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0)
이세계 편돌이-169화(170/331)
169화. 애매한 녀석도 일단 가까이 (2)
* * *
느닷없이 전화통화는 왜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공책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건 또 무슨… 아니지.
“야, 너 지금 마법 쓰려고 그러는 거지.”
“말 걸지 마세요. 저 집중해야 돼요.”
“그 집중을 하질 말라고. 애초에 니가 여기 일에 신경을 왜 써?”
이 녀석이 마법으로 상해를 입히려는 건 아니겠지만, 뭔 마법을 쓰는 건질 모르니 일이 어떻게 풀릴지도 알 수 없다. 다 떠나서 이 녀석이 신경 쓸 일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는데, 이 녀석이 그새 통화가 끝난 건지 폰을 조작하며 내 말에 대꾸해왔다.
“오빠랑 더 얘기해야 되는데, 쟤네가 귀찮게 하잖아요.”
“아니, 니가 그러면 쟤네가 좀 더 귀찮게 변해버린다니까?”
“그럴 일 없어요. 잠깐 사진 좀 찍을게요.”
이러고는 카메라를 켜서 정문 앞 사진을 몇 장 찍고, 그 사진을 어딘가로 전송하고.
그 후에는 한 번 더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음이 끊기자마자 이 녀석이 딱 한마디만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여기 지하철역 앞 편의점이에요.”
이후엔 주머니에 지 폰을 넣고 자리에 앉았고, 이걸로 끝.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로 널브러진 민짜들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제 딴에는 뭔가를 한 것 같긴 한데, 하는 짓이 하도 무난하다 보니 이 녀석이 뭘 어쩐 건지 감이 안 잡힌다.
“방금 뭐 한 거냐?”
“3분만 기다려 봐요.”
느긋한 게 보면 안다는 뉘앙스였으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저 꽐라 민짜들 하는 짓이 점점 가관이 되어가고 있어서였다.
“담배 한 갑에 만 원. 이 정도면 합리적인 거래 아니에요?”
저 고블린 놈이 이젠 점장 상대로 딜을 시도하고 있다. 원체 돈을 중요시 여기는 종족이니, 저 술주정도 돈이면 다 되는 거 아니냐는 종족 특성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술에 취해서 뵈는 게 없어서든가. 반쯤 테이블에 뻗어버린 고블린을 상대하면서도 점장은 태연했다.
“글쎄요. 저희가 합리적인 거래를 하려면, 일단 손님분께서 성인이 되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거야말로 비합리적이죠. 제가 지금 돈이 있고, 여기에 제가 사려는 물건이 있는데. 제가 어디 가서 말을 할 것도 아니고.”
“말을 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니구요. 양심의 문제지.”
“그럼 그 양심은 얼만데요. 이만 원?”
“돈은 4,500원이면 충분하구, 손님 주민등록증만 같이 보여주시면 돼요.”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점장 반응에 민짜 고블린 놈이 테이블 위를 신경질적으로 두들기기 시작했고, 바닥은 바닥대로 문제였다.
“아니, 시발! 여기 편의점이잖아, 술집 아니고!”
“뭐. 뭐? 여기, 노래… 우리 노래, 노래방 간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쟨 뭐 해. 쟤 담배 사냐? 지금?”
“야! 내 꺼 있으니까 사지 말고 그냥 나와!”
바닥에 뻗어서는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해대는데, 보면 볼수록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카운터로 다가가 고블린 뒤에 대고 말을 걸었다.
“저기요.”
“무… 뭔데요.”
“계산 다 끝나셨으면 저도 계산 좀 할게요.”
지금은 유니폼 안 입고 있으니 편돌이도 아니다.
먼저 말을 걸고 상황이 잘 풀리거든 부축하는 척하며 밖으로 끄집어낼 생각이었는데, 이 고블린 놈이 내게도 딜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신 어른이죠. 담배 좀 사 줘요.”
“뭐라고요?”
“담배 좀 사달라고요, 수고비 드릴 테니까. 어때요?”
이야….
내 세상에서도 담배 좀 대신 사 달라는 정신 나간 놈들이 몇 있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이 세상이 대체 어찌 되려고 이러나?
나도 그냥 경찰 부르고 말까. 고민하던 와중에 정문 벨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고함 소리.
“이 미친 새끼들이 돌았나!!”
고함이 들린 곳을 바라봤다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얼굴 한가득 주름이 잡힌 오크가 정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데, 손에 당구 채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콧김을 뿜어내는 걸 보면 매장까지 죽어라고 달려온 모양이다. 고함 소리에 정문을 올려다보면 민짜들 중 하나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지 친구를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야… 야. 지금 학주 왔어, 여기.”
“뭐가 와?”
“학주 왔다고, 등신아!”
“노래, 노래방 좀 가자고!! 내가 마, 말을 하면 좀―”
말발굽을 바닥에 두드려대는 켄타우로스를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보다, 엉덩이 부분을 당구 채 끝으로 쿡 찔러버리는 오크.
찔린 엉덩이에 초크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얘네들을 두들겨 패려고 당구 채를 가져온 게 아니라, 방금까지 정말 당구를 치고 있었나 보다.
“악! 어, 어떤 새끼가 찌르… 어? 쌤?”
“늬들 다 일어나. 지금 당장.”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건지 민짜 놈들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죄다 몸을 움츠리는데, 켄타우로스며 미노타우르스며 앞발굽을 모으고 서 있는 게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밖으로 나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듣는 걸 보면, 다니는 고등학교가 꽤나 군기를 강조하는 곳인 게 아닐까. 여섯 중 다섯은 이렇게 나갔고, 계산대 앞에 서 있던 고블린 한 놈만 남았다.
유일하게 서 있던 놈이라 이놈이 제일 정상일 줄 알았는데, 지금 하는 소릴 들어보니 이놈이 제일 비정상이더라.
“돈 드릴 테니까, 벌점 좀 깎아 주시면 안 돼요?”
“지랄하네.”
말 한마디로 논파를 마친 뒤, 엎드린 고블린을 들어 올려 정문으로 집어 던지듯 홱 밀어버렸다. 고블린 놈이 투덜대며 나가는 걸 바라보다, 점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이는 학생주임 오크.
“저희 학생들이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뭘요.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배려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도중에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뭔가를 점장에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저런 녀석들 또 찾아오거든, 이 연락처로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말입니다만….”
“네.”
“제가 음성이 변조된 신고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전화를 받았을 땐 장난 전화인 줄 알았는데, 사진이 같이 첨부되어 있어서요….”
이걸 듣고 바로 테이블 쪽을 바라봤는데, 저 녀석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 와중에 음성 변조까지 해놨어?
“그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은데, 혹시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아뇨. 잘 모르겠네요. 죄송해요.”
점장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단 것 정도는 파악한 건지, 더 말은 안 하고 고개만 꾸벅였다. 그런 점장보다 머리를 두 배는 더 숙이는 오크.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그럼….”
이러고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당구 채를 고쳐 쥐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나와 점장, 그리고 턱을 괸 채 오크가 나가는 걸 지켜보는 나유리 저 녀석과….
음료 진열대에 서 있던 손님 한 명이 남았다. 토끼 코볼트였고, 방금 일어난 일에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발치에 골랐던 상품이 툭 떨어진 채였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정문 밖으로 달려 나갔는데, 떨어진 상품을 집어 확인해 보니 당근즙 100% 야채 주스였다. 이거 맛있나?
“저 오크 오는 데 딱 3분 걸렸어요, 오빠.”
“그래. 그러냐.”
“제 말대로죠?”
내가 시간을 잰 건 아니지만, 지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련다. 음료를 진열대에 돌려놓은 뒤 저 녀석에게 돌아갔다. 이번엔 점장도 같이.
방금 일어난 일이 뭔지를 물어보려 했는데, 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리야. 방금 온 선생님 네가 부른 거니?”
“네.”
“근처에 계시는 거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게 된 거구?”
“물어봤어요. 아는 사람한테.”
여러 정보가 생략된 말이었다. 그 아는 사람이 교복도 안 입었던 녀석들 학교는 어떻게 알아낸 거며, 그 학교 학생주임이 근처 당구장에서 당구 치고 있던 건 또 어떻게 알아낸 거며….
왜 이번에는 이 녀석 마법이 잘 작동된 것인가. 아까 낮에는 나 때문에 마법이 안 된다며 그렇게 따져대더니만.
“어떤 분이신데?”
“그건 비밀이에요.”
“그럼 내가 맞춰봐도 될까?”
“네?”
“내가 옛날에 마법을 좀 했거든. 어지간한 마법은 전부 알고 있어.”
이 흐름만은 아는 사람한테 미처 묻질 못했던 건지, 이 녀석이 약간 당황한 표정이 됐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녀석이니 속으로는 상상 이상으로 당황하고 있겠지.
“일단, 정보계통 마법이 아니지? 예전에 매장에서 팔 상품 제의하러 오는 분들이 매장에서 그 마법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어서, 내가 직접 보안 걸어놨거든.”
“…….”
“거기에 걸리지도 않았구, 전화나 공책 같은 매개를 쓰는 걸 보면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마법이구, 찬이 옆에서도 잘 써지는 걸 보면 대상을 정해서 쓰는 마법도 아니구.”
읊조리는 데에 일체의 막힘이 없고, 이 녀석도 반박할 거리가 없는지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나야 마법에 대해선 초심자니 배운다는 느낌으로 들었고.
“그리구… 이건 듣는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동의하면 그때 말해 볼게.”
“말하셔도 돼요, 언니.”
“여러 종족 혼혈이 아니면 못 쓰는 마법이야. 최소 네 종족.”
인간 쪽 핏줄이 제일 진하단다. 그다음으로는 엘프, 정령, 뱀파이어.
외에는 생각을 좀 더 해봐야 될 것 같다고 한다. 이 부분을 말할 때의 점장이 내게는 어째 좀….
“왜요?”
“내가 추측한 대로면, 일반적인 마력으로는 아무런 사전준비 없이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니까. 여러 종류의 마력이 섞여서 우연히 쓸 수 있게 된 거 아니야?”
“…글쎄요.”
“말을 얼버무릴 정도는 맞았나 보네. 솔직히, 나도 아주 확신이 있는 건 아냐. 옛날에는 혼혈 종족이 거의 없었으니까.”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내 체질을 처음 대하던 때와 거의 비슷한 정도로 말이다. 여기까지 말한 뒤, 점장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물었다.
“그래도 어림짐작한 만큼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들어볼래?”
어떤 반응이 나올지를 알고 꺼낸 듯한 질문이었고,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점장 말을 들은 이 녀석 얼굴에 감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 숨기고 살았던 비밀이 들킨다는 생각이 들 때의 그 얼굴이다. 이 녀석이 나 살던 세상에 대해 언급했을 때의 나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겠지.
“…아뇨.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조언 하나만 할게. 너무 그 마법만 믿고 살면 안 돼.”
“…….”
“우연히 쓸 수 있게 된 마법한테는 배신당할 수 있거든. 어느 순간 그 마법을 못 쓰게 된다거나… 그리구, 나처럼 누군가가 조금이나마 알아챌 수도 있구.”
“…….”
“난 이게 끝. 찬이 아까 하던 얘기 있지 않았어?”
있기는 했는데, 방금 얘길 듣고 나니 어디까지 대화했었는지를 까먹어버렸다. 점장에게 물었다.
“이따가 하겠습니다. 근데, 얘가 쓰는 게 그래서 어떤 마법인 겁니까? 점장님.”
“난 노코멘트 할래. 확실한 것도 아니구, 내가 말해 버리면 이 애가 많이 속상해할 것 같아.”
“그건 이해하는데, 점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게 제겐 좀―”
“오빠.”
이 녀석이 대뜸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아까 저희 일 얘기 하고 있었잖아요. 제가 일 얘기 해 본 적이 없다고.”
“어… 그랬었지.”
“사실, 일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럴 것 같다. 이 녀석 말하는 것만 봐도, 어지간한 알바 자리에서는 이 녀석 감당하기가 힘들 테니까. 시키는 대로 말은 잘 듣겠지만….
“그런데 아까 보니까, 언니가 많이 바빠 보이시더라구요.”
“우리 매장 평소에도 그 정도는 돼. 오히려 지금이 더 할 만한….”
“그래서 그런데, 여기 혹시 직원 뽑나요?”
들은 뒤, 잠깐 이해가 안 돼서 재차 물었다.
“직원?”
“네. 예를 들면, 저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