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1)
이세계 편돌이-190화(191/331)
190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3)
* * *
잠금쇠에서 손을 떼며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20초, 딱 20초만 버티고 보자.
두 발을 모아 화장실 문을 있는 힘껏 걷어차자 묵직한 타격음과 짤막한 비명, 문 앞에 서 있던 뭔가가 나뒹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이후엔 바로 문밖으로 뛰쳐나와, 가방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던 쪽을 확인했다. 아까 추측했던 대로 가방이 세 개. 내용물은 마력 탐지 마법, 봉쇄 마법, 다른 하나는 뭔지 모르겠고….
“으윽… 이, 이 새끼. 뭐 하는 새끼야…!”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태연하게 질문부터 해왔는데, 파악이 덜 된 건 나도 마찬가지였는지라 따로 대답은 안 했다. 우선 봉쇄 마법이 들어있을 걸로 추정되는 가방.
확 열어젖혀 내부를 확인했다. 파란색 잉크로 마법진이 그려진 A4용지 한 장만 달랑 들어있다. 바라보며 온 힘을 다해 짱구를 굴렸다. 봉쇄 마법.
지금 나자빠진 저놈은 이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있었고, 그럼에도 마법을 미리 시전했다. 출입을 전부 봉쇄하는 마법이 아니란 얘기다.
사람이 못 들어오면 가둘 수도 없을 테니까. 필시 어떤 조작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 조작한 것만 내가 건드려 지운다면….
“뭐 하는 새끼냐니까!”
“…이 염병할 놈이, 화장실 변기 칸에 누가 처박혀있으면 이유가 뭐일 것 같은데!! 거 시팔 사람이 변비 좀 걸릴 수도 있지….”
“뭔, 뭐?”
“그리고 씨부레, 왜 자꾸 새끼새끼 거려. 너 나 알아?”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며 마법진에서 손을 뗐다. 뭔가를 지웠다는 느낌은 왔는데, 의도대로 됐는지는 까봐야 알 것 같다. 다음은 아직 마법이 발동 안 된 세 번째 가방.
가죽가방이었고, 내용물은 A4용지로 동일한 반면 잉크색이 붉은색이었다. 종이를 꺼내 들며, 내가 나자빠뜨린 놈 생김새를 확인했다.
팔이 네 개, 다리가 두 개. 맨들맨들한 검은 대가리에 더듬이가 달린 게 영락없는 개미과 곤충인간이었는데, 개미는 자기 체중의 10배 이상 되는 물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올릴 수 있다.
저놈 주먹질 한 방이면 내 몸이 걸레짝이 된다는 뜻이다. 대화로 해결해야 했고, 떠올릴 수 있는 대화 수단이라고는 이거 하나뿐이었다. 정체불명의 마법.
첫 번째가 감지, 두 번째가 봉쇄 마법이었다. 사람이 있는질 확인하고 사람이 못 빠져나가게 막았으니, 저항하거든 구속할 마법도 똑같이 준비해 뒀겠지.
짐작을 근거 삼아 들이밀었는데, 저놈이 종이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더듬이를 움찔거렸다. 내가 짐작한 게 맞는 것 같다.
“야. 이거 뭐 하는 마법이야.”
반은 확인차, 반은 대답 잘하라는 의도로 물어봤다. 내 질문에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진 듯했는데, 잠시 후 대답이랍시고 해온 게 이 헛소리였다.
“…어, 아니. 별로 위험한 마법은 아니야.”
“그럼 써도 되냐?”
“하지 마! 그게 어떤 마법인 줄 알기나 해? 병신 되고 싶어?!”
“그래서 지금 묻고 있는 거잖아, 이 검은콩 대가리 새끼야! 그리고―”
이게 뭔 마법이든 간에 나랑은 아무 상관 없다. 이걸 내 체질에 빗대어 상세히 설명해주려 했는데, 타임오버였다. 땅에서 진동이 울려오고 있다.
종이를 쥔 채 화장실 출입구 쪽으로 나가보니, 온 사방에서 양복을 입은 오크 놈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중이었다. 이런 썅, 주님. 지금 한 놈 갈 것 같습니다.
헌데 살았다. 날 들이받을 기세로 달려오던 오크 놈 둘이 화장실 코앞의 투명한 뭔가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그 뒤를 쫓아오던 다른 한 놈이 주먹을 휘둘러왔는데,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주먹이 깨지는 결과만 낳았다. 고함을 지르며 물러난 자리에 이번엔 세 놈이 몰려와서는, 버럭버럭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이 새끼, 이 마법 풀어!”
“죽여버린다, 수억을 낼름 처먹고도 무사할 줄 알아!”
아까 봉쇄 마법을 건드릴 때 ‘출입에서 입만 허용된 마법이라면 그것마저 지워줘라’라고 체질에 대고 싹싹 빌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던 듯하다.
문제는 나도 갇혀버렸단 거지만 말야. 착잡함에 말을 걸어봤다.
“…그, 난 한 푼도 안 먹었는데 그냥 봐주면 안 될까?”
“뭐 이 새끼야? 그럼 돈 어디 있는데!”
“국세청.”
“이 씹새끼가!!”
내 말에 꼭지가 돌았는지 주먹과 발, 각목에 야구방망이까지 동원해 투명벽을 쾅쾅 두들겨댔으나, 투명한 벽에는 흠집이 날 기미조차 없다.
어차피 살살 죽나 세게 죽나 그게 그거다. 이대로 살살 약 올려서 계속 이 벽만 두들기고 있게 한다면―
“씨발, 꿈쩍도 안 하잖아 이거!”
“벽! 아예 벽을 부숴, 들어가는 곳을 하나 더 만들라고!”
이 용역 깡패 같은 새끼들. 벽 부서지면 진짜 큰일 난다. 큰일 난다고!
“큰일 났다고요!! 펭귄! 참새!! 여기 난리 났다니까요!!”
내가 새 이름을 이렇게 애타게 부르짖을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이어폰에 손가락을 댄 채 조류학자에 빙의해 소리를 질렀는데,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여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넌 죽었, 끄아악! ] [ 덮쳐! 한 번에 덮치라고! ] [ 저 망할 년이 왜 이렇게 날래, 아아악! ]얇은 뭔가가 휘둘러지는 소리, 찰진 타격음, 비명 소리가 돌림노래로 들려오고 있다. 화장실 벽을 등진 채 종이를 꽉 움켜쥐는 찰나, 경관이 대답해왔다.
[ 교통정리 중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이놈들이 들어오려고 화장실 벽 때려 부수고 있어요, 지금!!”
[ 벽을… 예. 확인했습니다. ]직후 이어폰 잡음이 뚝 끊겼고, 3초. 3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화장실 출입구 왼편에서 딱 소리가 울렸고, 벽을 두들기던 놈이 투명벽에 머리를 박고는 주륵 미끄러졌다.
미끄러진 놈 목덜미에 딱 진압봉으로 얻어맞은 흔적이 보인다. 쓰러진 오크를 바라보던 다른 놈 하나가 내가 보는 방향을 똑같이 바라보았고, 중얼거렸다.
“어, 이 짭새 년이 언제 왔―”
까지가 놈의 유언이었고, 무릎을 가격당하고는 입에서 주륵 침을 흘리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자기 친구들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이성을 잃은 채 투명벽을 두드리던 한 놈, 이놈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고.
이후에야 경관이 출입구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조끼가 방해되는 건지 남색 경관복만 위에 걸친 차림새였다. 넥타이도 마찬가지로 풀어 헤쳐진 채였으나, 표정은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다.
“괜찮으십니까.”
“어… 예. 다치진 않았어요.”
잠깐 주마등이 떠올랐던 것 말곤 괜찮다. 내 대답에 옅게 숨을 내쉬고는, 몸을 뒤로 살짝 젖히는 경관. 방금까지 경관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각목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오크 한 놈이 기습을 해온 듯하다. 곁눈질로 각목을 쥔 손을 힐끗 내려다본 경관이 일말의 지체 없이 손을 후려쳤다.
“아악!”
각목이 손에서 떨어져 쓰러진 오크들 위로 떨어졌고, 한 번 더 진압봉이 휘둘러지고는 그 각목 위로 오크가 쓰러졌다. 하도 의아한 상황이라 물어봤다.
“그 진압봉에도 마법 같은 게 걸려있는 거예요?”
“아뇨. 평범한 진압봉입니다.”
“그럼 이놈들은 왜 한두 대씩만 맞고 픽픽 쓰러진댑니까.”
“잘 보고, 잘 때리면 됩니다.”
관절, 신경계 쪽의 마나가 흐르는 곳을 혈을 찌르듯 타격하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이세계 고인물이나 따라 할 수 있을 짓 같아 더 묻지는 않았다. 대답을 마치고는 등을 돌려 주변을 슥 돌아보는 경관.
“…교통정리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 밖에 아직 많아요?”
“많습니다. 정리하는 동안, 두 분께서는 내부에서 일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데, 그러고 보니 점장은 어디 간 건지 모르겠다. 이어폰으로 물어보려고 손을 들어 올리던 도중 느닷없이 점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할게요. 나 여기 있어, 까치야.”
출입구 왼쪽 아래 구석에서 말이다. 황당함에 내려다보는 순간, 점장이 허공에 그림이 그려지듯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또 뭐야.
“마법 쓰셔도 되는 거예요?”
“위험하다 싶을 때만 쓸 수 있는 게 몇 개 있거든. 화난 오크분들이 쫓아올 때라든가.”
잠복하고 있던 이글루에서 나오자마자 오크 몇과 눈을 마주쳤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은신 마법을 사용했다고. 말하고는 이쪽으로 손을 뻗어오는데, 투명 벽에 가로막혔다.
“이런 거에는 못 쓰구. 내가 위험한 게 아니잖아.”
“허어….”
“그래서 그런데, 나 좀 들여보내 줄래?”
들여보내 달라고 해도 방법을 알아야지. 방법을 물어보려다, 전에 점장과 비슷한 일을 해봤었단 걸 떠올렸다. 내가 누군가를 잡고 있으면, 그 사람도 나와 같이 마법의 영향을 안 받게 된다.
점장이 투명벽에 댄 손을 붙잡자, 손이 내 쪽으로 쭉 뻗어져서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내 팔목을 잡은 채 걸어들어와서는 경관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빨리 끝내구 나올 테니까 몸조심하셔요, 경관님.”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답하고는 출입구를 등진 채, 진압봉을 한 번 휙 휘두르는 경관. 경관 너머로 어깨를 부여잡거나,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그냥 멀쩡한 오크들 수십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순경하려면 조직 하나쯤은 혼자서 부술 줄 알아야 하나― 싶었으나, 아니겠지. 이건 나중에 따로 물어볼 기회가 있을 거다.
“까치. 현재 상황은?”
“나쁘진 않습니다. 안에 저 말고 개미인간 하나 더 있고, 이게 뭔지는 몰라도 꽤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걸로 내가 허세를 좀 부렸었고, 지금은 대치 상태다. 외에 있었던 일을 마저 말하고 종이를 보여줬다. 힐끗 바라보고는 바로 알겠다는 듯 설명해오는 점장.
“꼼짝 못 하게 하는 마법이네. 그것도 꽤 강한 거구.”
이건 순화된 표현이고, 실상은 신경 마비 마법. 이게 걸리면 목에서부터 발가락 끝까지의 신경이 죄다 마비되고, 딱 입만 산 놈이 되어버린단다. 해제할 수 있는 건 마법 연산식을 짠 당사자 단 한 명.
“의료목적 외로 사용하면 무조건 징역살이 해야 되구 말야. 그 마법사분이 까치한테 화가 많이 났었나 본데?”
“그러게요. 제가 죄가 많네….”
“여튼, 당사자 단 한 명이라는 게 중요해. 그렇게 구성하려면 연산식에 정보를 따로 적어놔야 하거든. 신장, 무게, 목소리, 그런 것들.”
“그럼 이 종이만 있으면, 그놈이 누군지 알 수 있다는 얘기세요?”
“누군지 알 수는 있지. 어디 있는지는 더 편한 방법이 있구 말야.”
말하고는 개미인간을 바라보는 점장. 저놈이 이 마법에 대해 어떤 식으로 설명을 들은 건지, 우리가 쥔 종이를 수류탄이라도 보는 마냥 쳐다보고 있다.
개미인간을 바라보는 점장 표정이 뚱해졌다. 몇 걸음 다가가서는, 손에 쥔 종이를 흔들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연산식을 짠 사람 말고, 시전한 사람도 똑같이 징역살이 해야 되고요. 아주 나쁜 마법이니까.”
나쁜 마법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이 들어가 있다. 더듬이를 까딱이던 개미인간 놈이, 잠긴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뭐, 원하는 게 뭔데.”
“스마트폰만 잠깐 빌려주실 수 있나요? 통화 한 번만 하고 돌려드릴게요.”
이놈이 자기 상사로 보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기록을 확인하면 전화를 어디서 걸어왔는지도 알 수 있겠지.
당연히 이놈이 선뜻 자기 폰을 건네주진 않았다. 범죄조직 일원으로써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 테니까.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화장실 출입구 쪽을 슬쩍 바라보고는 묻더라고.
“그럼 내가 뭘 얻을 수 있지?”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일단은 응할 생각인 듯하다. 대화가 꽤 길어지겠다 싶었는데, 점장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입에 담았다.
“이 종이 드릴게요. 원한다면 선불로.”
“…뭐?”
“자요. 여기.”
“아니, 그걸 왜….”
미처 말리기도 전에 종이를 개미인간에게 건네는 점장. 저게 저놈 억제하는 수단이었다. 우리 둘이 저놈 팔 한쪽도 못 이긴다니까?
아주 잠깐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종이만 내려다보다, 팔 네 개 중 하나로 종이를 집어 든다. 집어 드는 걸 바라보며 점장이 태연하게 물었다.
“제가 서비스업이 본 직종이거든요. 원래 외상은 잘 안 해드리는데….”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개미인간이 손을 치켜들어, 점장의 머리를 겨눠 후려쳤다. 개미인간의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팔 네 개, 다리 두 개가 화장실 벽에 사정없이 처박혔고, 뒤통수를 벽에 들이받고는 바닥에 축 늘어져 버린다. 아예 의식을 잃은 모양새였다.
미동조차 없는 개미인간을 바라보다, 양복의 앞섶을 뒤적거려 폰을 꺼내는 점장. 개미인간에게 건넸던 종이마저 회수에 내게 돌아와서는 나지막이 말해온다.
“자기 보호용 마법 중 하나야, 찬아. 전치 8주 이상 중상을 입을 상황일 때, 자동적으로 발동하게 해놓은 거구.”
“…전치 8주요. 점장님.”
“응. 저분은 두 시간 정도 잠들어 계시겠지만 말야.”
전치 8주에 해당하는 타격에 대한 정당방위, 전치 두 시간. 말하고는 종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맺는다.
“난 이런 마법 쓰는 마법사 싫어. 찬아.”
“전 그래도 점장님 좋아합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까 좋네. 일하자,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