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75)
이세계 편돌이-174화(175/331)
174화. 잘 모르면 그냥 배워 (4)
* * *
귀로 들으니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다. 뭐? 근무시간이 언제가 좋을지 정할 수 있다고…?
“찬이, 생각해 본 적 없나 부네.”
“예.”
주 7일 12시간 근무에 몸이 적응돼서인가, 일하고 잠자는 것 외에 다른 짓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전혀 상상이 안 간다. 일하고 잠자는 것 말고 뭘 해야 되냐?
요 며칠은 특히 집 문제, 유리 이 녀석 문제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머릿속이 꽉 차 있기도 했고. 지금은 그 문제가 얼추 해결됐지만, 대신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장난감 진열대 말이다. 이 녀석이 우리 매장 진열대 중 제일 왜소하고 병약한 녀석이다. 장난감 수량이 적어서 진열대를 작은 걸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팔다리가 휘어버렸고. 찝찝함에 힐끔거렸는데, 점장이 내 시선을 따라보고는 물었다.
“저 진열대, 초등학생 애들이 망가뜨린 거지?”
“저는 기억에 없긴 한데,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응? 정말?”
“여기 애들 죄다 미쳤어요, 점장님. 테이블에 신발 신고 막 올라가던데요?”
“아하….”
솔직히 기억하기가 싫어서 그렇지, 안 나는 게 아니다. 테이블 올라갔던 하피 꼬마가 올라가서는 뭐라고 했었더라. 학교에서 배운 날갯짓으로 뭘 어쩌겠다고 하지 않았나?
“…유리야. 너 옆에서 들었지. 그때 그 하피 꼬맹이가 뭐라 그랬었냐?”
“자길 속박한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댔어요.”
“뭔 씨, 인생 2회차야?”
“아닐걸요?”
“이러면 아침 8~9시 사이는 우리 둘 중 한 명이 근무하는 게 좋을까? 찬아?”
겪어본 입장으로선 동의한다. 내가 근무한다고 달라질 거야 없겠지만, 처음 근무하는 애한테 그런 애들을 상대하라고 시키기도 좀 그렇잖아. 세상이 자길 속박하고 있다는데….
“점장님께서는 생각해 두신 거 있으십니까?”
“원하는 시간대는 아직 안 정했구, 생각해둔 건… 일단 이거.”
말하며 수첩을 펼쳐서는 우리에게 보였는데, 평일은 구성이 심플했다. 5일 동안 3명이 각자 8시간씩. 문제는 주말.
점장이 고민을 꽤 많이 한 건지 주말 관련된 내용들이 낙서하듯 줄이 그어지거나, 구석에 짧게 적혀 있거나 했다. 그중 눈에 띄었던 내용. ‘한 명은 쉬는 게 낫나?’
“주말을 다 쉰다고 치면, 주말 이틀은 2명이 근무해야겠네요. 12시간 2교대로.”
“응. 그런데, 이것도 고려해야 될 게 좀 많더라구.”
한 명이 주말 이틀을 통째로 쉬게 한다, 이러면 근무 시간 계산은 편하다. 3주를 로테이션으로 매주 한 명이 쉬면 끝.
대신 급여 계산이 번거로워진다. 한 달의 주 수가 3의 배수가 아니어서다. 그렇다고 토, 일요일을 따로 구분해 쉬어도 마찬가지고. 음….
“저희 다는 못 쉬겠네요.”
“그치.”
셋이 골고루 다 쉬는 건 산술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럴 바엔 차라리 평일을 이대로 두고, 주말 이틀을 점장이랑 내가 2교대를 뛴다면 어떨까.
이건 지금까지 해 온 일의 연장선이니 하고도 남는다. 이걸 넌지시 유리에게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네 의견을 아직 못 들었다. 너는 어느 정도 일하고 싶은 거냐?”
“저는… 오빠 생각은 어떠세요?”
“네가 평일만 뛸지, 주말까지 다 뛸지에 따라 달라. 너도 주말에는 게임하거나, 밖에서 놀거나 하고 싶을 거 아니냐.”
교복 차림에서 해방된 지 이제 4개월 된 녀석이니, 주 7일을 죄다 근무하면 좋은 것도 금방 싫증이 나지 않을까.
그래서 물은 건데, 이 녀석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해 왔다.
“저 게임 안 해요. 밖에도 잘 안 나가고요.”
“그럼 평소엔 뭐 하는데?”
“집에 있어요.”
이 녀석 성향을 또 하나 알았다. 집순이. 이것도 집돌이인 나와 비슷하다.
“주말에 일해도 괜찮다?”
“네. 다음 주면 종강이고.”
“언제라도 괜찮다는 것 같습니다, 점장님.”
여기까지 말한 뒤엔 말을 아꼈다. 점장 영역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단 생각에서였다. 헌데 우릴 바라보던 점장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묻더라.
“둘이 어젯밤보다는 훨씬 친해졌네.”
“예? 아니… 예. 매일 얼굴 볼 사이 됐으니 아무래도.”
“그래서예요?”
“꼭 그래서는 아닌데, 일단 그렇다고 치자.”
이 녀석이 언제라도 근무할 수 있다면 선택 폭이 훨씬 넓어진다. 펜으로 수첩을 톡톡 두드리던 점장이 날 올려다보며 결론지었다.
“유리가… 낮에 일할 수밖에 없겠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침은 아까 겪은 대로 그 녀석들이 난리를 칠 테고, 저녁은 어제 봤던 비행청소년 같은 놈들이 난리를 치겠지. 낮 근무는 난 해본 적이 없긴 하지만….
“점장님. 낮 근무 때 매장 어떻습니까. 많이 바쁘세요?”
“고난과 역경이야.”
이럴 것 같았다. 아침 등굣길에 잠깐 들른 것만으로 매장에 이 정도 데미지를 입히는데, 이놈들이 시간 내 등교라는 리미트가 풀린 채로 찾아온다?
그땐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가 터지는 거다. 시간대 세 개 중 어디로 도망쳐도 낙원이 없다면, 다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안전. 오후 6시부터는 밖에 취객이 돌아다니잖는가.
이제 20살인 녀석에게 취한 손님을 받으라 시킬 수는 없다. 20살이면 세상 모든 취객이 다 연상일 나이니까. 이때 딱 근무교대를 하게 짠다 가정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이 경우는, 아니, 이건 안 된다. 전 근무자더러 오전 2시에 출근하라는 얘긴데, 막차 끊길 시간에 출근을 어떻게 해?
내 머리로는 어딜 어떻게 짜도 애매했다. 생각하는 걸 그만둘 즈음 점장이 펜을 한번 딸칵이고는 슬쩍 내밀어 왔다. 세 줄 적힌 게 이러하다.
[ 밤 10시 ~ 새벽 6시 : 찬이 ] [ 오전 6시 ~ 낮 2시 : 유리 ] [ 낮 2시 ~ 오후 10시 : 나 ]바로 대답했다.
“전 이거면 만족합니다, 점장님.”
1달 내리 야간을 뛰었고, 이젠 야간근무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바이오리듬 고정된 걸 애써 바꿀 이유도 없고.
외에도 야간을 뛰는 만큼 야간수당이 그대로 나오기도 하거니와, 내 단골손님들 방문시간대가 죄다 야간이었다. 시간대를 옮겨버리면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대가 제일 좋아. 밤 10시에 퇴근하구 먹는 캔맥주가 제일 맛있거든. 유리는 아침 근무 해두 괜찮아?”
“전 아침이 좋아요, 언니.”
정말 괜찮아서 좋다고 대답했다기보단, 우리 둘 시간이 정해진 모양새니 남은 시간을 고른다― 라는 느낌이었다. 가능하면 좀 더 고려해 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더 나은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라 함구했다. 여기까지 말한 뒤 시간을 보니 오전 10시가 좀 더 지나 있었다.
똑같이 시간을 바라보던 점장이 수첩을 탁 덮고는 말했다.
“일단은 이렇게 하는 걸로 하구, 나머지는 나중에 얘기하자. 둘이 궁금한 거 있어?”
“언니. 저 그럼 내일 오전부터 나오면 돼요?”
“바로는 아니구. 요 며칠은 일 배워야지.”
의외로 편의점이 직원 교육을 중요시하는 업종이다. 매장을 혼자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 만큼, 어지간한 돌발상황이나 기계 다루는 법 등에 대해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세하게 알려주는 편이다.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전화만 붙잡고 살게 될 테니까.
“배우러 나오는 건 오전 6시면 되는데, 그 시간 외에도 언제든지 들러도 돼. 지금도 유리만 의욕 있다구 하면 일 가르쳐줄 거구.”
“배울래요.”
“그럼 그렇게 하자. 찬이는 어떻게 할래?”
“전 퇴근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졸리네요.”
피곤한 것도 있고, 집에 박혀 있을 투명고양이 녀석도 확인해 봐야 한다. 이 녀석이 배변이라도 했으면 그건 어떻게 치워야 되냐. 그것도 투명하진 않겠지….
생각하며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멀리서 점장과 유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지켜봤다. 테이블 위에 못 보던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근로계약서일 터다.
점장 말에 꼬박꼬박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다, 의문이 하나 떠오르더라.
저 녀석이 오늘 일 배우는 동안 내 세상 얘기를 한마디도 안 했다. 왜?
어제오늘 잠깐 같이 지내 봤고, 저 녀석이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안다. 헌데 그와는 별개로, 나 살던 곳에 대해 묻는 게 나쁜 일이 아니라 여기고 있지 않았나?
저 녀석 입으로도 직접 얘기했었고. 그러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물어봤다. 동시에 지금 일하는 것도 이유가 똑같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려고 한다.
“참….”
나중에 저 녀석과 단둘이 남거든, 또 내 세상 얘기를 꺼내지는 않을까. 그땐 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니, 둘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들려왔다. 점장은 살짝 당황한 눈치인 반면, 유리 이 녀석은 태연했다.
“내가 정말 시급 얘기 안 했었니? 만 원이라구?”
“안 해주셨어요. 그런데 언니, 시급이 중요한 거예요?”
“응. 대부분의 사람한테는.”
“저는 돈 생각은 없어요. 안 받아도 돼요.”
“그치만, 유리 돈 안 주면 내가 벌금을 내야 되는데?”
그럼 그 시급 내가 받겠다. 머릿속에 이 말을 잠깐 떠올렸다가, 농담거리도 못 될 것 같아 관뒀다. 돈이 필요 없는데 일은 왜 하겠다는 건지 몰라.
“고생하십쇼, 점장님. 유리 너도.”
말인사만 하고 나가려 했는데, 말 한마디에 나란히 연갈색 머리, 은색 머리를 휙 돌려서는 날 바라봤다.
“찬이, 잘 가. 졸릴 테니까 조심해서 가구.”
“돌부리 조심하세요, 오빠.”
“…오냐. 잘 조심해서 가겠습니다, 점장님.”
대답한 뒤, 밖으로 나오자마자 햇살이 눈꺼풀을 찔렀다. 반쯤 눈을 감은 채로 좀 더 걸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유리 저 녀석이 나쁜 녀석은 아니다. 지금은 일하는 데에 꽂힌 것 같으니, 당분간은 내 세상 얘기보단 일 가르쳐 달라는 얘기만 하겠지.
문제가 다 해결이 됐단 거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당장은 고민할 거리 없다. 오늘은 잠만 자면 끝이다.
* * *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 뒤, 문이 열리자마자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달았다. 아니, 왜 바닥에 사료가 죄다 쏟아져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집 안을 살펴보니, 사료 봉투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침실 쪽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물그릇에는 사료 알갱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고.
그리고 침실 중앙. 침실 바닥 전체에 사료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었으나, 딱 한가운데만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작은 원 공간에, 딱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누울 수 있을 정도다.
소음이 나지 않게 조심히 걸어 다가가 봤더니, 여기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릉… 쌔액, 그르릉… 쌔액.”
이제야 정황이 짐작됐다.
“이 녀석 밥 오질라게 잘 먹네….”
내가 출근할 때, 사료를 고봉밥으로 담아서 줬었다. 헌데 이 투명고양이가 추정 생후 3개월이다. 철근도 씹어 먹어 소화시킬 나이란 뜻이다.
그 고봉밥을 다 먹고는 배가 고파졌는데, 집에 먹을 게 없다. 평소라면 밖에 나가 쓰레기통을 뒤적였겠지만, 사료 맛을 한번 본 이상 멈출 수가 없게 된 거지.
그러니 사료를 찾아야겠다. 그런데 사료 어디 있어? 냄새가 이 봉투 안에서 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이 봉투는 왜 지퍼로 잠겨 있지? 어, 열받네?
냅다 찢어버린 뒤, 만족할 만큼 사료를 퍼먹고 지금은 잠이 들어버렸단 거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 자고 있을 고양이를 더듬어 들어 올려 봤다.
“웅냥?”
“이놈을 그냥….”
냄비에 담아버릴까? 거실이고 욕실이고 죄다 사료 천지가 된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퇴근하자마자 잔업을 뛰게 만든 분노를 조미료 삼아―
“…아니다. 사료 잘못 둔 내 잘못이지.”
“아웅. 냥, 냐앙.”
손에 미세하게 진동이 느껴지는 게, 이 녀석이 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잠깐 생각하다 말을 걸어 봤다.
“야. 내가 어지간한 문제는 다 해결했고, 니만 어떻게 하면 되거든.”
“냥?”
“그러니까, 우리 한번 친해져 보자고.”
현대문물 중 아주 신기한 걸 하나 봐 둔 기억이 있어서였다. 분명 자동 사료 공급기인가 뭔가 하는 이름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