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1)
이세계 편돌이-200화(201/331)
200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5)
* * *
이게 개인적인 사유 반, 공익적인 사유 반으로 부탁하는 거다. 고양이가 영역동물이고, 자기 영역에 누가 침입하는 걸 반기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걸 존중은 해줄 수 있다. 애초에 생후 4개월도 안 된 녀석이니까. 헌데 반기지 않는답시고 하는 짓들이 도가 좀 지나치다. 이놈이 누가 들어오려 하면 숨는 게 아니라 집안 물건부터 집어 던지고 보잖는가?
이러면 손님도 택배도, 가스점검도 수도점검도 다 못 받는다. 열 번 양보해서 손님이나 택배는 집 밖에서 받는다 쳐도, 점검들을 내가 할 수는 없잖아.
“이게 개인적인 이유고, 그… 털뭉치 녀석이 뭐가 불만인지 좀 알고 싶어서 그래.”
“그 고양이 이름을 털뭉치라 지으셨소, 사장님?”
“이름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 여튼 내가 지금은 그 집에 살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평생 살지는 않을 거란 말야. 나 나가면 그놈이 어떻게 굴겠냐?”
들어오는 세입자란 세입자는 죄다 내쫓을 테고, 나중엔 경찰이든 뭐든 들이닥치고 로비 출입구에 출입 금지 테이프가 붙든 할 것이다. 집에 마귀가 들렸다면서 말야.
안 그러려면 진즉에 그놈을 교육을 시키든 해야 할 텐데, 그걸 가장 효율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멍멍이 이 녀석이다. 난 그놈이랑 말이 안 통하니까….
“본견, 전에도 말을 걸어봤소만… 그 고양이가 특별히 말이 없던데 말이오.”
“그건 해보고 안 될 때 다시 얘기하자고. 선금 챙겨줄 테니까.”
이미 금액도 책정해 뒀다. 내가 그 고양이 담당이 되는 조건으로 집주인이 월세 두 달 치를 깎아줬다. 그 절반 정도면 되겠지.
“월세로 한 달에 얼마를 내시는 것이오?”
“우리 매장 햄버거 평균가가 2,000원이잖냐. 100개 값쯤 한다.”
“맙소사, 100햄버거라니…!”
허용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액수였는지 멍멍이가 충격에 전율하기 시작했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누나가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좋은 계획 맞아?”
“나도 몰라. 그래도 그 녀석이 영물인 건 맞으니까….”
내가 영물들을 몇 만나며 체감한 게 있다. 이놈들이 일반 동물들에 비해 지능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할 말 다 하던 고래 놈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또….
“…누나 말고는 아무도 안 태운다는 그 녀석도 있잖어. 누나 데리고 다니는 말.”
“있지. 걔 왜.”
“얘 걔랑도 얘기해 봤었잖아. 뭐 들은 거 없어?”
“어? 그때 얘기 아직 안 해줬었냐?”
“안 해줬음.”
사거리로 이사 오기 전에 누나가 멍멍이를 데리고 같이 날아갔던 걸 본 게 마지막이고, 아직 후속 얘길 들은 적이 없다.
누나가 그때 일을 떠올리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찰나, 누나 폰에서 톡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세 번을 연달아서 말이다.
바로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한 뒤, 작게 한숨을 내쉬는 누나. 미처 묻기도 전에 폰을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이찬. 나 손님 받으러 간다.”
“아니, 일요일에 뭔 놈의 손님?”
“나도 모르겠고, 그 손님이 소장을 자꾸 찾는대. 하여간 부소장을 괜히 한다고 해서….”
“소장 찾는 거면 소장이 가야 되는 거 아냐?”
“그게… 하여튼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싫은 기색이 없는 걸 보면 이미 자기가 가기로 마음을 굳힌 듯 보인다. 허리를 숙여 꼬리를 살랑거리던 멍멍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누나.
“멍멍아. 나 일하러 가볼게.”
“아이고. 주말에 고생하시는구려….”
“너도 나중에 직업 구하거든 헌터는 절대, 죽어도 하지 마. 알았지.”
“새겨듣겠소이다.”
“이찬 너도.”
“걱정 마셔. 난 편돌이랑 반마법사나 하면서 살 테니까.”
우리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누나가 걸어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 폰으로 톡을 한 줄 보내봤다.
톡 전송되는 소리에 멍멍이가 귀를 쫑긋하고는 묻더라.
“어떤 톡을 보내신 것이오, 사장님?”
“누나한테 술 사달라고 보냈다. 밥 말고.”
누나가 오늘 했던 말들 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였다. 난 이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가 이렇게 힘들게 산다며 가볍게 징징대는 건 자주 있었지만, 헌터 일을 원해서 하는 게 아니란 얘기는 오늘 처음 듣는다. 하기사, 마수 때려잡는 일을 어느 누가 순수하게 원해서 하겠냐마는….
모르겠다. 나야 치안 좋은 곳에서 살다 와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고, 이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는 다를 수도 있겠지.
생각하던 도중, 멍멍이가 쇼핑백을 구기며 벤치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한마디.
“윤하 아가씨께도 고민이 있어 보이는구려.”
“그러게. 본인이 말 안 하면 모르는 거지만 말야.”
그러니 얘기도 들을 겸 술이나 한잔하겠단 거다. 어차피 나도 누나 빼면 술 같이 마셔줄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니까.
* * *
현재 시각이 9시 반. 집에 돌아가기 전에 매장에 잠깐 들렀다. 선금으로 줄 햄버거를 하나 챙겨줄 생각에서였다.
“어서 오… 웬 강아지예요, 오빠.”
겸사겸사 서로 안면도 트게 하고 말이다. 유리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내게 말해왔다.
“이 강아지, 아까 얘기했던 그 강아지인데.”
“그러냐. 얘 우리 매장 단골손님이야.”
“?”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괜찮으니까.”
몸을 숙여 멍멍이에게 권하자, 멍멍이가 주저하면서도 유리를 올려다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본견, 멍멍이라 불러주시오.”
“어….”
“그, 아침에는 말없이 도망가버려서 죄송하오. 본견, 늘 계시던 시간에 사장님이 안 계시니 당황스러웠던 탓에….”
이러고는 줄줄 말을 늘어놓는 멍멍이. 이곳 사장님과 대사장님께 줄곧 신세를 져왔다는 둥, 올해로 두 살이라는 둥,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둥….
다 듣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말없이 멍멍이를 내려다보다, 손님이 한 명 들어와 주류 코너로 갈 즈음이 돼서야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말하는 강아지 보는 거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나도 이 녀석이 처음이야. 근데 별로 놀란 눈치는 아니다?”
“엄청 놀란 건데요?”
“아, 그러냐.”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저 얘랑 얘기 좀 해볼래요, 오빠.”
“지금 말고 내일 해, 내일. 손님 왔잖어.”
너도 봤다시피 얘가 말하는 거 보고 놀랄 사람이 많다. 이걸 간결하게 설명해 줬는데, 유리 녀석이 어지간히도 불만스러운지 볼을 크게 부풀려 왔다.
내가 여태 본 것 중 가장 불만족스럽다는 얼굴이다. 그러다 곤란해하는 멍멍이를 슥 내려다보고는, 나름대로 합의안을 내놓았다.
“그럼 전화번호 교환하자. 밤에 톡할게.”
“끼잉….”
“전화번호는 뭔 놈의 전화번호야. 나 햄버거 하나만 줘봐, 집에 가게.”
“오빠가 가져와요. 난 뭐 농담도 못 해.”
“뭐. 삐졌냐?”
“…….”
“근데 니가 삐져서 뭐 어쩔 건데. 남은 근무 시간 동안 카운터 지키는 거 말고 니가 뭘 할 수 있냐고ㅋㅋㅋㅋ”
이렇게 대꾸하니까 애가 진짜 삐졌다. 카운터를 발로 툭 차더라.
사과한 뒤에 햄버거 세 개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웠는데, 그래도 천성이 순한 녀석이어서인지 데우는 건 또 쫓아와서 잘 도와줬다.
하나는 먹으라고 건네준 뒤, 눈에 띄게 아쉽다는 눈빛의 유리 녀석을 뒤로하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골목에 접어들 즈음 멍멍이가 입을 열었다.
“좋은 분 같더구려, 유리 아가씨.”
“좋은 녀석 아니었으면 안 뽑았지.”
“나중에 개인적으로 따로 찾아봬도 되겠소이까? 물론 전화번호는 교환 못 하겠지만 말이오.”
“오는 거야 언제 오든 니 자유지.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만 안 오면 된다.”
“그때는 왜 안 되는 것이오?”
등교를 앞둔 꼬맹이들이 교문 앞에서 얼마나 난폭해지는지를 마저 설명했고, 집 문 앞에 도착할 즈음 딱 끝났다. 설명을 다 들은 멍멍이 꼬리가 쭈뼛해졌다.
“세상에. 하나 아가씨는 세상 얌전하기만 하시던데 말이오….”
“혹시 모르지. 걔도 내년에는 풍선껌을 잘 부는 꼬마 드래곤이 될 수도….”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시오?”
“진심이겠냐. 야, 문 열 테니까 일단 가만히 있어 봐. 알았지.”
말한 뒤 곧바로 현관을 열자, 누나가 주고 간 이불이 싱크대 위에 팽개치듯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이러고 나서야 이불에 얻어맞은 분이 풀렸나 보다.
직후에는 곧바로 거실에서 타닥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거실과 현관을 잇는 복도에서 소리가 딱 멎었다. 그다음엔 날 선 울음소리.
“우냐옹….”
“멍멍아. 저건 쟤가 뭐라고 말한 거냐.”
“우냐옹, 이라 하는데 말이오.”
“그건 나도 그렇게 들리는데?”
“하아악!!”
이건 나도 뭔 뜻인지 알겠다. 들어오지 말라는 거겠지.
하악질 소리와 동시에 싱크대에 널브러져 있던 이불이 두둥실 떠올라서는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손으로 붙잡아 막아보려 했는데, 이불이 내 손을 피해서는 아예 팔을 칭칭 감싸더라고?
이불 컨트롤이 예사롭지가 않다. 팔에 칭칭 감싸진 이불을 붙잡아 푸는데, 이번엔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가관이다.
“야 씨, 니 나한테 물 쏘지 마라. 사료 압수당하고 싶어?!”
“냐아아옹. 냐아앙, 하아악.”
꿍얼대면서도 물줄기 수압이 여전했다. 하긴, 저 4개월 먹은 털뭉치 놈이 사료며 압수 같은 단어를 알아처먹을 리가 없….
“사장님, 사장님. 방금!”
“어.”
“방금 저 고양이가 말을 했소!”
“뭐? 쟤가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야?”
“방금 본견 귀로 똑똑히 들었소. 압수라는 말을 할 거면 밥그릇에 사료부터 제대로 채우고 하라고 말이오.”
왜 말이랍시고 하는 게 이따위인진 모르겠다만, 그래도 저 녀석이 말을 할 줄 알긴 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쟤한테 물부터 끄라고 좀 해봐. 저놈 물 쓰는 게 나보다 수도세가 더 나간다고.”
“알겠소이다. 저… 고양이 양반.”
“캬아악!!”
“캬아악, 이라고 하는구려.”
“아니, 저놈은 왜 말을 했다가 말았다가 하냐?”
“냐아아아아옹… 냥.”
우리 말마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오는데, 두 번째로 들어서인지 묘한 패턴 같은 게 느껴진다. 멍멍이 말에는 단답형, 내 말에는 장문의 울음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다.
이를 멍멍이가 해석해 줬고, 패턴이 다른 이유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한낱 강아지한테 말을 왜 하겠냐, 바보야. 라고 하는구려.”
“…그러니까, 저 녀석이 지금 내 말 말고는 아예 대답할 생각조차 안 하는 거다?”
“냐옹. 냥.”
“넌 밥을 주니까, 바보야. 라는구려.”
저 털뭉치는 내가 밥 준 거 말고 뭘 잘못했다고 자꾸 매도를 하는 거야. 홧김에 이불을 집어 던지려 했는데, 저 녀석이 마법으로 틀었던 수도꼭지 물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냐아아아옹. 냐아앙.”
“지금은 사장님께서 손에 든 건 뭐냐고 묻고 있소이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난다면서.”
나는 이놈 울음소리를 못 알아먹는 반면, 이 녀석은 내 말을 다 알아먹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전에 고래랑 얘기할 때도 이런 흐름이었는데 말야….
그래서 내가 직접 설명해 줬다. 이게 햄버거고, 사료와는 동 중량 대비 가격이 몇 배나 차이가 나는 음식이다. 설명하자, 잠시 후 털뭉치가 울음소리를 냈다.
“냐아아옹.”
“우유는 없냐고 묻고 있는데 말이오.”
“거 바라는 것도 많… 물 끄고 얌전히 있으면 사 주마.”
이게 내 최대한의 타협이다. 잠깐 정적이 흐른 후, 고양이가 다시 한번 울었다.
“냥.”
“딜, 이라는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