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7)
이세계 편돌이-196화(197/331)
196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1)
* * *
29년 인생 처음으로 내릴 정거장을 지나쳤다. 점장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새액… 새액….”
어깨는 팔 위쪽, 머리는 내 귀 아래쪽에 기댄 채로 일절 미동이 없었는데,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이런가 보다― 생각하고 버스 노선표만 보고 있었다.
헌데 신호등이나 방지턱에 버스가 멈추거나 덜컹대는데도 점장이 기댄 자세만 조금씩 바꿀 뿐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어떻게 해?
“점장님, 저 세 정거장 남았습니다.”
“…음냐.”
“네.”
음냐라는데, 곤히 잠든 걸 밀어내기도 뭣하고. 더해서 밀어낼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이것보다는 점장에게 사과할 짓만 해왔단 생각만 들더라고.
매장에 직원이라곤 우리 둘뿐이었고, 내 연차 날이면 점장이 나 대신 24시간, 길게는 36시간이 넘도록 카운터를 맡아줬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내색 한번 안 한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점장이 편하게 자길 바라며 내 자세만 신경 썼고, 학원지구 다음 정거장 안내음이 들릴 즈음에서야 점장이 눈을 떴다.
“…찬아. 지금 우리 어디야…?”
“저 내릴 정거장이요.”
“그렇구, 엇. 나 언제부터 잠들어 있었어?”
“잠깐 잠드셨어요. 저 가보겠습니다.”
몸을 일으킨 점장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얼른 버스카드를 찍었고, 내려서 점장에게 꾸벅 인사할 즈음 점장이 두리번거리던 걸 멈추고는 물었다.
“여기 정거장 지나친 거 아니야?”
“내일 봬요, 점장님.”
말로 마저 인사한 뒤, 점장 눈이 가늘어지길래 얼른 도망쳐 나왔다. 주변 풍경이 익숙한 게, 내려야 할 곳에 비해 거리가 그렇게 멀지도 않더라.
10분가량 걸어 집 도어락을 열 즈음 톡 두 줄. 당연히 점장이 보낸 거였다.
[ 깨우지ㅠ ] [ 잘자 ]예. 답장하고, 고양이 물그릇만 마저 채운 뒤 침실 바닥에 엎드려 그대로 잠들었다. 내일 아침엔 이불을 꼭 사든지 해야지….
이렇게 자고 일어나서 아침, 초인종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상반신만 일으켜 눈만 껌벅이고 있자니, 초인종 소리에 뒤이어 외침이 들려왔다.
“문 열어!”
“죄송한데, 저 종교 안 믿어요.”
“너 씨, 손 모자라서 비밀번호 못 누르니까 빨리 열라고!”
윤하 누나 목소리 같아서 농담 섞어 대답해봤는데, 누나 맞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자기 품에 안고 있던 걸 내게 던지듯 내밀어 오는 누나.
받아 들어 확인해 봤더니 이불이었다. 둘둘 말린 안쪽에는 베개 하나. 자기 손을 툭툭 털고는 씨익 웃으며 마저 말해온다.
“이제 날 풀렸으니까, 덮는 이불은 나중에 알아서 구해라. 알았냐.”
“어, 땡큐. 근데 나 집에 이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음?”
“언니가 말해주던데? 니 집에 이불 없을 테니까 남는 거 있으면 하나 가져다주라고.”
그럼 누나 집에는 이불이 왜 남냐. 물어보자 누나 왈, 사무소 숙직실에 있는 것 중 하나를 슬쩍해온 거라고. 질이 나빠서 안 쓰는 건 아니고, 다들 밖에서 밤을 새우느라 숙직실에서 자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말 듣고 이불을 매만져 보니, 여태껏 써왔던 놈보다 솜이 훨씬 도톰하다. 팔 밑으로 자꾸 흘러내리길래 거실 한복판에 내던졌는데, 고양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악!”
“방금 고양이 맞은 거 아니냐?”
“저놈도 평소에 나 자주 괴롭히니 쌤쌤 치지 뭐. 암튼 고맙고, 누나 이번 주말에 쉬어?”
“쉬니까 이불 들고 온 거지. 너는 오늘 일 몇 시에 나가.”
“나야 오후 10시 출근… 아니지, 잠깐만.”
근무 시간 얘길 하니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유리 녀석이 오전 10시까지 근무 대타를 뛰어줬는데, 그 녀석 근무시간이 오후 2시다. 이러면 오늘 근무가 어떻게 되는 거냐?
3시간 자고 돌아오지는 않을 거고. 고민하다, 차라리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전화로만 묻고 말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가서 묻는 게 더 나을 것 같고.
“누나 이제 뭐 할 거야.”
“글쎄? 니 집 콜라 먹으면서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집에 냉장고도 없는데 콜라는 뭔 콜라? 우리 집 털뭉치 놈이 가만히 있지도 않을 거고.”
말하면서 슬쩍 돌아봤는데, 저 털뭉치가 이불에 얻어맞은 게 어지간히도 약이 올랐는지 거실 사방에 패대기질 해대고 있더라.
누나가 안에 들어왔다간 저 패대기질을 거실 벽이 아니라 누나 얼굴에 해댈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거실 안쪽을 바라보던 누나가 감탄 반, 걱정 반 섞인 소감을 말해왔다.
“너 저 고양이 계속 기를 건가 보다.”
“뭐 어쩌겠어. 나 아니면 저놈 패악질 감당할 사람이 없는데….”
“그런 거치고는 엄청 본격적인데. 저거 사료 배급기 아냐?”
“저게 내 옷보다 비싸. 여튼 콜라 먹을 거면 매장 같이 가든가. 콜라 중에 1+1 행사하는 거 있거든?”
* * *
씻고, 옷 갈아입고. 보이지도 않는 놈과 이불을 가지고 눈싸움을 한바탕 한 뒤 누나와 밖으로 나왔다. 이 시간엔 늘 매장에만 있어봐서인지 밖을 돌아다니는 게 영 어색하다.
어색한 기분 그대로 매장 안에 들어갔는데, 주말 아침이어서인지 매장에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쇼윈도 앞 테이블에 앉아 한창 실랑이 중인 꼬꼬마 두 명.
“그 카드 나도 반 줘! 나도 돈 냈잖아!”
“카드를 반으로 나누면 어디에 쓰냐고. 너, 자꾸 이러면 엄마한테 이를 거야!”
“내가 먼저 이를 건데! 이 바부야!”
펭귄과에 속하는 건지 머리카락이 검은색과 흰색으로 반씩 섞인 남녀 꼬맹이들이었는데, 여자애가 남자애 머리 중 황금색인 부분을 잡아당기고 있더라. 황제펭귄이었나보다.
테이블 위에 카드가 여러 장 놓여있는 걸 보면, 카드팩을 까던 중 좋은 게 한 장 나와서 저러는 것 같고. 바라보던 도중, 카운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들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걸까요, 오빠?”
이 녀석이 느닷없이 질문부터 해오고 있다. 그래도 유리 이 녀석 화법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진 참이다.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줬다.
“애들끼리는 원래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야.”
나도 초등학생 때 나 거지라고 놀리던 놈들을 쫓아가 실내화 가방으로 두들기곤 했었고, 그러다 친해진 애들도 꽤 된다. 나이가 든 지금은 연락처도 기억 안 나지만 말야.
대답하자, 내 말을 곱씹으려는 듯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다 대뜸 이런 제안을 해왔다.
“오빠. 저희 싸울래요?”
“의도는 바람직한데, 우리가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제가 싫으신 거네요, 오빠.”
“그렇게 생각되면, 나중에 매장에서 솜방망이 장난감 팔거든 다시 얘기하든가. 실컷 패줄 테니까.”
“좋아요.”
이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가 어이가 없는지 나와 유리를 번갈아 보는 누나. 나도 이 녀석이랑 얘기하다 보면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질 잘 모르겠다.
“…아침에 애들이 몰려와서는 카드를 엄청 사 가더라고요, 오빠.”
“그랬냐.”
“네. 점장님께서 조금씩 팔라고 연락하셔서 조금만 꺼내놨는데, 저 애들이 와서는 카드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있는데 너희한테는 안 판다고 대답했더니 막 울고.”
이 녀석은 대답을 왜 그렇게 했대냐. 황당해서 눈을 마주쳐 봤더니, 유리가 눈썹을 아주 살짝 찌푸린 채 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졸려서 정신이 없나?
“그랬더니 막 울길래, 울지 말라고 하나 꺼내줬어요.”
“그래. 잘했다….”
“잘한 거예요? 저 점장님한테 안 혼나요?”
“니가 점장님한테 왜 혼나?”
“조금씩 팔라 하셨던 거 하나 더 꺼내서 팔았으니까.”
대답하고는 고개를 살짝 떨구는 게, 눈썹 찌푸린 게 졸려서가 아니라 점장님께 혼날 걸 걱정하고 있던 건가 보다. 잠깐 고민하다 대답해줬다.
“그래서 말씀하신 대로 조금 팔았잖어. 카드팩 하나.”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렇긴 뭐가 그래. 그냥 물어보시거든 애들 달랜다고 하나 더 꺼냈다고 말씀드려.”
점장이 이런 걸로 얘를 혼낼 리야 없겠지만, 본인이 워낙 신경 쓰는 눈치라 말해줬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홀가분해진 건지 꾸벅 고개를 숙여온다.
“안녕하세요, 오빠. 윤하 언니도요.”
“그래, 안녕. 날씨 좋은데 카운터에 있으니까 지루하진 않아?
“딱히요.”
“다행이네. 여기가 첫 알바라고 하던데, 의외로 할 만한가 보네?”
내가 물어보려던 걸 누나가 먼저 물어버렸다. 누나가 넉살 좋게 건넨 질문에, 자기 유니폼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입을 여는 유리.
“제가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 사람들이랑 일 얘기를 자주 해요.”
“어… 그래?”
“네. 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어떤 일이든 간에 하다 보면 전부 재미없어질 거라고.”
“그거야 뭐… 어느 일이든 다 그렇지 않나? 나도 그렇고.”
“그 사람들 말이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애가 나쁜 애는 아닌데, 구사하는 화법이 사람을 좀 막막하게 만드는 게 있다. 누나가 할 말이 없어졌는지 겸연쩍게 웃는 사이, 난 나대로 떠오르는 걸 물어봤다.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네가?”
“전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요.”
“그건 또 뭔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여튼 오빠, 인수인계.”
빤히 보이게 말을 돌린 뒤, 매출 전표를 집어 들어서는 내게 흔들어 보인다. 이 녀석한테 아는 사람들이 있단 것도 신기했고, 그 아는 사람들 말을 그렇게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가 있냐고 물어보려던 건데 말야….
대답하기 싫어하는 눈치라 굳이 더 묻지는 않기로 했다. 전표를 받아 들며 대답해 줬다.
“인수인계를 왜 나한테 해, 이따가 점장님께 해야지.”
“오빠 일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너 오늘 퇴근하고 출근 언제 하나 물어보러 온 거야. 콜라만 사서 다시 나갈 거고.”
“저 출근 오후 2시에 하래요. 점장님이.”
어젯밤 새벽 1시에 점장이 전화를 했고, 오늘 하루는 근무 끝나고 푹 쉬다가 오후 2시에 나오라고 했단다. 오늘 하루만 이전처럼 근무하면 될 것 같다.
“오냐, 고맙다. 너 어젯밤 근무는 어땠냐. 별일 없었어?”
“오빠 일하러 오신 거 아니라면서요.”
“인수인계 얘기가 아니고, 그냥 별일 없었냐고. 뭐 진상이 왔다 갔다든가.”
“음….”
말을 늘이며 테이블 쪽을 바라보는 유리. 따라서 바라보니, 저 펭귄 꼬꼬마들이 싸우는 건 관두고 자기들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카드팩 한 개를 더 사기로 합의를 본 듯하다.
저걸 바라보다 퍼뜩 떠올랐는지, 아. 하고 대답해온다.
“강아지가 한 마리 현관에 왔다 갔었어요. 포메라니안이었는데.”
듣자마자 잠깐 식겁했다가, 그새 반갑다는 마음이 확 몰려왔다. 와 씨, 이 녀석이 처음 오는 동네에서도 어찌어찌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어머. 멍멍이가? 잘 지낸대?”
“글쎄요, 언니. 제가 개랑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고….”
“어?”
똑같이 반색하며 묻던 누나가 유리 반응을 보고는, 곧바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유리 녀석이 아직 멍멍이를 본 적도, 내게 멍멍이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직접 보여주는 게 아닌 이상 안 믿을 게 뻔하니까. 누나가 내 눈치를 확인하고는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날씨가 좋다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고, 내가 마저 물어봤다.
“그 포메라니안, 현관에 있다가 그냥 간 거야?”
“네. 아는 강아지세요?”
“매장에 자주 찾아오는데, 내가 밥 자주 챙겨주고 그랬어. 넌 카운터에만 있었으니 걔 어떻게 됐는진 잘 모르겠다?”
“모르는 건 아니에요. 아까 손님들이 잠깐 몰렸는데―”
까지를 말하고는 곧장 입을 다무는 유리. 정문 벨이 울려서였다. 이번에 온 손님들은 놀랍게도 드워프 가족. 부부와 외동아들 구성이다.
아빠 쪽은 모든 드워프가 그랬듯 모발이며 수염이며 죄다 덥수룩했는데, 엄마 쪽은 신장이 작은 걸 제외하면 인간과 크게 다른 점을 못 찾겠다. 손과 발이 좀 컸고, 땋은 머리카락이 발 근처까지 내려오는 점 정도?
아들도 체형만 보면 통통한 인간에 가까웠지만, 무뚝뚝한 말투나 표정만은 영락없는 드워프였다.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날 올려다보며 묻더라.
“개 간식.”
“어… 내가 지금 근무자가 아닌데, 꼬마야.”
“저 급한데.”
“급하더라도 여기 카운터 직원분께 말을 해야지. 그런데 개 간식이 급할 일이 뭐가 있어?”
얘가 뭘 사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긴 했지만, 개 간식이 급하단 말이 어째 귀에 밟히게 들려서였다. 묻자, 이 녀석이 학원지구 정문 안쪽을 가리키며 대답해왔다.
“저기.”
“어. 저기 안쪽에.”
“강아지가 신기해요. 말을 다 알아들어.”
“어… 그리고?”
“사람 엄청 많아요. 빨리 가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