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5)
이세계 편돌이-164화(165/331)
164화. 예상과는 정반대로 (2)
* * *
아침 매장 매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반면, 바깥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시퍼렇다. 슬슬 반팔을 입어볼까― 생각하게 해주는 날씨.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그리고 나는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여자 대체 뭐냐. 내가 딴 세상에서 날아온 놈이란 건 어떻게 안 거며, 그걸 왜 이런 식으로 물어봐?
다 떠나서, 의도가 뭐란 말인가.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단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여자는 살짝 눈썹을 찌푸린 채로 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네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나 생각 좀 하게 보채지 좀 말아 봐라. 말을 얼버무렸으나, 여자는 내 반응이 의아했는지 한쪽 눈썹을 약간 더 찌푸리고는 재차 물었다.
“제가 말을 어렵게 했나요?”
이 와중에 자기가 말을 어렵게 했는지를 묻고 있다. 그것도 어조의 높낮이 변화 하나 없이 평탄하게 말이다.
이 여자가 대체 누군지도, 머릿속 꽃밭 평수가 몇 평인지도 전혀 짐작이 안 되기는 하지만….
“…아뇨. 어렵게 말하진 않으셨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딴 세상이 있기라도 하다는 말씀이세요?”
역으로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이 세상 수천만, 수억 이종족을 데려다 놓고 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를 묻는다면, 모두 반사적으로 똑같은 대답을 할 거다. 뭐 잘못 먹었냐고.
생각을 하고 대답할 놈은 그중에 나 하나뿐일 테고 말이다. 이걸 묻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 여자가 방문하는 편의점마다 직원 붙잡고 딴 세상 타령을 하는 특이 취미를 가진 건 아닐 테니까….
“글쎄요.”
“예?”
“딴 세상이 있냐고 물어보신 거요. 딴 세상이 있든 없든, 결국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허어….”
“그쵸, 오빠.”
대화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다. 먼저 물어봐 놓고 이런 식으로 말을 해 오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 설마 진짜 취미로 이러는 건가?
“그나저나 부정은 안 하시네요. 딴 세상에서 오셨냐는 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아니라고 딱 잘라 대답했다간 ‘에이, 텄네. 수고하세요.’ 하고 나가버릴 거 아냐. 몇 마디 나눠 보니 그 정도는 이제 짐작이 된다.
외에도 짐작할 수 있는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이 여자가 이 문제를 가지고 날 어쩌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럴 의도였으면 이런 식으로 얌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터다. 간첩으로 신고한다 하든 뭐든, 어떤 식으로든 협박을 해 왔겠지.
또, 아까 하던 일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점 정도다. 이 여자가 방금까지 테이블 위에 앉아 공책에 뭔가를 적고 있었고, 몇 장을 찢어서 구겼었다.
차라리 이 여자를 보내 버리고, 저 종이 내용을 확인해 볼까. 잠깐 테이블을 바라봤더니, 이 여자가 이걸 또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바로 말해왔다.
“제 공책을 보고 계시네요.”
“아뇨. 잠깐 눈 아파서 바깥에 본 겁니다.”
“제가 뭐 하고 계셨던 건지 그렇게 궁금하세요?”
“…네.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말 안 해줄 거예요. 오빠도 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 말 안 해주시잖아요.”
참 논리적이구만. 구겨진 쪽지 내용물 확인하는 것과 딴 세상 사람인지 아닌지를 묻는 게 동급의 질문인지는 둘째 치고….
생각하는 도중,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내 폰 전화벨이었다. 슬쩍 시선만 내려 확인해 보니, 점장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저기, 저 전화 좀 잠깐 받을게요.”
“잠깐만이에요.”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마자 점장이 바로 용건을 말해왔는데, 목소리가 꽤 컸다.
[ 찬아. 엄청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잠깐 밖으로 나와 볼래? ]“네? 밖으로요?”
[ 응. 안에 손님 계시면, 매장 비워야 되니까 잠깐 양해 부탁드린다구 해. ]그러란다. 귀에서 폰을 떼고 여자를 바라봤더니, 점장이 하는 말이 자기한테도 들렸는지 내게 물어왔다. 아주 약간 아쉽다는 투로.
“저 나가야 돼요? 아직 대답을 못 들었는데.”
“예. 상사분이 시키신 거라서요. 양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부탁 들어드릴 테니까, 오빠도 제 부탁 들어줘요.”
“그걸 제가 왜… 아니, 예. 말씀해 보십쇼.”
“나중에 또 와도 돼요?”
또 오려는 이유가 뭔지 말해주면 나도 부탁 들어주겠다, 말하려다 삼켰다. 손님이 편의점에 오고 말고는 내가 정할 문제가 아니다. 손님이라면 말이다.
“그건 손님 마음대로 하십쇼. 살 거 있으면 오시는 거지.”
“아. 물건을 사야 한다.”
이제야 여기가 편의점이란 걸 깨달은 듯 중얼거리고는 로비 앞 장바구니를 챙겨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잠시 후엔 장바구니 안을 온갖 초콜릿으로 가득 채워왔다.
그러고는 입고 있던 바람막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장바구니 위에 올려놓고 펼치는데, 초콜릿 개수를 헤아리고 있던 터라 자연스럽게 지갑 내용물도 확인하게 됐다.
지갑 내용물도 이 여자만큼이나 괴악하더라. 카드 없이 지폐만 수십 장이 들어있는데, 그게 죄다 5만 원짜리다. 이거 대체 뭐 하는 여자야….
“이 장바구니도 파는 건가요?”
“비매품이고요. 저 바코드 좀 찍겠습니다.”
장바구니 안이 짝대기 하나 집어넣으면 터질 테트리스마냥 꽉꽉 들어찬 탓에, 다 찍는 데에만 5분이 넘게 걸렸다. 가격은 약 10만 원.
봉투에 담으며 가격을 일러주자, 지폐 석 장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는 봉투 손잡이를 잡아 들어 올리더라. 무게가 꽤나 나가서인지 살짝 휘청였다.
“나머지는 팁으로―”
“여기 거스름돈이요. 저희 팁 안 받습니다.”
“왜요?”
“매출 정산할 때 꼬여서요.”
물론 그런 거 없고, 이 여자 상대로는 뭘 받는 것 자체가 꺼려져서 그냥 안 받겠다고 했다. 이걸 빌미로 또 내 세상 얘기를 해댈 게 뻔해.
편돌이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내 말이 헛소리란 걸 바로 알아채겠지만, 5만 원권을 뭉텅이로 가지고 다니는 여자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내 말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폐를 받아 들고는, 휘청이며 자기 공책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걸어가서는 공책, 찢어 구겼던 종이 뭉치를 가방 안에 욱여넣는 여자.
이후엔 가방을 들쳐멘 뒤, 날 바라보고는 혀를 빼꼼 내밀었다 집어넣고는 덧붙였다.
“아쉽게 됐네요.”
“손님. 제가 여쭤볼 게 하나 있는데요.”
“네, 오빠.”
“아까 나이도 많은데 왜 존댓말 쓰냐고 하셨었죠. 먼저 말을 해주셨으니, 저도 말을 좀 편하게 여쭙겠습니다.”
“언제부터요?”
“지금부터요. 너 대체 뭐 하는 애냐?”
물어볼 거야 많다. 내가 이 세상 사람이 맞냐는 말은 어떻게 하게 된 거냐, 그 공책 찢은 걸로 뭔 밥벌이를 한다는 거냐, 가정교육을 판타지로 받았냐, 등등.
뭘 묻든 혀나 한 번 더 빼꼼 내밀고 말 게 뻔하다. 알아서 대답하라는 식으로 묻자, 이 녀석이 일말의 고민 없이 대답해왔다.
“저 대학교 다녀요. 올해 1학년.”
“스무 살이다?”
“네. 대답해 드렸으니까, 저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는 거야 니 맘이지. 대답하는 건 내 맘이고.”
“만약에 정말 딴 세상이 있다면, 거긴 분명 재미있는 곳일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재미없는 세상이고, 그게 단점인 동시에 장점인 세상이다. 빗물에 휩쓸려도 보고 심해에 잠수도 해 본 입장으로서는 마냥 단점으로 취급하기는 힘들더라고.
물론 말은 안 했다. 어떤 망상을 갖고 있는 건지야 난 모르지만, 원래 망상이란 게 자기만족이잖은가. 깨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답했다.
“꼭 그렇지는 않을걸?”
“어떻게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어요,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안 들을 거면 애초에 묻지를 말든가.”
“농담이에요. 많이 파세요, 오빠.”
이러고는 나가버렸고, 대화가 끝난 지금까지도 꿋꿋이 잠들어있는 멍멍이, 나, 그리고 전화가 끊어지지 않은 폰만 남았다. 딸랑이는 정문 벨을 바라보다, 점장에게 말했다.
“점장님. 그 여자애 나갔는데, 아직도 급한 일 있으십니까?”
[ 아, 나갔어? 그럼 찬이도 안 나가두 돼. ]“예.”
정문 벨을 보다 깨달은 건데, 저 녀석이 들어온 직후에 폰을 내려놓기만 했지 끊질 않았었다. 우리끼리 대화하던 것도 점장이 폰 너머로 다 들었을 테고….
잠깐 나와보라 한 건, 통화 내용이 심상치 않으니 잠깐 머리 좀 식히라는 의도에서였을 거고. 확인차 물어봤다.
“방금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 하나부터 열까지. 들으면서는 그 여자애가 어떤 종족인지 계속 생각을 해봤거든? ]“그건 지금도 궁금합니다. 쟤 종족이 뭡니까?”
[ 아마 혼혈일 거야. 인간에 가깝지만, 다른 종족이 섞인 무언가. ]말하고는 점장이 예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언급해 줬다. 이 세상에 전쟁이 한번 일어났었고, 그 전쟁에서 인간들 대부분이 죽고 소수만 남았다.
“그거 말인데, 전쟁 나기 전에는 인간들 수가 많았어요?”
[ 많지는 않았어. 지금처럼 찾아보기 힘들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세상에 지성체가 인간 종족 하나뿐이었다면, 나 살던 세상과 비슷한 역사로 흘러갔을 수도 있을 거다. 거기에 마법이 한소끔 더해지는 거고.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들 외에도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종족들이 수없이 많고, 순수하게 인간들끼리 가정을 꾸리는 게 쉽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듣고 난 소감은, 내가 방금 꽤 참신한 경험을 했다는 것.
혼혈이라는 점을 빼면, 저 녀석이 내가 이 세상에서 세 번째로 만나는 인간인 셈이었으니까. 윤하 누나랑 점장은 인간보다는 탈인간에 가깝긴 하지만, 여튼….
“저는 혼혈은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점장님.”
[ 혼혈분들 의외로 많아, 찬아. 외관만 봐선 눈치채기 힘들어서 그렇지. ]“허어….”
[ 보통은 부모님 중 한쪽으로 외형이 쏠리거든. 외견으로 딱 한두 개 특징만 눈에 도드라지는 정도? ]“그럼 방금 걔도 눈에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었던 거예요?”
[ 눈동자랑 머리 색. 은색이라구 했잖아. ]“네.”
[ 자연발생이 아주 안 되는 색은 아닌데, 그 머리나 눈 색이 인위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해. 염색한 게 아니면 말야. ]그 녀석이 정말로 염색하고 컬러 렌즈를 낀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아마도란다.
“예를 들면요, 점장님?”
[ 쓰는 마법이나 가진 마력이랑 관계가 있는데, 이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확실해질 부분이라서…. ]“그럼 나중에 걔 오면, 그때 점장님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러고는 잠깐 조용해졌다. 또다시 한가해진 밖을 바라보다, 내가 먼저 말했다.
“지금 버스 타신 거예요? 점장님?”
[ 아니? 기다리는 중. ]“그럼 10시에 뵙겠습니다. 이따 봬요, 점장님.”
[ 이따 봐, 찬아. 아, 그리구. ]“예?”
[ 너무 걱정하진 마, 찬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이러고는 전화가 끊어졌고, 계산대 위에 폰을 툭 던진 뒤 주저앉았다. 방금 은발머리 그 녀석이 다녀간 게 내게는 어떤 의미인가.
처음이다. 내가 딴 세상에서 온 놈이라는 걸 들킨 게 이번이 처음이야.
이게 크게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은 안 든다. 증거가 없잖은가. 나나 점장이 시치미를 뚝 떼면 지가 뭐 어쩔 거야.
다만 걱정되는 건, 이게 사례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나 점장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자력으로 내 세상 존재를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
그때 내가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구태여 불길한 상상을 한다면, 내 세상으로 오가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내가 없으면 드나들 수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될 경우―
“…뭘 미리 사서 걱정을 하냐.”
아직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이제 겨우 10분 대화했을 뿐이다.
그 녀석이 다시 찾아온다고 했었다. 아직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니, 걱정을 하더라도 그때 가서 하는 게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