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6)
이세계 편돌이-195화(196/331)
195화. 분실물 찾아가세요 (8)
* * *
이후 상황들은 부드럽게 정리가 됐다. 우선 보물고블린.
“늬들 다 엿될 줄 알아. 내가 아는 검사만 부르면―”
어르신께 붙들린 채로 검찰 쪽 높으신 분들의 힘을 빌린다는 둥, 역고소를 한다는 둥 빽 없는 소시민 등골이 서늘해질 말을 연거푸 해왔으나, 어르신께서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무심하게 대꾸하셨다.
“보아하니, 어깨결림이 꽤 심하신 듯하군요.”
“그땐 늬들 따위는, 뭐. 뭐라고?”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어르신 대답에 곧바로 몸을 돌리려 했으나, 어르신께서 꽉 붙들고 계시는 건지 옴짝달싹을 못하더라.
그대로 고개만 들어 어르신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헉 숨을 삼키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는데, 내 쪽에서는 모자챙에 가려져서 얼굴이 안 보인다. 대체 어떤 표정을 하고 계셨길래 저러는 건지.
저걸 봐두면 진상들 상대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 그냥 내 할 일이나 했다. 고블린 놈 몸을 슥 훑어보며 일렁이는 게 없는 걸 확인한 후 곧장 경관에게 이어폰으로 연락했다.
그대로 감시하기를 2분여. 저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도로 왼편에서 경관이 나타나서는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점장님이랑 경관님께서 다 하셨죠, 뭐. 저희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내부를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는데, 이쪽에서 소리가 들리더군요. 헌데, 업주님께서는….”
“저 여기 있어요, 경관님! 어휴.”
내가 올라온 계단을 점장이 따라 올라오고 있는데, 품에 한 아름 파일철 더미가 들려있다. 바로 달려가서 파일을 받아들었는데, 맨 위 서류 표지에 ‘물품 거래 내역’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고마워, 찬아. 숨 돌리면서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읽으면서 시간 때울 만한 것들이 꽤 많더라구.”
“시간 때울 거요?”
“응. 뭘 얼마에 팔았다든가, 언제 누구한테 어디로 가라든가 하는 것들.”
이게 수사 드라마에서나 보던 비밀 장부, 뭐 그런 것들인가 보다. 이놈들이 불법으로 돈을 벌었단 것만 알았지, 어떤 불법을 저지른 건지는 몰랐는데 말야….
딱히 내용을 보고 싶지는 않더라. 더러운 거 뭐 하러 보냐는 생각밖에 안 들어. 파일철을 경관에게 내밀자, 옆에서 점장이 부연 설명을 해왔다.
“이거다 싶은 것들만 슥슥 골라왔으니까, 이것들 먼저 훑어보시면 될 것 같아요. 경관님.”
“마지막까지 감사합니다, 업주님.”
“뭘요. 고생은 경관님이랑 찬이가 다 했지. 달리 도와드릴 일 있나요?”
“아뇨. 이쯤이면 될 것 같습니다.”
대답하고는 무전기를 들어 이곳 위치를 말한 뒤,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술집 내부는 온건하게 정리가 됐고, 그놈들과 이 고블린 신변을 인도하기만 하면 자기 할 일도 당장은 끝날 것 같단다.
이 일로 서류 작성할 게 꽤 되는데, 이건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 짤막하게 말해오는 사이에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고, 도로변에 경찰차가 줄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라보다 물어봤다.
“그럼 저희 이제 퇴근하면 되는 거예요?”
“예. 두 분 자택까지 바래다드리겠습니다.”
“찬이랑 저랑은 알아서 돌아갈게요, 경관님. 아까 경찰차 탈 때 쿠션이 엄청 딱딱하더라구요.”
나도 뒷좌석 탑승감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점장 표정이 탑승감보다는 다른 의도로 이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고는 내 눈치를 힐끗 봐왔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 맞장구치자, 미안하다는 듯 대꾸해오는 경관.
“그렇다면,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괜찮아요. 걸어서 20분밖에 안 걸리는걸. 찬이는 다리 아프면 경찰차 타구 갈래?”
“저도 괜찮습니다. 이참에 바깥 공기나 쐬죠, 뭐. 어르신께서는요?”
“저는… 경관님과 같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지요.”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경관 질문에, 고개를 푹 떨군 고블린을 살포시 움직이며 묻는 어르신.
“하신 일이나 업주님, 사장님 얘기를 듣자 하니, 체술에 무척 소양이 깊으신 듯하더군요.”
“소양까지는 아닙니다만.”
“혹시 간단히 이야기를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아까 공원에서 ‘저 오크들 경관이 한 대도 안 맞고 두들겨 팼어요―’라는 늬앙스로 설명드리긴 했었다. 전직 호위부대 출신으로서 그 과정이 궁금해 참을 수 없으셨던 모양이다.
경관은 어리둥절하다는 얼굴이었으나, 어르신께서 워낙 흥미진진해하시는 얼굴이었던지라 따로 질문을 하진 않았다. 고개 끄덕이는 걸로 대꾸하고는, 우릴 보며 말을 맺었다.
“오크들 신병은 확실히 구속했으니, 가는 길에 위험하신 건 없을 겁니다.”
“예. 고생하셨어요, 경관님.”
“두 분께서도요.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해오는 경관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얼굴에 뚜렷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소한 요 며칠간은 경관 다크서클이 짙어질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후, 어르신과 경관은 고블린을 데리고 가까운 경찰차에 탑승했고, 텅 빈 상가 뒷골목에 나와 점장만 남았다. 적막 속에서 잠깐 밤하늘을 바라보다 점장에게 물었다.
“경찰차 왜 따로 안 타고 가신 거예요?”
“그게, 찬이랑 단둘이 들어가구 싶었거든. 우리 이 시간에 밖에 이렇게 있는 거 처음이잖아.”
“그렇긴 하죠.”
“나와서는 다리 저리도록 뛰어다니기만 했구. 왜. 싫어?”
“전혀요. 몸이 피곤하다고 비명을 지르는 게 문제지.”
“나두 오랜만에 뛰어서인지 피곤하긴 하다. 일단 걷자, 찬아.”
* * *
좁은 도로변을 나와 큰 길가로 나오며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40분. 오늘 밤 일로 3년은 늙은 기분인데, 매장 나온 후로 고작 2시간밖에 안 지났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점장 말대로 걸어서 20분. 점장과 나란히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유리 이 녀석 일은 잘하고 있나?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음이 반절 정도 들렸다가 끊겼다.
[ 큼, 큼. 지금 근무 중이라 오빠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삐― 소리가 나면…. ]“뭐야. 지금 매장에 손님 많냐?”
[ 사실 저밖에 없긴 해요. 오빠는요. ]“나 뭐.”
[ 괜찮냐고요. 평소 목소리가 아닌데. ]나름 힘주어 말했다 생각했는데, 이 눈치 없는 녀석 귀에도 목소리가 맥 빠지게 들리나 보다. 그냥 솔직히 말했다.
“지금 좀 힘들긴 하다.”
[ 그럼 저 오늘 마저 근무할게요. 안 되면 말고. ]“나 갈 테니까 기다려, 인마. 분리수거통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유리한테 야간에 하는 일 다 알려줬었는데?”
“야, 잠깐만. 다 알려주셨다구요, 점장님?”
“혹시 몰라서 알려줬지.”
난 일이 어떻게 되든 매장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반박할 말을 찾는 사이, 수화기 너머로 유리가 말해왔다.
[ 올 때 메로나. ]“뭐?”
이러고는 뚝 끊어버렸고, 다시 전화 걸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날 올려다보는 점장 얼굴이 해맑기 그지없다. 확인차 말해봤다.
“저 오늘 연차 쓴 걸로 쳐 주십쇼.”
“응.”
그렇게 해준단다. 점장은 내 대답을 들어서인지 걸음걸이가 한층 홀가분해졌고, 난 이 주제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입 다문 채로 조용히 걸었다.
그렇게 20분. 어두운 도로변을 벗어나 상가 불이 제법 켜진 곳에 도착했고, 저 멀리에 버스 정류장도 하나 보였다. 버스 여러 대가 정차해서는 떠날 기미가 없다.
이 근방이 버스노선 종점인가 보다. 정류장의 버스 노선표를 하나씩 확인하다, 밑에서 두 번째 노선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점장.
“이거, 우리 집까지 가는 버스야. 찬아. 중간에 학원지구도 들르구.”
“그럼 이거 타면 되겠네요. 저, 버스기사님. 이 버스 언제 출발합니까?”
노선에 해당하는 버스가 코앞에 있었고, 운전석에서 오크 버스기사가 자기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더라. 버스 계단에 발만 얹은 채로 묻자, 기사가 우릴 힐끔 바라보고는 시큰둥하게 말해왔다.
“옷 털고 들어와주세요, 내부 방금 청소했어요.”
“아, 네.”
“타면 바로 출발할게요.”
기사 말에 몸을 내려다봤는데, 아까 술집에서 한 번 엎드렸던 탓인지 옷에 먼지가 가득했다. 막차 끊길 생각에 걷기만 하느라 꼴이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다.
거울삼을 만한 게 점장밖에 없기도 했고. 점장이 제법 깔끔한 편이어서 나도 멀쩡한 줄 알았다.
“점장님께서는 안 터셔도 되겠습니다.”
“그래? 찬이는… 와. 먼지 엄청 많다. 어두워서 몰랐네.”
눈을 한 번 크게 뜬 뒤, 입을 앙다문 채로 내 옷을 툭툭 터는 점장. 일어나는 먼지에 점장이 연신 콜록거리길래 내가 알아서 털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버스기사 눈초리가 덜 사나워졌을 즈음 올라타자, 냉큼 문을 닫고는 버스를 출발시켰다. 점장이 앉은 자릴 확인한 뒤, 맞은편에 고꾸라지다시피 자리 잡았다.
그다음엔 창문 활짝 열고 바람이나 잔뜩 쐤다. 손님이라고는 점장과 나, 단둘뿐이었다. 앞뒷좌석 탑승객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떠들려면 마음껏 떠들 수도 있을 테고.
헌데 몸에 긴장이 풀려서인가, 찬 바람을 쐬고 있는데도 몸이 점점 나른해지더라. 정신 차릴 겸 창밖을 바라보는 도중 점장이 말을 걸어왔다.
“앉아있으니까 이제야 살 것 같다.”
“저도요. 마법사 일 하실 때, 이렇게 뛰어다닌 적 자주 없으세요?”
“없지. 이대로 잠들면 딱 좋을 텐데 말야. 그치….”
반대편의 점장을 바라보니, 앞좌석에 머릴 살포시 맞댄 채 이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하긴, 점장이 마법은 몰라도 신체적으로는 어딜 어떻게 봐도 여고생이니….
“힘드시면 지금 주무시고, 저 내릴 때 깨워드릴까요?”
“응? 잘 안 들려, 찬아.”
“예?”
“잘 안 들린다구.”
“저 내릴 때 깨워드리― 잠깐만요.”
창문에서 바람 들어오는 소리 때문인가보다. 창문을 닫고 다시 대답하려 했는데, 그새 점장이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다.
“여기.”
“네?”
“아까 하던 말, 여기 앉아서 해주면 안 돼?”
“…….”
“그리구, 옆자리 비었는데 왜 그렇게 멀리 가서 앉아있어. 허전하게.”
내가 옆에 앉는다고 허전한 게 나을 리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옆좌석에 장식될 만큼 외관이 번듯한 장식물도 아니고, 버스 안이 가뜩이나 환기도 안 되는데….
그렇다고 싫다고 대뜸 말해버렸다간 감봉을 당할 것 같고. 둘러댈 말을 생각하다, 그냥 점장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란히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점장 체구가 참 조막만 하다.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와도 무겁기는커녕―
“점장님?”
“등받이에 기대는 것보다 이게 훨씬 편하네.”
“…….”
“왜?”
하도 당당하게 물어오니 이걸 묻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놈으로 느껴질 판이다. 이 사이에 방지턱을 넘은 건지 버스가 한 번 덜컹거렸고, 점장이 어깨에 기댄 머리에 힘을 줘왔다.
“진짜루 편해.”
“…편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