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69)
이세계 편돌이-168화(169/331)
168화. 애매한 녀석도 일단 가까이 (1)
* * *
이 녀석과 만난 게 이번이 두 번째고, 대화를 나눠 본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된다. 사람 한 명을 파악하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문제요? 어떤 문제?”
“관심 꺼라. 너랑은 상관없는 문제니까.”
“곤란한 문제예요?”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 녀석이 어떤 타입인지 조금은 감이 잡혔다. 자기가 꽂히는 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 결과물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곤란한 거 아니고, 진짜 너랑 상관 하나도 없는 문제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전 아직 내용을 못 들었잖아요.”
“내용도 못 들은 대화에 관심은 왜 갖는 건데?”
“내용을 들어야 관심을 가질지 말지 정할 수 있잖아요. 그쵸, 언니.”
“응? 나?”
“네. 언니.”
그리고 사람 대하는 데에 거리감을 전혀 못 느낀다. 나는 두 번째라 쳐도 점장은 이번이 처음 보는 얼굴일 텐데, 고등학교 옆자리 친구라도 만난 듯이 자연스럽게 의견을 묻고 있다.
“…음.”
정말 대답해줄 생각이었는지 눈앞의 녀석을 빤히 쳐다보는 점장.
그러다 진열대 쪽을 힐끗거리는데, 시선을 따라가 보니 손님이 바구니에 물건을 한가득 담은 채 다가오는 채였다.
이제야 할 말이 떠올랐는지 점장이 입을 열었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기묘함 같은 게 느껴졌다.
“관심 갖는 거 좋지. 나도 네게 관심 있구 말야.”
“제가 관심 가질 만큼 재미있지는 않은데요.”
“그건 모르지. 나도 아직 네 내용을 못 들었잖아?”
“그렇긴 하네요. 어떤 게 궁금하세요?”
“잠깐 기다려 줄 수 있냐는 거. 우리가 일을 해야 되거든.”
중간에 반 마디씩이 생략된 것 같다. 이 대화가 마음에 들기라도 한 건지, 다가오는 손님을 똑같이 힐끗 바라보고는 되묻는다.
“다른 건요?”
“이름? 지금은 이거면 돼.”
“나유리예요. 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나요?”
“되겠냐고. 저기 쇼윈도 테이블 가서 잠깐 앉아 있어.”
또 뭐라도 꼬장을 부릴 줄 알았는데, 내 말에 고개를 살짝 꾸벅이고는 테이블로 쪼르르 달려가 테이블 위에 자기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의자에 걸터앉아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본다. 애써 무시하며 손님이 가져온 바구니에서 물건을 꺼내고 있자니, 옆에서 점장이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나유리래, 찬아.”
“…그러게요.”
“찬이는 저 애가 많이 부담스러워?”
부담스럽다. 단순히 저 녀석 첫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난 내 머리로 어떻게 생각을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들 전부가 부담스러울 뿐이다. 저 녀석도 그중 하나인 거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점장이 받아든 물건의 바코드를 찍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 내가 마법사에 대해 했던 얘기 기억나? 마법사는 논리적인 척하면서도 비논리적인 족속이라구 했던 거.”
자격증 시험 치를 때 점장이 해줬던 말이고, 교수와 대담하며 체감했던 내용이라 잘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점장 의도가 뭔지도 바로 짐작이 됐다.
“그럼 저 녀석이 천성 마법사인 거겠네요. 논리적인 척을 하면서도 비논리적이니”
저 녀석이 마법사라는 얘길 하려는 거겠지. 내가 딴 세상 출신이란 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진 모르지만, 거기에 마법스러운 무언가가 포함되었을 것만은 분명했다.
“그치. 그래두 내가 봤을 때, 나쁜 애는 아니야.”
이것도 솔직히 공감은 한다. 가서 앉아 있으라는 말에 얌전히 앉아 있고는 있으니까.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잠깐 가서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응.”
말이 아주 안 통하는 게 아니라면, 나도 변명 정도는 둘러댈 수 있다. 카운터로 나와 테이블의 옆자리에 앉자, 이 녀석이 몸을 돌려 날 바라보고는 물었다.
“오빠는 일 안 해요?”
“할 거야. 그 전에 니 먼저 집에 보내고.”
“네? 저희 아직 아침에 하던 얘기 안 끝났잖아요.”
“그 아침에 하던 얘기를 지금 할 거라고. 너, 아침에 나한테 마법 쓴 거냐?”
이 세상에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마법을 쓰는 건 중범죄고, 난 이 녀석에게 유기농 콩밥을 먹이겠다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단념하고 각자 살던 대로 살자는 의도지.
그래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던 건데, 이 녀석이 단칼에 대답해왔다.
“아뇨?”
“그…러면, 마법을 쓰긴 썼다?”
“네.”
살면서 대화해본 사람들 중 이 녀석이 제일 말이 안 섞이는 것 같다. 틀린 게 있으면 문맥을 알아서 고쳐 들으면 되는 거지, ‘너한테 마법 쓴 건 아니니까 아님’ 이러는 건 무슨….
“어떤 마법을 쓴 건데?”
“그건 말 안 할래요. 사생활 침해잖아요.”
“그래 씨, 그럼 그건 말하지 말고, 이거나 한번 봐.”
말하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반마법사 자격증. 올려놓은 수첩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녀석이, 표지의 로고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아, 이거. 대학교에서 특강 수강인원 모으는 거 봤어요. 엄청 몰리던데.”
“봤으면 이제 말을 들어, 인마. 대화가 자꾸 새잖냐.”
또 대화가 샐 것 같아 바로 운을 뗐다. 난 마법이 통하지 않는 체질이다.
“그 체질이 꽤 강해. 내가 이론이 많이 부실한데, 그래도 나라에서 주는 자격증 딸 수 있을 정도니까.”
“…….”
쉽게 말해 이 얘기다. 네 마법과 내 체질은 완전히 상하 관계에 있다. 내가 국가 공인 반마법사니까.
이건 이 세상 누구든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자격증 딴 지가 좀 됐으니, 이젠 마법청 사이트 들어가서 내 이름 두 자 검색하면 떡하니 뜨지 않을까? 그래도 국가 자격증인데.
“내가 원하면 다른 사람이 마법을 못 쓰게 틀어막을 수도 있고. 이걸로 헌터 쪽 일도 도와주고, 제약회사 일도 도와주고… 교수직 권유도 받고 그랬어.”
“…….”
어차피 숨기지도 못할 거, 아예 질소 꽉꽉 눌러 담아서 과대포장까지 해 봤다. ‘내가 옛날엔 말이야~’라며 자랑하는 꼴이랑 다를 게 없긴 하지만….
내가 쉬운 놈은 아니라는 인상만 줄 수 있다면, 그만큼 이 녀석도 더 쉽게 납득하고 단념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말한 뒤 물었다.
“그래서 니가 쓰려던 마법이 제대로 안 쓰였던 걸 거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딴 세상에서 온 놈이어서가 아니….”
“아니잖아요.”
“뭐?”
“그런 거 아니면서.”
가위로 딱 자른 듯한 말투였다. 하던 말을 멈추고 이 녀석 얼굴을 바라봤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딱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 같다. 바라보다, 딱 한 번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말해줄 생각이 없는 거고?”
“네.”
“어느 누구한테도?”
“네.”
“그럼 됐다. 니 마음대로 해라.”
이후엔 나도 입을 다물었다. 좀 돌아서 가 보자고.
이 세상에서 자력으로 내 출신을 알아낼 수단이 있다면, 나도 그 수단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쓸 수 있는 방법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하니까.
이 녀석이 그 수단을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소통 없이 딱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러면 평행선이다.
수단을 듣기에 앞서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이걸 좀 알아봐야겠다. 3분가량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답답했는지 녀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말을 안 해 주시는 거예요?”
“너도 똑같이 말을 안 해 주고 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건요.”
“…우리 만난 게 이번이 두 번째잖냐. 날짜로는 하루가 채 안 됐고.”
“네.”
“우리 하는 대화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끼리 할 대화는 아니잖냐?”
말하면서도 이 접근법이 맞나 긴가민가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녀석이 대학생인데,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헌데 정답이었다. 내 질문에, 이 녀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되물어왔다.
“그러면요.”
“어.”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끼리는 어떤 대화를 하는데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
물어보길래 대답해 줬다. 예를 들면 학교 입학식 당일.
1년 동안 생활할 반이 정해지고, 옆자리나 뒷자리에 누가 앉을지도 정해진다. 서로 어색하겠지. 아니면 단순히 친해지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을 하는가. 우선 이름이나 거주지, 취미 같은 걸 물을 거다. 그걸 안 뒤엔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아야 될 테고….
“왜요?”
“아니, 서로 하기 싫은 대화만 하면서 어떻게 친해져. 너도 내가 어떤 마법을 쓴 건지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잖아. 말하기 싫어서 그런 거 아냐?”
“말하기 싫은 건 아니에요. 그냥….”
“그럼 뭔데.”
“…그냥 말하기 싫은 걸로 칠게요.”
“오냐. 말하기 싫다고 치고, 이러면 대화가 뚝 끊겨버리잖아. 말하기 싫어서 말을 안 하니까. 그러니까 서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게 뭔지를 찾아야 된다고.”
물론 처음 만난 사이끼리 딱 맞는 주제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 사람 취향이 비슷할 순 있어도 일치할 수는 없으니까.
이 과정에서 철없는 녀석들은 ‘아, 이 녀석 마음에 안 드네―’라며 멀어지게 되고, 그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 놈들은 인싸가 된다. 내가 옛날에 이걸 잘 못해서 아싸로 지냈다.
“그러면… 오빠 집에 돈 많아요?”
“이런 씨, 공통관심사로 써먹겠답시고 꺼낸 게 그거냐?”
“왜요? 다들 돈 좋아하잖아요. 저도 좋아서 많이 번 거고.”
“그럼 차라리 일 얘기를 해라. 두 번째 대면에 다짜고짜 그 얘길 하면 누가 봐도 등쳐먹으려는 것 같잖아.”
“근데, 제가 일 얘기는 해본 적이 없는데….”
말을 늘이고는 정문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데, 난 점점 더 이해가 안 됐다. 대학교 다닐 때 되면 대학 졸업해서 뭔 일 할지, 방학 기간에 어떤 알바 할지 정도는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지 않나?
이젠 이 녀석이 대학생이 맞는지조차 잘 모르겠다. 뭔 말을 하나 싶어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이 녀석 시선이 정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애들이 많네요, 오빠.”
“그렇겠지. 이 동네에 중고등학생들 많으니까.”
“많이 취했고요.”
“그건… 뭐? 애들이 왜 취해?”
바로 몸 돌려 정문을 바라봤다. 이 녀석 말대로 로비 앞에 손님이 여섯가량 몰려있긴 했다. 구성원이 고블린 둘과 오크, 미노타우르스, 켄타우로스 둘.
저 종족들이 액면가가 원체 삭은 종족들이라 나이가 몇인지는 분간이 안 됐지만, 취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더라.
오크가 자기 등에 켄타우로스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 마리는 등에 미노타우르스를 태우고 있는데, 무게를 못 이겼는지 편의점 바닥을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고 있다.
“이, 이차 안 가고 우리 여기 왜 있냐?”
“온 거. 온 거잖아, 우리가. 사장님, 여기 여섯 명이요.”
“여기 편의점이야, 이 등신 새끼들아….”
그나마 덜 취한 듯한 고블린 한 마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자기 친구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저 고블린도 이후에 하는 짓을 보니 제정신은 아니었다.
흥미롭다는 듯이 자신들을 바라보던 점장에게 다가가서는, 지갑을 꺼내며 담배를 달라고 하더라.
“사장님. 원 세 갑만 주세요.”
“음….”
“왜요. 신분증 보여드려요?”
“아뇨, 이미 보고 있어서요. 고등학교 학생증.”
저 고블린이 카드를 꺼낸답시고 고등학교 학생증을 꺼내버린 모양이다. 점장 말에 자기 손에 들린 카드를 내려다보다, 다시 점장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얼마면 돼요?”
“네?”
“돈 더 드리면 되나?”
고블린이 저러는 걸 나머지 다섯이 아무도 안 막는 걸 보면, 제정신인 놈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다른 고블린 한 놈은 이미 신문진열대 쪽을 부여잡고 잠들어버린 채였고.
“나 잠깐 쟤네들 좀 보내고 온다.”
“저희 아직 대화 안 끝났잖아요.”
“지금 대화가 중요하냐? 매장 개판 나게 생겼는데?”
그나마 두 발 딛고 선 놈이 계산대의 고블린 한 놈뿐이니, 저놈만 어떻게 구슬려서 내보내면 될 것 같은데….
생각하던 도중 뒤에서 덜컹 의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이 녀석이 개판이 난 로비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채였다.
표정이 묘하게 뾰로통한 게, 저놈들이 자기 대화하던 걸 끊어먹었다는 데에 꽤 불만이 있는 듯했다. 앉아있으라고 말하려 했는데, 이 녀석이 선수를 쳤다.
“공책…은 안 될 것 같고.”
말하면서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잠깐 통화 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