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07)
이세계 편돌이-206화(207/331)
206화.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1)
* * *
이후로도 톡이 끊임없이 밀려왔고, 보고 있자니 정황이 대충 짐작이 됐다.
[ 서브들이 거의 끝나는 참이라, 월요일 회의에서는 메인에 관해서만 다루겠다고 이야기가 흘러갔거든요. 그 메인 주제가…. ]내가 먹었던 묘약 샘플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듣고 재검토하는 것인데, 이 반응에 대해 내가 아직 얘길 못 해줬다. 물어봐야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먼저 말 꺼내기도 좀 그렇고. 말이 협업이지, 약 먹고 감상 말해 주는 게 하는 일의 전부잖은가. 어쨌든….
[ 그래서 찬이 씨 얘기를 들어보려고 했는데, 팀장님께서 정작 자기는 찬이 씨 얼굴을 뵌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얘기하셨었고 ]그걸 시작으로 옆자리에 있던 서큐버스 직장 선배 한 명이 나도나도, 그분은 어쩌다 알게 됐어? 하며 동참하고, 그 옆자리에 있던 다른 선배 한 명은 그 인간분 키 커? 하면서 묻고, 엘레나 양이 소주잔 채워주던 선배 한 명은 술은 잘 마셔? 물어보고―
분홍머리 막내 양은 어, 어? 하면서 이야기 흐름에 따라가질 못하다가, 내게 권해보긴 하라는 팀장 지시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단다. 다 들은 뒤, 톡으로 소감을 적어 전송했다.
[ 허어 ] [ 죄송해요 ]얼마나 죄송했냐면, 죄송하단 톡 밑에 울상이 된 토끼 이모티콘까지 추가해 보내올 정도였다. 핀트는 좀 어긋났지만 말야.
[ 찬이 씨 피곤하실 거잖아요. 지금도 근무 중이실 거고 ]밤새워서 피곤할 사람이 회사까지 찾아오게 만들어서 미안한 거란다. 이건 바로 정정해줬다.
[ 저 이제 일 3교대예요. 오늘 근무 끝났어요 ] [ 엇 ] [ 정말요? ] [ 예.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지금도 피곤하진 않아요 ]그러니 찾아가는 것 자체는 크게 무리가 없고, 오히려 자격증 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뉴비 불러주는 게 고맙다고 답장 보냈다. 근데, 그….
[ 아뇨, 뭘요 ] [ 팀장님께서 안 오셔도 전혀 신경 안 쓰신다고 말해주긴 하셨는데요 ] [ 혹시라도 생각 있으시면 부담 없이 말해주세요 ] [ 사내 카페 케이크가 맛있어요! 샤베트두요. 바리스타분도 친절하시고― ]서큐버스겠지. 이게 내겐 아주 큰 문제다.
아니, 바리스타 포함해 사내 직원들이 죄다 서큐버스인 회사를 한낱 인간 남캐인 내가 무슨 깡으로 들어가. 사람 흑역사 만들 일 있어?
하물며 내가 사랑의 사 짜라도 아는 놈이면 모를까, 나 모쏠이다. 서큐버스는 특성상 사랑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종족이고 말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이 주제로 한마디라도 했다간 봐, 사내 방송으로 웃음벨이 울려 퍼질 거 아냐….
란 생각에 지레 겁부터 먹고 봤는데, 마저 오는 톡을 보니 아주 걱정할 일까지는 아닌 듯 보였다. 회사 특성상 외부인이 견학할 수 있는 극히 제한적이고, 가서 하는 일도 팀 회의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라는 것.
[ 죄송해요. 회사 전부 구경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 [ 그거 참 아쉽게 됐네요 ]입조심만 하면 이불킥 찰 일까진 안 생길 듯하다. 답장을 보낸 뒤 엘레나 양 톡을 기다렸으나, 톡이 더 올라오진 않았다. 내 답장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 5분. 생각할 겸 스마트폰으로 머리를 툭툭 두드려봤으나, 처음 결론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 톡을 보냈다.
[ 오늘 9시 반쯤에 봬도 됩니까 ] [ 네? 그렇게 일찍요? ] [ 날짜는 오늘이 아니어도 상관없는데, 시간은 아침 아니면 가기가 힘들어요. 저녁 되기 전엔 자고 출근해야 돼서 ]안 갈 수는 없다. 기껏 불러준 걸 거절했다간 서로 입장이 애매해질 테니까. 어차피 가야 할 거면 여유가 있는 지금 가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고….
솔직히 나도 호기심이 없지는 않다. 내가 제대로 된 회사를 다녔던 게 아니어서인가, 늘 다른 회사 내부가 궁금하긴 했었거든. 오늘 호기심 하나가 해결될 것 같다.
답장을 보낸 뒤엔 톡이 좀 늦길래, 쇼윈도 앞 테이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밖만 바라봤다. 그러다 3분 뒤.
[ 그럼 아침 9시 반에 봬요. 장소는…. ] [ 어…. ] [ 제가 직접 갈 테니까 위치만 말해주십쇼 ] [ 아뇨, 매장으로 찾아갈게요. 걸어서도 금방 가니까! ] [ 이따가 봬요! ]이 톡에 뒤이어 토끼가 두 팔을 활짝 벌린 이모티콘이 세 번 연달아 날아왔다. 실수로 여러 번 보냈다며 사과해오더라.
알았다고 답장 보낸 뒤, 폰을 덮고 밖을 바라보며 상상해봤다. 직원이라고는 서큐버스들밖에 없는 회사에 편돌이 하나. 흠….
“이런 씨.”
“얘기 끝났어요?”
“집에 청바지에 셔츠밖에 없는데, 뭐 입고 가야 되냐.”
“얘기 끝났냐니까요. 오빠.”
목소리에 옆을 올려다보니, 유리 녀석이 빗자루를 어깨에 짊어진 채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빗자루 솔 쪽에는 먼지 보푸라기가 잔뜩 뭉친 채다.
“야, 밖에 쓸었으면 빗자루 털고 들어와. 매장 안에 또 쓸어야 되잖어.”
“잠깐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얘기 끝났냐니까요.”
“끝났으니까 이러고 있지. 근데 이건 왜 자꾸 물어봐?”
“그냥 궁금해서요.”
세상에 그냥 궁금한 게 어디 있어. 생각하며 잠깐 시선을 돌렸는데, 이 녀석 등 뒤쪽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확실히 얼굴 곳곳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
“오빠 말하는 거 들어보면 다른 것도 궁금한 거 같고.”
“그건. 잠깐, 야. 내가 뭔 말을 했어?”
“네. 청바지에 셔츠밖에 없다고요.”
정확히 아는 걸 보니 내가 정말 혼잣말을 하긴 했나 보다. 무덤덤한 표정의 유리를 가만 바라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봤다.
“너 옷 좀 잘 아냐?”
난 전혀 모른다. 공장 굴렁쇠로 굴러다니던 놈이 패션에 대해 뭘 알겠냐고. 그나마 아는 거래 봐야 회색 옷을 입으면 시멘트 가루가 묻어도 티가 안 난다는 점 정도?
일부러 관심도 안 가졌고 말이다. 초대라고는 생일파티에조차 받아본 적 없을뿐더러, 내 팔자에 인텔리들 다니는 회사에 부름받을 줄 내가 알았어야지.
그리고, 난 내게 모자란 지식을 겸허히 수용할 줄 아는 놈이다. 유리가 대인관계는 꽝이더라도 본판만은 훌륭한 녀석이니, 그걸 살리기 위해서라도 패션에 관심이 많을 수도….
“저도 집에 청바지랑 셔츠밖에 없어요. 친구 없는 애한테 바랄 걸 바라셔야지.”
“야이 씨, 니는 그 거치대 아깝게―”
“그래도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 드릴 수는 있는데.”
또 아는 사람 얘기다. 일도 그렇고 영물도 그렇고, 이 녀석은 분야별로 아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인 거야?
반신반의하며 바라봤으나, 이 말을 해올 때의 유리가 보기 드물게 자신만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속는 셈 치고 부탁해 봤다.
“그럼 부탁 좀 해보마. 잘되면 아침밥 사줄게.”
“좋아요.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니 나가면 카운터는 누가 봐, 인마. 나 바람 좀 쐬고 온다.”
말한 뒤에 잠깐 밖으로 나와, 신호가 네 번 바뀔 즈음 다시 들어가겠다 마음먹었다. 헌데 신호가 한 번 바뀌기도 전에 등 뒤에서 이 녀석이 옷을 꾹 잡아당겼다.
돌아보자마자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메모지 하나를 내게 건네왔다. 받아서 읽어 봤는데, 흰색 반팔 티에 청바지. 검은색 방수 바람막이…?
“야. 비도 바람도 안 부는데 방수용 바람막이는 뭐야?”
“오빠가 마른 편이고, 어깨 의외로 넓잖아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추천해 주던데.”
“아니, 방수용 바람막이를 왜 입냐니까.”
아까 폰 메인화면에 일기예보 떠 있던 걸 봤다. 해 구석에 작은 구름조차 안 걸쳐져 있었다. 묻자, 이유를 생각해 보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유리.
그러다 귀찮아졌는지, 툭 내뱉듯 말해왔다.
“그냥 입으라면 입어 봐요. 손해는 안 볼 테니까.”
“…오냐. 이것도 패션인지 뭔지 하는 그거겠지….”
“그래도 가장 가까운 매장 열리려면 8시 반까지는 기다려야 되지만요. 집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자는 게 낫지 않아요?”
“지금 안 가, 인마. 9시쯤 갈 거야.”
“왜요?”
* * *
왜긴 왜야? 매장 박살 날까 봐 그러지.
“저기요, 아저씨. 매장에 카드팩 없어요?”
“있었는데 이젠 없다. 니 오기 전에 딴 애들이 죄다 사 갔어.”
내가 패션은 몰라도 평일 매장 흐름은 아주 잘 안다. 매장에서 죽치고 있기를 2시간 반.
초등학생 꼬맹이들이 일일 퀘스트라도 깨러 온 마냥 자연스레 매장으로 몰려들어 왔는데, 텅 비어있던 로비가 꽉 차는 데에 3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이 중에는 엄마가 쟁여준 교통카드를 흔들며 아침밥을 사려는 녀석들, 동전을 긁어모아 2+1 행사 중인 사탕을 사려는 녀석들 등등 그나마 건전한 녀석들도 있었던 반면.
자기가 어른들보다 더 많은 걸 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도 물론 있었다. 아니면 딱지겜에 지나칠 정도로 진심이어서든, 뭐든….
“거짓말. 창고에 숨겨둔 거 있는 거 제가 모를 거 같아요?”
“너랑 똑같은 소리 하는 애들이 하도 많아서 내가 아예 사진까지 찍어놨다. 이거 보이냐?”
지금도 고블린 꼬맹이 한 녀석이 카드게임 카드팩을 달라고 졸라대고 있는데, 내가 진짜로 이러는 녀석이 있을까 봐 사진을 찍어뒀었다.
그것도 두 장. 잠깐이나마 카드팩이 진열되어있었던 진열대와 현 재고 상황. 0이라 적힌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자, 이 꼬맹이가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치, 뭐 이런 거지 같은 매장이 다 있어….”
“내일 7시면 다시 부자 되니까 그때 오든가.”
“…내일 몇 시요?”
“7시.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다른 데 소문내지 마라.”
고블린이어도 애는 애라고, 자기한테만 알려주는 거란 말에 기분이 확 반전된 건지 입을 꾹 다문 채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내일 7시엔 아침 손님이 꽤 많겠구만….
이 꼬맹이가 나간 게 8시 40분이었고, 10분 후에는 내일 7시에 찾아올 꼬맹이들 수가 30명으로 늘었다. 학원지구 정문 쪽에서 등교 종이 끝나는 걸 기다렸다가, 카운터로 다가가 유리에게 물었다.
“나 갔으면 쟤네들 감당됐겠냐?”
“저 죽었으니까 말 걸지 마세요.”
유리가 방금까지 태그가 다 닳아 흐려진 신용카드를 열심히 긁어대고 있었다. 몇 번 긁어보다 안 된다며 돌려줘도 다른 데선 잘 된다며 다시 돌려받고, 그걸 또 긁어주고.
네 번 시도해도 안 돼서 다시 돌려주니, 자기가 해보겠다며 애가 아예 카운터에 들어오려 했었다. 그걸 만류하는 사이에 애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고, 간장 종지보다도 작은 그릇을 지닌 꼬맹이들의 인내심이 폭발해버렸다.
그러니까 내가 달랜다고 유니폼까지 다시 입었지. 매장 곳곳에 버려진 과자 포장지들을 주워 다시 돌아오니, 유리 녀석이 맥 빠진 목소리로 말해왔다.
“아침밥은 안 사 주셔도 돼요, 오빠.”
“돈 굳어서 좋네. 그리고 야, 카드 안 긁힐 때는 POS기 화면에 카드 눌러서 번호 입력하면 돼.”
“그렇게도 해봤는데, 몇 개월인지를 입력하라길래….”
“그거 아무 입력 안 하면 일시불로 결제되는데. 점장님께서 안 알려주셨어?”
내 물음에 엎드린 채 가만히 있다가, 고개만 빼꼼 들어 대답해왔다.
“배웠는데 기억이 안 났어요.”
“원래 일이란 게 그런 거야, 인마. 당황하면 알던 거 다 까먹고 그래.”
“앞으론 당황 안 할게요.”
“해도 되는데, 나 없을 때만 하지 마.”
이 대화 후엔 이 녀석도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듯 몸을 일으킨다. 그러고는 카운터 밖으로 나와, 우산을 띡 결제한 뒤 내게 내밀어왔다.
“이건 보너스예요.”
“아니, 오늘 비 안 오… 것보다 내 보너스를 니가 왜 챙겨주냐?”
심지어는 이게 보통 우산도 아니다. 매장에서 파는 것들 중 사이즈가 제일 큰 녀석이야.
“오늘 강수확률 10%잖아요. 저도 봤어요.”
“그럼 뭔데. 10%에 15,000원을 태워?”
묻자, 아까처럼 귀찮다는 듯 대답해온다.
“전 일기예보 안 믿어요. 저 쉬어도 돼요?”
“그… 요령껏 쉬어라. 엎어져 있다가 손님 못 받지 말고.”
“네. 잘 다녀와요.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