힐 발상을 해 버렸다는 것이다.
[ 쉽게 말하면 이런 거지. 값싸게 거주하는 대신, 안에 있는 마귀 잡아 주실 분 찾아요. ]“그 내용으로 사무소에 연락을 돌린 거다? 언제부터?”
[ 아마 우리가 두 번째인가, 그럴걸? 첫 번째로 전화 건 사무소는 자기들은 기숙사 따로 운영한다며 끊어버렸대. ]누나도 ‘우리 사무소에 잔업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라며 끊어버린 전적이 있긴 하나, 끊은 뒤로는 내심 이 건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집도 없고 계획도 없는 반마법사 겸직 편돌이 한 놈이 집을 구한다네? 하면서 혹시나 싶어 내게 소개해준 게 현 상황.
여기까지 듣고 난 뒤, 집 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떨어져 있던 형광등 커버가 어느새 위치를 바꿔서는, 지 모서리를 베란다 유리창에 콩콩 들이박는 중이었다. 흠….
“이런 일이 자주 있어? 누나?”
[ 집에 마귀 들리는 거야 일상이지. 책상 모서리에 발 찧은 인간들 원한이 쌓여서 책상에 마귀가 들린다거나, 층간소음 때문에 천장에 마귀가 들린다거나…. ]“그거 말고, 마귀 들린 거 빼곤 살 만한 집이 매물로 자주 나오냐고.”
[ 뭐야. 너 진짜 거기서 지내보게? ]시도는 해볼 생각이다. 정말 마귀가 들렸단 점만 빼면, 어딜 가도 이만한 집을 찾기가 힘들 것 같아서였다. 나도 드럼세탁기로 내 옷 좀 세탁해 보고 싶다.
다 떠나서 월세가 고작 25만 원이잖은가. 한 달 치 월세를 내고 내가 1주일 뒤에 도망가 버린다 가정해도 하루 숙박비가 4만 원이 채 안 된다.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내 체질로 마귀를 잡을 수만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가 된다. 마귀를 잡은 후에 집주인이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긴 하지만, 이건 별개로 치고….
[ 거기 마귀가 말썽을 많이 부리지는 않나 보다? ]“나도 모름. 이제 30분밖에 안 둘러봤는데, 뭘.”
하지만 지금 유추할 수 있는 건, 여기 들린 마귀 놈이 이 집을 망가뜨리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는 것. 당장 벽지가 깔끔하잖은가.
화장실 샤워기가 제멋대로 켜지는 거, 문 노크하는 거, 형광등 커버로 베란다 두들기는 거. 전부 거주자를 열받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뿐, 집 상태에 크게 영향을 주는 일들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돈 관련된 착한 생각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직후, 닫아놨던 현관문 도어락이 풀리고는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고는 까딱이기 시작했는데, 잘은 몰라도 지금 나가면 살려는 주겠다는 의도 같은 게 느껴진다. 좀 더 생각한 뒤 누나에게 슬쩍 물어봤다.
“내 체질만으로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집들이나 한번 와 줘. 누나.”
[ 나야 내가 권해 준 집이니 당연히 갈 건데, 나보단 언니 한번 불러 보는 게 더 효과 있지 않을까? 난 마귀 전공 아니니까. ]“어. 저녁에 봐, 누나. 난 여기 좀 더 있다가 나가봄.”
[ 오냐. ]이렇게 전화가 끊어졌고, 현관문이 또다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알았다고, 지금 나감’이라 대답한다면 저 까딱거리는 게 멈출까?
“…저녁까지만 있다 나갈 테니까, 보채지 좀 말아 봐라.”
떠오르는 대로 말해 봤더니, 까딱거리는 게 뚝 멈추고는 현관문이 닫혔다. 이걸 보니까 알겠다. 이 마귀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자기 의사가 있는 놈이다.
자기 의사 말고 또 뭐가 있는지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면 될 일이고. 폰을 마저 확인해 봤더니, 아까 카페에서 단골들에게 보냈던 톡에 답장이 온 상태였다.
찰리. 치와와 양반 거였고, 답장은 이렇게 왔다.
[ 시팔 ] [ 존나 뜬금없이 이사 가네 ] [ 아니 손님, 매장이 장사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요 ]내 상사 결정이라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톡을 보냈는데, 톡 옆에 떠 있는 숫자 1이 수십 초가 지나도 사라지질 않았다.
마저 바라보다, 톡 한 줄을 더 보내 봤다.
[ 그래서 저도 학원지구 쪽으로 이사 가려고 하는데, 혹시 팁 같은 거 없습니까? ]보낸 직후, 톡 두 줄의 숫자가 사라지고 바로 답장이 왔다.
[ 거기 개 거지 같은 곳이니까 살지 마라 ]납득이 되는 팁이다. 하긴, 당장 내가 처음 구한 집부터 마귀가 들린 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