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2)
이세계 편돌이-201화(202/331)
201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6)
* * *
후딱 밖에 나가 우유를 두 팩 사 왔다. 사 오는 동안 털뭉치 놈이 멍멍이한테 시비라도 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집 내부가 나왔을 때 그대로였다. 멍멍이에게 물었다.
“나 나갔다 오는 동안 얘 얌전히 있디?”
“그랬을 것 같소만… 뭐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지.”
“뭐 말 하는 건 없었고?”
“그렇소이다.”
내가 나가자마자 집 안 어딘가에 숨어버렸는데, 온 사방이 고양이 냄새로 진동을 하는 탓에 냄새로 찾을 수도 없었다고. 이놈이 정말 멍멍이와 대화하기가 싫은 모양이다.
그래도 물그릇에 우유를 쫄쫄 따르고 나니 그제서야 기어 나오는 털뭉치. 골골대는 소리와 함께 우유 표면에 파문이 살짝 일었고, 잠시 후 의문 섞인 울음소리.
“…냥. 냐앙?”
“전에 먹은 것과 맛이 다른데, 잘못 가져온 거 아니냐 하고 있소.”
“난 제대로 가져왔다. 니가 전에 먹은 게 잘못된 거지.”
고양이용 우유로 말이다. 고양이는 체내에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분비가 안 돼서, 사람 먹는 우유를 먹이면 3일은 화장실에서 산다― 라고 펫숍 주인이 말해줬다.
우리 매장엔 고양이용 우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 털뭉치가 우유를 먹어본 적이 있으니 우유를 달라고 한 것일 텐데, 그 우유도 사람 먹는 우유였을 테고….
보이지도 않는 녀석한테 사람들이 고양이용 우유를 사다 먹이진 않았을 테니까. 설명하자 잠깐 정적이 흘렀고, 다시 우유 핥짝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슬쩍 물어봤다.
“너 우유도 신선한 거 안 먹어봤을 것 아니냐. 쓰레기장에 버려진 거 먹었을 테니까.”
“…냥.”
“노코멘트라는구려.”
“그래, 그렇게 품위유지나 하고 있어라. 멍멍아, 하난 니 거니까 너도 같이 먹어.”
“고양이들 먹는 우유를 본견이 먹어도 되는 것이오?”
“다 물어보고 사 온 거야. 봐봐, 여기 강아지 얼굴.”
그래서 똑같은 걸 두 개 사 온 거다. 하나 남은 그릇을 마저 꺼내 우유를 담은 뒤, 우유가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자니 궁금한 게 하나 떠올랐다. 바로 물어봤다.
“그 우유는 맛이 어떠냐?”
“그르릉….”
“고소하고 목넘김이 괜찮소. 고맙소이다, 사장님.”
그렇댄다. 유당이 거의 없는 우유라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감상평을 직접 들어보니 기분이 어째 색다르다.
우유 그릇은 두 개 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고, 털뭉치 녀석이 햄버거를 다 먹을 때까지 좀 더 기다려줬다. 3분가량이 더 흐른 뒤, 바닥에 발라당 눕는 소리.
“냐하앙.”
“배부르다는구려.”
“밥 먹고 바로 눕지 마라, 인마. 돼지 돼.”
“……냐옹.”
“그래서, 자기한테 뭐가 궁금한 거냐 묻는데 말이오.”
가성비 참 좋다. 저 단마디 울음소리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있… 아니지.
“야, 털뭉치야. 내가 니 추정 나이를 생후 4개월 정도로 알고 있는데 말야. 말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거냐?”
난 이 녀석이 이렇게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한 녀석인 줄 몰랐다. 집안 물건 박살 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언어로도 말이다.
그게 나이가 어려서 말을 못 배워먹어서인 줄 알았는데, 멍멍이가 통역해 주는 걸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잠시 후 털뭉치가 반문해왔다.
“냐앙?”
“그럼 생후 4개월 된 고양이는 보통 어떤 말을 하느냐고 묻는데 말이오.”
“그건… 아니, 니가 고양이인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냐아옹.”
“자기가 생후 4개월인 것도 아니라는, 아니. 그럼 고양이 양반 연배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오?”
멍멍이가 내가 할 질문을 대신 해 줬고, 잠깐 말이 없던 고양이가 잠시 후 에둘러 말해왔다.
“냥, 냥.”
“하늘에서 흰 털이 두 번 내렸… 지금 눈 얘길 하는 것이오? 본견과 나이가 같다고?”
“…하아악!”
“그냥 묻는 것뿐이지 않소. 대답을 해 주시오! 열만 내지 마시고!”
배가 불러 기분이 좋은 것과 강아지랑 대화를 하는 건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 털뭉치 놈의 뜬금없는 하악질에 꼬리를 꼿꼿이 치켜세우는 멍멍이.
직후, 꽤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냐양. 컁.”
“성향 참 고상하기는 무슨? 이건 화가 나서 꼬리를 세운 것이오, 본견이 당신 하악질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게 결코 아니고!”
“냥?”
“그건 기분이 좋으니까 꼬리를 흔드는 거지! 이왕 말 나온 김에 본견도 하나 묻겠소. 당신네 고양이들은 왜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꼬리 모양새가 본견과는 정반대인 것이오?”
“갸아아아옹….”
“본견이야말로 허튼소리 하지 말라고? 본견이 지금 헛다리를 짚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본견이 다 겪어본 바가 있어서 그렇소이다. 얘기 한번 들어보시오….”
이러고는 지난 달 시민공원에서 지내기도 전의 썰을 풀기 시작했는데, 자기가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반쯤 먹고 버려진 소시지를 발견했단다.
문제는 그게 포메라니안의 신체 구조상 도저히 꺼낼 수 없는 위치에 박혀있었단 건데, 그걸 어떻게든 건져보겠다고 발버둥친 끝에 쓰레기통을 엎는 데에 성공했다고.
“그게 좋긴 했는데,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을 엎어두면 민폐잖소. 그래서 본견이 소시지만 얼른 꺼내고 쓰레기통을 다시 일으켜세우려 했단 말이오. 헌데!”
등으로 받치거나 앞발로 밀어올리는 등. 여하간 가슴이 웅장해지는 사투를 벌인 끝에 쓰레기통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그사이에 자기가 꺼낸 소시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소시지 실종의 범인이 볼 빵빵한 치즈 고양이. 돌려달라고 소리치기도 늦었던 게, 그 고양이가 소시지를 다 먹고 막대기만 입에 질겅이고 있었다고.
“본견이 그때 화가 나서. 정말 너무 화가 나서 말이오. 꼬리를 빳빳이 세운 채로 물었소. 본견이 어떻게 구한 소시지인데 그걸 뺏어가느냐고. 그러자 그 작자가 뭐라고 했는 줄 아시오?”
“하아암….”
“자기 걸 뺏기고도 꼬리를 그렇게 세우다니, 참 이상한 녀석도 다 있다― 당신, 지금 이 기구한 얘기를 듣고도 하품이 나온단 말이오?”
난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는데 말이다. 멍멍이 녀석이 내게 말만 안 했을 뿐, 내가 아는 것보다 배는 더 고생했단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반면 털뭉치 녀석은 하품에 뒤이어 울음소리 한마디로 대답했고, 이게 뭔 의미였는지는 몰라도 멍멍이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그건.”
“쟤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냐.”
“…본견이, 길에서 생활해본 지 얼마 안 된다는 티가 팍팍 난다 하는구려.”
그러는 지는 얼마나 밖에서 살아봤다고 이런 말을 하는 거야. 털뭉치가 앉아있을 걸로 추정되는 위치에 탁 소리가 났다. 꼬리를 바닥에 한 번 내리친 모양이다.
그러고는 운을 뗐다. 냥.
“…이자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쭈욱 길에서 지내왔다 하오.”
“냐아옹.”
“방금 건, 사장님과 제가 보다시피 자기 몸이 다른 동갑내기 고양이에 비해 작다는 말이었소.”
“보다시피는 개뿔.”
“냐옹.”
농담이었단다. 그러고는 마저 말을 잇길, 처음 날 적에는 자기도 몸이 이렇게 투명하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자기 남매들에 비해 작기는 했다고.
날 적부터 왜소했던 체구 탓에 힘에서 밀려 어미 젖을 많이 먹지도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매나 자기 어미로부터 소외를 받게 됐다고 한다.
“냐아앙.”
“그건 너무 매정한 말이잖소이까. 굶어 죽게 내버려 뒀을 리는―”
“캬아옹.”
“그저 있었던 일만 갖고 이야기할 뿐이다. 알겠소, 화내지 마시오.”
아마 ‘나중 일이 어떻게 됐든 그때 내가 뭔가를 안 했으면 난 죽었을 거다’ 이런 말을 꺼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뭔가가 뭐였는가.
“…냐앙.”
투명해지고,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것. 계기는 자기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주변에 대대적으로 길고양이를 검거하던 때가 한번 있었다고 한다.
“그때, 어머님과 다른 남매들이 자리를 벗어나는 걸 이자만 따라가질 못했다 하오. 몸에 힘이 없던 탓이라 하오.”
“그래서.”
“전봇대의 쓰레기봉투들 뒤에 숨어 제발 자길 찾지 말아 달라고 생각했다는 것 같소. 그럼에도 결국 들킬 수밖에 없었고, 들키는 게 당연했다는데….”
그물망 같은 걸 든 무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눈이 마주치고도 자길 못 본 채 지나갔단다. 어리둥절해하며 자기 몸을 내려다봤을 땐, 자기 자신도 스스로의 몸을 볼 수 없게 된 후였다.
“그 이후로는 자기 나름대로 먹고살 길을 모색했다고 하오. 헌데 고양이 양반, 어머님이나 다른 가족들 소식이 어찌 됐는진 들으셨소…?”
“냥.”
“괜한 걸 물었구려. 미안하오.”
이게 생후 3개월 차에 있었던 일이고, 이후의 삶은 새끼고양이의 투쟁이었단다. 흰 종량제 쓰레기봉투 안에서 참치 캔 냄새를 맡고는 ‘이 봉투를 뜯어야 하는데, 발을 들 힘조차 없어’라며 자조한 적이 있고….
그 자조 직후에 이유는 몰라도 발을 쓰지 않고도 봉투를 찢을 줄 알게 됐고, 그 힘으로 겨울이 두 번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거다―
“이곳에 자리 잡은 건 몇 달 전이고, 이곳 근처를 지나다 창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홧김에 들어와 본 것이라 하오. 햇살이 잘 비추는 게 퍽 마음에 들어서라는구려.”
“여기가 채광이 좋긴 해. 창문 남향이거든.”
“냐아아옹.”
“그러니까 자긴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고, 싫다면 다시 한판 붙어보자고… 결론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여하튼 그렇소.”
나도 마찬가지로 결론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이해를 해 줄 수는 있었다. 투명한 것과는 별개로 2년 남짓을 밖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잖은가?
투명한 것까지 합치면 더 어려웠을 테고 말이다. 투명한 녀석이 누구랑 말을 붙이며, 어울릴 수 있었겠어. 길에서 사는 법도 다 독학으로 익혔을 테고 말야.
“…야. 털뭉치야. 너 전에 내 배 위에서 잠들었던 적 있잖냐. 그건 왜 그런 거냐?”
“냐아옹, 냥.”
“이건 뭐라는 거야?”
“그 침실에서 가장 높은 곳이 니 배 위였으니까 그렇지, 라는 구려.”
망보려고 그런 거였다는데, 이런 것들을 주관적으로 납득해 줄 수가 없다. 현행법상 이 집 주인이 나인데 왜 내가 이놈한테 감시용 망루 취급을 받아야 돼?
“냐하아앙.”
“이건 또 뭐라는 거고?”
“그래도 따듯하니 기분은 좋았다 하오. 혹시 또 누워줄 수 있으시냐는데….”
“너 진짜 바리깡으로 털 다 밀리고 싶냐?”
“냥?”
“바리깡이 무엇이오, 사장님?”
“몰라도 되고, 하나만 더 물어보자. 여기가 니 첫 보금자리냐?”
냥. 털뭉치가 대답했고, 멍멍이가 통역해줬다.
“그렇다고 하오.”
“…그러냐.”
나도 여기가 내 첫 보금자리다. 이 점만은 서로 똑같구만.
“또 부탁하실 게 있다면 말해주시오, 사장님.”
“고맙다. 근데 지금 당장 부탁할 건 없고… 잠깐 있어 봐라.”
펫숍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바닥의 우유팩들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펫숍에 가서 이런 걸 찾는데 혹시 신축성 재질로 된 게 있느냐 물어봤다.
있다더라. 빨간색에 4천원. 우유를 두 개 더 결제해 돌아와, 바닥에 앉아서 우유팩을 바닥에 톡톡 두드려봤다. 곧바로 발 여덟 개가 타닥 장판을 딛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우유를 사러 가셨던… 헌데 반대 손에 그건 무엇이오?”
“지금 보여줄게. 야, 털뭉치야. 우유 더 먹고 싶으면 여기 앉아 봐라.”
“냥?”
말하자 바닥에 폭신 앉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걸 듣고 느낀 게, 앉으라는 교육 한번 안 해도 잘 앉으면 유니크한 고양이가 맞지 않나….
생각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손으로 더듬어봤다. 목덜미에 해당하는 듯한 부위가 만져질 즈음 멍멍이가 물었다.
“이자가 몸이 안 보이는 것 말이오. 사장님 힘으로도 어떻게 안 되는 것이오?”
“안 되더라. 이 녀석 이게 패시브인가 봐.”
“패시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투명한 것 같단 얘기야.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적당한 수준의 마법을 쓰고 있는 거면 한번 풀어보자― 생각해 봐도 안 된다. 내가 멍멍이를 잡고 있는다고 멍멍이가 사람 말을 못 하게 되질 않는 것처럼 말야.
억지로라도 시도해보려면 시도해볼 수는 있을 텐데, 두 놈 다 몸이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돼서 하기가 싫다. 이건 그 대용품이다.
“리본이었구려. 육포에서 왜 냄새가 안 나나 생각했소.”
“육포는 나중에 멕여 주마. 그래서, 어떻게 보이냐?”
목에 걸어주고 봤는데, 내 눈엔 허공에 리본이 둥둥 떠다니는 걸로밖엔 안 보인다. 멍멍이도 비슷한 감상이었는지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지만 당사자인 털뭉치는 감상이 다른 듯했다.
리본을 벗겨내려 한 건지 몇 번 들썩였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잠시 후 리본 위에서 울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먀옹.”
“이젠 자기가 보이냐고 묻는데 말이오.”
“니가 어디 있는지는 보이지.”
“…먀.”
정말 오랜만에, 자기 몸이 존재한다는 걸 눈으로 직접 보게 됐단다. 어째 SF스러운 감상평이었다.
“먀아옹.”
“이 말뜻은… 고맙다면 고맙다고 솔직히 말을 하지.”
“됐다. 시작이 반이지. 여튼 털뭉치야, 난 인생이 받은 만큼은 되돌려줘야 한다는 마인드란 말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냥?”
“이건 부탁할 게 있으면 솔직하게 부탁을 하지 그러냐는 뜻이오.”
“그럼 솔직하게 부탁하마. 너 길거리 생활을 좀 오래 해봤다고 했잖아?”
리본이 위아래로 끄덕인다. 마저 물어봤다.
“니 말 통역해 준 멍멍이가 영물을 찾고 있단 말야. 혹시 네가 좀 도와줄 수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