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0)
이세계 편돌이-199화(200/331)
199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4)
* * *
누나가 자기 경험에 빗대어 설명해줬는데, 소환 마법을 사용하는 직군 종사자들이 우울증을 유독 심하게 앓는 편이라고 한다. 특히 사회초년생 소환사들.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 사회초년생들을 몇 번 봤거든? 걔네들이 소환하거나 사역한 정령이 힘에 부치거나, 마력이 다 돼서 사라지는 것들도 봤고.”
“흠….”
“그때마다 걔네들이 짓는 표정이 죄다 똑같아. 자기 반쪽이 사라진 것마냥 우울해하더라고.”
사람이 진입하기 위험한 화재나 지진 등. 어디가 터지고 어디가 무너질지를 전부 예측해 연산식을 짤 수가 없으니, 아예 소환수와 생각과 감각을 연결해 직접 제어하는 방식을 쓴다고 한다.
이 방식 중 가장 효율적인 게 연산식에 시전자의 사고 과정이나 성격 등을 추가로 작성하는 것인데, 이게 장점에 비해 단점이 크다고.
“제어가 잘 돼. 소환사 생각이 빨리 전달이 되거든. 단점은… 본인이 말한 게, 자기 말 그렇게 잘 들어주는 건 자기 소환수가 처음이라더라. 친구 같대.”
물론 베테랑 소환사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랜다. 아무 감정이 안 드는 건 아닌데, 일에 익숙해진 만큼 보내는 법도 잘 아는 것 같다고.
초년생 소환사들도 소환 마법 쪽으로 진로를 잡거든 이 점을 집중적으로 교육받는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자주 그러더라고. 자기 소환수랑 대화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멍멍이가 동물이나 마수랑도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으니까―”
소환수와 소환사 간의 대화를 통역해주는 일만으로도 갑부가 될 수 있지 않겠냐. 이게 누나 의견이었는데, 머릿속에 곧바로 반박이 떠올랐다.
“그건, 누나. 대화가 통한다 치고, 만약에 소환수가 ‘난 소환사와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하면. 그땐 어떻게 해.”
“그땐… 에이, 씨.”
“그런 다음에 사라지면 멘탈 제곱으로 터지는 거 아냐?”
매정하다 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이 일은 진짜 아닌 것 같다. 빨간 약 먹이는 거잖아.
나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멘탈 터질 게 뻔하고. 그래서인지 반박이 쉽게 떠오르더라. 누나도 바로 이해했는지 별말은 안 했고, 대신 내게 다른 걸 물었다.
“그럼 이찬 넌 생각해둔 거 있냐?”
“있는데, 우리 음료수 하나씩만 더 사 오자. 멍멍이 넌 목 안 마르냐?”
“본견은… 크흠.”
우리 얘길 집중해서 듣고 있었던 건지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쇼핑백을 바스락거리며 대답해왔다.
“외상값에서 제해 주시고, 같이 가겠소. 사장님.”
“싫어, 인마. 너 살쪄서 무겁다.”
“그런…!”
“농담이고,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그냥 있어.”
뭔가를 더 말해온 멍멍이에게 쇼핑백 입구를 접는 걸로 대답한 뒤, 누나와 일어나 자판기 쪽으로 향했다. 충분히 멀어졌다 싶을 즈음 누나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방금 다 마셔놓고 벌써 목이 마르냐?”
“아니.”
“그럴 거 같더라. 뭔 얘길 하려고 그래?”
“그냥 잡생각인데, 쟤가 듣긴 좀 그런 거.”
그래도 저 녀석 목마른 건 맞을 테니, 물은 뽑아다 줘야지. 여튼….
나도 직업에 관해 멍멍이와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멍멍이가 내게 자기가 할 만한 일이 뭐였는지를 물었었고, 내가 추천해 줬던 게 애견카페 터줏대감, 펫 푸드 테이스터 이런 것들.
“그런 것들을 추천해줬다고?”
“얘 그때 집 나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단 말야, 누나. 얘도 사회초년생인 셈이니 쉬운 것부터 추천해준 거지….”
더해서, 나도 마찬가지로 내 세상 나온 지 1주일도 안 됐을 때였다. 오크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말하는 강아지가 이렇게까지 희소종 취급받을 줄 내가 알았겠어?
지금도 인생게임 플레이타임 한 달 반 뉴비인 건 변함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보단 지금이 머리가 좀 더 잘 굴러가고 있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저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많을 텐데, 어떤 일이든 전제가 있어, 누나. 세상에 그 일 하는 게 저 녀석 하나뿐이면 안 됨.”
“왜. 눈에 띄는 거?”
“눈에 띄는 수준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아까 봤잖어. 쟤 동상 흉내 내는 것만으로 조회수 100만이니 뭐니―”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그 정도 파급력을 지닌 녀석인데, 저 녀석이 ‘사실 나는 말을 할 줄 안다오―’ 하고 커밍아웃을 했단 봐. 반경 5km 내의 개 기르는 사람들은 싹 다 몰려올 게 분명하다.
“자기 개가 뭔 말 하는지 알려달라면서 다 찾아올 건데, 그걸 다 해줬다간 스트레스 장난 아닐 거 아냐. 애 단모종 만들 일 있나….”
“야, 이찬. 그런 식이면 다른 일도 다 똑같이 못 하는 거잖―”
“그것도 아까 똑같이 봤잖아, 누나. 쟤 동상 자세 따라 한다고 앞뒷발 부들부들 다 떨 때, 저 녀석 걱정한 사람이 우리 둘 말고 더 있었어?”
이걸 말하자, 누나가 말하려던 쿡 삼키고는 입을 우물거렸다. 난 이 점이 걱정된단 거다. 내가 거기 몰려있던 사람들 안색을 다 확인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들고 있던 폰 카메라가 내려갔단 인상도 없다. 적어도 그 순간, 그 사람들한테 저 녀석은 신기한 강아지 그 이상도, 이하도 못 됐단 얘기다.
“거기서 나나 누나가 그러고 있었으면, 아무리 못해도 한 명은 힘들어 뵈니 좀 쉬라고 말을 해줬을 거잖아. 사람이니까.”
“…….”
“난 그게 짜증 난다고. 저 녀석이 사람이랑 똑같은 일을 해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존중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거.”
그 반응들을 이해는 한다. 나도 처음 만났을 땐 내가 헛것을 보고 있나― 생각했었으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대화를 나누다 친해졌을 뿐이고―
또, 혹시 모르잖은가. 그 자리에서 저 녀석이 힘드니까 못해먹겠소― 하고 나뭇가지를 집어 던졌으면, 그땐 사람들이 힘든 거 이해해주고 물 한 병이라도 건네줬을지도 모르지.
“아니, 안 그랬을 것 같다. 이찬.”
“그래?”
“니 말 듣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고. 난 그냥, 쟤가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너무 아깝게 사는 것 같아서 말해본 거고….”
“아까운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게 아니지, 누나.”
“뭐?”
“우리 아직 저 녀석 얘기 끝까지 못 들었잖어.”
소환사와 소환수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 이 의견에 대한 멍멍이 대답을 아직 못 들었다. 하면 안 될 짓이라고 내가 못을 박은 만큼 그 일을 정말 하려고 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구’를 돕고 싶은지 고민할 계기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누나랑 적당한 마실 거리를 뽑아 돌아가자, 쇼핑백이 또 다시 바스락거렸다.
“오셨소이까. 입구가 닫힌 탓에 보이는 게 없어서 말이오….”
“주변에 사람 없었으니까 걱정 마, 멍멍아. 여기 물.”
아예 멍멍이를 꺼내 벤치에 내려놓고는 병뚜껑에 물을 담는 누나.
고개를 꾸벅인 멍멍이가 병뚜껑에 담긴 물을 핥아먹으려 했는데, 한 번 핥자마자 병뚜껑이 앞으로 훅 날아가 떨어졌다. 혓바닥 힘이 좀 셌다.
“미, 미안하오. 윤하 아가씨. 그냥 바닥에―”
“바닥 물을 왜 먹어. 병뚜껑 잡아줄 테니까, 다시―”
“그러지 말고, 누나. 쇼핑백 방수잖어.”
쇼핑백을 옆으로 눕힌 뒤, 가장자리 부근을 구기듯 접어 그릇 모양으로 만든 뒤 물을 따라봤다. 물이 반쯤 채워질 즈음 그릇이 한 번 휘청이긴 했으나 쏟아지진 않았다.
만들어놓고 보니 그릇이 꽤 크다. 바라보던 중 불쑥 말이 튀어나왔다.
“나 공사판 가서 일할 때면, 공사판 십장이 이만한 그릇에 막걸리 따라주고 그랬었는데.”
“갑자기 뭔 소리야?”
“그냥 갑자기 생각났음, 누나. 그때 그 양반이 누가 안 뺏어가니까 천천히 마시라 했었는데… 너도 천천히 마시라고.”
진짜 불쑥 튀어나온 말이라 수습이 안 된다. 얼버무리듯 맺자, 물그릇에 비친 자기 얼굴을 내려다보다 대뜸 말했다.
“세상 사람분들이 다 두 분만 같았다면 좋겠구려.”
“시끄럽고 물이나 먹으라고, 빨리.”
“아, 알겠소. 그 전에, 아까 두 분께서 대화하신 걸 듣고 기억난 게 있소이다.”
“그래? 어떤 거야, 멍멍아?”
“본견이 옛날에 하늘을 나는 고래분을 만났던 적이 있소, 윤하 아가씨. 그때 사장님께서도 같이 계셨었는데….”
못 잊어서 기억하고 있는 그 일이다. 사거리에서 꽃가루로 난리가 났을 때, 그걸 방역한다고 하늘을 나는 고래 한 마리가 사거리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그 고래랑 대화를 하게 됐고 사정까지 전부 다 듣게 됐는데, 그 녀석 말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부럽다…고 하셨소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게 말이오. 자기는 본견처럼 말을 못 하신다면서.”
말한 뒤, 고개를 들어 우릴 바라보며 묻는 멍멍이.
“그 고래분이 본견과 같은 영물이셨고. 그렇다면, 다른 영물분들도 그 고래분과 똑같이 힘들지 않겠소이까?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이건 난 모르지만, 그 고래 녀석이 대화가 안 통하는 문제로 외로워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그럼 그 녀석을 찾아가면 그 고래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겠지. 다른 영물들을 만나보면 아주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고민 하나씩은 안고 있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까. 영물들을 찾아가서 얘길 들어보고 싶다?”
“그렇소이다. 윤하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대로요. 본견이 모든 강아지, 새,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없소. 차라리, 가장 힘들어할 분들이라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면 어떻겠냐는 생각…이었소이다.”
말하면서도 자신이 없는지, 물그릇의 물을 연신 핥짝이기 시작하는 멍멍이. 멍멍이를 가만 내려다보던 누나가 반쯤 어이없다는 어조로 내게 물었다.
“너 하늘 나는 고래는 또 언제 만났었냐?”
“…예전에 꽃가루로 누나 쌩고생했었던 적 있잖어. 그거 방역한다고 날아다니던 녀석 붙잡고 얘기했었지. 등 가렵다길래 내가 긁어서 꽃가루 떼줬고.”
난다고래 녀석이 방역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됐고, 누나가 잔업 뛸 일도 사라졌었다. 이제야 정황이 파악됐는지 눈가를 씰룩이기 시작하는 누나.
“야이, 씨. 그걸 티라도 한번 내지―”
“티 내는 거 까먹어서 티 못 냈음.”
누나 잔업 안 한단 얘기 듣고 만족해서 티 내는 걸 까먹었었다. 누나가 더 말하려는 눈치라 얼른 멍멍이에게 마저 말했다.
“그건 직업은 아니잖냐. 너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살려고?”
“그…건. 본견, 이 구역에서 지내는 걸로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
“아, 무보수로 일을 하겠다.”
“…그렇소이다. 혹시 본견이 무모한 짓을 하려하는 것이오?”
“어.”
내가 열정페이라는 말을 끔찍이 싫어해서 이런다. 멍멍이가 곧바로 꼬리를 축 늘어뜨리길래 바로 덧붙여줬다.
“그러지 말고, 이왕 할 거면 돈 받아 가면서 해. 인마.”
“그…렇게 말씀하셔도, 본견이 은행 계좌 같은 게 없어서 말이오….”
“그거 말고, 너 우리 집에 영물 한 마리 있던 거 봤잖냐. 직접 만나도 봤고.”
고개를 끄덕이는 멍멍이. 안 그래도 이 녀석 만나거든 이걸 한번 부탁해 보려고 했었다.
“내가 그 털뭉치 놈 사정이 궁금해서 그런데, 걔 첫 일 삼아서 좀 해주라. 보수 낭낭하게 챙겨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