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99)
이세계 편돌이-198화(199/331)
198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3)
* * *
일단은 잠자코 들었고, 일이 벌어진 과정이 크게 복잡하진 않았다. 멍멍이가 공중화장실 변소에 앉아 볼일을 본 후, 물을 내리던 도중에 꼬맹이 한 명한테 걸렸다.
“걔가 어떻게 들어와. 문 안 잠갔어?”
“부끄러운 얘기지만, 못 잠갔다오. 어떻게 해도 앞발이 잠금쇠에 닿지를 않아서….”
여튼 그 꼬맹이가 자기랑 눈을 마주치자마자 ‘와! 강아지가 변기에 앉아서 똥을 싼다!’라며 외치고는 자길 쫄래쫄래 쫓아다니기 시작했고, 무안한 마음에 그 꼬맹이를 피해 도망 다녔다고 한다.
족히 20분여를 도망 다닌 끝에 그 꼬마가 바닥에 주저앉아 헥헥거리게 됐는데, 그걸 보고는 측은한 마음에 멍멍이가 그 애랑 놀아주기 시작했다고. 이게 일의 발단이었다.
“앞발이며 뒷발이며 꼬리며, 달라는 건 전부 다 주었다오. 헌데 그러다 보니 그 아이의 요구가 점차 고난도가 되는 게 아니겠소?”
두 발로 서서 걷기, 귀를 두 번 접기 등등.
나중엔 그 꼬맹이가 잔뜩 들떠서는 아예 폰 화면으로 개인기 영상을 띄워 보여줬고, 멍멍이도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 화면에 나온 것들을 끝까지 따라 해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된 거랜다. 일을 만든 꼬마는 엄마가 밥 먹자고 부른다며 가버렸고, 마지막에 따라 한 동작은 동영상을 찍는다던 여자의 부탁.
“뒤에 용사 동상이 검 들고 있던 그거?”
“그렇다오. 여튼… 두 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오.”
이게 이야기의 끝인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해오는 멍멍이. 다 듣고 느낀 소감은, 할 말은 많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함에 누나 눈치를 힐끗 봤는데, 나보다 느끼는 기묘함이 훨씬 더 큰 건지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더라. 내가 뭐라도 말을 해야 대화가 이어질 것 같다.
“너 예전부터 쭉 공원 화장실에서 볼일 봤었냐?”
“가능할 때만 그렇게 해왔소이다.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면 환경미화원분께 민폐를 끼치는 게 되지 않소?”
“그럼 불가능할 때는 언제인데.”
“사람이 많을 때는 아무래도 힘들다오. 변기 칸에 본견이 앉아있는 걸 사람들이 썩 달갑게 여기진 않을 테니 말이오.”
핀트가 좀 엇나가긴 했지만, 포메라니안이 공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란 것만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이다음으로 걱정되던 게….
“오늘 일 빼면 잘 지낸 거고.”
“그럭저럭 잘 지냈다오, 사장님. 며칠 되지 않긴 했지만, 이 근방이 꽤나 살기 좋은 곳이더구려. 영역 다툼에 휘말릴 일이 없기도 하고….”
전에 지내던 공원에선 영역 주인인 떠돌이견들에게 인사도 하고 흑풍파 놈들 눈치도 봐야 했지만, 이 근방은 아예 떠돌이견 자체가 없단다. 정확히는 맹견 출입 금지.
이 녀석이야 맹견과는 사돈의 팔촌 관계인 놈이라 자유롭고, 가끔 마주치는 다른 강아지들도 모두 목줄을 찬 녀석들이라 온순하다고.
“마주쳐서 대화를 나눈다 해도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가 끝이고… 아. 마주치는 분들 주인이 간식을 자주 주기도 하오. 육포라든가, 개껌이라든가.”
“그럴 때면 걔네가 화 안 내냐? 자기들 꺼 니가 먹는 건데.”
“괜찮다고 하시더구려. 어차피 집에 먹던 게 있다면서.”
실제로도 굶은 건 아닌지, 머리부터 꼬리까지를 슥슥 쓰다듬어봐도 털이 가득 쪘다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쇼핑백 안쪽을 꼬리로 툭툭 치며 한마디를 덧붙이는 멍멍이.
“물론, 그중에 사장님네 햄버거만큼 맛있는 건 없었지만 말이오.”
“그러냐. 여튼 잘 지냈다니 다행이네.”
몸에서 나는 떠돌이견 특유의 꼬랑내는 여전했으나, 이젠 쓰레기통 냄새는 안 나고 있다. 방금 말대로 길에서 사람들이 주는 것만으로도 생계가 잘 유지되는 모양이다.
하기사, 간식 받아먹고 고개를 숙여주기만 해도 개를 기르는 입장에선 있는 간식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반응일 것이다. 손 들어 인사해주면 금상첨화일 테고.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겠다는 투니 나도 이 녀석 걱정을 좀 덜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절반만 남은 음료를 홀짝이던 도중, 누나가 손으로 깡통을 구기며 멍멍이에게 말을 걸었다.
“멍멍아. 널 볼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는데 말야.”
“어떤 것이오, 윤하 아가씨.”
“너는 길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아?”
운을 떼고는 멍멍이가 든 쇼핑백을 들어 자기 무릎에 앉히는 누나.
“내가 안타까워서 그래. 이거 봐, 집에서 목욕시킨 지 1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꼬질꼬질해진 거.”
“누나 얘 목욕시켰었음?”
“시켰었지. 그때 개 샴푸 사서 한 번 씻기고 건들지도 않았다고.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면 밖에서 사람들한테 그렇게 시달릴 일도 없을 텐데….”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안타깝다는 어조가 팍팍 묻어나온다. 아까 사람들 앞에서 이 녀석이 근육경련을 호소한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남았나 보다.
“이찬 너도 그래. 얘 밖에서 고생하는 거 보면 답답하지 않냐?”
“나? 나야 뭐….”
“안 답답하냐고, 짜샤.”
답답한지를 묻는다면, 나라고 안 답답하겠냐고. 이 녀석이 매장에 찾아와서 하는 얘기들 중 잘 풀린 얘기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진다든가, 길거리 똥개들한테 조롱을 받았다든가. 들을 때면, 사람 나이로 고등학생도 안 된 녀석이 뭔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살고 있냐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구태여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빤히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나가 이 정도로 티를 내고 있으니….
“나도 니 고생하는 거 보면 답답하긴 하다, 멍멍아.”
“…끼잉.”
“넌 할 말 없어질 때면 꼭 개소리를 내더라.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는 얘긴데, 너 지금이라도 내 집에서 지낼 생각 없냐?”
“그건 굉장히 감사하오만… 미안하오. 사장님.”
내 이럴 줄 알았지. 멍멍이 대답에 누나가 곧바로 멍멍이를 끄집어내서는 눈높이에 대고 앞뒤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애도 아니고, 나이 서른 먹은 사람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다.
“너 진짜.”
“그, 그치만! 본견에겐 꿈이 있단 말이오!”
나한테도 했던 얘기다. 내가 자길 도와줬던 것처럼 자기도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했었지. 헌데 멍멍이가 말을 하다말고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반드시 이루고픈 꿈이 있소. 그 꿈이. 그게….”
“어떤 꿈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그, 본견… 꿈이….”
한참동안 눈만 끔벅이다, 고개를 툭 떨군 채 힘없이 중얼거린다.
“내 꿈이 뭐였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단 걸 느꼈는지 멍멍이를 다시 쇼핑백 안에 집어넣는 누나. 그러고는 날 바라보는데, 난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는 중이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나도 비슷한 걸 한 번 겪어봤었다. 누나에게 쇼핑백을 건네받아 내 무릎에 얹은 뒤 대답해줬다.
“전에 나한테 얘기해줬잖냐. 내가 너 도와준 만큼 너도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고.”
내 말을 듣고도 전혀 실감이 안 난다는 듯 쇼핑백 바닥만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멍멍이. 그러다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 올려다봤다.
“분명 그랬던 것 같소.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랬던 거 맞아, 인마.”
“헌데 그 꿈이 기억이 나질 않았소이다. 본견, 분명 누군가를 돕는 존재가 되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헌데 그게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단 말이오.”
“그 이유는 짐작이 되고?”
“…짐작이 되오. 이건, 필시….”
“네가 여유가 없었을 뿐이야. 나약해서가 아니라.”
멍멍이 눈이 동그래졌다. 자기가 할 말을 어찌 그리 잘 아느냐, 이런 의미에서 이러는 거겠지. 숨을 한 번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쓰레기통에 누가 버린 거 없으면 하루 꼬박 굶고, 잠은 늘 찬 맨바닥에서 자고. 그것조차도 다른 개들 눈치 봐가면서 해야 하고, 눈치 잘못 보면 쫓아와서는 꼬리며 귀며 닥치는 대로 물어대고….”
“…….”
“그렇게 사는데 여유가 어떻게 생겨. 그리고 여유가 없으면 말야, 꿈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안 떠올라. 먹고살 걱정만 가득해져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니까?”
이건 나 역시도 포함되는 명제다. 나도 옛날엔 잘 먹고 잘사는 것보다는 좀 더 완전한 꿈을 갖고 살았다. 단칸방에 물 한 병, 라면 한 개조차 없고, 계좌에 그달 출퇴근할 교통비만 남아있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 더 이상 이렇게 살긴 싫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버린다. 그럼 그게 꿈이 되는 거다.
난 이에 대해 후회는 안 한다. 그러지 못했으면 지금 내가 여기 있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 생각을 못 하면 오히려 그게 망가진 거야. 네 경우엔 뭐, 너만큼 삶이 투쟁인 녀석을 내가 살아서 본 적이 없으니….”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오?”
“어. 내가 너처럼 살았으면, 애초에 그 꿈 잊어버렸던 일로 자책조차 안 했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정하는 게 무의미하단 건 알지만, 지금은 이렇게 위로하는 게 내 최선이다. 내 말에 바닥만 다시금 뚫어져라 내려다보다 중얼거리듯 묻는 멍멍이.
“그럼… 본견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난 먹고살 문제도 해결됐겠다, 아무 생각 말고 며칠 쉬라고 하고 싶은데… 누나는 어떻게 생각함.”
“나?”
아까부터 누나가 계속 듣고만 있더라. 손에는 언제 뜯은 건지 캔 음료 손잡이가 들려있다. 내 말에 자기 머리를 긁적이다, 잘 모르겠다는 듯 대답해왔다.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주제로 얘길 해본 적이 있어야지.”
“이야. 나이 서른에 친구 없는 문제가 여기서 터지네….”
“문제 터진 김에 니 종아리도 한번 터져볼래? 그리고 내가 친구가 있어도 이 얘길 애초에 안 했을 거고―”
“왜?”
“나도 지금 하는 일이 내 꿈이었던 게 아니라서 그런다, 짜샤. 그냥―”
‘난 이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라는 화두의 말을 내뱉고는 굳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누나 눈을 가만히 바라봤는데, 홧김에 필요 이상으로 말을 꺼냈단 느낌이 여실했다.
그러다 자기 금연초를 꺼내서는 주변을 한번 돌아보는 누나. 내 기억으로는 이 근방에 흡연 구역이 아예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슬쩍 주제를 돌렸다.
“금연초는 아무 데서나 피워도 과태료 안 물어. 누나. 니코틴 포함 안 돼서.”
“냄새나잖아. 민폐야.”
“무슨 냄새인데.”
“박하 향.”
“그럼 그냥 피우지?”
“됐어, 버릇돼. 이찬, 멍멍아. 나 한창 교육생 시절에 교관이 뻔질나게 했던 말이 있거든? 네가 바라는 목표를 명확히 하라는 거였는데….”
아까 말 꺼낸 걸 잊으려는 듯 살짝 장황하게 말을 해왔고, 귀 기울여 들어줬다. 헌터 일이 마법을 다루는 일이고 민간인과 엮일 일이 잦은 만큼, 주변에 피해를 안 끼치도록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한다.
“연차 좀 쌓이고 나면 ‘아, 일 귀찮네~’ 하면서 마법 대충 쓰다 마수 다리 뿐지르고, 더 나아가서 동료 발가락 뿐지르는 놈도 있단 말야. 그래서―”
“대충 알겠고, 누나. 그 얘길 지금 왜 하는 거야?”
“누굴 돕는다는 건 좋아. 멍멍아, 이건 나쁜 얘기 하려는 거 아니야.”
말하며 쇼핑백을 들어 나와 자기 사이에 놓고는, 안을 들여다보며 묻는 누나.
“누굴 돕는 것도 말야, 세상 사람들 다 도울 거 아니잖아. 그렇지?”
“어… 그렇소.”
“그럼 누구를 어떤 직업으로 도울 건지부터 명확히 하는 게 우선이지. 소환사들 상담이라도 해주려는 거야? 아니면 심리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