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4)
이세계 편돌이-193화(194/331)
193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6)
* * *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20분, 차내에서 점장이 했던 말 중 이런 게 있다. 마법사를 꾀어내는 건 자기가 할 테니 맡겨달라 하더라고.
이 말을 날 보면서 했었고, 워낙 자신만만하게 말해오길래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었다. 꾀어내는 동안 할 일이 없으니 위험하다 싶거든 밖에 신호를 보내는 일을 맡게 된 거고.
헌데 막상 여기까지 오고 나니, 그때 고개만 끄덕일 게 아니라 뭐라도 물어봐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1에서 10 중 어느 정도에 신호를 보내면 되는 거냐?
“…당신들 누구야.”
“까치랑 펭귄인데요?”
“뭐?”
“까치랑 펭귄요. 말하면 해코지하실 거면서.”
지금 상황이 9만큼 위험한 것 같아서였다. 술집 직원이 머리를 빡빡 민 오크였는데, 점장이 내민 용지를 확인하자마자 얼굴에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반면 직원을 마주 보는 점장은 여전히 능글맞은 얼굴이다. 아침 10시 전후로 늘상 봐왔던 얼굴과 똑같은데, 상황이 상황이어서인지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주관적으로 본다면, 이 상황 자체가 가소롭게 느껴진다는 얼굴이야. 오크도 나와 똑같이 느꼈는지 눈에 쌍심지를 세우고는 입을 열었다.
“늬들이 우리 월급 처먹은 그 새끼들이군. 그렇지?”
이 마법이 자기들 돈가방 턴 놈을 잡겠다고 준비해 둔 마법이다. 그 마법을 우리가 들고 왔으니, 우리가 그놈들이다― 라는 데에까지 추측이 닿은 모양이다.
허나 오크 질문에, 전혀 흥미가 없다는 투로 툭 대꾸하는 점장.
“글쎄요?”
“장난까지 말고. 그 마법이 우리 과장 마법이니까. 우리 월급 가로챈 건방진 새끼들 조지겠다고 작성한 거고.”
“그럼 제대로 찾아온 거 맞네.”
“계집,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주먹으로 목재 카운터를 쾅 내려친다. 위험한 게 이제 20, 아니면 30….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알기나 해? 그 돈 없어지고 나서 우리 애들이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는 알고 있고?”
“저야 모르죠. 애초에 그런 얘기 하러 온 것도 아니구.”
“이 썅년이…!”
오크 놈이 화가 오를 대로 올랐는지 점장을 죽일 기세로 노려봤으나, 더 움직이지는 않았다. 시선 사이로 점장이 마비 마법 종이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전 여기 과장님께 주운 거 돌려드리러 왔을 뿐인걸요.”
종이 윗면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은 채로 말이다. 윗면이 팽팽한 게 당장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롭다. 종이를 찢는 게 마법 발동 방식이었던 듯하다.
점장 성격상 마법을 발동시킬 리는 없겠지만, 점장을 모르는 오크 놈으로선 당연히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종이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점장이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런 다음엔 그분이랑 얘기도 좀 할 거구. 그게 다니까, 그냥 과장님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나도 그러려고 온 거니까 일 더 키우지 말고 그냥 과장 불러줘라, 옆에서 거들려다가 말았다. 이미 일이 더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가 로비에 테이블이 세 개밖에 없는 곳이라, 난 우리 셋이 전부인 줄 알았다. 헌데 화장실 출입구가 벌컥 열리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고는 빨간 오크, 노란 오크, 초록색 오크 등등, 신호등워싱인지 원래 피부색이 저런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알록달록한 오크들이 허리를 숙여 가며 조막만한 화장실에서 줄지어 튀어나오고 있다.
표정이 아직은 어리둥절한 게, 카운터 후려치는 소릴 듣고 기어 나온 모양새다. 젠장할, 이젠 3,000만큼 위험해….
“얘기하는 도중에 죄송한데, 술병 깰까요?”
카운터 위에 굴러다니는 술병이 하나 있었고, 이걸 신호용 진상짓으로 점찍어뒀었다. 난 매장에서 술병 깨 먹는 놈들이 제일 짜증 나더라고.
물었으나, 점장은 내 눈에 겨우 보일 만큼 고개를 저어올 뿐이었다. 아직은 괜찮다는 것 같은데, 로비가 빈 공간 반 오크 반으로 꽉 찬 게 숨을 못 쉬겠―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뭔 일인데!”
가래가 잔뜩 낀 고블린 목소리. 이 목소리는 무더기로 튀어나온 오크들 뒤쪽 발치에서 들려오고 있다.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던 카운터의 오크가 못마땅하다는 듯 대답했다.
“과장이 찾던 그놈들. 지금 여기 와 있어.”
“그 도둑놈들이 여기 있다고?! 아니, 그럼 우리 애들은 어디 있는데!”
“낸들 알아? 애들이 전화를 해온 것도 아니고.”
경관이 오크들을 후드려 팰 때, 연락을 할 팔뚝도 세심하게 신경을 썼었나 보다. 직원 놈 대답을 듣고는 쉴 새 없이 소리를 쳐대는 고블린.
“이 새끼들은 나중에 월급에서 통신료를 깎든지 해야지. 그나저나, 이 도둑놈의 새끼들 쌍판 한번 보자. 이 허접한 새끼들이 감히 내 마법을 풀어?!”
도둑놈이니 허접하다느니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사이에 비켜 보라거나 나와 보라는 말들이 끼어있다. 오크들 다리 사이를 빠져나온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 돈 벌려고 암시장 거지새끼들 냄새를 얼마나 맡고, 수요를 얼마나 분석했는지 알아?! 너희 같은 거렁뱅이 새끼들은 평생 그런 돈 구경도 못 해. 아냐고!!”
“전 돈 주고 보라구 해두 그런 더러운 돈 안 봐요. 보면 눈 버린다구.”
수많은 다리 사이로 실루엣이 보일 즈음에 점장이 대꾸했는데, 이 말이 고블린 마음속 작은 수전노를 자극했는지 빠져나오는 속도가 두 배로 늘었다.
“돈에 더럽고 말고가 어딨어, 계집년아! 목소리 들어보니까 어려도 한참 어린 년 같은데, 사회생활 안 해봤지?”
“많이 해봤는데….”
“해보긴 뭘 해봐, 아는 것 하나 없는 년이. 내가 남의 돈 빼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오늘 똑똑히 알려줄―”
라고 말하며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절반도 안 되는 신장에 양복, 구두, 시계 등등. 밸런스가 하나도 안 맞는 걸 보면 저것들이 다 명품인가 보다.
그중에 제일 어색한 게 모자였는데, 빳빳한 고깔모자를 모자챙 밑으로 겨우 눈만 보이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꼴에 마법 쓰는 놈이라 이거지….
눈 마주친 지금은 또 뭔 말을 해올까 지켜보고 있는데, 고블린 놈이 우릴 보고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정확히는, 점장과 눈 마주친 순간부터 굳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점장 인사에도 일절 반응이 없고,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점장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 태연하게 종이를 눈앞에 들이밀며 마저 말을 잇는 점장.
“이거 돌려드리러 왔어요. 제가 마법을 좀 아는데, 아무래도 위험한 마법 같아서요.”
“…….”
“완성도도 낮은 게,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아주 나쁜 마법이구….”
“너.”
떨리는 목소리로 한 글자를 읊조리는 고블린. 헌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목소리로도 모자라 치켜드는 손가락, 눈, 다리. 모두가 덜덜 떨리고 있다.
“너, 너너너, 너.”
“네?”
“너. 아악, 너. 끅, 네가 여긴 왜.”
고블린 놈이 말을 하다 말고는 등을 돌려 몸을 숨기려 했는데, 오크들 다리 사이가 워낙 촘촘해 힘에 겨운 듯했다. 사이를 비집어 가며 낑낑거리다, 경악 가득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아악!!”
“?”
“으악, 아아악. 저 미친년이, 악귀 년이 여긴 왜 있어!!”
쟤 왜 저러냐?
난 당연히 상황 파악이 안 됐고, 저 고블린을 포함한 다른 모두. 심지어는 점장마저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저놈 점장 얼굴을 아는 건가?
이 와중에 등을 돌린 채 손가락만 우릴 향해 뻗으며 마저 고함치는 고블린.
“저 괴물 년 치워!! 없애버려, 당장 내 눈앞에서 치우라고!!”
그래도 이 고함에는 내가 반응이 제일 빨랐다. 뭔지는 몰라도 망한 것 같다.
곧바로 카운터에 굴러다니던 술병을 거꾸로 쥐어 출입구 쪽 벽에 냅다 집어 던졌다. 세 바퀴를 돌아 날아간 술병이 벽에 처박혀 으스러지며 귀를 째는 소음을 냈다.
비록 문이 닫혀있긴 해도 경관이 귀가 밝다. 혹시나 싶어 고함도 더했다.
“도움!! 경관님 대화 끝났어요!!”
내 고함과 동시에 오크 무리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정문 경첩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비합법적으로 열린 문에 경관이 가로등 불빛을 등진 채 서 있었는데, 한 손에는 진압봉, 반대쪽 손에는 넥타이가 들려 있었다. 저건 또 왜 들고 있는 거야.
“몇 명입니까.”
“몰라요!”
오크들 덩어리가 무지갯빛이니 최소 일곱 놈 이상이겠지. 점장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소리치자, 경관이 진압봉을 펼치며 대답해왔다.
“제가 직접 셀 테니, 나머지는 부탁드리겠습니다.”
직후, 오크 무리를 향해 뛰어들어 하나를 셌다. 미처 반응조차 못 했던 선두 놈의 팔목과 무릎을 연달아 후려친 뒤, 발뒤꿈치로 다리를 돌려차 버렸다.
육중한 몸이 쓰러져 바닥을 뒹굴고 먼지가 인다. 이제야 완벽히 상황 파악이 된 건지, 오크들이 저마다 출사표를 입에 읊어댔다.
“이런 썅, 저 새끼들 짭새 끄나풀이었잖아!”
“조져! 이 짭새 년 귀쟁이라고, 별거 아냐!”
이걸 말한 오크 놈은 그대로 경관 넥타이에 손목이 묶여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저러려고 넥타이 챙겨온 건가 보다.
머릿속으로나마 열심히 유서를 써 내려가는 도중, 내 품에서 점장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찬아.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리네….”
“전 맨날 이러니까 신경 쓰지 마십쇼. 이거 불가항력이잖습니까.”
어쨌든 고블린 놈 나오게 하는 것까지는 잘됐잖은가. 점장이라고 여기서 자기 얼굴 알아볼 놈이 나올 줄 알았겠어?
“그나저나 점장님, 지금 좀 침착하세요?”
“침착하지. 찬이는?”
“아슬아슬하고, 둘 다 침착하니까 일이 잘 풀리겠네요. 저 고블린 아직 멀리 못 갔습니다, 점장님.”
상황이 개판이 되긴 했지만, 이렇게 될 걸 예상 못 한 건 저놈도 마찬가지일 터다. 지금도 오크들 다리 틈새로 저놈 모습이 간간이 보이고 있고, 아예 기어가듯 움직이고 있다.
기어가는 방향은 화장실. 저기서 오크 십수 놈이 튀어나왔으니 단순한 화장실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점장과 몸을 일으키며 경관에게 소리쳤다.
“경관님, 길 좀 터주십쇼! 화장실 쪽으로!”
무지성으로 부탁하고 봤는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리 위로 진압봉을 올려 치는 경관. 뻗어오던 오크 놈 주먹이 진압봉에 맞아 궤도가 틀어져 허공을 갈랐다.
자세가 무너진 오크 놈의 허리에 발을 얹고는, 있는 힘껏 밀어 차 버렸다. 뒤로 나자빠진 놈이 넘어지기 싫었는지 다른 놈의 옷깃을 부여잡았고, 무게에 휩쓸려 같이 나자빠졌다.
나자빠진 놈들 타고 넘어가란 얘기 같다. 바로 지금. 점장과 몸을 일으켜 자빠진 오크 놈 가슴께를 밟아 타 넘었고, 다음 놈은 등짝, 다음엔 그나마 빈 바닥, 이런 씨.
“이 새끼가 어딜―”
활짝 열린 화장실 출입구 앞의 멀쩡한 한 놈. 멈칫하는 사이, 등 뒤에서 술병이 날아와 오크 놈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풀썩 무너져내린 놈을 마저 디뎌 화장실로 들어갔고, 냅다 문부터 잠그고 봤다. 문짝 뒤로 쾅쾅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고 있다.
틀어막는 심정으로 등을 기댄 채 점장 몸 상태를 확인했는데, 머리가 헝클어진 걸 제외하면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점장이 먼저 물었다.
“찬이, 다친 데는 없어?”
“죽기 직전이란 점 빼고는 괜찮습니다. 점장님께선 발목 접질리거나 하신 건 아니시죠?”
“나 단거리는 나름 잘 달려, 찬아. 5km 마라톤 뛰면 죽을 맛이지만.”
난 지금 죽을 맛인데 말이다. 난 반마법사가 화이트칼라 직업일 줄 알았는데, 뭐 일 한 번 하기가 이렇게 뒤지게 힘드냐?
“반마법사분들 이런 일도 자주 해요?”
“저런 일은 자주 없구, 이런 일은 자주 하시지.”
“이런 일요?”
“여기 봐봐.”
보라길래 봤다. 점장이 가리킨 쪽의 화장실 타일 중 하나가 시계방향으로 살짝 돌아가 있는 채였다. 어째 불편하다.
타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손가락으로 구석을 쿡 짚어 빙빙 돌리는 점장. 두 바퀴를 돌리자, 화장실 거울 표면이 짧게 진동하고는 멎었다.
이후, 점장이 거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거울에 닿자마자 표면에 한 번 더 파문이 일고는, 전혀 다른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복도.
“간이 전이 마법이야, 찬아. 저 오크분들이 여기서 나오신 걸 거구….”
“이야….”
“그 고블린분도 일루 도망가신 것 같구. 그치.”
그래 보인다. 공원 화장실과는 달리 여긴 화장실에 칸막이조차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