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5)
이세계 편돌이-194화(195/331)
194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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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어린 시절 몇 번 상상을 해보긴 했었다. 거울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세상은 온갖 마법과 환상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같은 거.
헌데 직접 건너와 보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사람 두 명이 나란히 서 있기도 비좁고, 온 사방이 시멘트벽인 복도만 길게 뻗어있을 뿐이다.
그 외에는 복도 끝에 몸에 명품을 덕지덕지 바른 보물고블린 한 놈. 다행히도 멀리는 못 도망갔다. 막 따라 들어온 우릴 보고는 또 겁을 먹은 건지, 제자리에 멈춰서서 버럭버럭 소리만 질러대더라.
“이 망할 새끼들! 마법을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야, 분명…!”
“숨기려는 노력이 보이긴 했는데, 아직 미숙하시더라구요. 기초마법서 3장에 보면―”
“다, 닥쳐! 내가 너, 너너너 너한테 물어본 줄 알아, 악귀 같은 년아!!”
점장이 말을 받자마자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는데, 아무리 봐도 저 고블린이 점장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슬쩍 점장에게 물어봤다.
“저놈 왜 저러는지 짐작 가는 거 있으세요?”
“글쎄. 난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게 없는데….”
“떠오르는 게 없기는 이 빌어먹을 년아, 암시장에서 그 개판을 벌여놓은 년이!”
이번엔 억울하다는 듯 악을 쓰는 게 제 딴엔 확실한 뭔가가 있나 보다. 점장도 이 얘길 듣자마자 떠오르는 게 있는지, 손뼉을 마주 대고는 말을 이었다.
“실례지만, 혹시 옛날부터 암시장에서 일하셨던 거세요?”
“그래, 인간 마법사 년아. 단속이랍시고 찾아와서는 손짓 한 번에 눈에 보이는 것 하나씩 다 때려 부쉈었잖아!”
“그건… 과장이 너무 심하신데.”
“과장은 내 직함이고!! 썩을 년아!!”
라며 운을 떼고는 자기가 목격했다는 점장 전적을 술술 읊기 시작하는데, 전적이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중 인상깊은 사례 3순위, 항구에 보내려던 컨테이너 박스를 손가락 한 번 튕기는 걸로 종잇장마냥 찌그러트렸다. 2순위, 도망치던 중인족들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1순위는, 이 짓들을 벌이는 내내 점장이 일말의 표정변화조차 안 보였다는 것. 흠….
“왕년에 많이 날리셨나봅니다, 점장님.”
“저, 저거 다 부풀려진 거야. 중인족분들도 그냥 형사님께 인도만 했을 뿐이구.”
고블린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가 보다. 별로 말하고 싶진 않았는지 입을 우물거리다, 황급히 말을 돌리는 점장.
“그…때 어떤 거 취급하셨길래. 허가 안 받은 마법 보조제? 불법시술용 마수 신체 부위? 아니면 마약? 무기?”
“…어. 그, 그건….”
“네?”
“…짐 나르고 있었다.”
“그럼 제가 당연히 기억 못 하죠, 잡일꾼이셨단 건데.”
“그래서 뭐!! 그때 네년이 했던 짓들 보고 몇 개월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었다고. 그 비용이 얼마였는 줄 알아!!”
점장에게 검거를 당해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암시장에서 잡일꾼 하다가 점장 단속에 휘말린 듯하고. 역린이 자극된 건지,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해왔다.
“그래, 딴 새끼들이 보조제랑 마약 판 돈 나를 때 난 짐 날랐다. 근데 그래서 뭐! 난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기어 올라왔어,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허어….”
“내가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네년에게 두 번씩이나 당해 줄 것 같아?!”
대화 도중에 단호한 결의가 생겼는지 홱 몸을 돌려서는 문을 열고 도망가 버렸다. 바라보던 점장이 닫힌 문 쪽으로 뛰어가길래 옆에 따라붙어 물어봤다.
“점장님께서 뭘 때려 부수시는 광경이 전혀 상상이 안 되기는 합니다.”
“그,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될까?”
“그러셔요, 그러면.”
대화 장소로는 이 복도 말고도 좋은 곳 많다. 매장 카운터라든가, 쇼윈도 앞 테이블 의자라든가. 일단 저놈부터 잡고 보자고.
말없이 십수 초를 더 뛰어 문 앞에 도착했고, 문손잡이를 잡아당겨 봤다. 열쇠 꽂는 구멍조차 없는 문이 옴짝달싹하질 않는다.
재차 잡아당겨 봐도 안에서 걸어 잠갔다는 느낌도 안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바라보니 문짝 표면 전체가 일렁이고 있다.
“문에 마법 걸린 것 같은데, 일단 풀고 볼까요? 점장님?”
“그 전에, 잠깐만… 여기 좀 손으로 쓸어볼래? 살살.”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한복판을 슥 가리키는 점장.
시키는 대로 체질을 죽여 슥 쓸어내리자, 아까는 안 보였던 마법진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단순한 마법진이 아니라, 여러 개가 한 면에 포개진 것 같은….
“여기 오른쪽 위랑 왼쪽 아래 엄지로 문대구, 그다음엔 가운데를 위에서 아래로, 한 손가락으로 쭉 지워주면 될 것 같아.”
“안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문 틈새가 아예 메워져 버릴걸? 문 반대 면에도 마법진 그려놨을 테니까.”
양쪽 면에 똑같이 생긴 마법진이 두 개 그려져 있고, 한쪽 마법을 강제로 풀면 반대쪽 마법진이 발동되는 구조일 거라는 게 점장 의견. 시키는 대로 마법진을 지우자, 건드리지도 않은 문이 안으로 대뜸 활짝 열렸다.
내부는 또 다른 복도, 정면에는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고블린 놈이 보인다.
뒤따라 달리며 지나온 문을 슬쩍 뒤돌아봤는데, 점장 말대로 마법진 하나가 문 정중앙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족집게다, 아주.
생각하며 마저 내달렸고, 고블린이 튀어나간 다음 문도 똑같이 마법을 풀어 열었다. 문이 열리자 나타난 건 또 다른 복도.
뭔 놈의 복도를 이렇게 길게 만들어놨나 싶었는데, 세 번째 문을 푸는 사이 이 이유도 점장이 짤막하게 설명해줬다. 저 고블린이 그나마 자신 있는 보안 마법이 이 마법이어서일 거라고.
“이것보다도 훨씬 효율적인 게 많으니까. 문을 수십 개 만들어 둘 수도 있구, 아예 막다른 골목인 것처럼 꾸밀 수도 있구.”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문이나 벽을 미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효과적이란다. 별로 상상하고 싶진 않은 상황이라, 마법진을 슥 그으며 떠오르는 것만 말하고 말았다.
“늘 느끼는 건데, 아시는 게 엄청 많네요. 점장님.”
“이 정도 갖구 뭘. 나중에 다른 것들도 많이 알려줄게.”
예전이라면 사양부터 했겠지만, 지금은….
글쎄다. 마법 관련된 다른 일을 또 맡게 되더라도, 점장만 있어 준다면 어지간한 일들은 다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후로 두 번 더 문을 열었고, 마침내 삭막한 복도가 아닌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캐비넷 여러 개와 CCTV 화면이 송출되고 있는 브라운관 TV, 탁자, 소파 두 개와 서류가 가득한 사무용 책상.
외에는 ‘숙직실’이라 적힌 문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뒷문이 하나씩. 밖의 오크 놈들이 저 숙직실에서 죄다 뛰쳐나온 모양이다. 도착해서는 허리를 숙여 숨을 몰아쉬는 점장.
“헥… 헥, 에휴.”
“괜찮으세요?”
“단거리를… 넘었어….”
꽤 많이 달려오긴 했지. 고블린 놈은 책상 위에 반쯤 엎드린 채 우릴 돌아보고 있는데, 얼굴이 아연실색하다 못해 경악에 질려있었다.
점장과 똑같이 숨을 잔뜩 몰아쉬며, 이렇다 할 방향 없이 삿대질을 해댄다.
“저 악귀 년이 여기까지… 헉, 마법을 몇 개나 걸어뒀는데.”
“거 악귀 년, 악귀 년 작작 좀 해라. 누군 욕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냐?”
“너 이 따까리 새끼. 너, 네가 풀었냐? 어떻게 풀었어?”
“그걸 알면 어쩔 건데.”
“두고 봐, 이 새끼.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그냥 까치고, 부리로 몇 번 쪼니까 알아서 풀리더라고. 망할 놈아.”
두고 볼 일 안 만들기 위해서라도 계속 둘러대는 게 맞는 것 같다. 말하자, 점장이 퍼뜩 떠올랐다는 듯 날 홱 올려다보며 물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왜 암호명을 까치로 한 거야?”
“예? 어… 제 처지가 까치랑 다를 게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요.”
까치가 국제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조류다. 한국에서는 길조 대우를 받지만, 한국 땅 벗어나면 대표적인 흉조 취급을 받는다.
이게 딱 내 꼴이었고 말이다. 집에서야 어머니께 이쁨받았지, 사회에 나오고 나서부터는 어딜 가더라도 일을 왜 이리 못하냐, 사회성이 왜 이렇게 떨어지냐― 하면서 소금이나 맞기 일쑤였으니까.
평생 그 세상에서 불길한 놈이란 말만 듣고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 의지해주는 사람도 있고, 나랑 있으면 편하다고 해주는 사람도 있고.
길조 대우를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이 생각에 까치라고 지었다. 내 세상에서는 줄곧 흉조 취급만 받아왔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무진장 복합적인 이유였네.”
“그럼 어떤 이유인 줄 아셨습니까.”
“까치 귀엽잖아. 헥, 그래서 그렇게 지은 줄 알았― 어.”
도중에 말을 끊는 점장. 시선을 따라가 보니, 고블린 놈이 슬금슬금 뒷문 쪽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점장과 눈이 마주치고는, 쌓아둔 서류 더미를 엎어버리며 냉큼 뒷문 쪽으로 달려나갔다.
문손잡이의 잠금쇠를 풀고는 닫지도 않은 채 그대로 뛰쳐나간다. 점장에게 말했다.
“저놈 잡고 마저 얘기하시죠, 점장님.”
“응. 그런데, 나 쫌만 이따가 따라가두 될까?”
“예?”
“나 아직 숨차.”
그러겠다고 했다. 잠금쇠 풀고 나간 거 보면 마법은 더 없는 듯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마법진 푸는 법이 손에 익은 지 오래였으니까.
바로 뒤따라가자, 뒷문 너머로는 복도가 아닌 오르막 계단이 나 있었다. 끙끙대며 계단을 오르는 고블린 놈을 뒤따라갔는데, 오르는 사이 공기가 점점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끝까지 올라오자 아예 밖으로 나가는 문이 활짝 열린 채였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게 2차선 도로, 그 위를 횡단해 달려가는 고블린. 그리고….
“울프 어르신?”
어르신께서 옷을 툭툭 털고 계시는 중이었고, 눈 마주치는 순간 멍해져서 발이 멈췄다. 내 목소리에 이쪽을 돌아보고는 눈을 크게 뜨시는 어르신.
“사장님?”
“아니, 어르신께서 이곳은 왜….”
“담배를 피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좀 멀리까지 왔습니다. 헌데 일이 잘 안 풀리신 겁니까?”
“저거, 지금 저놈 잡고 있습니다. 저 보물고블린 놈이요.”
명품 덕지덕지 두른 저놈 쫓고 있는 거다. 사정을 설명하다간 놓치겠다 싶어 계속 뒤쫓으려 했는데, 어르신께서 손으로 날 제지하셨다.
그 후엔 발치를 내려다보신다. 따라서 내려다보니 어르신 발치에 끄트머리가 겨우 타다 만 담배꽁초 한 개가 떨어져 있었다.
“저 고블린 친구, 저와 부딪치고서도 멈추질 않고 달려가더군요. 덕분에 옷에 담뱃재가 묻고 말았지 뭡니까.”
“아, 이 꽁초 저놈이 떨군 거예요?”
“예. 어지간히 급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말이지요….”
말씀하시고는 양복을 마저 툭툭 터신 뒤,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는 총알마냥 튀어 나가셨다. 이후 수 초 뒤.
“이런 썅, 이 노친네는 또 뭐야!”
“대리기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모르겠고, 어깨 친 것 때문에 이러는 거면 나중에 세탁비 줄 테니까 놓고 말로 하자고. 지금 내가 바쁜 일이―”
어르신께서 손목을 붙든 채 고블린을 질질 끌고 오셨고, 끌려오는 내내 주절거리던 놈이 날 보고는 말을 뚝 멈춰버렸다. 고블린 놈을 코앞까지 데려오신 뒤, 내게 물으시는 어르신.
“이 정도는 도와드려도 괜찮은 거겠지요?”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찌 됐든 할 일은 다 끝났다. 이제야 나도 숨 좀 돌리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