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8)
이세계 편돌이-197화(198/331)
197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2)
* * *
말을 꺼낸 드워프 꼬마가 들뜬 목소리로 묻지도 않은 것들을 말해오기 시작했고, 잠자코 듣고 있자니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저 공원 안쪽에 무려 문워크를 할 줄 아는 포메라니안이 있다.
“문워크? 그걸 걔가 왜 해?”
“제가 시켰어요. 잘하던데.”
사족보행견한테 문워크를 시킨다는 발상은 어쩌다 하게 된 건지를 묻자 꼬마 왈, 자기가 가기 전에도 이미 이것저것 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했단다. 두 발로 걸으라면 걷고, 꼬리로 프로펠러를 돌리라면 돌리고….
그 녀석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건지도 물었는데 이건 애가 대답을 안 해 줬고, 바쁘니 말 좀 그만 시키라는 의도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나한테 보채왔다.
“개 간식. 줘요. 빨리.”
“간식 저기 네 번째 코너에 있고, 고양이용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헷갈리지 말고 잘 가져와라.”
간식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고, 자기 아들을 바라보던 드워프 애 엄마가 나한테 와서는 물었다.
“잘 아시네요.”
“예? 아, 네. 유니폼 안 입고 있긴 한데, 여기 직원이라서요.”
“미안해요.”
꾸벅 고개 숙이고는 다시 돌아온 아들을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보다, 카드를 꺼내 개 간식 여섯 개가량을 계산하고는 자기 남편과 같이 나가 버렸다.
드워프 가족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자니, 누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잘은 몰라도, 아직 거하게 사고 치진 않은 거 같은데.”
“넌 보지도 않고 그걸 아냐?”
“걔가 우리한테 하던 대로 똑같이 하고 있었으면, 지금쯤 이 근처에 방송국 헬기 날아댕기고 있었을 거잖어. 누나.”
“아. 그렇긴 하네.”
그 녀석이 저 안에서 말을 한마디라도 했다면 거기 몰린 청중들이 죄다 뒤집어졌을 테고, 저 드워프 꼬마도 개 간식이 아닌 다른 상품을 찾았을 거다. 포승 용도의 개 목줄이든, 큰 잠자리채든 뭐든.
그 정도로 난리가 나진 않았으니, 멍멍이 녀석도 선을 지켜가며 사람들한테 재롱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쩌다 그러고 있게 된 건지는 가서 물어봐야 알겠지만….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예요, 오빠?”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카운터 잘 보고 있어. 누나 같이 갈 거야?”
“가야지. 그 애 어떻게 지내나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됐네.”
하여 누나는 녀석을 담을 쇼핑백, 난 햄버거 한 개를 계산해 데워 밖으로 나왔다. 이번 메뉴는 무려 패티가 세 장인 트리플 버거다.
걸어가면서는 이 녀석이 어디서 재롱을 부리고 있을지를 생각해봤고, 도중에 관뒀다. 걷고만 있어도 주변에서 온갖 목격담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까 그 포메라니안 진짜 신기하지 않아? 분수대에서 물 확 쏟아져도 도망치지도 않고 말야.”
“여보, 우리 강아지 한 마리 기를… 화부터 내지 말고 일단 들어봐, 여보. 지금 학원지구 안쪽에 광장에서 나오는 길인데, 엄청 똑똑한 강아지가―”
그 녀석이 반쯤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건지 애며 어른이며, 학원지구를 나오는 행인들이 죄다 똑같은 말을 해대고들 있었던 것이다. 분수대, 안쪽 광장.
“이거 거기 같다, 이찬. 용사검 끝에서 물 나오고 있는 곳. 가본 적 있냐?”
“있어. 전에 한 번.”
자격증 따러 왔을 때 용사 동상 분수대를 본 기억이 있고, 그 근처 벤치에 앉아 음료수를 뽑아 먹은 기억도 난다. 머릿속 지도를 더듬어 걷기를 3분, 저 멀리에 물줄기를 뿜어대고 있는 용사의 검끝이 보였다.
그 밑으로는 하피, 코볼트, 수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수군거리고 있고. 사람이 원체 많았던 탓에 빈틈을 찾아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다. 이 녀석이 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아니.
“누나, 저놈 왜 저러고 있는 거임?”
“글쎄다. 뒤에 용사 동상 따라 한다고 저러는 거 아니야?”
누나 의견을 수용하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였다. 용사 동상이 한 발은 바위, 한 발은 땅을 디딘 채 손에 쥔 검을 하늘로 곧게 뻗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망토나 투구 같은 장비도 빵빵하고.
그걸 저 멍멍이 녀석이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심지어 복장까지 말이다. 마른 잎사귀 한 장이 귀 사이에 걸쳐져 있고, 신문지 한 장을 등에 걸쳐 꼬리로 받치고 있고….
바위 대용인지 과자 갑을 한쪽 뒷발로 딛고 두 발로 서있는데, 앞발 발가락 사이에는 젓가락만 한 굵기의 나뭇가지 하나가 끼워진 채다.
“자기야, 초점 흔들리면 안 돼. 나 아웃스타에 올려야 한다고.”
“개보단고양이 시청자님, 1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댓글창 휙휙 올라가서 안 보이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면 천 원 이상 후원으로….”
“아빠! 사진 나두 찍을래! 나두!”
앙증맞은 녀석이 짧은 앞뒤 발로 저러고 있으니 당연히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주변의 인파들 중 폰카메라를 안 켠 사람이 없었고, 틈틈이 이 인파들 사이에서 동전이 튀어나와 멍멍이 앞에 짤그랑 떨어지기도 했다.
그 동전 중 하나는 분수대 쪽 안내판을 때리고 떨어졌는데, 안내판에 적힌 문구가 ‘동전을 던지고 행운을 빌어보세요!’ 였다. 저러다 저 녀석 용사 동상한테 영업방해로 고소당하는 건 아닌가 몰라….
이 상황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얼을 타고 있자니, 누나가 살짝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이찬. 쟤 죽을려 그러는 거 같지 않냐?”
“그러게….”
멍멍이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니, 꼬리 끝부터 앞발 끝까지가 죄다 덜덜 떨리고 있다. 나뭇가지 끝이 점점 밑으로 기울고 있는 게 특히.
“멍?”
우리 목소리가 들린 건지 멍멍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나뭇가지가 밑으로 툭 떨어졌다. 한참을 이러다 우리 쪽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애처롭게 짖어대기 시작하는 멍멍이.
“알! 알알알!”
“지금은 뭐라고 하는 거야.”
“낸들 알겠어?”
“멍왈멍멍왈왈멍멍, 알알! 끼이잉… 끄응….”
아예 말문이 터져버렸는데, 내용은 몰라도 자길 좀 살려달라는 뉘앙스만은 전달이 잘 됐다. 저 녀석이 이러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었나 보다.
상황은 딱했으나, 도와주려고 해도 카메라가 수십 개인데 뭘 어떻게 해. 잠깐 생각하다, 누나에게 햄버거를 들려준 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랐어?”
“좋은 생각인지는 결과가 말해줄 거고, 일단은… 멍멍아, 이리 온! 쯔쯔!”
이것 말곤 다른 방법이 안 떠오른다. 인파들을 뚫고 나가 멍멍이 앞에 쭈그려 앉은 뒤, 멍멍이 쪽에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동시에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가득 섞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웃스타인지 뭔지에 올릴 영상을 찍고 있다던 연인 쪽에서는 아예 나한테 성질부터 부려오더라.
“저기요! 갑자기 뭐에요, 아저씨. 영상 다시 찍어야 되잖아요!”
“어… 제가 이 강아지 보호자라서요.”
“거짓말, 목줄도 안 채워놨으면서!”
“말 죄다 알아듣는 녀석한테 목줄을 왜 채우겠습니까. 멍멍아. 이리 온.”
등에 꽂히는 시선이 따갑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멈출 수도 없다. 내 부름에 멍멍이가 한 번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세를 풀고 쪼르르 달려왔다. 마저 말했다.
“내가 니 보호자가 맞으면, 꼬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두 바퀴 돌려봐. 반시계 알지?”
아까 했다던 백덤블링이나 문워크를 시키는 게 효과야 훨씬 좋겠지만, 이 녀석이 발이 저린지 바들바들 떨어대고 있다. 애 죽일 일 있나.
혹시나 싶어 손가락으로 방향까지 지시해줬다. 고개를 끄덕인 멍멍이가 꼬리를 두 바퀴 돌렸으나, 바라보던 여자가 이게 말이 되냐는 듯 반박을 해왔다.
“그렇게면 누가 못 해. 강아지야, 저 아저씨가 주인 아니면 꼬리를 바닥으로 깔아봐. 할 수 있지?”
할 수야 있겠지만, 이 녀석이 그렇게까지 눈치 없는 녀석은 아니다. 멍멍이가 꼬리 끝을 수직으로 꼿꼿이 세우는 걸 보고는 당황하는 여자.
“거기 말고, 바닥 말야. 바닥. 에이씨, 나 영상 찍어야 되는데….”
“자기야. 나 슬슬 팔 아픈데 카메라 끄면 안 될까?”
“안 돼, 이거 조회수 100만 감이란―”
“저 애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십쇼.”
솔선수범했던 여자가 물을 먹은 걸 봐서인가. 사람들이 마저 웅성거리기는 해도 불만을 표하지는 않더라. 그래도 혹시 몰라 멍멍이를 끌어안은 뒤, 뒤도 안 돌아보고 인파를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면서는 멍멍이를 아예 옷 안쪽에 욱여넣었는데, 분수대 앞의 사람들이 소문을 낸 건지 몇몇 사람들이 멍멍이를 자꾸 쳐다보더라고.
그나마 인적이 한적한 곳의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자니, 뒤따라온 누나가 내 옆에 쇼핑백을 툭 떨구고는 못마땅하단 목소리로 말해왔다.
“저 여자는 무슨, 자기 개도 아니면서 왜 냅두라 마라야?”
“그러게 말야. 지 영상 찍는다고 동전도 안 던지더만.”
“그놈의 조회수가 뭔지. 여튼 고생했다, 이찬.”
“고생은 무슨. 동전은 아깝게 됐다, 멍멍아.”
“전혀, 저언혀 신경 쓰지 마시오. 참말로 고맙소이다, 사장님.”
이제야 말을 해온다. 개 짖는 소리 말고 사람 말을 들으니 두 배로 반갑다. 옷 안에서 꺼내 쇼핑백 안에 앉혀놓자마자 마저 말을 잇는 멍멍이.
“애초에 동냥을 받으려 한 일조차 아니고 말이오. 이렇게까지 사람분들이 몰릴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몰릴 줄 모르기는 개뿔, 포메라니안이 네 발로 문워크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 근데 너 문워크는 언제 어디서 배운 거냐?”
“그게… 며칠 전에 저곳에 사람들이 뭉쳐서는 춤을 추지 뭐요. 서로 운무를 겨루는 걸 워낙 감명 깊게 본지라, 눈으로 열심히 훔쳐봤다오.”
며칠 전에 저 분수대 근처에서 댄스배틀이라도 열렸었나보다. 그걸 보고 바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면, 이 멍멍이 녀석한테 숨겨진 춤꾼의 자질이 있는 게 아닐까.
태어날 몸뚱어리를 헷갈리지만 않았으면 이 재능을 몇 배는 더 잘 써먹었을 텐데 말이다.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 벤치에 앉아 손부채질을 하던 누나가 쇼핑백 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멍멍아. 우리 엄청 오랜만에 보네?”
“반갑소, 윤하 아가씨. 본견이 정신이 없어서 인사도 제때 하지 못했구려.”
“괜찮아, 나도 정신없었거든. 그런데 너 어쩌다 그러고 있게 된 거야?”
“별 이유는 없었소이다. 그저… 지금 어디서 햄버거 냄새가 나고 있지 않소?”
이 녀석이 배가 고팠나 보다. 누나가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햄버거를 쇼핑백 안에 슥 밀어 넣었고, 대금은 전에 도와준 걸로 까기로 했다.
멍멍이가 허겁지겁 햄버거를 먹는 동안 우리도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왔고. 벤치 등받이에 기대서 누나와 말없이 음료만 홀짝였는데, 하늘에 조각구름 하나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다.
아주 목가적인 분위기다. 별생각 없이 말해봤다.
“어우, 이러고 있으니까 몸이 좀 풀리네.”
“니가 몸 쓸 일이 뭐가 있다고.”
“어젯밤에 한 번 있었어. 점장님이 얘기 안 해 줬음?”
“뭔 얘기?”
누나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했나 보다. 말 나온 김에 이 썰이나 좀 풀어보려 했는데, 때마침 멍멍이가 햄버거를 다 먹어버렸다.
“후! 사장님, 참으로 잘 먹었소이다. 본견 몫이 앞으로 몇 개가 남았소?”
“2개.”
“전에도 2개 아니었소이까?”
“몰라, 인마. 하던 얘기나 마저 해봐. 별 이유가 없는데 왜 그렇게 됐어?”
묻자, 잠깐 뜸을 들이고는 말해오는 멍멍이.
“별건 아니었소. 본견, 화장실 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