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6)
이세계 편돌이-205화(206/331)
205화. 번아웃을 해결하는 적당히 좋은 방법 (3)
* * *
찰리 양반이 20분 후에 다시 들어왔다. 카운터 앞에 서서는 몸을 웅크린 멍멍이를 바라보다, 여전히 어이가 없는지 중얼거렸다.
“이 씹새는 왜 개가 말을 하는데도 이렇게 태연해?”
이 부분에 대해 딴 동네 출신 뉴비로서 장점이 하나 있었다면, 어깨 위에 치와와 머리가 얹어진 코볼트나 사람 말 하는 포메라니안이나 그게 그거였단 점이다.
멍멍이가 특별하단 것도 점장 설명이나 주변 설명 반응 듣고 나서 알게 된 거지, 처음 봤을 땐 이 동네 개들은 다 이런 줄 알았으니까. 위로 겸 말해줬다.
“처음엔 저도 놀랐어요. 만난 지 꽤 됐으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꽤가 얼마인데?”
시간도 많겠다, 아예 처음 만났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줬다. 얘 주인이 담뱃값 외상 담보로 얠 맡겼고 대화를 하게 됐는데, 얘가 집을 안 나가면 땅콩을 떼일 상황이더라―
때문에 집을 나갔었고 지금은 떠돌이견으로 사는 중이다. 내 설명을 다 들은 치와와는 여전히 묻고 싶은 게 가득한 얼굴이었으나, 한숨을 푹 쉰 뒤 중얼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살다 살다 별 해괴한 걸 다 보네.”
어째 이 녀석이랑 말 섞었던 사람들 중 이 양반 반응이 제일 상식적인 것 같다. 중얼거린 뒤엔, 해괴해서 미안하다는 듯 꼬리를 살랑이는 멍멍이를 인상을 푹 쓴 채 바라보다….
대뜸 뒤돌아서는 테이블 위의 노트북과 마우스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등 뒤에 대고 물었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십니까?”
“시팔, 내일 출근이 7시인데 안 가? 집까지 존나 오래 걸리는데?”
“아니, 그럼 그렇게 먼 편의점까지는 뭣 하러 오셨대.”
“내가 여길 오든 말든 니가 뭔 상관인데.”
평소대로 헛소리하는 걸 보면 멍멍이의 위로가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멘탈 회복에 도움이 되긴 했나 보다. 짐을 다 챙긴 뒤엔 벽걸이 시계를 힐끗 바라보는 치와와.
“나 간다. 씹새야.”
그러다 1,700원짜리 커피값으로 만 원을 툭 던지고는 나가버렸다. 계산대 위의 만 원짜리를 내려다보던 멍멍이가 더듬더듬 내게 물었다.
“사장님. 이… 이, 무어라 읽는 것이외까. 만 원?”
“여기 0 네 개 적혀 있잖어. 그럼 만 원이지.”
이 녀석이 예전에 오천 원짜리를 오만 원짜리라며 의기양양하게 들고 왔다가, 자기 무지함에 좌절한 적이 한번 있었다. 그때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은 듯하다.
“본견이 이번엔 제대로 읽었구려. 헌데, 사장님네 매장은 커피값이 만 원이나 하는 것이오?”
“아니. 1,700원.”
“세상에, 그럼 나머진 팁이라는 말이잖소. 이렇게 큰돈을 선뜻 두고 가시다니, 찰리 어르신께서는 부자가 분명하오….”
내가 털뭉치 녀석 말 통역해주는 값으로 부른 게 20만 원인데, 그걸 현금화해서 보여줬을 때 이 녀석 표정이 어떨지가 궁금하다. 까무러치지 않을까?
생각하다, 애 눈만 높이는 짓 같아서 관뒀다. 얌전히 POS기에 만 원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너 아까 햄버거 하나 먹었잖어. 지금 배고프냐?”
“배부르오.”
“그럼 이것도 니 밥값으로 쟁여두는 걸로 하고, 넌 이제 어쩔래. 뉴스라도 틀어줘?”
지금이 일요일 오후 11시다. 앞으로 아침까진 한가할 테고, 7시 즈음이나 되어야 월요병에 감염된 학생들이 슬금슬금 들어올 터다.
그때까지는 손님도 없을 테니 쉬다 가라. 권해봤는데, 멍멍이가 느릿느릿 고개를 젓고는 밖을 올려다보았다. 따라 올려다보니 달이 뚜렷하다.
“오늘은 밤하늘이 맑소, 사장님. 가로수 잎 흔들리는 걸 보면 바람도 선선하고.”
나가겠다는 소리다. 평소라면 잘 가라 말하고 보내줬겠지만, 이 녀석이 아침에 겪은 일 때문에라도 한마디는 해 줘야겠다.
“그러게 말야. 밖에 사람도 없는 게, 신기한 강아지라며 인터넷에 박제될 일도 없을 것 같고. 그치?”
“그… 그건 백 번 조심하겠소이다, 사장님.”
“천 번 조심해, 인마. 조심하고, 얼굴 자주 비치겠다고 말도 좀 해주고.”
“자주 비치겠소….”
“애매하게 대답한다, 또.”
“자주 비치겠소!”
“그래. 털뭉치 녀석 만나고 싶으면 내 집으로 바로 가지 말고 매장으로 와. 나 근무 안 할 때여도 연락받고 바로 올 테니까.”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멍멍이를 로비 바닥에 내려놓았다. 문을 열어주자, 서너 걸음 나가서는 날 돌아보는 멍멍이.
잠시 후엔 꾸벅 고개를 숙이길래, 나도 몸 숙여서 머리 슥슥 쓰다듬어줬다. 숙인 고개를 들어 학원지구 정문 방향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카운터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가만히 자리만 지켰다. 일요일 밤이라서인지 손님 참 없더라.
* * *
점장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오전 5시경 해가 뜰 때까지도 월급 도둑질만 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세상이 날 자꾸 이런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도 마음이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던 게, 오전 9시 전후로 몰려올 꼬맹이들한테 고통받는 게 정상참작 거리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제가 오늘도 참― 힘들었습니다, 점장님. 오늘은 오크 꼬맹이가 테이블 의자를 찌그러뜨렸는데 어쩌고….
때문에 오전 5시 50분에 은발 그 녀석이 찾아왔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이 시간에 얘가 여긴 왜 있어?
“잘 잤어요? 오빠?”
“뭔 씨. 내가 잠을 어떻게 자?”
“아, 오빠 밤샜겠구나.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듯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는데, 이게 날 놀리려고 하는 건지 진짜 말실수를 했다 여겨서 이러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홧김에 물었다.
“야, 너 손 치워봐. 입꼬리 올라가 있지.”
“진짜 미안해서 이런 건데. 박카스 하나 먹을래요?”
“난 나보다 어린 녀석한텐 뭐 안 얻어먹어, 짜샤. 근데 너 이 시간에 여기 왜 있냐?”
지금은 하도 할 짓이 없어 거리 앞을 쓸던 참이었다. 빗자루를 정문에 기대며 묻자, 내 말에 오히려 어리둥절하다는 어투로 되물어온다.
“저 지금 근무시간 아니에요?”
나도 어리둥절해져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맞았다. 나 오늘부터 6시 퇴근이었지….
“아니면 제가 더 일찍 나와야 됐던 거예요?”
“아니, 제때 나온 거 맞다. 그냥 내가 착각한 거야.”
10분 전 출근이면 차고 넘친다. 사회초년생들이 알바 시작할 때 흔히들 하는 짓이, 몇 시 정각까지 출근하라는 말 듣고 딱 정각에 출근하는 거란 말이지?
헌데 인수인계도 일이란 말이다. 정각에 맞춰올 경우, 인수인계에 걸리는 시간만큼 전 근무자가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 이걸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고작 3~5분 가지고 쩨쩨하게 군다며 투덜대고 싶거든, 점심시간 수업종 쳤는데 선생이 3분간 밖으로 안 내보내 줄 경우에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되새겨보면 된다. 칼퇴근이 이렇게나 소중하다.
“오빠도 착각이란 걸 하네요.”
“밤새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 야. 여튼 인수인계나 받어.”
초등학생의 탈을 쓴 멧돼지 떼가 매장 비품을 박살 낼 경우를 기준으로 3분이 걸리는데, 이번엔 그런 것도 아니라 10초가 채 안 걸렸다. 별일 없었고, 멍멍이가 햄버거 먹고 갔다. 끝.
“맞다, 그 멍멍이. 그 영물 애는 잘 있어요?”
“밥 먹여서 보냈으니 잘 있겠… 걔 영물인지는 어떻게 알았어?”
크게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다. 이 세상서 사는 사람이라면, 말하는 강아지니까 영물이겠네― 라고 생각하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싶었는데, 이 녀석이 크게 궁금해질 대답을 해왔다.
“알 만한 아는 사람한테 물어봤어요.”
“아는 사람 누구?”
“그냥 아는 사람요.”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내 반응이 당황스러운지 역으로 되물어왔다.
“왜, 왜요.”
“친구도 없다는 녀석이 아는 사람 얘길 자꾸 하는 게 신기해서 그런다. 그 아는 사람이 대체 누구야?”
“저랑 마음 잘 맞는 사람 있어요.”
전에 일 가르쳐 줄 때도 이 녀석이 비슷한 얘길 했었다. 성격 잘 맞는 아는 사람이 일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줬다고.
그땐 성격이 잘 맞는다 하더니 이젠 마음이 잘 맞는단다. 왜 그때랑 말이 다른지를 물어볼까 하다, 그냥 적당히 수긍해주고 말았다.
“인터넷 친구인가 보네.”
“…맞아요. 인터넷 친구.”
정말 인터넷 친구여서라기보단 내 말을 옳다구나 받았단 기색이 빤했다. 그래도 이 녀석을 대할 때 내가 세워둔 방침이 하나 있다.
이 녀석은 내가 딴 세상에서 왔다는 걸 짐작하고 있다. 점장피셜 본인만 쓸 수 있는 모종의 마법으로 말이다. 단지 얘기만 안 하고 있을 뿐.
그걸 내게 캐묻지만 않는다면, 나도 이 녀석 비밀 하나쯤은 참아줄 수 있다. 이 녀석이 호기심을 못 참는 순간이 오거든 그땐 뭐, 서로 끝장토론 하는 거고.
얘가 대인관계 기준이 이상한 거지 나쁜 애도 아니고 말이다.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해줬다.
“어쨌든 멍멍이 걔 잘 있고, 앞으로는 얼굴 자주 비치라고 했으니까 궁금한 거 있거든 걔한테 물어봐라. 나한테 들으면 재미없을 거 아니냐.”
“네. 근데 걔 오면 이름 지어줘도 돼요?”
“걔 이름이 멍멍이인데?”
“네? 왜 멍멍이 이름이 멍멍이예요?”
“낸들 알어? 걔 예전 집주인이 알 문제지. 여튼 인수인계 이게 끝이다.”
이렇게 인수인계도 끝났겠다, 마당을 마저 쓸려고 했는데 애가 빗자루를 가리키며 말해왔다.
“제가 마저 할 테니까, 집 가서 얼른 잠이나 자요.”
“천천히 잘 거다, 인마. 나 아직 7분 남았으니까 들어가서 옷이나 갈아입어.”
내 말에 쪼르르 달려가서 옷을 갈아입고는, 이젠 지가 근무자니 자기가 빗자루질을 하겠다고 기어이 우겨댔다.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넌 빗자루질 하는 게 뭐가 재밌다고 일을 막 뺏냐.”
“대학 강의 듣는 것보단 재밌어요.”
“그렇게 말하니까 확 와닿는다, 야.”
치와와가 했던 하소연을 들어서 그런가, 정반대인 이 녀석 상황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하기사, 그 양반도 이 녀석 나이 때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졌겠지….
결국 빗자루를 쥐여줬고, 유니폼을 옷걸이에 걸고 보니 오전 6시. 밖에 나와 유리한테 물어봤다.
“야.”
“왜요, 오빠.”
“나 이제 뭐 하냐?”
해도 덜 뜬 판국에 어디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고, 내일 이 시간에 뭘 해야 될지도 마찬가지로 모르겠다. 내친김에 옛날에 못 다 이뤘던 대형면허의 꿈에 다시 한번 도전해 봐?
“오빠 밤샜잖아요. 그냥 자면 되지.”
“그건 맞는데, 내가 어제도 아침부터 잠만 자다 출근했다고. 지금도 집 들어가서 자버리면 그땐 하루 16시간 가까이 잠만 자는 놈이 된다― 이거야.”
하루 12시간씩 근무할 때도 일을 좀 덜 하면 좋겠단 생각만 해왔었지, 정작 남는 시간에 뭘 할지는 전혀 생각해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폰으로 동영상이라도 봤다간, 동영상만 보다 하루가 다 날아갈 게 분명하고….
한 달 넘어서야 생긴 여유이니만큼 견실하게 써보고 싶다. 대화 주제 삼을 겸 의견을 묻자, 이 녀석이 단칼에 대답해왔다.
“그럼 빗자루질이라도 하든가요. 자.”
“아니, 다시 권할 걸 애초에 왜 뺏어간 거야?”
“당근과 채찍이에요.”
채찍은 그렇다 치고 당근은 어디 갔냐. 물어보려던 도중 폰으로 톡 알람이 하나 울려왔다. 바로 확인해 봤더니, 내 바람에 정확히 부합하는 톡이었다.
[ 이른 아침에 톡 보내서 죄송해요, 찬이 씨. ] [ 확인하시거든 톡 부탁드릴게요 ]엘레나 양이었다. 오전 6시에 안 주무시고 계셨냐 답장을 보내자, 몇 개는 톡이 텀 한번 없이 순식간에 몰아쳐 왔다.
[ 아 ] [ 깨어계셨네 ] [ 그게요 ] [ 어제 회식 때 있었던 얘기인데 ] [ 팀장님께서 찬이 씨를 회사에 초대하고프다 하시더라구요 ] [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하셨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