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4)
이세계 편돌이-203화(204/331)
203화. 번아웃을 해결하는 적당히 좋은 방법 (1)
* * *
내가 인생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유해물질 막대기를 입에 물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인생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던 탓이다. 군대 얘기다.
훈련소 수료하고 자대에 배치를 받았는데 보니 나를 제외한 소대원, 동기들이 죄다 구름과자 성애자더라고. 아침에 일어나서 담배, 점호 끝나고 담배, 아침 먹고 담배….
이놈들이 짬이 날 때마다 담배를 피워대니 비흡연자인 나로선 이야기를 따라가질 못하겠더란다. 흡연장에서 하던 얘길 생활관까지 끌고 와서 해대고들 있으니.
그게 답답해서 나도 흡연장을 기웃거렸고, 그러다 누가 권해준 담배로 시작했었다. 이 세상 병역제도에 맞춰 간결히 설명해줬다.
“누가 권해줘서 피웠었습니다. 근데 손님께서는―”
담배 안 피우시지 않냐. 묻자, 치와와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반문해왔다.
“시팔, 담배 안 피는 놈은 담배 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
“그런 법은 없긴 하죠.”
“그럼 담배 달라고. 독한 걸로.”
날 내려다보는 눈빛이 퀭하다. 점장 눈치를 슬쩍 살핀 뒤, 우회적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담배가 다 떨어져서.”
“이 씹새가. 그럼 니 뒤에 널린 건 다 초콜릿 상자야?”
“아니, 갑자기 담배는 왜 찾으시는 건데요. 전에 그 이유 때문도 아닐 테고….”
며칠 전에도 이 양반이 비슷한 소릴 했었다. 아침 9시에 지금처럼 퀭한 상태로 와서는 직장상사를 며칠 정도 죽일 수 있을 만한 독약을 찾았었단 말이지?
그 대용품이 필요한 거라면 굳이 독한 담배까지도 필요 없다. 적당한 담배 두 갑 사다가 입에 물리고 구강호흡을 시키면 끝이니까. 담배가 이렇게나 몸에 해롭다.
설령 그 이유가 아니라 해도 지금은 이 양반에게 담배를 팔고 싶지가 않았다. 담배 말고 라이터도 같이 팔고, 입에 문 담배에 불도 붙여줘야 될 것 같았거든. 점장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피우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걸요?”
“이 새끼들이, 매출 좀 올려주겠다는데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담배가 매출에 크게 도움은 안 돼요. 마진율도 낮구.”
“마진이 얼만데.”
“5% 미만요. 담배 사시는 김에 다른 것도 사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파는 거지.”
들으면서는 매장 업주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으나, 이 치와와가 입은 험해도 이런 걸로 트집을 잡을 사람은 아니다.
말없이 우리 둘을 번갈아 보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중얼거리는 찰리.
“이놈들이고 저놈들이고, 고소할 새끼들 천지네 아주.”
“어머. 저희 판매거부로 고소하시는 거예요?”
“하겠냐고, 땅꼬맹아. 커피 한 잔 가져간다.”
“뭐야, 여기서 안 드시고 바로 가시는 겁니까?”
“노트북 배터리 없어, 씹새야.”
“코드 꽂을 곳 없어서 그러신 거면, 초콜릿 진열대 뒤쪽에 두 칸짜리 가려져 있어요. 그거 쓰셔두 되는데.”
나도 생각은 했지만, 내가 업주가 아니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매장 바닥에 전기 코드 널려있으면 손님들 통행에 방해되잖는가. 진열대 위치도 바꿔야 하고.
점장이 이걸 똑같이 알고도 선심을 써주는 건, 이 양반을 이대로 내보냈다간 다른 곳에서 흡연자로 퇴화할 거란 생각에서일 터다. 한 번 더 우릴 물끄러미 바라보다, 얼음컵과 아메리카노를 꺼내왔다.
계산해서 쥐여주자 초콜릿 진열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치와와. 코드를 꽂는 걸 바라보던 도중 멍멍이가 계산대 밑에서 속삭이듯 말해왔다.
“저분 얼굴도 기억이 나오, 사장님. 입이 걸걸할 뿐 나쁜 분은 아니라는 인상이었는데.”
“니 인상이 맞을걸? 아마도.”
“지금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신 것 같지만 말이오.”
그 원인이야 안 봐도 뻔하다. 그새 직장상사가 또 처맞을 짓을 한 거겠지. 방금 ‘새끼들’이라는 표현을 썼으니 한두 명이 사고를 친 게 아닌 듯하고….
원인을 제거할 수가 없으니 안 하던 짓까지 하려는 걸 테고 말야. 이번엔 점장이 의견을 말해왔다.
“전에 하수도 내려갈 때 저분이 마법청 연락망 연결해주셨었잖아. 그때 보고 느낀 건데, 저분 일 잘하셔.”
“저도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 양반은 저래 일에 치일 거면 그냥 이직을 하지, 뭐 저리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내가 한번 물어봐 볼까?”
묻는다고 저 양반이 대답해 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허나 점장 표정이 무척 의욕적이었던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설마 아까 누나 얘기 하던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점장님 못 미덥다는 거?”
“아닌데? 자신 있어서 그런 건데?”
“그, 점장님.”
지금 필요한 게 자신감이 아닐 거다, 미처 말하기도 전에 뒷짐을 지고는 치와와에게 스윽 다가가 말을 거는 점장.
“손님. 요새 일이 많이 힘드시―”
“나 잔업해야 되니까 가서 우유나 처먹어, 땅꼬맹아.”
이 대답을 듣고는 그대로 돌아와, 뒷짐을 진 손을 앞으로 모으며 울적하게 말해왔다.
“찬아, 나 그냥 우유나 먹을게….”
“너무 마음 쓰지 마십쇼, 점장님. MVP급 타자도 타율이 4할이 안 되잖습니까.”
“그럼 내가 안타 치려면 어떻게 했어야 돼?”
남자 마음은 남자가 더 잘 아는 법이고, 내가 지금 저 치와와라면… 아까 담배 얘기를 꺼낸 걸 후회하고 있을 거다. 나도 담배 피우던 시절에 스트레스 핑계를 댈 때마다 늘 속이 근질거렸거든.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이니 좀 있다 슬쩍 말 걸어보겠다. 의견을 말하자, 점장이 수긍하고는 카운터에서 자기 핸드백을 꺼냈다.
“그럼 나 퇴근할게. 멍멍이 잘 부탁해….”
“옙. 밥 잘 맥여서 보내겠습니다.”
“금일 근무 고생하셨소이다. 대사장님.”
이렇게 점장이 퇴근했고,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까지 확인한 후 치와와에게 물어봤다.
“배터리 충전 잘 됩니까?”
“잘 돼, 씹새야.”
“다행이네요. 제가 그쪽에 코드 꽂아본 적이 없어서.”
확인차 해본 말이었다. 저 양반이 아직은 일에 집중을 못 하고 있구만. 펼친 노트북도 바라만 보고 있고.
그러라고 냅두고 1시간 동안은 나도 내 할 일을 했다. 현금이랑 담배 세고, 그 와중에 뜨문뜨문 오는 손님들 받고, 멍멍이한테 햄버거도 하나 데워다 먹이고.
11시가 넘어서는 뜨문뜨문하던 손님조차 뚝 끊겨서 빈 진열대 재고를 채웠는데, 채우는 틈틈이 치와와 쪽 노트북을 살펴봐도 화면에 일말의 변화가 없었다.
점장에게는 잔업을 한다고 말했지만, 저 양반이 실은 일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앞발로 턱을 괸 채, 반대쪽 발 발톱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리기만 할 뿐이다.
진열대를 마저 채우고 나니 11시 반. 앞으로 1시간 더 있으면 막차도 끊긴다. 이쯤이면 됐다 싶어 치와와 뒤로 다가가 물었다.
“일 안 하십니까?”
“아직 주말인데 내가 일을 왜 해, 씹새야.”
“전 하고 있잖아요.”
“난 주 5일제라고. 씨발.”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마저 내려다보고 있자니, 노트북을 쿵 닫고는 대뜸 몸을 돌려 날 바라보는 치와와.
“야.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요.”
“내가 말을 많이 개같이 하냐?”
복합적인 기분이 드는 질문이다. 잠깐 고민하다 대답해줬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손님 치와와시잖아요.”
“이런 썅, 그럼 그 개새끼들은 똑같은 개인데 왜 개처럼 말을 해도 못 알아먹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떤 말 하셨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일로 그러냐고 에둘러 물어본 거였는데, 치와와가 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대답을 해왔다. 이렇게 말귀가 잘 통하는 걸 보니 이 양반 상태가 확실히 심각하긴 심각하다.
헌데 대답을 들어보니, 이 양반 상태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이 심각했다. 우선 이틀 전, 근무하는 회사에 퇴사자가 발생했단다. 꽤 많이.
“일이 좆같이 힘들고, 사장이랑 부사장 대하는 것도 좆같이 힘들댄다. 씨발.”
“그건 자주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래서 뭐, 퇴사자분들한테 나가지 말라는 말이라도 하신 거예요? 그게 안 된 거고?”
“힘들다고 나간 새끼들을 내가 왜 붙잡아. 사장 찾아갔지.”
퇴사자가 발생한 시각이 오후 6시. 사장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고, 오후 7시경에 골프장에서 골프채를 잡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인사과 업무를 겸하는 부사장도 마찬가지로 옆에서 발견되었고 말이다. 드라이버 샷 신기록이 나왔다며 시시덕거리던 둘에게 치와와가 말하길.
“그 씨팔놈들한테 일감 좀 적당히 가져오라고 했다. 니새끼들 때문에 애들 몸에서 발모제 냄새가 사라지질 않는다고.”
“그걸 어떻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일 좀 적당히 가져와, 씨팔놈들아.”
“아니, 사장이랑 부사장 면전에 대놓고 욕을 하셨어요?”
“그럼 그 씹새끼들한테 욕 말고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데?”
차 한잔하며 이야기하자는 대안 답변이 떠오르긴 했으나, 함구하고 마저 이야기를 들었다. 치와와의 육두문자에 대한 비글 사장의 답변. ‘넌 근무시간에 왜 여기 있냐?’
“뭔 미친….”
“거 봐, 시팔. 니도 욕 나오잖아. 거기에 난 내 일 다 끝나고 나온 거라 했고, ‘외주받은 일이 몇 개인데 일 다 끝났단 말이 잘도 나오냐, 씨팔.’ 뭐….”
비글이 지랄견 순위로는 치와와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견종이고, 치와와의 육두문자에 비글 사장도 똑같이 육두문자로 화답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부사장도 똑같이 육두문자로 화답하고,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혹시 부사장도 견종이 비글이에요?”
“사장 아들.”
“그럼 일해야 할 아들내미 빼내서 골프 치러 갔단 얘기잖아요. 회사 진짜 개판이네.”
“사장한테 골프 치자고 한 게 부사장이다. 씨발.”
여하튼 골프장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 오간 대화의 결론. 나 때는 늬들처럼 힘들다는 말도 못 했다. 늬들이 노력이 부족한 거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치와와가 향한 곳이 집 근처 술집이었고, 거기서 금요일 밤을 지새운 뒤 토요일 오픈 시간부터 마감 시간까지 한 번 더 신세를 졌고….
오늘 기상 시간이 오후 8시였고, 술을 깰 겸 집에서 계란후라이 네 개 부쳐 먹고 나왔다고 한다. 다 들은 뒤, 최대한 심사숙고해 소감을 말해줬다.
“이 상황에 담배 피우셨다간, 며칠도 안 돼서 혓바닥 변색되실 것 같은데요….”
“안 펴, 씹새야. 내가 서른하나 처먹고 편돌이한테 뭔 소릴 하고 있는 건지.”
“뭔. 손님 저보다 두 살 많으세요?”
“니가 스물아홉이면 내가 두 살이 더 많겠지. 씹새야.”
한 달 넘도록 안고 있던 의문 중 하나가 이렇게 해소가 됐다. 털어놓고 나서도 분이 덜 풀렸는지, 거의 으르렁거리다시피 중얼거리는 치와와.
“개 엿같은 코딩, 개 엿같은 사장 새끼….”
“…그. 아까 궁금한 거 하나 물어보셨으니, 저도 궁금한 거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어차피 물어볼 거 뜸은 왜 들여?”
“말은 하고 물어봐야 예의죠. IT 쪽 일은 어쩌다 하시게 된 거예요?”
반은 실제로 궁금해서였고, 반은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물어봤다. 이 양반 계속 인상 쓰고 있다간 드럼세탁기로도 주름을 못 펼 거 같다.
“옛날에 인터넷 사이트로 심리테스트를 했었다.”
“심리테스트? 거기서 코딩이 적성에 맞으시대요?”
“아니. 어떤 돌팔이 새끼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나보고 심리치료가 필요할 거라고 하더라.”
어느 사이트에서 테스트를 받은 건진 몰라도, 신빙성이 꽤 높… 아니. 아니다.
“그래서요.”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사이트를 털었다.”
“예?”
“고양잇과 놈들 심리테스트 사이트로 만들었다고. 씹새야.”
생략이 꽤 많이 된 것처럼 들린다. 심리테스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머릿속에 코딩, 프로그램, 그 사이트 보안체계 같은 게 불쑥 떠오르고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만들고 나서 느낀 건데, 재밌더라고.”
“그… 해킹하는 게요?”
“공부하고 해킹하는 거 전부 다.”
공부 과정을 생략한 게 맞구만. 이 부분을 말한 치와와가 잠깐 말이 없어졌다가, 읊조리듯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재미있어서 시작했었어.”
“…….”
“재미있어서 시작했다고.”
이 말 속뜻이 내겐 이렇게 들린다. 지금은 재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