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
이세계 편돌이-16화(17/331)
16화. 2일 차의 편돌이 (4)
[ 기계인형분들은 독립하신 지 얼마 안 됐고… 집단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강해. ]스마트폰에서 점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로부터 독립을 한 거예요?”
[ 원래는 기계 잘 다루는 종족들이 수공예로 만드는 사역마에 가까웠는데,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마법이 고안됐거든? 그 과정에서 어떤 계기인지는 몰라도 자아가 생겨났고, 감정을 느끼시기 시작했지. ]“어… 그래서요…?”
[ 이후에 이분들을 하나의 지성체로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냐로 논쟁이 좀 있었어. 몇 년쯤. 그러다가 지성체가 맞다는 방향으로 굳어졌고… 아. 독립된 시기가 오래되진 않으셨으니까, 기계인형분들 만나면 막 사회에 적응하고 계시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돼. ]어째 아이로봇과 미래의 티벳―희망편―이 반반 섞인 것 같단 느낌이 든다.
들으며 오히려 의문만 쌓여갔으나, 오래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딱 한 가지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점장님. 마지막으로, 쑤얏이 대체 무슨 뜻이에요?”
[ 좀 두루뭉실하지만, 긍정한다는 뜻이야. 근데 왜? ]“지금 편의점 상황이 이래서요. 잠깐만요.”
전화를 끊은 뒤, 맨 앞의 기계인형 손님에게 손짓하며 물어봤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쑤얏.”
곧바로 기계인형 48명에 나 포함, 49명의 단체 인증샷을 한 장 찍어 점장에게 보냈다. 점장은 전화 대신 카톡 메시지로 답장해 왔다.
[?] [???] [해외 송금 하러 오신 분들인데, 이제 일할게요]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쑤얏하기로 했다. 살면서 언제 이런 경험 할 수 있겠어.
일단 첫 번째 기계인형 손님의 스마트폰을 받아, 기기를 조작하며 물었다.
“하우 머치?”
손가락 두 개를 펼쳐오길래, 20만인 줄 알고 입력해서 줬더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200만이었나 보다. 처음부터 액수가 좀 센데.
200만 원을 입력해 보려 했더니, 이번엔 창 테두리가 빨간색으로 변했다. 밑에는 숫자 1과 500,000이 적힌 문구가 한 줄 떠올랐고.
“이거 한 번에 50만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손님.”
“?”
“워… 원 트라이, 오십만. 오케이?”
“쑤얏. 쑤얏.”
긍정하며 돈뭉치를 계산대 위에 툭 내려놓은 기계인형 양반은, 띠지를 뜯고 한 움큼을 집어 손으로 한 장씩 세다 10장가량을 내게 내밀어왔다.
받아서 나도 똑같이, 두 번 셌다. 이거 한 장이 내 5시간 시급인데, 눈앞에서 세는 거 봤으니 맞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나중에 한 장 펑크 나 있고 그러면 5일 동안 잠 못 잘 게 뻔해.
당장 건네받은 돈은 액수가 맞길래, POS기를 조작한 뒤 출력된 영수증을 건넸다. 이 짓거리를 네 번. 돈을 계산대에 넣은 뒤, 다음 손님을 불러 물었다.
“하우 머치.”
“이백오쓉만.”
“넵, 이백오십….”
이 과정에서 좀 여러 문제가 생겼다.
일단 첫째, 이 양반들이 전부 5만 원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만 원짜리 50장을 내밀어오는 양반도 있었거든.
사실 만 원권이 오히려 더 많았다. 오밤중에 은행 문이 열려있을 리가 없을 테니 이 돈이 죄다 ATM에서 꺼내 온 것일 텐데, ATM 안의 5만 원권을 다 털어도 모자라서 만 원권을 털어온 모양이었다.
이 때문에 돈다발이 많이, 속된 말로 진짜 존나게 많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존나게라는 말로밖엔 표현이 안 됐다. 포스기 금고를 닫을 수가 없어, 닫을 수가 없다고. 만 원권 자리가 꽉 차서 오천 원권 자리, 천 원권 자리에 집어넣는데 여기마저 꽉 차서 돈을 넣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돈이 쌓일 경우엔 보통 사무실 안쪽의 금고에 별도로 보관을 하는데, 그 짓거리를 하겠다고 왔다 갔다 했다간 날을 꼬박 새울 게 분명했다. 그래서 계산대 밑에 돈다발 짱박고, 계산대 근처에 굴러다니던 장바구니에도 돈을 담았다.
이러면서 두 번째 문제가 생겼는데, 다른 손님을 받기가 힘들었다.
“사장님, 담ㅂ… 어?”
정문에 달린 벨소리가 들리자마자, 48명의 기계인형이 일제히 편의점 정문을 바라보았다.
난 한창 돈 세는 중이라 바로는 못 봤고, 돈 다 세고 나서 바라보니 켄타우로스 손님이었다. 배달의 민족 조끼 입고 있던 그 손님.
얼이 빠진 듯 입구 앞에서 기계인형들을 바라보다가, 내 쪽을 바라보고는 아예 입을 떡 벌려온다. 확실히 어이없는 광경이긴 할 거다. 편의점 계산대에 몇천만 원 쌓아놓는 광경이 흔한 광경이겠어?
외치듯 물었다.
“손님, 카드세요 현금이세요?!”
“현금이요!”
“5천 원짜리?”
“네!”
기계인형들이 매장에 꽉 들어찬 탓에 저 켄타우로스도 못 들어오고 있고, 나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담배 진열대에서 세븐 한 갑을 꺼내 바코드를 찍고, 앞의 기계인형 손님에게 내밀며 물었다.
“이거 저 사람 좀 건네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저기 갈 수가 없어서요.”
“어… 아, 쑤얏. 쑤얏.”
기계인형도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담배를 받아 뒷사람에게 건네고, 그 사람은 또 뒷사람에게 건넸다. 뒷자리에 중간고사 시험지 건네듯 말이다.
그렇게 담배가 건네지고, 켄타우로스는 오천 원을 꺼내 역순으로 똑같이 해왔다. 이제 500원을 거슬러줘야 했기에, 500원을 앞 손님에게 건네 다시 한번 반복.
그 외에도 켄타우로스가 뭘 사려는 낌새를 보이긴 했으나, 의욕을 잃은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편자는 딴 데 가서 사야겠네. 고생하세요, 사장님.”
고맙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문제. 눈이 너무 아파.
10명쯤 보냈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얼추 평균을 내봤는데, 한 손님이 송금하는 금액이 대략 200만 원 정도 됐다. 내가 2,000만 원을 셌다는 소리다.
이러고 있자니 엄지 지문은 닳아 없어질 것 같았고, 눈도 함부로 못 깜박였다. 세던 거 까먹기 싫어서. 25명쯤 마무리 지을 때부터는 현기증까지 밀려오더라.
내가 정상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기계인형 중 한 명이 피로회복제 한 병을 가져와 내게 내밀어왔다. 덕분에 세던 돈의 액수가, 삼십… 삼십사…? 내가 얼마까지 셌더라?
“쏴장님. 힘내요.”
힘줘서 세면 세기 더 힘들다. 그러니까 힘 안 낼 거야.
그나마 천만다행인 게, 이후로 손님이 더 오진 않았다. 오지 않았다기보다는 내부 광경 보고 엄두를 못 낸 것이겠지만.
그래서 나도 아예 신경 안 쓰고 무아지경으로 돈을 셌다. 5,000… 7,000….
마지막 손님을 마무리 짓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계산대 주변에는 돈다발이 가득 쌓여 개판이 난 상태고, 포스기에 찍힌 금액은 9,500만이 좀 넘어갔다. 이거 혹시 9999만 9999원 넘기면 다시 0원으로 돌아가나?
“쑤얏. 쑤얏, 쏴장님, 정말 고생하셨서요.”
“네… 잠깐만요….”
5만 원권 한 장 떨어진 걸 실수로 밟았다.
떨어진 위치에 올려놓은 뒤, 마지막 기계인형에게 손짓해 계산대로 불렀다. 계산대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은 뒤, 눌러야 할 아이콘을 가리키며 말했다.
“히얼.”
“쑤얏.”
“앤 히얼.”
“쑤얏. 쑤얏.”
“마지막으로 여기에 하우 머치. 오십, 삼십, 뭐든 간에… 그리고 이거 보여주시구요.”
“네, 쏴장님.”
“이러고도 몰라서 못 해주겠다 하면 아예 카운터 들어오셔서 직접 조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거, 다음엔 이거, 다음엔….”
고개를 끄덕여 오긴 하는데 정말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 중 절반만 이해했어도 다른 곳에서 쫓겨나진 않겠지….
아무튼 난 이거 이상은 못 해준다. 설명까지 다 끝내고 나니, 맨 앞의 손님부터 수십 명은 되는 손님들이 내게 연신 목례를 해왔다. 다들 사이좋은가 보다.
“쏴장님. 착해요, 차캐.”
“캄사합니다.”
“싸장님 이거, 받아줘요.”
그중 유독 말이 유창한 한 명이 내게 뭔가를 내밀어왔는데, 명함이었다.
“이걸 왜…?”
“저희 작업장. 제가 싸장이에요.”
“아.”
아까 누군가가 몬스터 도축업 한다고 했었던 게 떠오른다. 이 손님이 작업장 사장인 것 같은데, 다 똑같이 생겨먹어서 사원 사장 분간을 할 수가 있어야지.
명함을 왜 주는지도 의아했으나 일단 받긴 받았다. 기계인형은 손으로 수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가져다 대고는 말했다.
“언제든 불러요, 싸장님. 쑤얏, 쑤얏.”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희 일 잘함니다. 돈 워리.”
“땡큐. 땡큐, 쏴장님.”
“마니 파세요 싸장님.”
저마다 나한테 인사 한마디씩을 하며, 우르르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기계인형 손님들이 나간 정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구건조증이 도질 것 같아.
그래도 일은 끝내야 했기에, 계산대 사진을 한 장 찍어 점장에게 보냈다.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어. 찬아, 사진 봤어…. ]“점장님. 힘들었습니다. 진짜로.”
[ 수고했어. 진짜로. 그런데, 이거 총 얼마야? ]“사진에 있는 건 5,000만 정도 되고, 밑에 4,500만 더 있어요. 그런데, 점장님.”
[ 응. ]“이거 금고에 다 들어가긴 해요?”
금고가 대충 성인 남성 몸통 정도 크기인데, 다 들어가리란 생각이 도저히 안 들어서 그랬다. 점장은 좀 길게 고민하다 답했다.
[ 다 들어가긴 할걸…? ]“그럼 지금부터 넣을게요. 근데 문 잠깐 잠가도 됩니까?”
[ 응? 왜… 아. 에이, 걱정 안 해도 돼. CCTV에 찍힐 텐데. ]“제가 안심이 안 돼서 그래요.”
[ 그렇겠네. 그럼 그렇게 해. ]허락 맡았다. 당장 문을 잠근 뒤, 계산대로 돌아왔다.
일단 돈을 100만 원씩 나눴다. 금고 지폐 투입구가 2cm가 채 안 되기 때문에 한 번에 100만 원 이상은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5,000만 원까지는 쉬웠다. 중간중간에 고무줄로 묶어가면서 했거든. 문제는 남은 4,500만 원인데, 중간에 고무줄이 다 떨어져서 장바구니에 죄다 처박아 버렸다. 그래서 다시 세야 한다. 돌겠네, 진짜.
“점장님, 매장에 고무줄이 없어요.”
[ 칫솔 치약 있는 곳 근처에 고무줄 포장된 거 있을 거야. 그거 뜯어서 써. 영수증 끊어놓구. ]“네.”
시킨 대로 해서 고무줄을 다시 보급한 뒤, 100만 원 세는 족족 금고 보관 누르고 용지 뜯어서 고무줄로 묶었다.
중간에 눈물이 두 방울 흘렀는데, 돈 세다가 눈이 충혈돼서 그런 건지 슬퍼서 그런 건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거 안과 쪽 건강보험 적용되냐? 되겠지?
이렇게 겨우, 진짜 겨우겨우 돈 다 꾸역꾸역 처넣고 시간 보니까 새벽 2시였다. 나중에 점장한테 지폐계수기를 갖다 놓자고 건의를 하든지 해야겠다.
이후 5분 정도 눈 질끈 감고 의자에 앉아 퍼져있었는데, 정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잠금 푸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문을 열러 다가가니, 또 아는 손님이었다. 구겨지려는 안면근육을 겨우 펴고 잠금장치를 풀자, 분홍빛 머리의 서큐버스가 비틀거리며 내게 물었다.
“사장님. 혹시 여기, 사직서 있나요…?”
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