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1)
이세계 편돌이-20화(21/331)
20화. 오열하는 편돌이 (2)
하도 어이없는 상황이라 정리를 다시 한번 해봤다. 편의점 문이 바깥으로 열려있었고, 그걸 취기왕성한 미노타우로스가 술김에 도보를 달리다 들이받아 박살이 나버린 게 현 상황.
뿔이 박혔다 빠진 부분을 시작으로 직경 10cm가량의 구멍이 뻥 뚫린 채였으며, 경첩이 충격으로 박살 나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균열이 난 탓에 투명 문이 불투명 문이 된 건 덤이다.
이래도 연상이 잘 안 된다면, 참새 한 마리가 마하 3의 속도로 날아와 문을 들이받았다 생각하면 된다. 머리에 박힌 유리 파편을 하나하나 뽑아내던 미노타우로스가 내게 꾸벅 사과해왔다.
“거 미안하게 됐수다.”
여전히 피를 뚝뚝 흘리는 채였으나 내 알 바는 아니었고, 그저 주저앉아 오열하고 싶다는 충동만 차올랐다. 출근할 때만 해도 근무 시작 30분 만에 편의점 문짝이 박살 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도 일단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미노타우로스에게 물었다.
“연락처 좀 말해주세요. 나중에 문값 청구하게.”
“어… 글쎄….”
내 물음에 말을 얼버무린다. 어이 어이, 미노타 군. 문값 안 내고 그냥 가려고 그런 거야? 마장동에 팔려 가고 싶은 거냐고 오마에ww
“내 번호가 뭔지 기억이 안 나.”
“그러십니까.”
이런 경우 간혹 있지. 자기 스마트폰에 전화 걸 일이 별로 없잖아.
폰을 건네받아 내 연락처를 입력한 뒤, 통화를 걸어 내 폰이 울리자마자 끊었다. 문값 받아내고 나면 이 소대가리 연락처는 스팸처리 할 거다.
“술김에 좀 달렸는데, 앞에 문이 있을 줄은 몰랐지.”
“알겠으니까 병원이나 가십쇼.”
손님도 아니라 좀 까칠하게 대했는데, 지도 미안한 줄은 아는지 별말은 안 했다. 손으로 피를 스윽 닦아내고는 비틀대며 멀어져갔다. 피범벅인데 걷다가 신고는 안 당하려나 모르겠다.
이후 점장에게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걸자, 큰 한숨 소리부터 들려왔다.
“오늘… 무슨 날인가…?”
저 너머에서 머리를 짚고 있을 점장의 모습도 쉽게 상상이 됐다. 연락처 따놨다고 보고 한 뒤, 바로 덧붙였다.
“점장님, 아무래도 제 잘못은 아닌 듯합니다.”
[ 나도 알지. 찬이 너는 다친 데 없어? ]“마음이 좀 많이 다쳤어요.”
[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네. ]“그리고 문은 아예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구요. 그냥 저대로 내버려 두고 근무해야 할 것 같어.”
[ 응… 내일 나가서 고쳐놓든지 할게. ]찌그러지고 금이 간 문짝을 어떻게 고친다는 건지는 묻지 않았다. 마법으로 쉬리릭 뿅 하겠지, 뭐. 당장 그런 걸 궁금해해야 할 만큼 더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다.
오후 10시 반, 본격적으로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 *
“59,050원입니다.”
“어, 기다려 봐.”
갓 들어온 고블린 하나가 장바구니 네 개에 먹을거리를 죄다 담아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물건을 봉투에 담아야 하는 만큼 계산을 서둘러야 했으나, 고블린의 손놀림은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수십 초가 걸려 여러 장을 꺼내고는, 내게 그중 한 장을 내밀며 말한다.
“일단 이걸로 만 원.”
“…아. 여러 장으로 결제하시는 거라면….”
“안 된다고 말하진 말고. 되는 거 아니까.”
나도 되는 거 안다. 카드 바로 안 꽂고 신용카드 탭을 먼저 누르면 금액을 입력하는 창이 추가로 뜨고 거기에 금액 입력하고 결제하면 딱 그 금액만큼만 결제된다.
다만 대부분의 편의점에선 이걸 잘 안 해준다. 귀찮기 때문이다. 당장 나도 귀찮아서 안 된다 하고 말까 싶었는데, 이 고블린 손놈은 여러 장 결제가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온 낌새라 안 된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걸로도 만 원.”
“네.”
“그리고… 어, 이 카드 아닌데. 잠깐만….”
니는 왜 편의점에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냐….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손님들은 물건을 가져와 줄을 섰고, 다들 내려놓을 데가 없어 품에 안고 있거나, 전자레인지에 올려놓거나 했다. 네 개 있는 장바구니도 이 녹괴 새끼가 죄다 갖다 썼기 때문이다.
“찾았다. 이걸로 만 원.”
“네….”
“그리고 이걸로는 오천 원….”
“사장님, 계산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도베르만 대가리를 한 코볼트 하나가 날 바라보며 독촉해왔다. 내가 이놈을 보내기 싫어서 안 보내는 게 아니잖아. 어떻게든 대답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 조금이 언제입니까, 지금 2분째 서 있다고요. 편의점에서.”
“저기, 총각. 이거 하나만 계산 먼저 해 줘요.”
이 와중에 아줌마처럼 생긴 독두꺼비 하나가 계산대 앞으로 불쑥 끼어들며 물건을 내려놓았고, 동시에 서 있는 줄에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거 인어 아줌마, 지금 여기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요?”
“아이참, 이거 하나만 딱 계산하면 되는데 왜 그리 딱딱하게 굴어?”
“저흰 뭐 계산할 게 많아서 이러고 있습니까?”
“손님들, 금방 할 테니 싸우지들 마십쇼.”
주말 야간 편의점이 이래서 고난이도다.
손님 수가 많은 탓에 오는 족족 바로바로 내보내질 못하면 이렇게 줄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손님들은 편의점에서 줄을 서는 걸 전혀 좋아하질 않는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자기가 편하려고 찾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잠깐 서 있으면 정상참작이라도 하지, 이 고블린 놈이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게 3분이 넘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와중에도 휘파람을 불어대던 고블린이 마침내 세 번째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이걸로도 5천 원….”
“손님. 뒤쪽에 다른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셔서… 죄송하지만 한 번에 결제해 주실 순 없을까요?”
“내가 왜.”
“아무래도 뒤에….”
“카드들 죄다 한도 초과 직전이라, 이렇게 안 하면 결제 안 돼. 아니면 니가 사 줄 거야?”
“아, 거 적당히 좀 합시다!”
“이걸로 만 원.”
뒤에서 클레임이 쏟아지든 말든 꿋꿋하게 실실거리며 카드를 내밀어오고 있다. 한참이 걸려 59,000원까지 계산을 다 끝내자, 고블린은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50원짜리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50원 안 주셔도 됩니다, 손님. 그냥 가세요.”
“땡큐.”
그러고는 휘파람 불며 나가버렸다. 손님들이 나란히 고개를 돌려 고블린을 바라보는데, 뒤통수에 돌멩이라도 집어 던지고 싶다는 얼굴들이었다. 곧바로 바코드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다음 손님 계산해 드릴게요.”
이후로도 진상은 계속해서, 정말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야, 너 턱걸이 몇 개까지 되냐?”
“300개는 껌이지.”
“손님, 거기서 턱걸이 하시면 안 됩니다.”
활짝 열린 문밖으로 대화 소리가 들려서 바라봤더니, 떡대 오크 둘이 차양 끄트머리를 붙잡고 턱걸이를 해대고 있더라. 바로 뛰쳐나가서 뜯어말렸다.
그러고 10분 뒤.
“구에에에엑….”
한창 바코드 찍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밖에서 토악질 소리가 들려왔다. 나란히 걷던 샐러맨더 둘 중 하나가 정문 코앞에 큼지막한 피자를 구워대며 나는 소리였다.
“거윽… 어억….”
“야, 여기서 토하면 어떻게 해.”
말하며 샐러맨더가 등을 세게 토닥였는데, 등에 충격이 가해진 탓인지 샐러맨더가 더욱 거세게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넓고 넓은 길바닥 중에 우리 편의점 정문 앞에 토악질하는 이유가 뭐냐? 내가 궁금해서 그런다.
“죄송함다, 사장님.”
“…제가 치울 테니 그분 데리고 가던 길 마저 가셔요.”
샐러맨더 둘은 가던 길 그대로 갔고, 바닥에는 라지 사이즈 피자가 대형마트 특대 피자 크기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안에 있던 양동이에 물 가득 담아 흩뿌리고, 흩뿌리고, 또 흩뿌려서 겨우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돌아왔다.
그러고 20분 뒤.
“아이고!”
이건 내가 내뱉은 소리는 아니고, 허리 구부정한 늙은 코볼트 하나가 바닥에 소주병을 깨 먹으며 내지른 비명이다. 한창 바코드를 찍다가 술병 깨지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코볼트가 멀거니 술병 깨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이걸 어쩐디야….”
“그… 제가 치울 테니 술값만 주십쇼.”
“술값 줘야 돼…?”
“네, 주셔야 됩니다.”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즈음엔 나도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물게 했단 봐라, 소주병 하나 더 깨질 줄 알아 진짜.
술값 1,800원을 내고는 시무룩해진 코볼트를 내보내고, 오는 손님들에게는 ‘저기에 누가 술병 깨 먹었으니 가지 마라’라고 일러주고.
손님이 안 오는 틈틈이 구석구석을 빗자루로 쓸어 쓰레받기에 담았다. 이후 술로 범벅이 된 빗자루를 물로 씻어 거꾸로 세워둔 뒤, 대걸레로 술도 다 닦고….
그러고 나니 편의점에 잠깐 손님이 없는 타이밍이 왔다. 계산대로 돌아와, 잠깐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해봤….
“끄어어어….”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다고!!
마음의 평온이고 나발이고, 목에 힘줘서 안 틀어막으면 오열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계산대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와중에도 바깥 사거리는 자동차 빵빵대는 소리, 행인들 떠드는 소리, 다른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들이 신경을 벅벅 긁어대고 있다.
게다가 문이 개박살이 난 탓에 저 소리를, 쌀쌀한 바깥바람을 고스란히 다 듣고, 맞아야 한다. 이번 달 월급 받게 되면 정신과 치료비로 다 쓰게 되는 거 아니냐, 탈모도 치료해야 할 거고, 신경성 위궤양도….
“실례합니다, 사장님.”
또 뭐야. 이번에도 진상인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동시에 반사적으로 숨을 삼켰다. 양복을 입은 번듯한 중년 남성 하나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덥수룩했으나, 잘 빗어져 있어 지저분하기보다는 서양의 신사 같다는 느낌이 확 풍겨왔다. 얼굴 인상은 날카로웠으나, 무섭진 않았다. 살짝 웃고 있는 얼굴이라 그런 듯했다.
“더 블루 한 갑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네.”
진상 아닌가?
진열대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되, 좀 정상적인 그림의 담뱃갑을 꺼내다 건네줬다. 공손하게 부탁해 온 만큼 나도 성의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담배를 계산대에 내려놓자, 그 옆의 피로회복제 한 병을 나란히 내려놓고는 주머니에서 5천 원짜리 한 장, 100원짜리 세 개를 꺼내서는 내밀어왔다. 두 개 합쳐서 5,300원. 딱 맞는다.
“잠깐 쉬었다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사장님?”
“네. 명부에 거주지랑 연락처만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진짜 진상 아닌가??
말하는 동시에 명부를 꺼내, 시간 부분은 내가 적어서 줬다. 시간 보는 게 귀찮아서 대충 적는 양반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은 고개를 꾸벅 숙여왔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명부에 정성스럽게 거주지와 연락처를 적기 시작한다. 옆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둔 채였는데, 켜져 있는 화면에서 뭐가 막 껌벅대다 말고 그랬다. 뭔가 일 관련된 어플을 켜놓은 것 같은데.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손님. 실례지만, 뭐 하나만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혹시 진상 안 부리ㅅ… 아니, 이 화면에 켜져 있는 어플 뭔가요. 주식 같은 건가?”
“아, 일 때문에 켜놓은 겁니다.”
이건 추측이 맞았네. 이어서 물어봤다.
“어떤 일 하시길래.”
중년 남성은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기사입니다.”
“…네?”
기사? Knight?
“대리기사 말입니다.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