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7)
이세계 편돌이-166화(167/331)
166화. 예상과는 정반대로 (4)
* * *
하나씩 체크해 봤다. 멍멍이가 난다고 하는 냄새, 이건 가스 냄새였다.
계단으로 줄줄 새고 있는 물은 내가 살 집 현관문 틈새로 빠져나오는 거였고. 1층과 내 집 맞은편 방, 3층과 4층 현관은 죄다 멀쩡했다. 내 집만 물이 새고 있다.
“허어….”
이쯤 되니 감탄밖에 안 나온다. 건물에 빈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 마귀 놈이 왜 하필이면 내 방만 요실금 환자로 만들어놓은 거냐?
나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감탄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는지, 누나가 물에 젖어가는 자기 신발 밑창을 내려다보며 내게 물었다.
“이야. 이찬 너 이런 데서 잠을 어떻게 잤냐?”
“이런 데가 아니니까 잠을 잤지, 어젯밤에 나올 때만 해도 멀쩡했어.”
밤중에 마귀 놈이 뭔 바람이 들었길래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거며, 대체 물이 얼마나 들어찬 것인가. 잠깐 고민하다, 현관 밑 우유 투입구를 슬쩍 걷어 안쪽을 확인해 봤다.
집이 물에 푹 잠기지는 않았다. 현관 앞 신발장부터 거실까지, 딱 신발 밑창 위로 넘실거리는 정도.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돌겠다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문 열자마자 물에 휩쓸릴 걱정은 덜었다. 몸을 일으켜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가스 냄새가 확 밀려오더라.
후각 외에도 온갖 소리들이 내 청각을 자극하고 있었는데, 대체로 샤워기, 싱크대, 세면대, 베란다 수도꼭지. 죄다 물 새는 소리들이었다.
이 마귀 놈이 집 안에 틀 수 있는 물이란 물은 죄다 틀어놓은 것 같다. 1인 가구 평균 수도세가 얼마였는지를 떠올리던 도중, 멍멍이가 조심스레 말해왔다.
“사장님, 사장님.”
“어.”
“집 안에서 말이오. 가스 냄새 외에도 뭔가 다른 냄새가 풍겨오고 있소이다.”
“어떤 냄새. 집 배수구 터진 냄새?”
“그런 퀴퀴한 냄새는 아니고, 낯익으면서도… 꺼림칙한 냄새인데….”
코를 킁킁대면서도 틈틈이 얼굴을 찌푸리는 게 좋은 냄새는 아닌가 보다. 누나 품에 안긴 채로 두리번거리다, 화장실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마저 말해왔다.
“냄새가 저 안에서 나고 있소.”
듣고 나서는 누나 얼굴을 잠깐 마주 본 뒤,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와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건 맞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도꼭지 손잡이가 제멋대로 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실시간으로. 움직임에 맞춰 물 세기가 약해지는가 하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 나오기도 하고, 다시 차가워지기도 했다.
“저건 또 왜 저래?”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려 봤다. 헌데, 이 중얼거림 한마디에 반응이라도 한 듯 움직이던 수도꼭지가 우뚝 멈춰버렸다.
직후엔 무언가와 시선을 마주쳤다는 느낌이 밀려오더라. 보이는 거야 여전히 아무것도 없긴 했지만, 묘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혹시 이 안에 마귀 놈이 있는 게 아닐까. 집중을 해보려 했는데, 누나가 내 옷깃을 잡아당기고는 대뜸 말을 걸어왔다.
“야, 이찬.”
“뭐.”
“너, 전에 내가 마귀 얘기해 준 거 기억나냐?”
자격증 시험 때를 얘기하는 거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살면서 ATM한테 강도짓을 당하고, 때려 부수기도 하는 게 자주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잖아.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냐. 되물으려고 입을 열었으나, 말을 꺼내진 못했다. 내부 상황이 더욱더 기묘해지고 있어서였다.
샤워기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다. 바닥의 슬리퍼도, 세면대 옆에 놓여있던 비누도. 눕혀진 채 떠다니던 슬리퍼와 비누가 점차 끝을 우리 쪽으로 향해오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못 봤다. 도중에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뛰쳐나오는 우리 뒤를 따라 비누와 슬리퍼가 사출되어, 화장실 바로 앞의 싱크대 벽면에 처박히고는 꼿꼿이 고정되어버렸다. 직후엔 뭐가 터지고, 끊어지고, 수리비가 점점 늘어나고 있….
“야이 씨, 야!! 대화로 해결하자!!”
내 집 화장실 좀 그만 부숴라. 목청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이놈이 대답 대신에 싱크대 앞 바닥에 변기 뚜껑을 내팽개쳤다.
덜그럭거리는 뚜껑 위로는 마치 최종보스라도 되는 것마냥 샤워기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호스가 끊어져 있는데 물은 어떻게 나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블루투스야?
샤워기가 물 배출구를 우리 쪽으로 향해왔기에 이 의문도 해결할 수 없었고, 멀찍이 떨어진 거실까지 도망쳐왔다. 물론 이걸로도 소용없었다.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어내기 시작해서였다. 저 마귀 놈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우리한테 물을 먹이고 싶어서 환장한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이렇게는 못 살아, 여긴 내 돈 주고 살 내 집이야!! 당장 나가!!”
“사장님. 아직 돈을 안 주신 거면, 사장님 집은 아닌 게 되지 않소이까?”
“이딴 데서 살 놈이 세상에 나밖에 없을 테니 내 집 맞지, 씨. 근데 넌 왜 그리 침착하냐?”
“그게… 방금 밖으로 나온 게 참말로 귀신이 맞소?”
그럼 이런 짓 할 놈이 귀신 말고 뭐가 있냐. 물어보려다, 급하게 질문을 바꿨다. 뭐가 밖으로 나왔다고?
“아까 말씀드린 낯익은 냄새 말이오, 사장님. 그 냄새가 지금은 싱크대 위에서 나고 있소이다.”
“그 냄새가 대체 어떤 냄새인데?”
“길에서 자주 맡아본 냄새라서 그렇소. 정확히 무엇인지는 확답을 못 하겠소만….”
두려움보다는 의아함이 훨씬 더 크다는 어투였다. 귀신 얘기를 꺼낼 때는 바들바들 떨던 녀석이, 털이 흠뻑 젖고 있는 지금은 눈에 띄게 침착해졌다.
마찬가지로 물을 흠뻑 맞고 있던 누나가,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내리고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얘랑 똑같은 얘기 하려고 했었다, 이찬. 저거 마귀 아닌 것 같아.”
“그럼 저게 대체 뭐길래 내 집을 수족관으로 만들고 있는 거임?”
“그건 아직 모르는데, 아무튼 마귀는 아냐. 나 잠깐 저 샤워기 좀 처리하고 온다.”
말하고는 멍멍이를 내게 안겨준 뒤 샤워기 쪽으로 가버렸고, 멍멍이 얼굴의 털을 걷어주며 생각해봤다. 마귀, 원한이 서리기 쉬운 물체들에 주로 달라붙는 암흑기운 덩어리.
책상 모서리, 길에 튀어나온 벽돌, 카드 인식이 잘 안 되는 ATM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걸 이 집에 대입한다면, 이 집에 세입자의 원한을 살 만한 요소가 있다는 얘긴데….
“…있나?”
여기가 2층이니 천장에서 물이 새는 건 아닐 거고, 어젯밤 자는 도중에도 조용했으니 밖에 소음이 심한 것도 아닐 테고, 보일러도 잘 돌아가는 걸 이미 확인했고.
그나마 불확정 요소가 있다면 집주인과의 트러블뿐인데, 이것도 애매하다. 사람들끼리의 트러블로 마귀가 생길 거였으면 나 일하는 매장은 진즉에 마귀 생산 공장이 되어 버렸을 거 아냐.
이유를 하나씩 제외하고 나니, 이 집에 마귀가 존재할 수가 없다는 사실만 남았다. 여기까지 생각할 즈음, 누나가 다시 돌아왔다.
샤워기는 반쯤 부서져 있고, 물 호스는 뱀이 포박을 하듯 누나 팔뚝에 돌돌 말려있다. 팔에 감긴 호스를 잡아 뜯어 바닥에 내던지고는 내게 묻는다.
“마귀는 아니지만, 타인이 이 집에서 지내는 걸 지독히 꺼려하는 녀석이고.”
“글쎄. 나 잘 때는 별일 없긴 했는데….”
“그것도 포함해서 뭐 떠오르는 거 없어? 너 이럴 때는 잔머리 잘 돌아가잖냐.”
이게 잔머리랑 뭔 상관인가 싶었으나, 따로 묻지는 않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게 있어서였다. 확인차 멍멍이에게 물어봤다.
“멍멍아. 난다는 냄새가 정확히 어떤 냄새냐?”
“쓰레기통 냄새…인 것 같소이다.”
“쓰레기통 냄새를 니가 왜 알아?”
“그게 본견 밥줄이 걸린 일이라서 그렇소. 아주 잠깐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그 안에 어떤 음식이 들어있는지 파악할 수 있소이다!”
“아니… 아무튼 알았다.”
길거리 생활 스페셜리스트에게 확답도 받았겠다, 정리를 해 봤다.
저게 쓰레기통 냄새가 난댄다. 더해서 비누를 벽에 꽂을 정도로 위력 있는 재주를 물 뿌리는 짓에 쓰는 놈이며, 제집에 타인이 들어오는 걸 지독히도 싫어한다.
또한, 몇 달이 지나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놈이며… 마력으로 사람을 감지하는 것 같다. 지금 상황은 이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여기까지 가정하고 나니, 이 녀석 정체를 파악할 방법도 부실한 게 한 가지 떠오르긴 했다. 바로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잠깐 현관 밖에 서 있어 봐. 멍멍이 너는 여기 있고.”
“멍멍이는 왜. 뭔 짓 하려고 그러냐?”
“해 보고 말해 줄게. 오래는 안 걸려.”
내 말에 날 잠깐 바라보던 누나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현관문 밖에 섰다. 확인한 뒤, 멍멍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선 니 역할이 크다, 멍멍아. 잠깐 꼬리 좀 흔들어줘라. 가능한 불규칙적으로.”
“꼬리를 말이오? 본견, 푹 젖어서 꼬리가 꼬챙이가 되어버렸소만….”
“대용품이 없어서 그래, 인마. 아무튼 해보라고.”
멍멍이도 의아하다는 눈치였으나, 서서히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털이 죄다 달라붙어 줄기만 남은 꼬리가 방향을 가릴 것 없이 이리저리 흔들려댔다.
그동안 멍멍이한테 두 손을 계속 붙인 채 기다렸다.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뭐라도 반응이 올 거다.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잠자코 있기를 수 분.
― 툭.
반응이 왔다. 멍멍이 꼬리 근처의 바닥에 작은 파문이 일고, 이어서 멍멍이 꼬리가 옆으로 홱 치우쳐졌다. 옆에서 건드린 듯한 모양새다.
“악! 사장님, 뭔가가 본견 꼬리를 쳤소이다!”
그야 그렇겠지. 한쪽 손만 들어 꼬리 근처로 뻗어, 머리에 해당할 부분을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곧바로 들어 올리자, 손에서 내가 정확히 예상한 소리가 났다.
“냥?”
고양이 중에서도 최강의 투명고양이가 울부짖었다.
* * *
투명고양이는 졸라 짱쎄서 고양이 중에서 최강이었다. 확신은 못 하겠지만, 이 세상 고양이들이 전부 이런 식이었으면 이 세상은 진즉에 캣볼 천지가 되어버렸겠지.
더해서, 마력을 감지할 줄 아는 녀석이다. 나 한 명 남아있을 때는 그나마 얌전하던 놈이, 누나랑 멍멍이를 대동해서 오자마자 이 난리를 쳐대기 시작했다.
아마 마력으로 위험도를 구분하는 게 아닐까. 자세한 건 앞으로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그래서, 네가 지금 투명고양이 목덜미를 잡고 있는 거다?”
“잡은 데가 목덜미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소리 들어봐. 누가 봐도 고양이 우는 소리 아님?”
허나, 아무리 투명하고 짱쎄다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물을 싫어하고 자기 영역을 끔찍이 아끼며 어딘가에 숨는 데에는 도가 텄지만, 목덜미를 들면 꼼짝 못 한다.
들려줄 겸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봤는데, 손 움직임에 맞춰서 이 녀석이 발버둥을 치더라고?
“냐아아앙!! 하악, 냐야옹!!”
붙잡은 손에 발톱이나 이빨 자국이 생기고는 있었으나,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펫샵에서 알바를 하던 경험에 빗대자면, 생후 4개월도 채 안 된 녀석이 아닐까 싶다.
“여기 집에 마귀 들렸단 얘기 나온 게 정확히 언제부터였어, 누나?”
“난 몇 개월이라고만 듣긴 했는데, 네 말대로면 한 3개월쯤 됐겠지.”
“냐아아옹….”
한참을 버둥대다 지쳐버렸는지 축 늘어져 버린 투명고양이. 이것도 보이진 않았지만, 울음소리만 들어봐도 지쳤다는 걸 바로 알겠더라.
“그리고 누나도 봤으니까 알겠지만, 얘 마법 쓰는 놈이고.”
“그럼 지금 마법 못 쓰는 건 니가 붙들어 매고 있어서고? 너 그런 것도 할 줄 알았냐?”
“어. 전에도 이런 적 한번 있었어.”
좀 옛날 일이긴 하지만, 여자 손님 둘이 매장 안에서 쌈박질을 하려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손을 붙잡는 순간부터 자기 마법이 안 써진다며 나한테 짜증을 부렸었다.
그때 경험을 살려보고 있는 건데, 아직까진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이놈을 지금 놓쳤다간, 화장실과 스프링클러 터지는 것만으론 안 끝날 게 분명하다.
“누나는 이 녀석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음?”
“그거야 니 맘이지. 어차피 너 아니면 감당할 사람도 없을 텐데.”
“뭔, 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지 영역에 들어왔다고 비누를 집어 던지는 놈을 내 집에서 기를 수도 없거니와, 이 녀석 아직도 안 보이고 있다. 내가 직접 건드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놈은 또 정체가 뭐야?
그렇다고 밖에 풀어놨다간, 자기 집 돌려달라며 주변에서 깽판을 쳐댈 게 분명하고. 생각하는 도중, 고양이를 붙들어맨 손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꽤 오랫동안.
바라보다, 누나에게 말했다.
“일단 얘 밥부터 멕이자, 누나. 우리 매장에 고양이 사료 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