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3)
이세계 편돌이-202화(203/331)
202화. 나, 멍멍이에게는 꿈이 있소 (7)
* * *
아까까지는 이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생후 4개월짜리 고양이에게 시키기는 뭘 시킨단 말인가? 밤낮으로 사료 먹고, 모래화장실에 둔덕 만드는 게 일인 놈인데.
헌데 이놈이 묘생 2년 차고 길고양이 생활도 오래 해봤단 얘길 듣고 나니, 뭐라도 일을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피어나더라고. 물론 당사묘는 내키지 않아 했다.
“먀옹.”
“자기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 육하원칙에 의거해 설명해달라는구려.”
“육하원칙? 너 맨날 집에서 그릇 벅벅 긁어대고, 빈둥댄다고 누워만 있으면 심심할 거 아니야. 내가 어려운 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말이 일이지, 그냥 멍멍이 녀석이랑 밖에서 시간 보내고 얘기나 좀 해라― 이 정도 의도밖에 없다. 희귀한 녀석들끼리 친해지면 좋잖아? 내가 하루 종일 말동무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물이 동네 마실 잠깐 나간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놈들 중 둘이 어쩌다 내 거실바닥에 앉아있게 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큰 기대는 안 하니 너도 너무 열 올리진 않아도 된다. 말미에 덧붙이자, 빨간 리본이 내 주변을 한 바퀴 맴돌았다. 이번엔 또 뭔데.
“갸아오옹….”
“지금 자기를 무시한 거냐는, 어허! 무슨 그런 망발을! 사장님께선 결코 타인을 무시하거나 하대할 분이 아니외다!”
방금 내 말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긁힌 듯한데, 이걸 듣고 나니 이 녀석 다루는 법을 이제 잘 알겠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마냥 굴어도 결국엔 2살배기 털뭉치.
“무시는 안 했지. 애초에 기대를 안 하는데 어떻게 무시를 하겠냐.”
“아니, 사장님.”
“하아악!”
자존심이 강하다는 사춘기 증상 중 하나를 고스란히 갖고 있단 얘기다. 내 말에 하악질 소리와 동시에 무릎에 폭신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이 녀석이 냥냥펀치로 후려친 듯하다.
뒤이어 시작한 옹알이를 멍멍이가 통역해줬는데, 자기가 엮이기 싫어 피해 다녔을 뿐 이상한 놈들이 있던 곳만은 철저히 꿰 뒀다고 한다. 도중에 말을 끊고 물었다.
“어떤 식으로 이상한 놈들이길래?”
“애에에옹….”
“기껏 핥아둔 털을 특히나 곤두서게 하는 녀석들― 이라는구려. 본견도 그중 하나라 하고.”
“그럼 나는 어떤데. 니 털에 영향이 있냐?”
이건 확인차 물어봤다. 내 물음에 애옹거리는 걸 뚝 멈췄고, 잠시 후엔 리본 끝이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냐옹.”
“사장님께서는 그런 게 전혀 안 느껴진다 하는구려. 사장님한테 붙잡혀있을 때면 멀리서 물건 들어올리거나 할퀴는 것도 잘 안된다 하고.”
이 녀석이 마력으로 사람이나 동물을 구별한다는 가설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걸로 일반적인 동물과 동물 중 유독 이상한 놈들을 구별해 피해 다닌 듯하고.
“애옹?”
“뭔가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냐 묻고 있소만….”
“나 말고 내 몸뚱어리가 한 짓이다, 짜샤. 여튼… 그 이상한 놈들 어디 있는지 좀 알려줄 수 있냐? 이 녀석이 걔네들을 만나보고 싶어 해서 그러는데.”
이 얘길 꺼내자마자 이 털뭉치가 그걸 내가 왜 해야 하느냐, 딴 놈 알아보라는 등 투정을 부려왔고, 우유팩 한 개를 그릇에 더 따라주고 나서야 겨우 협상 테이블에 설 수 있었다.
“격일 단위로 우유 하나씩 주마. 장난감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그때 또 합의하고.”
“냥… 냥.”
“방금은 우유면 충분하다는 말이었고, 마지막으로는….”
“마지막으로는?”
“…인간이 개 일에 왜 그렇게까지 참견을 하냐는 거였소.”
이걸 통역하면서는 멍멍이도 찜찜했는지 꼬랑지가 밑으로 축 처져 버렸다. 대가 없이 도움만 받는다는 생각에 이러는 것 같은데, 나도 대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란 말이지.
“내가 시간은 있는데, 할 짓이 없어서 그래.”
“사장님, 게임 같은 건 안 하는 것이오? 옛날에 지내던 집 주인이 시간이 났다 하면 휴대폰으로 게임을 그렇게 열심히 하던데.”
“그래? 그달 말에 집주인 어떻게 됐는데?”
“밤에 집주인 마누라가 집주인을 자기 방으로 불렀고, 다음 날 아침 집주인 휴대폰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더구려. 혹시 이유를 아시오?”
“그 마누라분이 대국적인 결단을 해서 그래.”
뽑기 게임에 돈 쓴다 하는 사람들은 많으면 100, 심하면 수백 단위까지 결제를 한다고 하더라. 난 그달 식비 생각해서라도 차마 그렇겐 못 하겠던데 말야….
여튼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라도 밖에 돌아다니는 게 더 유익한 취미생활이 되어줄 것 같아서 그렇다. 위치 듣고 나면 택시 타고 갈 거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고. 또….
아는 사이끼리 돕는 데에 이유가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돕는 거지. 이건 멍멍이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따로 말 안 했다. 잠시 후 짤막한 울음소리.
“냐항.”
“취미 참 고상하다는구려.”
“칭찬 고맙다, 짜샤. 그래서 어쩔 거야. 할 거야, 말 거야?”
여기에 털뭉치 왈, 자기도 냄새로 기억하는 거라 근처까지 자기가 직접 가야 할 것 같단다. 그다음에 역으로 물은 게, 언제부터 할 거냐는 것.
“글쎄다. 멍멍아, 니 걔네들 언제 만나러 갈 거냐.”
“본견은 언제라도 상관없소만… 사장님께선 밤에 일이 있으시지 않소?”
“어. 나 밤샐려면 슬슬 자야 된다. 오늘 말고 나중에 하면 안 되냐?”
“냥.”
“오늘은 자기도 마음이 안 내켜서 싫다는구려.”
“그럼 너도 잠이나 자라. 멍멍아, 너도 내친김에 여기서 자고 가. 이불 깔아줄 테니까.”
“고맙소이다, 사장님.”
* * *
누나가 던져 주고 갔던 이불을 깔고 누워 봤다. 촉감이 꽤 괜찮았다.
얼마나 괜찮았냐면, 오후 9시에 맞춰 둔 알람이 9시 40분이 되도록 울렸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비몽사몽한 와중에 멍멍이가 앞발로 내 뺨을 톡톡 건드리더라.
“사장님, 사장님. 숙박비도 안 내는 주제에 실례가 되는 부탁이란 건 알고 있소만….”
“무, 뭔데.”
“알람만 좀 꺼주시구려. 이게 앞발을 아무리 가져다 대도 꺼지질 않소이다.”
바로 폰 집어 알람을 확인해보니 9시 40분이 찍혀있었다. 꾹 눌러 알람을 끈 뒤, 계속 드러누운 채로 머리맡의 멍멍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야. 많이 시끄럽든?”
“소리가 꽤 크긴 했지만, 괘념치 마시오. 사장님께선 평소에도 잠이 많으신 편이오?”
“평소엔 이렇게 잠 안 자. 근데 지금 가슴 쪽에 뭐가 얹힌 느낌이 드는 게….”
기시감에 고개만 살짝 들어 앞을 보니, 가슴과 목 사이에 빨간색 리본이 두둥실 떠 있는 게 보였다. 어쩐지 머리에 산소가 덜 돈다 싶었다.
몸을 일으키자, 이 털뭉치가 갸악 소릴 내며 몸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허리께에 나동그라져서는 불만스럽다는 듯 옹알거렸는데, 내가 지금 이놈과 말다툼할 때가 아니다.
“야. 나 지금 출근해야 되는데, 넌 어떻게 할래. 안 출출하냐?”
“출출하긴 하오. 사장님, 혹시….”
“외상값에서 까줄게. 매장 가서 햄버거나 먹자.”
여기까지 대화한 후, 출근 준비 마치고 털뭉치 놈 화장실만 추가로 치운 뒤 바로 뛰쳐나갔다. 죽어라 달리고 3초 남은 횡단보도도 지나쳐 매장에 도착하고 보니 근무교대 3분 전이었다.
일요일 10시여서인지 매장에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점장이 카운터에 앉아 뉴스를 보고 있었다. 정문벨 울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가, 우릴 보고는 환히 웃어 보였다.
“찬아, 하이. 오늘은 둘이 같이 왔네?”
“저 유니폼만 바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점장님.”
로비에 멍멍이 내려놓은 뒤 바로 유니폼 갈아입고, 카운터로 돌아오니 딱 59분이었다. 씨, 하마터면 무지각 출근 기록 깨질 뻔했네….
“아쉽네! 찬이 지각했으면, 처음으로 지각한 거라고 엄청 놀리려고 했는데.”
“제가 하늘이 무너져도 지각은 안 할 겁니다. 지각은….”
사회생활 하며 어느 직장을 가서 욕을 먹더라도 이 이유로만은 욕 들어본 적이 없다. 신뢰 깨지기 제일 쉬운 게 시간약속 안 지키는 건데 이거라도 잘해야지….
“그래? 그럼 하늘 한번 무너뜨려 볼까?”
“진짜요?”
“농담이지. 기분 좋아서 그냥 말해봤어.”
그냥 말했다는 것 치고는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 그렇다. 점장이 어디 보통 마법사여야지.
몸이 찌뿌둥했던 건지 기지개를 켜고는 멍멍이를 내려다보는 점장. 멍멍이가 먼저 인사했다.
“참으로 반갑소이다, 대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소?”
“오늘 날씨만큼 잘 지냈지. 멍멍이는 오늘 매장 왔다 갔다면서?”
“그러했소. 유리 아가씨한테 들으셨나 보오.”
“응. 아까 근무교대 하는데, 걔가 네 얘기만 하더라구. ‘이상한 오빠가 이상한 걸 데려왔어요~’ 이러면서 말야.”
이게 유일한 인수인계 사항이었고, 전달받는 데에 10분이 넘게 걸렸다고. 멍멍이가 쑥스럽다는 듯 바닥에 꼬리를 휘둘러댔는데,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점장님. 좀 뜬금없긴 한데, 윤하 누나 말입니다.”
“윤하… 아, 맞다. 윤하한테 이불 잘 받았어?”
“예. 그 이불에서 잤다가 지각할 뻔한 거예요. 여튼 이불 받아서 집에 두고 누나랑 같이 매장 왔는데, 손님들이 이 녀석 얘기를 해가지고―”
찾으러 들어갔더니 이 녀석이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빼내어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었다. 그때는 멍멍이 얘기가 먼저였으니 누나한테 따로 얘기는 안 했었지만….
“그때 누나가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라는 말을 했거든요. 근데 전 누나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돼서인지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누나한테는 술판 깔고 얘기하자고 톡을 보내두긴 했지만, 혹시 모르잖은가. 나는 별문제 없다 생각해서 말했다가 그게 말실수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점장이 예전부터 누나랑 아는 사이였으니 이 점에 대해 아는 게 있지 않을까. 조언 삼을 생각으로 묻자, 점장이 곧바로 팔짱을 껴버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두어 번 까딱거린다. 점장이 깊이 생각할 때의 버릇이다. 이러다 팔짱을 풀고는 날 올려다보며 말해왔다.
“윤하는 나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는데 말야.”
“예? 누나가 일 얘기 한 적이 아예 없어요?”
“그렇지는 않구, 오늘은 누가 사고를 쳐서 힘들었다. 아니면 오늘은 마수가 유독 난리를 치더라― 하면서 힘들다고 얘기는 자주 하지만….”
직장인들이 으레 하는 휘발성 푸념이었을 뿐, 이런 식으로 자기 일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새 우울한 표정이 되어서는 중얼거리는 점장.
“고민 있으면 얘기해주면 좋을 텐데 말야. 그치.”
“글…쎄요. 점장님께는 걱정 안 끼치려고 말 더 조심했던 거 아닐까요? 저한테도 실수로 말했단 인상이 강했었고―”
이럴 의도로 말 꺼낸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누나한테 고민 같은 거 있냐 물어보려 했던 게, 오히려 점장한테 고민거리만 더 안긴 것 같다.
근데,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한테조차 말 안 한 얘기였을 줄 내가 알았냐고. 졸지에 자기가 못 미더운 상담 상대라 여기게 된 점장을 내가 위로하는 형세가 되어버렸고, 주제를 바꾸고 나서야 겨우 해결이 됐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면 그만큼 아끼는 게 있잖습니까. 점장님, 윤하 누나랑 언제부터 알고 지내신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윤하 10살 때였나? 엄청 어렸을 때였단 것만은 기억나는데.”
“아하. 누나 알고 지내신 지 20년이 넘으셨다?”
“맞아. 20년은 확실히 넘었… 그래. 20년 넘었다, 어쩔래. 내 시간 대신 가져가 줄래?”
방법을 몰라서 못 해주겠다. 지뢰를 밟고 만 점장이 내 허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꺼낸 말은 다 끝내야지.
“점장님 생각해서 말 안 한 건 맞을 겁니다. 못 미더워서가 아니고요.”
“나도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 윤하가 은근히 마음이 여리거든.”
다만 가슴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란다. 나중에 누나랑 술 먹거든 이 얘기도 내가 직접 꺼내 보는 걸로 마무리 지었고, 인수인계를 받았다.
“평화로웠어. 끝.”
“다행이네요. 점장님, 이 녀석 햄버거 하나만 먹이겠습니다. 얘 낮부터 쫄쫄 굶었어요.”
“어머. 그런데 밥 안 먹은 거면, 아예―”
까지를 말하다 정문 벨소리에 말을 멈추는 점장. 금일 근무의 기념비적인 첫 손님이 왔는데, 이 시간에 이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양반이었다.
“…….”
“…아이고. 오랜만에 뵈서 참으로 반갑―”
“야, 씹새야.”
“예.”
“이 개는 뭐냐?”
찰리 The 치와와. 이 양반이 올 줄 알았으면 카운터 안에 얘를 미리 넣어둘 걸 그랬다. 밖으로 나와 멍멍이를 안아 든 뒤,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말해봤다.
“전에 보신 적 있잖습니까. 왜, 물난리 났던 날에 매장에 떠내려왔던 그 녀석.”
“그건 아는데, 니가 왜 데리고 있냐고.”
“어쩌다 보니 친해졌습니다. 자. 인사해라, 멍멍아.”
“왈왈.”
멍멍이가 포메라니안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바라보는 얼굴이 주름이 가득해서는 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 양반이 오늘따라 특히나 더 저기압인 것 같다. 자기 필살기가 안 먹힌 탓인지 멍멍이 꼬리가 축 늘어져 버렸고, 안쓰러운 마음에 내가 말을 받았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넌 이게 잘 지낸 걸로 보이냐 씹새야, 못 지냈다 씹새야, 그걸 왜 물어보는데 씹새야, 등등. 예상 답안으로 수십 가지를 생각해뒀는데, 이 양반 입에서 예상 범위를 한참 벗어난 대답이 튀어나왔다.
“너 담배 피워봤냐?”
“그건… 예. 피웠다 끊은 거긴 한데요.”
“왜 피웠는데.”
“그게, 담배 얘기는 갑자기 왜 하시는 겁니까?”
묻자, 치와와가 대답해 왔다.
“담배 한 갑 줘봐. 독한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