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84)
이세계 편돌이-183화(184/331)
183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부메랑처럼 (1)
* * *
편의점에 놀러 와도 되냐는 말이 왜 이리 모순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아몬드 나오는 오락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농담으로 써먹어 볼까 싶어 폰에 적다가, 전부 지운 뒤 퇴근한 거면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겠냐는 톡을 보내 봤다. 그러자 엘레나 양 왈.
[ 오늘 팀 선배님들께서 회식을 하자고 하셔서요 ] [ 옷 갈아입고 편하게 만나자 하시더라고요 ] [ 팀장님께서 11시 즈음에 학원지구 역 앞에서 만나자고 하셨고…. ]하여 역 앞 얘기가 나오자마자 매장 생각이 났고, 내친김에 톡도 해온 거랜다.
듣고 난 소감은, 회식을 하면 하는 거지 퇴근시켜서 옷 갈아입고 다시 나오라 하는 건 또 뭐야. 사내 괴롭힘 유형 중 하나인가?
제약회사에서 평소엔 회식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 이것도 물어보려고 반쯤 적었다가, 다음 톡 온 걸 보고 다 지웠다.
[ 지도 검색해 봤는데, 지하철 타고 10분 정도 걸리더라구요. 선배님들께서는 다 집이 근처에 있다고 하시고 ] [ 제가 늦으면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서,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고…. ] [ 물론 찬이 씨 괜찮으시면 얘기지만요 ]나야 오는 건 상관 안 한다. 약 만드는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와서 껌 한 통이라도 사면 편돌이 입장에서 뭐라고 해.
다만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답장하기에 앞서 쇼윈도 쪽을 슬쩍 바라봤는데, 수인이 하는 통화가 이젠 기승전결 중 전에 도달한 채였다.
“내가 고집부리는 게 아니라, 전에 했던 약속을 깰 수는 없잖아. 걔네들도 나 힘들 때 많이 도와주고 그랬으니까―”
[ ……. ]“물론 자기가 훨씬 더 많이 도와줬지, 자기야. 자기야? 어?”
도중에 상대측에서 전화를 뚝 끊어버린 건지, 폰을 귀에서 떼고는 불 켜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수인 손님. 그러다 내 쪽을 힐끔 바라보고는,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엎드린 걸 가만히 바라보다, 엘레나 양에게 답장 톡을 보냈다.
[ 오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정황이 어떤지 짐작은 됐지만, 깊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전화 통화 끝났으니 3분쯤 저러고 있다가 나가든 하겠지.
오는 데에 10분 걸린다 했으니 전화로 저 양반이 여자친구랑 싸우는 거 듣게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답장을 보내자, 강아지가 웃는 이모티콘이 하나 떠오르고는 톡 올라오는 게 멎었다.
이후엔 저 수인 양반이 나가기만을 기다렸는데, 엎드린 채로 밖만 바라보던 양반이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또다시 폰을 꺼내 든 것이다.
“…어. 나야. 지금 애들 다 있어?”
[ ……. ]“그래. 근데 나,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
목소리를 내리까는 게, ‘나 못 가는 건 맞는데 이유를 좀 물어봐 줄래?’라는 티가 팍팍 묻어난다. 전화를 받은 측에서도 똑같이 느끼고 물은 건지, 저 양반이 내 생각이 좀 더 깊어지게 만드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여친이랑 싸웠다. 오늘 약속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야이 씨, 그 통화를 왜 여기서 하는… 아니. 저 양반 입장을 이해하려면 할 수는 있다.
저녁 10시에 밖에서 트러블이 생겨 심란해. 어디 앉아서 통화 좀 하고 싶은데 카페며 패스트푸드점이며 죄다 문을 닫았고, 밖은 또 묘하게 쌀쌀해. 저 양반이 하필이면 반팔을 입고 있다.
그럼 뭐다? 제일 만만한 곳이 대형 편의점 구석탱이인 거다. 편돌이가 카운터에 버젓이 서 있긴 하지만, 진상짓을 안 하는 손님 상대로 편돌이는 병풍짓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매장에 손님이 딱 한 명 있을 경우엔 더더욱.
저 손님 달랑 한 명 있는 마당에 매장 영업에 방해가 된다고 나가달라 하기도 뭣하잖은가. 더해서 저 양반이 통화내용이 한심할 뿐이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너도 이해 안 되지. 우리가 술 먹고 다른 여자 합석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데 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술도 먹질 못하게 하는 거냐?”
그거야 난 모를 일이지만, 매장 알바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도 눈길 한번 안 주는 걸 보면 평소에도 눈치가 더럽게 없는 양반이란 것만은 잘 알겠다.
저 눈치가 없는 게 신뢰도의 하락으로 이어진 것일 테고 말야. 반대로 나는 저 양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잠잠하던 통화내용이 또다시 기묘하게 흘러가서였다.
“…아. 이참에 아예 여자친구한테 확실히 말을 하라고?”
[ ……. ]“매번 휘둘리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럴 때는… 그래, 내 생각에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라는데, 내 생각엔 그게 안 맞는 것 같다. 분명 싸울 거 아닌가. 매번 휘둘리기만 할 게 아니라는데, 이전까지는 매번 휘둘렸다는 말이잖아?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필연적으로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이다. 싸우기 시작하면 당연히 목소리도 높아질 테고, 그 와중에 손님들 들어오면 눈살 찌푸릴 테고.
그때면 내가 직접 ‘언성을, 그렇게 언성을 높이지 마세요, 손님.’ 이러면서 말로 내보내야 할 텐데, 난 감정 격해질 대로 격해진 양반 상대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이걸 미연에 차단해야 하나….
헌데 단순히 전화 통화만 하는 양반을 뭔 구실로 내보내야 하나. 이걸 고민하는 사이 정문 벨 소리가 들려왔고, 옳다구나 싶어 바라보았다. 익숙한 손님이었다.
“어서 오세… 어우. 안녕하세요, 어르신.”
“오랜만에 뵙는군요,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울프 어르신이시다. 몸에 각인된 움직임으로 원 블루 한 갑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다가와서 내려다보시고는 쑥스럽다는 듯 모자를 얕게 눌러쓰는 어르신.
“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뭘요. 그런데 어르신,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르신께서 사거리에서 대리기사 일을 하고 계신다. 지금 시간대면 거기도 공기 중 알코올 농도가 제법 올라가 있을 텐데, 굳이 여길 오신 이유라면….
“전에 있던 곳도 슬슬 익숙해졌겠다, 다른 데서 일을 해보고 싶어지더랍니다.”
“아하….”
“어디서 일을 할지를 골라 봤는데, 이 근방이 제일 좋아 보이더군요. 활기차기도 하고….”
낮 하교 시간대엔 활기차다 못해 광기로 가득 찬 곳이 되어 버리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씀은 아니라 함구했다. 잠시 후에 한마디 덧붙이는 어르신.
“사실, 사장님 안부도 궁금했고 말이지요.”
결국 이게 이유일 것 같긴 했다. 몇 분 뒤에 엘레나 양만 오면, 사거리에서 장사할 때 만났던 단골손님들은 죄다 왔다 간 셈이 된다. 이 주제로 더 얘기했다간 내가 쑥스러워질 것 같아 바로 말을 돌렸다.
“이 근방에 콜은 좀 많나요?”
“아무렴요. 낮, 밤 가리지 않고 많은 편입니다.”
어르신께서도 말을 받아주셨는데, 살짝 의아한 말이 하나 섞여 있다. 금요일 낮에 대리기사 부를 일이 뭐가 있냐. 낮술?
이걸 묻자 어르신께서 짤막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정답이었다. 이 학원지구 근방에 낮만 되면 낮술을 잡수고 골프 연습장으로 향하는 학교 관계자들이 그렇게도 많단다. 대체로 교수, 혹은 학교 고위 관계자들.
“골프 때문에 오전 근무만 잡으시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오늘 낮에는 팁을 받기도 했었고, 같이 골프를 치겠냐는 권유를 받기도 했고….”
“음….”
“물론 둘 다 사양했지만 말입니다. 골프는 아무래도 제 취향이 아니어서 말이지요.”
듣고 있자니, 옛날에 여러 알바를 뛰던 시절 대리운전을 권유받았던 기억이 난다.
고위직이 많은 지역에서 대리운전을 하게 되면, 내비게이션 최근 목적지 목록에 골프 연습장 말고 찍히는 게 없댄다. 더해서 팁을 많이 받고, 가끔 같이 골프도 치게 된다고.
권유받은 당시엔 장롱면허 이슈로 거절했었지만 말이다. 이 동네는 군데군데가 다르다가도, 가끔은 원래 살던 곳이랑 비슷한 점이 튀어나온단 말이지….
여하튼, 이런 이유로 당분간은 낮 밤 가리지 않고 이 근방에서 콜을 받을 것 같다고. 여기까지 말씀하신 어르신께서 잠시 생각하시는 듯하다 말을 늘이셨다.
“그러고 보니….”
“네, 어르신.”
“낮에 이 앞을 지나다 내부를 잠깐 봤는데, 카운터에 못 보던 숙녀분께서 한 분 서 계시더군요.”
유리 녀석을 보셨나 보다. 알바생 새로 뽑은 거라고 바로 설명을 드리려 했는데, 입을 열기 직전에 쇼윈도 쪽에서 고함에 가까운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거면 우리가 연애를 왜 하는데, 서로 힘들기만 하잖아!!”
“하, 씨….”
저 양반이 기어코 진상으로 진화하고 말았다. 베이스가 대형견인 수인이어서 그런지 목청도 우렁차기 짝이 없다, 아주.
“자기도 전에 술 먹는다고 연락 안 받고 그랬었잖아. 자기는 똑같은 거 하면서 나는 안 돼? 내가 호구야?”
[ 그때는 나 거래처 사람 만나는 거라고 했었잖아!!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도 악이 받친 건지 째진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고 있고. 이 말에 저 수인 양반도 속이 터진 건지, 벌떡 일어나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맞받아치더라.
“거래처 사람은 무슨, 그날 주말이었다고. 주말에 거래처 사람이랑 술을 먹어?! 자기도 친구들이랑 술 먹었던 거잖아, 내가 모를 것 같냐고!!”
[ 뭐… 아, 그랬어?! 나 뭐 하나 그렇게 감시를 하고 있었단 거지! ]“자기가 하던 대로 똑같이 한 거지! 그럼 뭐, 자기가 했던 건 착한 감시고 내가 하는 건 나쁜 감시야?!”
멜로에서 막장드라마로 장르가 물 흐르듯 변해가고 있다. 저 양반이 버럭버럭 소릴 질러대는 걸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눈을 한 번 껌벅이고는 내게 물으셨다.
“저분께선 무슨 일이십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어르신. 그, 아까 보니까 자기 여자친구랑 싸울 판 같긴 하던데….”
엿들은 걸 고백하는 꼴 같아 말 안 하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저 양반도 세상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게 숨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내 말을 다 들은 어르신께서 저 양반을 바라볼 뿐 잠시 말이 없었는데, 이 와중에 정문 벨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이번에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찬이 씨! 오랜….”
“됐다고, 다 그만하자고!! 맨날 이러는 것도 피곤해, 질린다고!!”
“꺄악.”
엘레나 양이 들어왔는데, 늘 입고 있던 양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왔다. 베이지색 스커트와 셔츠, 셔츠 위에는 웬 멜빵이 달린 듯한 옷이 하나 더 걸쳐져 있다.
평소였다면 분홍색 머리에 잘 어울린다는 말을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내 말을 들을 정신이 전혀 없어 보인다. 들어오자마자 들려온 고함에 작게 비명을 지르고는, 테이블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엘레나 양.
“이제 헤어지자고. 매번 뭘 하면 안 되니 뭐는 해도 되니 싸우는 것도 질리고, 사랑한다고 고백한 게 후회될 지경이니까 서로 더 후회하기 전에 그냥 헤어지자고. 알았어?!”
[ ……. ]“끊어. 전화해도 안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뚝 끊고는, 분이 가시질 않는지 으스러질 듯 폰을 쥔 채로 천장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나와 어르신을, 이어서는 엘레나 양을 쳐다본다.
“…….”
그러다가 무안해졌는지, 엘레나 양 옆을 지나쳐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엘레나 양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길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해봤다.
“그 위에 걸친 웃옷 뭐예요?”
“네? 어, 그게… 크로셰 탑이라고 해요. 왜요?”
“전 멜빵셔츠, 뭐 그런 명칭인 줄 알았거든요. 어울려서.”
“아… 네. 고마워요, 찬이 씨.”
이제야 진정됐는지, 우리 둘을 바라보며 묻는 엘레나 양.
“방금 무슨 일인 거예요?”
“별일은 아니고, 그냥 손님이 진상 부리다 간 겁니다. 연애하는 게 잘 안 됐나 봐요.”
“연애가요?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