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
이세계 편돌이-1화(2/331)
1화. 적응하는 편돌이 (1)
내가 편돌이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빌어 처먹을 코로나가 내가 다니던 회사를 조졌기 때문이다.
19년도에 입사해서 올해로 딱 2년. 이 2년 내내 일감이 워낙 불규칙했던 터라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도 ‘일시적인 거겠지―’ 하며 낙관했는데, 어느 날 회사에 도착해서 보니 사무실 문이 잠겨있었다. 내부는 태풍에 직격당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고 말이다.
처음엔 그냥 어이가 없었다. 뒤집힌 책상들 중에 대체 어느 게 내 거야? 이러고나 있었지.
이게 당최 뭔 일인가 싶어 상사한테 전화를 해 봤는데, 당연히 받을 리가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맡고 있던 거래처에도 연락해 한번 물어봤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 대리님 회사 망한 걸 왜 제게…. ]그렇다. 난 내 회사 망한 이유를 딴 사람에게 묻는 등신이 된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후 내 회사가 풍비박산 났단 걸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에 꼬박 사흘이 걸렸고, 납득한 뒤에 솟아오른 감정은 중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었다. 중국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한 80개 정도?
어쨌든 먹고살 길은 찾아야 했다.
첫 한 달은 다른 취직자리를 알아보려 했다. 근데, 당연히 취직이 될 리가 없었다. 코로나로 박살 난 게 내가 다니던 회사만이 아니었을뿐더러, 회사에서 내가 맡았던 업무가 좀… 두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을 계약된 매장에 설치한다.
그러다 도중에 누가 CCTV 까는 것 좀 도와달라 하면 도와주고, 매장 점주가 처음 보는 기계 조작법 좀 알려달라 하면 ‘아니, 우리 회사 기계도 아닌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면서도 내가 설명서 읽어다가 알려주고, 설치 끝내고 나면 A/S는 내가 다 담당했고….
쉽게 말해, 그냥 시키는 걸 다 했다는 소리다.
한 가지 업무를 전문적으로 파기보다는 여러 업무를 두루 봤던 탓에 취직 포트폴리오엔 하등 도움이 되질 않았고, 외에 달리 적을 것도 없었다. 고등학교 개근상 따위를 적을 수도 없었고, 대학은 아예 못 나왔으니.
한 달 내리 취직에 실패하고 나서 고른 차선책이 알바였다.
물론 알바라고 구하기 쉬웠던 건 아니었다. 공장 알바는 연락하는 족족 죄다 구했다질 않나, 카페나 서점 같은 알바는 29세는 나이가 많다질 않나.
가끔 어플에 등록해 둔 이력서를 통해 전화가 몇 번 오긴 했는데, 받으면서 울화통만 터지더라. 전라도 양말공장 2교대 알바를 경기도 사는 내가 도대체 뭔 수로 하냐고. 최소한 이력서는 읽고 전화를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장난 전화만도 못한 연락을 2주간 수십 개쯤 받다 지쳐 바람이나 쐬러 나갔던 게 오늘 오전.
2주간 집 밖으로 안 나갔던 사이 집 근처 풍경이 조금 바뀌어 있었는데, 근처에 편의점 하나가 생겨난 게 그중 하나였다. 정문에는 ‘알바 구합니다’라 인쇄된 A4 용지 한 장이 붙어 있었고.
아직 구하나?
의식의 흐름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카운터엔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밖에 안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알바겠거니 하며 물었다.
“저, 문에 공고 보고 들어왔는데요. 혹시 점장님께서 아직도 알바 구하고 계시나요?”
“…어, 네, 네! 아, 구하고 있어요! 제가 점장이구요.”
“네?”
여기서 한 번 당황했다. 점장 선언을 해온 이 여자가, 차마 믿기 힘들 정도로 동안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후의 행동을 보니 점장이 맞기는 했다. 기다렸다는 듯 종이를 꺼내 들고는, 창가 자리로 날 불러 앉힌 뒤 맞은편에 앉아서는 펜을 집어 들고 내게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찬, 입니다.”
“혹시 전에 편의점 알바 해보신 적 있나요?”
“네.”
취업하기 전에 짬짬이 해봤었다. 기간 다 합치면 1년 정도. 내 대답에 점장은 싱글벙글한 얼굴이 되어, 종이 첫 줄에 내 이름을 적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그럼 금방 적응하시겠다. 그럼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29살입니다.”
“딱 적당하네. 저는 나이가… 음….”
자기 나이를 말하려는 듯했던 점장이 느닷없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 나이 말하는 데에 고민은 왜 해?
“…아무튼 이찬 씨보단 나이가 어, 조금 많아갖구. 혹시 말 편하게 해도 되나요?”
“네, 괜찮아요.”
난 나이는 딱히 신경 안 쓴다.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건대 채용이 되긴 할 것 같고, 월급 주면 다 어르신이요 형, 누나니까, 뭐.
“응, 알았어. 그러면, 일단 수당은….”
줘봐야 얼마나 주겠어 싶었으나, 이후 점장이 꺼낸 말들은 하나같이 다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일단 시급은 깔끔하게 만 원.”
“네? 최저 아니고요?”
“최저시급이 얼만데?”
이걸 피고용인인 내가 말하는 게 맞나 싶지만, 상사 될 사람이 물은 거라 대답은 했다. 올해가 2021년도니까….
“8,720원일걸요? 제 기억으로는.”
“시급이?”
“네.”
“그거 받고 어떻게 살아?”
“그거 받고 못 사니까 그렇게 주는 거죠. 빨리 취직하라고.”
난 그걸 못 해서 알바 하러 온 거긴 하지만 말야. 점장은 납득이 된 듯 아닌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난 만 원 줄 거야. 나중에 물론 올려 줄 거고. 근데,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취미라고 해봐야 게임 말곤 없었고, 한번 게임에 빠지면 피시방비로 몇만 원씩 갖다 박고는 했으니까. 돈 벌려면 차라리 일하면서 게임 생각을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근무 시간은 하루 12시간.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
“야간 12시간이요?”
“응. 남은 12시간은 내가 보고.”
뭔 근무 시간이 이러냐. 막 오픈한 편의점이라 아직 알바 자리를 덜 구했다든가, 뭐 이런 건가….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괜찮다고 했다.
편의점 일이 몸이 힘든 게 아니잖은가. 재고정리하고, 인수인계 끝내고 나면 스마트폰 들여다보며 노닥거리는 게 전부니까. 여유시간 동안 아예 다른 취직자리를 알아봐도 상관없고.
다 떠나서, 내가 근무 시간이고 뭐고 가릴 처지가 아니다. 당장 다음 달 집세를 못 내게 생겼는데 뭘 어떻게 해?
그래도 보험은 들어놨다.
“그래도 힘들어지면 따로 말씀은 드릴게요.”
“그땐 내가 대타 뛰지 뭐.”
“대타요? 다른 알바생 구하시는 게 아니고?”
“안 구해지는 걸 어떻게 해.”
왜 안 구해지는지 모르겠다. 이 시국에 시급 만 원 준다 하면 공장일 때려치우고 올 취준생들이 수두룩할 것 같은데 말야.
“어쨌든 찬아. 알바, 할 거야?”
“해야죠. 요새 일 구하기 적당히 어려워야지.”
“그렇긴 하지. 얼마나 할 생각이야?”
“글쎄요, 아마 1년은 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코로나 끝나기만 하면 1년이든 반년이든 상관없었다. 그때는 그래도 취직할 수 있겠지….
“그럼 그렇게 적어두고, 잠깐 계산대 쪽 좀 보여줄게.”
이후에는 간단했다.
계산대에서 인수인계하는 거 잠깐 보고, 물류 정리는 대체로 점장이 다 받지만 아주 특수한 상황에는 새벽에도 물류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아무래도 의아해서 물었다.
“새벽에도 물류가 와요?”
“응. 근데 진짜 급한 거 아니면 잘 안 와.”
편의점에서 급한 물류 받을 일이 대체 뭐가 있나 싶었으나,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새벽 2시에 쓰레기 버리고, 음… 그리고….”
“네.”
“진상 손님들 적당히 받아주고.”
“그건 걱정 마셔요. 진상 상대하는 건 익숙해서.”
이건 자신 있다. 회사에서 내가 맡았던 업무 중 하나가 진상 받는 일이었으니까.
예를 하나 들자면, 회사 제품을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한 탓에 정말 오만 곳에서 연락이 왔고 요구 조건이 다들 똑같았다. 당일 A/S 해주시면 안 되냐고.
그리고 내 몸뚱어리는 여분이 없었기 때문에, 거제도와 속초에서 동시에 연락이 오면 둘 중 어느 곳을 그날 다녀와야 할지를 취사선택해야만 했다. 한 곳을 고르고, 다른 곳에 전화해 오늘은 힘들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익숙해졌다. 편의점 손님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겠지.
“다행이다. 일단 알려줄 건 다 알려준 거 같은데, 더 궁금한 거 있어?”
“뭘 궁금해해야 할지 모르겠어 가지고.”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어지간한 건 다 알아서 돌아가게 해놨으니까.”
뭐가 알아서 돌아간다는 건지.
이 부분도 궁금했으나, 묻지는 않고 일단 집에 돌아왔다. 오늘 야간부터 근무하려면 미리 쉬어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람을 맞춰 놓고 침대에 눕자, 교육받을 때는 들지 않았던 의문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 점장이 일반적인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아니, 대체 몇 살이야? 아무리 좋게 봐줘야 내 밑으로 띠동갑이지, 나이가 많을 것 같진 않은데.
더해서 말하는 투로 보건대, 편의점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최저시급이 얼만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금수저가 취미로 운영하고, 그런 건가?
게다가 이런 고소득 알바를 왜 내가 구할 때까지 다른 사람은 안 한 것이며, 점장은 알바생 한 명 온 거 가지고 왜 그리 싱글벙글했던 건지….
그 답을 첫 손님 받자마자 바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이 편의점엔 뱀파이어가 오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점장님. 아까 진상 손님 온다 했던 게 이런―”
전화에 대고 물어보려 했으나, 막 들어온 손님을 본 직후엔 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어서 들어온 건 1m도 안 될 키에 허리가 구부정하고, 수두라도 앓았던 듯 곰보 같은 얼굴을 한 녹색 괴물.
그 외에 특이점은 코가 굉장히 대단해서, 보는 순간 ‘저거 이름이 뭔지 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팍 떠올랐다. 그러니까, 저거 고블린 아닌가?
고블린의 목소리는 째지는 고음이었다.
“맥주 어딨어?”
이놈은 왜 다짜고짜 반말이야?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손가락으로 주류 방향을 가리켰으나, 고블린은 얼굴을 찌푸릴 뿐이었다.
“니 나 키 작다고 무시하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니가 어딜 가리키는지 내가 보이겠냐고. 키 큰 게 자랑이야?”
이런 진상을 만날 때의 해결법. 기분 나쁘다고 일일이 대꾸해 봐야 속은 절대 안 풀리니, 그냥 원하는 거 쥐여 줘서 보내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카운터 밖으로 나와서 아예 술 파는 곳까지 같이 가 준 뒤에 돌아왔다. 잠시 후 맥주 네 개를 꺼내 가져와서는 카운터로 가져와 계산대에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네 캔 만 원 맞지?”
“네.”
대답하자, 이번에는 묵직한 검은 봉투 하나를 들어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다. 뭔가 싶어 열어보니 100원짜리가 잔뜩 들어 있었다.
“100개 좀 넘을 건데, 한번 세 봐.”
이야, 이 안에 든 게 다 100원짜리라고…?
속으로 구시렁대면서도 100원짜리를 10개씩 세기 시작했다. 어쨌든 일은 일이었으니까. 전화는 머릴 기울여 어깨와 귀 사이에 끼워둔 상태였고. 점장과의 전화가 아직 안 끊겨서였다.
[ 찬아? 정말 일 그만둘 거야? ]“잠깐만요, 이것 좀 세고….”
100원짜리 100개를 다 세고 고블린한테 맞다고 하니, 이어서 고블린은 다른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 만 원짜리로 바꿔줘.”
“…….”
“두 장.”
아, 이놈 참 진상이네, 진짜….
잔돈을 마저 바꿔주고 고블린을 보낸 뒤, 전화에 대고 물었다.
“점장님. 방금 녹색 땅꼬마 손님 한 명이 왔다 갔는데요.”
[ 어. 왜, 상품 상태 보고 막 트집 잡고 그랬어? ]“왜 편의점 손님으로 고블린이나 뱀파이어가 오는 겁니까?”
[ 이번 좌표를 그쪽으로 잡아서 그래. 찾아가서 장사하는 게 손님 더 많이 오거든. ]“황금마차도 아니고 편의점이 손님을 찾아가요? 발이라도 달렸나?”
[ 발은 무슨, 당연히 마법이지. 발 달아서 움직이려면 발을 몇 개를 달아야 되는데. ]대화의 핀트가 점점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것보다 방금 점장이 뭐라고 했냐. 마법?
“아니, 잠깐만요. 마법이요?”
[ 응. ]“왜 편의점에 마법이 걸려있는 건데요?”
묻자, 점장은 시원스레 답했다.
[ 내가 걸었으니까. ]“허어….”
허어, 허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