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1)
이세계 편돌이-170화(171/331)
170화. 애매한 녀석도 일단 가까이 (3)
* * *
20대들이 선호하는 아르바이트 순위에서 편의점 알바가 몇 위를 차지하는가. 무려 1위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말이다.
생각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터다. 업무가 어렵지 않아서일 수도 있을 거고, 단기 알바를 선호하는 경향 때문일 수도 있을 거고….
“아니, 느닷없이 여기서 알바는 왜 하겠다는 거야.”
“해보고 싶어서요.”
순전히 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나로선 잘 공감이 안 된다. 방금 민짜들이 술 먹고 잠옷 파티 하는 꼴을 보고 나서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그러니까 왜 해보고 싶냐니까?”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오빠랑 언니 두 분 다요.”
재미는 개뿔. 반박하려 했으나, 아직 이 녀석 말이 안 끝났었다.
“아니면 여기서 일하는 데에 다른 게 필요한 건가요?”
다른 게 필요할 리가 있나. 편의점이 선호되는 이유 중 가장 큰 게 특별한 자격요건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난 아예 이력서도 안 갖고 왔었으니까.
그건 아니라고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이 녀석이 아주 약간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어서였다. 무릎에 얹은 손을 미세하게 꼼지락거리고 있고.
멍하니 바라보다 깨달았다. 이 녀석이 지금 긴장을 하고 있는 거다. 일을 해본 적이 전혀 없다는 게 지어낸 말은 아닌가 보다.
깨닫고 나니 좀 더 근본적인 것도 깨달았고. 이 문제는 애초에 내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점장 마음에 달린 문제지.
“…유리, 여기서 일하겠다구 했지. 이유는 하고 싶어서라고 했구.”
“네. 많이요.”
“내일 오전 10시쯤에 다시 올 수 있니? 지금은 나 근무 끝났으니까.”
점장이 늘 알바생이 안 구해진다며 머리를 싸매던 사람이었다. 근로계약서에 사인부터 시키고 볼 줄 알았는데, 말투가 지금은 유독 침착하다.
“오전 10시에요?”
“오전 10시. 혹시라도 지각하면 안 돼. 알았지.”
“음….”
말을 늘이며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 벌떡 일어나서는 자기 가방을 어깨에 들쳐멘다. 이후엔 고개를 꾸벅인 뒤 한마디.
“저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후엔 정문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잰걸음으로 달려가 버렸다. 저 녀석이 사라진 쇼윈도 왼편을 바라보다, 점장에게 말했다.
“저 녀석이랑 아까 처음 만나는 사이끼리는 어떤 대화를 해야 되냐― 라는 주제로 얘길 하고 있었습니다, 점장님.”
“응.”
“그 대화를 하던 도중에 그냥 나간 거라고요, 저 녀석이. 저럴 거면 아까 그건 왜 물어본 건지 모르겠네.”
“그야, 지각하면 안 되니까 그렇지.”
“예?”
“오늘 보면서 느낀 건데, 저 애가 엄청 순해.”
곧바로 점장이 자기 생각을 얘기해 줬다. 자기가 10시까지 와달라고 했고, 지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침에 지각을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된다.
그래서 뛰쳐나간 거라는데, 듣고도 납득이 전혀 안 돼서 나 좋을 대로 해석하고 말기로 했다. 최소한 지각은 안 하겠구만.
“말하는 거 잘 들어주는 거 보면, 일도 싹싹하게 잘할 것 같구.”
“글쎄요….”
일을 잘할지는 솔직히 까 봐야 안다는 생각이다. 일할 때와 평소 생활할 때가 딴판인 사람들도 있고, 저 녀석도 그중 하나일 수도 있으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저 녀석이 여기서 일을 하는 것, 이건 난 환영이다. 이런 말이 있잖은가.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저 녀석이 내 출신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를 아직 못 들었다. 점장이 파고드는 동안에도 끝까지 말을 안 하던 걸 보면, 저 녀석에게는 꽤 큰 비밀이라서 그런 거겠지.
자기 비밀이 엮여 있는 만큼 이 일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진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저 녀석이 아예 여기서 일한다면, 일을 하는 8시간가량은 뭔 짓을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그런데요, 점장님. 저 녀석 들어오면 저희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 그러게. 어떻게 할까?”
“전 점장님께서 정해두신 게 있나 싶어서 여쭤본 거였는데요?”
“그게. 알바생 오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지, 들어오면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둔 게 없어. 찬이는?”
“사실 저도 생각해둔 거 없긴 합니다.”
두 명이서 12시간씩 하고 있으니 한 명 더 들어오면 8시간쯤 일하겠지― 딱 이 생각만 하며 살았었다. 드디어 내게도 워라밸이라는 게 생기는구만….
언제쯤이 좋을지 생각하며 시계를 봤는데, 오후 10시에서 3분가량이 지나 있었다. 점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인수인계부터 하죠, 점장님. 그 녀석이 여기서 일할지 확실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일은 무조건 할걸? 그 애, 한번 꽂히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성격이거든.”
“그럼 순한 게 아니지 않아요?”
“그거랑 그건 별개지. 아무튼, 근무 중에는 별일 없었구….”
* * *
아침 9시 즈음 물류가 한 번 들어올 거란다. 주 고객층이 직장인들에서 학생들로 바뀌었으니, 그에 맞춰 편의점 상품에도 꽤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를 들면요?”
“애들 학용품이나 장난감, 또… 아무튼 많아.”
상품 목록이 꽤 많아서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단다. 나중에 전표 확인하겠다 하고 말았다.
외에 특별한 사항은 없었고, 점장은 그대로 퇴근. 새벽에 근무하면서는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받았다.
원래 일하던 곳에서는 새벽 즈음에 막 인력을 나가거나 끝마치고 들어온 듯한 손님이 더러 됐었는데, 여긴 애들 있는 곳이어서인지 그런 손님들은 없더라.
대신 보였던 게, 피곤에 쩔 대로 쩔어버린 n수생들.
새벽 5시 반 즈음부터 유성 매직으로 그은 듯한 다크서클을 달고 오는 학생들이 뜨문뜨문 오기 시작했는데, 몰려오는 간격이 4분에서 5분 정도였다. 딱 지하철 배차 간격이다.
“계산이요….”
“네.”
사향고양이과 코볼트 한 명이 올려놓은 커피를 계산해주니, 카드랍시고 내밀어온 게 학생증이었다. 학생증에는 ‘레인 매직 스터디’라고 적혀있었고.
이게 이세계 재수학원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보다. 확인한 뒤엔 말없이 코볼트 얼굴을 슬쩍 올려다봤는데, 이 녀석이 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더라.
“저, 손님.”
“…예?”
“지금 계산하실 카드가 아니라, 학생증을 내밀고 계시거든요.”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안쓰럽기만 해서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봤다. 내 말에 자기 손에 들린 카드를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붕붕 저은 뒤, 제대로 된 카드를 내밀어온다.
“죄송해요. 졸려서….”
“괜찮습니다. 살펴 가십쇼, 손님.”
이 세상에도 입시지옥은 똑같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기사, 사람 사는 곳이 이세계라고 다르겠냐마는.
이런 유형의 손님들 방문이 잦아든 게 오전 7시 즈음. 교육과정 중 가장 질풍 같은 시기를 겪고 있는 녀석들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들.
“계산 부탁드릴게요.”
“네… 됐어요. 감사합니다.”
얘네들은 괜찮았고,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삶에서 제일 중요할 시기에 편의점에서 진상 부릴 시간이 어디 있어? 공부해야지.
문제는 진상 짓을 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녀석들, 중학생들이었다. 중학교 등교 시간에 단일화가 이루어진 건지, 이 녀석들이 온갖 형형색색의 교복을 입은 채로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아저씨! 계산이요!”
“네, 잠시만요….”
“저도 계산이요, 아저씨!”
“…잠시만요. 지금 계산 중이라서….”
중학생들 특징 1. 물건을 조금씩밖에 안 산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배부르다는 느낌을 알까요?
부모님한테 용돈 받으며 사는 꼬꼬마들이 편의점 8,000원 도시락의 참맛을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다. 콜라 캔 하나, 많으면 삼각김밥 한 개에 라면 사 가는 게 전부다.
차라리 계산이라도 빠르면 몰라. 이 녀석들이 물건을 가져다 놓고 내가 가격을 말하면 그때서야 자기들 책가방이나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카드를 꺼내온다. 학교에서 수칙으로 정해주기라도 했어?
그래도 이건 괜찮다. 얘네들이 잘못을 한 건 아니잖아. 문제는 중학생들 특징 2. 참을성이 모자랄 나이라는 것.
“야! 앞에 빨리 좀 사 가! 뭐 하는 거야!”
“아, 기다려 봐! 지금 돈 꺼내고 있잖아!”
“돈 꺼내는 데 왜 그렇게 늦게 걸리냐?”
몇 번 상상은 해봤었다. 학교가 수십 개 몰린 곳이면 그 수십 학교 학생도 죄다 한곳에 몰려 있단 얘긴데, 얘네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광경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얘네들이 서로 볼 일이 없어서인지, 조금만 수틀렸다 해도 서로 막말을 해댔다. 지금도 그렇고….
“아, 좀 기다리면 되지, 왜 자꾸 시비야! 너 어느 학교야, 등수 몇 위인데?”
“우리 학교 이번에 블록 전체 3위 했다. 왜, 꼽냐?”
“어… 이씨….”
듣고 있자니, 다니는 학교들 순위 관련해 묘한 신경전 같은 게 있는 것도 같고. 순위를 성적으로 매기는 건지, 마법으로 매기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저러다 싸움이라도 나겠다 싶어 계산하던 걸 멈추고 둘을 보며 말했다.
“매장에서 싸우지 마십쇼, 경찰 부를 수도 있으니까.”
“헉. 야, 야. 경찰 부른대.”
“…….”
중학생들 특징 3. 경찰 두 글자만 들어도 얌전해진다. 같이 줄 서 있는 애들한테 들어가는 스플래시 데미지는 덤이다.
이건 가성비가 꽤나 괜찮아서 근무하는 내내 족족 써먹었다. 이 꼬꼬마들 디펜스를 꾸역꾸역 버티던 중 8시가 됐고, 그 녀석이 왔다.
“저 지각 안 했어요, 오빠.”
“그래….”
“잘했죠?”
“어. 잘했고, 나 계산해야 되니까 좀 딴 데 가 있어 봐.”
이 녀석이 전번처럼 똑같이 계산대 앞에 서 있는데, 이번만큼은 여유롭게 대화 나눠줄 상황이 안 됐다.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 녀석이 테이블을 돌아보고는 중얼거렸다.
“테이블이 많이 더럽네요.”
“…손님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다, 저건.”
얘네들 계산해 주는 중간중간에 테이블을 몇 번 치웠었다. 4번 정도.
사거리 직장인들은 샌드위치 포장지는 몰라도 자기가 먹은 라면 정도는 치웠었는데, 이 녀석들은 엄마가 설거지해 주는 거에 익숙해지기라도 한 건지 치울 생각을 안 한다.
다른 자리를 점거한 꼬꼬마들은 테이블 위가 더럽든 말든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눈치고. 내 말에, 테이블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대뜸 물었다.
“둘러봐도 돼요?”
바빠서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곧바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 녀석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쓰레기통 앞에 멈춰서는 쓰레기통을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그러다 쓰레기통 칸막이를 열고는 또 멈추고, 그걸 닫고는 또다시 폰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둘러본답시고 하는 짓이 왜 저래?
의아해서 계산하는 속도를 늦추며 바라봤는데, 잠시 뒤에 이 녀석이 했던 둘러본다는 말의 참뜻을 알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치워지지 않은 라면들을 주섬주섬 모아서는….
쓰레기통 쪽으로 가져가, 라면 국물 버리는 곳에 하나씩 버렸다. 국물을 비운 라면 용기는 겹치고, 뚜껑은 벗겨서 옆에다 포개어놓고.
이렇게 라면을 전부 버린 뒤, 다음에는 테이블 위의 샌드위치 포장지들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바라보던 도중에 눈앞의 손님이 내게 묻더라.
“아저씨. 저 계산 빨리 해 주세요, 지금 지각했단 말이에요.”
“…아, 예. 죄송합니다.”
이 꼬꼬마 말대로 지금이 지각할 시간인지 중학생들이 거의 빠져나간 채였다. 앞으로 남은 손님이 둘.
마저 계산해서 보낸 뒤 다시 테이블 위를 확인했는데, 테이블이 제법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구석에 고인 라면 국물만 제외하면 말이다.
저거만 내가 치우면 될 것 같다. 생각하던 찰나, 진열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녀석이 어느새 계산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라면을 치우다 묻은 건지, 손이 온갖 라면 국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 상태로 나한테 묻더라.
“오빠. 혹시 손걸레 어디 있어요? 라면 국물 닦아야 되는데.”
“…됐다. 내가 치울게.”
“괜찮아요. 제가, 어젯밤에 인터넷으로 일 처음 하면 어떻게 할지 검색을―”
“내가 치운다니까. 나유리 너, 손 씻고 앉아 있든지 해라. 한가해지면 일하는 거 대충 알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