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89)
이세계 편돌이-188화(189/331)
188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1)
* * *
점장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앞자리 조수석에 탔고, 소거법에 의해 내 자리는 뒷좌석이 됐다. 타서는 몰래 뒷문 손잡이를 잡아당겨 봤는데, 진짜로 안 열리더라고.
긴장을 좀 풀고 싶어서 해 본 짓이었는데, 전혀 도움은 안 됐다. 가림막이며 무전기며, 차 내부가 세금이 투자된 온갖 것들로 가득하다. 느낌이 어째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 말야….
더해서 우리가 타기 이전에도 승객이 몇 있었던 건지, 창문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한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낙서 내용이 ‘엄마 보고 싶다.’ 흠….
나도 갑자기 뵙고 싶어졌다. 손바닥으로 낙서를 슥슥 지우는 도중, 앞좌석 쪽에서 대뜸 점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여기 서랍장이 이젠 없네요? 경관님.”
“서랍장이면, 글로브박스 말씀이십니까.”
“명칭이 그거구나. 그게, 예전엔 운전하시는 분께서 지도 봐 달라구 하셔서 지도 보고 열심히 안내해 드리구 그랬거든요.”
점장이 80년대 직장인들이나 풀법한 썰을 풀어대고 있다. 수납공간 대신 생긴 내비게이션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 대뜸 경관 눈치를 보는 점장.
내 쪽에선 경관 표정이 안 보인다. 잠깐 말이 없던 점장이, 가림막에 닿을 듯 얼굴을 대고는 가림막에 난 구멍으로 날 바라보며 물어왔다.
“혹시 방금 나 나이 들어 보이는 말 한 건가?”
“가끔 보면, 점장님께서 스스로 발을 저리시는 경우가 좀 있더라고요.”
“…나 그냥 조용히 있을래, 찬아.”
“그러십쇼. 경관님, 거기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주제를 바꿀 겸 물었고, 묻는 동시에 거리 앞 어린이 보호구역을 벗어났고, 차에 가속이 붙으며 사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공원까지는 15분 뒤면 도착합니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합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접근할 생각인지라.”
이해가 됐다. 돈가방 가지고 온 전달책이 경찰차를 봤다간, 짭새가 떴다며 줄행랑을 칠 게 분명하니까. 영화에서 이러는 거 몇 번 봤다.
헌데 그래도 시간이 꽤 애매하다. 내가 응급실로 보내버렸던 고블린 왈, 오늘 가방 전달 시각이 자정이라고 했었다. 지금 시각이 오후 9시 반.
아무리 못해도 2시간이 남는다. 그동안 뭘 하냐 묻자, 경관이 주저 없이 답해왔다.
“잠복합니다.”
묘하게 기운찬 대답이다. 이 고지식한 엘프가 겉으로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지금 속에 의욕이 가득한 것 같은데 말야….
“…물론, 잠복한 게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이 말은 반대로 기운이 빠져있었고. 솔직히 가능성은 이쪽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이놈들이 운반을 한 번 실패했고, 그 대가로 억 단위 돈을 일시불 세납해버렸잖은가?
그러니 이 일을 계기로 기존에 짜놨던 운반 계획을 죄다 틀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터다. 머리에 범죄만 가득한 놈들 생각을 내가 알 리가 없으니 순수하게 상식에 의존한 추측이긴 하지만….
“거기까진 걱정 안 하셔두 될 것 같아요, 경관님.”
점장 상식으로는 아니란다. 운을 떼고는 바로 의견을 마저 말해왔는데, 다분히 마법사적인 관점이 강한 의견이었다.
“예전에 돈가방에 걸린 마법 말씀드렸던 적 있잖아요. 그때 받은 느낌이, 찬이가 푼 마법이 꽤 공을 들였던 마법이란 거였거든요. 문제가 생기더라두 자기 신변에 전혀 문제가 없게 해놨다는 점이 특히.”
그때 점장이 말했던 게 뭐였더라. 마법사가 술식을 짜기만 하고, 그 술식에 필요한 마나는 다른 인물의 마나를 써서 마법을 발동시켰었다고 했었던가?
때문에 고유의 마나로 신원을 추정할 수도 없고, 마법이 풀리더라도 운반책만 골로 갈 뿐 마법사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마법에 공들이는 사람들 특징이, 마법 외적인 것들은 깊게 생각을 못 해요. 모든 문제를 다 마법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때문에 이번에도 돈가방에 걸린 마법이 강해지면 강해졌지, 마법 외적인 요소를 바꾸진 않았을 거란다. 여기까지 말하고는 한마디를 더 덧붙이는 점장.
“돈 다루는 마법 쓰니까, 그 집단 내에서 발언권도 꽤 강할 거구요. 제 생각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이대로만 갑시다!’ 이랬을 것 같어.”
“좀 모호한 근거 아닙니까, 점장님?”
“그렇기는 한데, 그쪽도 다른 방법 없을걸? 자기 마법이 왜 풀렸는지두 모를 테니까.”
여태껏 잘만 써오던 마법이 느닷없이 풀려버린 상황이니, 계획을 수정할 게 아니라 그 마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먼저일 거라고. 하긴, 지 마법이 일개 편돌이한테 풀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의견 감사합니다, 업주님.”
“뭘요. 몸으로 뛰는 건 잘 못하니까, 이런 거라두 잘해야지.”
여기까지 대화하는 시점에서 차가 코너를 돌았고, 힐끗 보인 도로명판에 ‘6블록 23’이라 적혀 있더라고. 차 속도가 느려지는 게 거의 다 온 것 같다.
“내 의견은 이런데, 찬이는 떠오르는 생각 있어?”
“저야, 뭐. 한 가지밖에 없죠.”
마법이고 범죄 수사고 쥐뿔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래 봐야 하나뿐이다. 사서 걱정 안 하는 거. 전에 하수도 내려갔을 때도 어떻게 잘 풀렸으니, 이번에도 잘되겠지….
* * *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종료합니다. ]1분가량을 더 달려 차가 8차선 도로 갓길에 멈춰 섰다. 바로 창밖을 슥 둘러보았는데, 주변에 공원 입구는커녕 가로수 한 그루 없이 황량했다. 그나마 보이는 게 ‘신호·과속 단속장비’라 적힌 신호등 하나.
설령 경찰차가 목격당하더라도, 단속장비를 점검하러 온 걸로 보이게 할 요량인가 보다. 경관이 열어준 뒷문 밖으로 따라 내리자, 문을 닫고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는 경관.
그 열쇠로 경찰차 트렁크를 여는데, 트렁크 안 물건들의 용도가 무척 일관적이었다. 진압봉과 수갑, 방탄조끼로 보이는 무언가. 그리고….
“활?”
그것도 TV로 양궁 중계할 때 볼 법한 그런 게 아니라, 긴 버드나무 가지에 활시위만 달랑 엮어놓은 듯한 간단한 구조의 활이다. 이게 여기 왜 들어있어?
“무소음 저격용입니다. 일단은요.”
경관 말투가 무덤덤한 걸 보면, 이 세상 경찰차 트렁크에 목재 재질 롱보우가 들어있는 게 아주 특이한 상황은 아닌 듯하다. 하긴, 소음기 달아놓은 총보다야 활이 소리는 더 적게 날 테니까….
내 상식 속에선 진압봉보단 활이 엘프에게 훨씬 더 어울리기도 말이다. 엘프들이 숲에서 살며 활을 잘 쏜다는 이미지니까. 매장 찾아와서 진상부리는 그놈들은 씨, 엘프가 아니라 귀쟁이고.
감상 후에는 ‘오늘 일이 이걸 쓸 정도인가?’ 하고 내심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경관이 활을 집어 들지는 않았다. 진압봉과 수갑, 딱 두 개.
“여기서부턴 걸어서 이동하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했고, 점장이 내 옆에 바싹 붙었다.
걸으면서는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이, 점장과 나란히 밖을 걸어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상황만 이렇지 않았어도 나름 감상을 내놓았을 텐데 말야.
“이렇게 밖에 나오니까 좋다. 그치.”
난 생각만 한 걸 점장은 아예 입밖으로 꺼냈다. 이젠 슬슬 긴장해야 할 상황인 것 같아 고개만 크게 끄덕였고, 점장도 딱 이 정도 대답만을 바랐는지 등만 툭 치고 말더라.
이렇게 말없이 15분가량을 걸어 공원에 도착했고, 이곳 첫인상이 퍽 좋지는 않았다. 가로등 불이 죄다 꺼져있어 을씨년스러운 게 돈가방 나르기 딱 좋게 생겼다.
나와 감상이 비슷한 놈들한테 괴롭힘을 많이 받은 건지, 공원 출입구 외벽에는 범죄 예방 포스터가 붙어있고. 반쯤 찢어져서 너덜너덜하다.
어쨌든 오긴 했는데… 이제 뭐 함?
“…두 분.”
“네.”
“말씀하십쇼, 경관님.”
“우선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아까 업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라면….”
우리가 돈가방 나르는 현장을 적발하러 왔다. 이번에도 돈가방이 다른 뭔가로 위장되어 있을 테니, 위장 마법을 내가 그 자리에서 풀어 전달책 놈을 빼도 박도 못하게 한다는 계획.
“위장 마법 외에 다른 마법이 더 추가됐을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그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마법 생각하세요?”
“물질 소실 계통의 마법을 생각 중입니다. 화염, 분쇄, 기타 뭐든.”
돈가방을 나르는 와중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어딜 어떻게 봐도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그럴 때 최후의 수단이 뭐다? 다 불태우는 거다.
그래놓은 뒤 ‘내가 무소유주의자라 태웠소. 불만이오?’를 시전해 오면, 그땐 할 말이 없어지는 거다. 화폐 훼손은 위조, 혹은 변조할 시에만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심지어 징역 2년밖에 안 된다.
이전에는 내가 마법을 죄다 풀어버린 탓에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마법 해제 절차를 거친다면 연산식으로 마법사를 역추적할 수 있지 않냐는 게 경관 의견. 듣고 나니 어째 좀 뜨끔했다.
이 사항은 자기 생각에는 아리달쏭한지, 점장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가능성은 있는데… 그래도 그렇지, 돈 든 가방을 태우나?”
“그게 감옥 가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나르는 놈 돈 아니잖아요. 즈그들 보스 돈이지.”
“음… 확실히 그렇긴 하겠다.”
이 일을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 돈가방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이 없어야 한다. 경관이 생각한 가장 쉬운 방법이, 누군가가 정말로 운반책 역할을 하는 것.
여기까지 들을 즈음 경관이 하고자 하는 말이 짐작됐다. 아주 내키진 않았지만, 불편한 상황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말 꺼냈다.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경관님.”
마법사. 그것도 수억을 한번 태운 뒤, 자기 보스한테 오지게 욕을 듣고 난 마법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다. 돈가방에만 마법 거는 것만으론 절대 안심 못 한다.
운반책으로 써먹을 누군가한테도 수작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하단 얘기다. 이미 수작을 한 번 부리기도 했고 말이다. 돈가방에 거는 마법을 운반책 마나를 빌려서 쓴 놈이니까.
그걸 안 당할 사람이 이 일을 해야 한다. 아니면 알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든가. 점장이라면 수작 부리는 걸 바로 눈치채고, 그 자리에서 차단할 수는 있겠지만….
“점장님, 허가 안 받고도 마법 쓸 수 있으세요?”
“맞고 때리는 마법 말구는 못 써. 옛날에 허가받은 거.”
“그럴 바에 아예 안 맞는 게 맞지. 그냥 제가 할게요.”
구르더라도 내가 구르고 말지, 점장이 이런 일로 고생하는 건 두 번은 못 보겠다. 점장 18세잖은가. 자칭이긴 해도 말야.
단지, 돈가방을 건네줄 그놈 종족이 걱정될 뿐이다. 그놈이 근육 떡대 오크면 어떻게 해, 붕권 맞고 벽에 처박히는 거 아니야?
이건 반쯤 농담조로 물었다. 이게 제일 합리적이라고는 해도, 경관이 이 상황을 내키지 않아 한단 게 빤히 보여서였다. 내 질문에 경관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마법이나 반마법에 특기가 있지는 않습니다만, 도구는 잘 다룹니다.”
“어… 네.”
“대인전도 마찬가지고.”
이후엔 주머니에서 꺼낸 걸 내게 펼쳐 보였는데, 손바닥 위에 이어폰으로 보이는 작은 무언가가 두 개 올려져 있다. 받아들자, 경관이 말을 맺었다.
“문제가 생길 시, 강경 대응 하겠습니다.”
이후, 진압봉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더는 안 물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