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81)
이세계 편돌이-180화(181/331)
180화. 우린 친구가 적다 (2)
* * *
다시 들어와 매장 쓰레기부터 치웠다. 오늘은 장난감 진열대가 박살 나진 않아서인지 치우는 데에 오래 걸리진 않았다.
대신 다른 게 박살 났는데, 유리 녀석이 아침 근무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내 확신이었다. 이 녀석이 내가 쓰레기를 치우는 내내 날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더라고?
그러면서는 힐끔힐끔 하나를 바라보다, 하나가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하면 또 내 뒤로 숨어서 이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너 뭐 하냐?”
“관찰이요.”
“그걸 왜 하는데.”
“저, 어린애한테 말 거는 게 이번이 처음이에요.”
염병, 내가 생각한 게 맞았다. 이 녀석이 거리감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애 어른 중 누굴 상대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갈리는 성격인 거다.
“아니, 아까 애들 잘만 내보내더만….”
“저 그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내가 혁신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도 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고. 무언의 압박으로 쫓아낸 게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바라보던 걸 자기들이 알아서 쫄아서 나가 버린 거지.
방금 밖에서 인사를 따라 한 것도 애들 대하기가 어려워서 핑계를 댄 거였다. 우리 매장 아침 근무 이제 어떻게 하냐?
“보통 그럴 때 어떻게 말하는데요, 오빠?”
“…나도 그럴 땐 따로 안 하는 편이니까, 너도 아까처럼 말하지 마라. 그냥.”
“그럼 애들이 나가 줘요?”
※주의할 점) 아재처럼 생겼다면 시도하지 마세요. 애저녁에 350도까지 기울어진 자존감을 똑 부러트리며 대답했다.
“그래. 나가 준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지금은요?”
“지금이야 뭐, 너 하고 싶은 말 하면 되는 거고.”
“음….”
내 조언에 하나 얼굴을 다시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몸을 살짝 빼고는 진솔하게 소감을 말해 왔다.
“귀여워요.”
그렇댄다. 유리 말에 하나가 부끄럽다는 듯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자기 스커트를 꼼지락거리며 소감을 받아 줬다.
“언니야두… 좋은 언니야 같아여.”
이걸 궁금해할 것 같아서 체질을 미리 죽여 뒀다. 마음씨가 새카맣지 않단 걸 직접 봤을 테니, 이젠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난 살짝 거들 뿐이고 말이다. 더 둘러봐도 치울 곳이 보이진 않아서, 쇼윈도 쪽까지 졸졸 따라온 둘을 먼저 의자에 앉혔다. 사람은 셋인데 어른이 둘이고 애도 둘이야. 이건 또 뭔?
이후, 밖을 바라보며 하나에게 물었다.
“유치원 버스 언제 온대?”
“에… 모르겟서여. 엄마야가 선생님께 전화해 둔다구 하셧는대….”
“그럼 여기서 기다리다, 버스 오면 나가서 타면 되겠네.”
“내.”
아까 듣기로는 정문 앞에서 버스 타고 들어가는 데 20분 걸린다고 했었다. 그럼 나오는 데에도 똑같이 걸리겠지.
오늘은 길게 얘기하진 못할 것 같다. 당장 해야 할 말이 뭐가 있는지를 생각하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해 봤다.
“얘 우리 매장 단골이니까, 나중에 너 근무할 때 오면 잘 좀 부탁한다. 유리야.”
“…내?”
내 말에 하나가 의아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이것만은 내가 어쩔 수가 없다. 근무가 3교대로 바뀔 경우, 내 출퇴근 시간이 오후 10시에서 오전 6시.
업무 시간에 만날 일이 사실상 사라졌단 얘기다. 새벽에 폰으로 하나 연락처 볼 때마다 이걸 미리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말이다….
“저, 저이 이제 못 보는 거애여…?”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아 뒤로 미뤘었다. 옆자리에 앉은 뒤, 뿔에 손이 안 닿도록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마저 말했다.
“이제 밖에서도 볼 수 있다는 얘기지. 여태 해 온 것처럼 이렇게 앉아 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만나는 걸로만 따지면 예전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 지난 한 달간 하루 중 12시간은 여기가 아니라, 원래 살던 곳의 벽지 바랜 6평 원룸에서 지냈었으니까.
반 토막 났던 시계가 이제야 온전해졌단 얘기다. 보증금을 빼려면 언젠가 한번 돌아가기는 해야겠지만….
“너 온다고 하면 여기서 몇 시간 기다릴 수도 있는 거고. 너 원하는 대로 하면 돼.”
“진짜루여…?”
“진짜지, 그럼 가짜겠냐. 우리가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가능한 만큼은 이 녀석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다. 전에 게이트 닫을 때 신세 진 게 있기도 하고, 구태여 나쁜 어른의 선례로 남고 싶지도 않다. 다 떠나서….
“…히히.”
그냥 정들어서 안 된다. 이렇게 웃을 줄 아는 꼬마를 살면서 언제 또 만날 수 있겠어.
눈에 글썽인 눈물을 슥슥 닦는 걸 바라보다, 떠오르는 게 있어 바로 말했다.
“멍멍이 그 녀석한테 물리고 싶지도 않고 말야.”
“아. 멍뭉이. 아조씨, 멍뭉이 보셧서여?”
“봤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 아는 누나가 씻기겠다고 데려간 게 마지막이었거든?”
“아조씨 누나면… 아주머니?”
“나중에 소개시켜 줄 텐데, 만나더라도 아주머니라는 단어 꺼내면 안 된다. 그 누나가 철이 덜 들어서 화를 잘 내.”
“헉.”
반대로 노이로제만 자극하지 않는다면 무척 원만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우리가 대화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유리가 대뜸 입을 열었다.
“둘이 엄청 친해 보여요, 오빠.”
“그렇게 보이냐?”
“네.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이 녀석이 재미를 느끼는 기준을 도통 모르겠다. 편의점 알바를 재미있어 보인다고 시작했던 걸 생각해 보면, 기준선이 곡선인 것만은 확실한데….
“서로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그래도 이 질문 의도는 빨리 납득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29살 편돌이와 7살배기 순혈 드래곤이 노닥거릴 수가 없으니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도 하지.
그러니까, 처음에는 하나 어버이날 선물 만드는 걸 도와줬었고. 그게 끝난 다음에는 애가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하길래 그걸 나름대로 도와줬었고… 아.
“하나야. 너 유치원에서 친구 사귀는 거. 그건 잘되어가고 있냐?”
묻자, 잠깐 멍한 표정이었던 하나가 곧장 꼬리를 파닥이며 대답했다. 어째 그 질문만 기다려 왔다는 것처럼 보인다.
“내! 준비 중이애여!”
“준비 중이라고? 뭘?”
“개인기!”
웬 개인, 아니다. 또래 애한테 어떻게 다가가는 게 좋냐는 질문에, 내가 개인기 같은 걸 한 가지 할 줄 알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솔직히 7살짜리 애가 개인기는 뭔 놈의 개인기?’라는 생각이긴 하지만,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니 준비 중이라는 개인기에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는 듯했다. 흠….
“어떤 거 준비 중인데.”
“엣, 아직 준비 중인대!”
“그 준비 중인 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수도 있는 거잖냐. 하나 너는 준비 중인 단계라 여겨도, 다른 사람 눈에는 완벽하게 보일 수 있지 않겠어?”
“…그른가?”
스스로도 긴가민가한지 꼬리가 점점 물음표 모양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내 말에 쉽게 공감을 하는 걸 보면, 자기 생각에도 거의 완성 단계라 여기는 듯한데….
“저도 볼래요. 오빠.”
등 뒤에서 유리가 위임 투표를 신청해 왔고, 과반수로 우리가 이겼다.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린 하나가,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잠시 후, 브레스를 내뿜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
벌린 입의 상어 이빨 틈새에서 불꽃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브레스가 꽤 길었다. 120cm 좀 안 되는 애가 자기 키의 절반 길이 불꽃을 뿜고 있으니 긴 거 맞겠지.
화력적으로는 크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으나, 문제는 같이 발생한 매연이 꽤 진했다는 점이다. 이건 하나에게도 예상 밖이었는지 같이 발생한 매연에 눈을 질끈 감고는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켈룩. 켈룩, 에으으!”
“으아, 눈 매워.”
난 아무렇지도 않았던 반면, 유리는 매연 냄새가 독했는지 벌떡 일어나서는 정문을 벌컥 열어 버렸다. 이후 반대쪽 문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덜컹거리다 내게 물어 왔다.
“오빠. 오빠, 이거 반대쪽 문이 안 열려요.”
“그거 폐문이라 그래. 밑에 자물쇠 풀어봐.”
유리가 시키는 대로 척척 잘하는 동안, 뭉게구름마냥 모여있는 매연을 손으로 헤집어 봤다. 손에 닿는 족족 사라지는 걸 보면 이것도 마법 비스무리한 것 같다.
사실, 매연이 뭉친 채로 흩어지질 않는 게 누가 봐도 마법같이 생기긴 했다. 그나마 치울 수 있는 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절반쯤 매연을 지우고 있는데, 하나가 사과해 왔다.
“제송해여, 어제두, 그 어제두 잘 대갖구. 켈룩.”
“이 개인기는 누가 추천해 준 거냐?”
“아조씨랑 아주머니들께서여….”
엄마 따라다니는 수행원들을 얘기하는 듯하다. 추측이긴 하지만 그 양반들도 드래곤일 테고, 개인기를 물어봤으니 당연히 드래곤이 할 법한 개인기를 추천해줬을 테고….
하나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왔을 테니, 애가 브레스가 아니라 기침을 했었다 해도 ‘아이구, 우리 아가씨는 기침도 잘해!’ 하며 귀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자연스레 할 수 있었다. 참.
매연을 피해 밖에서 숨을 몇 번 쉬고 돌아온 유리가, 다시 돌아와 앉아서는 방금 개인기에 대한 소감을 짧게 말했다.
“갑자기 오징어 먹고 싶다.”
“…이 개인기는 준비 중이라 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아쉬움이 여실히 묻어나는 대답이었으나, 하나가 자기가 잘못했단 걸 빤히 알고도 고집을 부리는 애는 아니다. 이 대답과 동시에 매장 밖에서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밖을 바라보니, 학원지구 정문 앞에 노란색 버스가 서 있다. 테이블 위의 책가방을 집어 하나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지금 밖에 버스 온 거 아니냐?”
“어… 앗, 마자여! 아조씨, 언니야. 나중에 배여!”
“그래. 뭔 일 있으면 문자 하고.”
“내!”
명랑하게 대답하고는 열린 정문 밖으로 나가, 길을 건너 버스에 올라타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보는 도중에 유리가 2차 소감을 내뱉어 왔다.
“애가 브레스를 엄청 잘 쏘네요.”
“저거 잘 쏘는 게 맞아?”
“네. 대학 강의에서 지나가듯이 말해줬었는데, 저 나이대 애들은 불꽃도 제대로 못 만든대요. 빨라야 10살 넘어야 된다던데.”
“그걸 아까 좀 말해 주지 그랬냐. 좋아했을 텐데.”
“그땐 오징어 말고는 아무 생각 안 났어요.”
실제로 매장에 가스 불에 오징어 굽는 냄새 비슷한 게 나고 있긴 했다. 버스가 아예 떠나 버린 뒤에야 이 녀석이 그나마 사람다운 대답을 해 왔다.
“나중에 오면 그때 말해 볼게요.”
“좋네. 근데 유리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어떤 거요.”
“너 대학교에 친구 있냐?”
“당연히 없죠. 있겠어요?”
내용에 비해 목소리가 무척 평온했는데, 친구 없다는 말을 왜 이렇게 당당하게 하는질 모르겠다. 물론 교우관계가 자산목록이나 포트폴리오에 적어 넣을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긴 한데….
“저 애랑 공통점을 하나 찾았네요.”
이 말은 뿌듯하다는 듯이 하길래, 이유를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래, 편의점 알바가 친구 좀 없으면 어때? 일만 잘하면 됐지.
“그런데 오빠는 친구 있어요?”
있겠냐고. 이 동네 이사 온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없다고 대답하자, 유리가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오빠랑도 공통점을 하나 찾았고요.”
“그래….”
“저희, 친구 없는 사이끼리 잘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