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16)
이세계 편돌이-215화(216/331)
215화. 눈물의 골든 마우스 (3)
* * *
말한 후엔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려다, 휘청이며 옆으로 발라당 자빠져버리는 찍찍이.
꼬리며 수염이며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게 대답은커녕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어 보였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말을 거는 멍멍이.
“나으리,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구려. 지금 집에 돌아가고 싶다 말씀하신 게 맞소이까?”
“……찍.”
“대체 어째서. 혹시 잠기운 때문에 그러시오? 지금 꿈을 꾸고 계시는 게 아니오. 현실이오. 지금 계신 곳이 그 유리상자가 아니란 말이외다. 또!”
애초에 그 유리상자 안이 집조차 못 되지 않느냐. 원할 때 산책조차 갈 수 없는 곳을 어째서 집이라 부르는 것이냐―
외에도 횡설수설하듯 질문을 늘어놓았으나, 대답은 딱 한 마디뿐이었다.
“찍.”
“그러니까 그곳이 집이 아니라는… 나으리. 힘드시겠지만 주변을 둘러보시오. 주삿바늘도 없고, 먹을 것도 넘쳐나는 곳이라오. 자유의 몸이시란 말이오.”
이 말에도 반응하기는커녕 털실 같은 꼬리 끝만 까딱 움직일 뿐이다. 어지간히도 막막했는지, 멍멍이가 홱 우릴 올려다보며 물었다.
“사장님, 대사장님. 염치 불고하고 한 번만 더 부탁드리겠소. 어떻게, 나으리께서 기운을 차리도록 해주실 수는 없겠소이까?”
내키진 않았다. 기운을 차린다고 찍찍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였고. 점장에게 물었다.
“제가 이 녀석 약 기운을 지웠잖습니까, 점장님. 마력 없애는 거요.”
“응.”
“그럼 그 용액이 들어가 있던 동안 사라진 마력은 어떻게 채웁니까?”
난 못 한다. 내 재주는 마력이나 마법을 지우는 거지, 이미 지워진 마력을 되돌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 물음에 눈을 내리까는 점장.
“천천히 채워지거나, 외부에서 주입하든가, 둘 중 하나야. 전자가 훨씬 안전하구….”
이어서는 내키지 않는다는 어조로 점장이 추측을 늘어놓았는데, 이렇게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력이 사라졌을 경우엔 회복에만 수일이 걸린단다.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경우에 한정해 말이다.
“자연스럽게요?”
“직접 마법 써서 마력 소모하는 거. 이건 쥐가 직접 마력을 쓴 게 아니니까.”
인위적으로 마력이 지워진 상황이기에 신체 밸런스가 망가졌을 테고, 자연 회복도 훨씬 더딜 거다. 그래도 이런 일이 일시적이었다면 회복이 아주 안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찍찍이는 이 주사를 계속 맞았을 거잖아. 주기적으로 마력이 없어졌으니 몸 밸런스도 망가질 대로 망가졌겠지….”
“망가진 걸 나을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가 없으니, 마력도 실험실 양반들이 꼬박꼬박 주입했겠네요. 주사로요.”
아까 이 찍찍이가 ‘아픈 것보단 주사 맞고 졸린 게 낫다’란 말을 했었다. 그게 이 주사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말하자, 점장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매장은 주사기도, 마력도 안 판다. 그래도 다 들은 후엔 ‘왕년의 대마법사가 마법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긴 했으나….
금방 가라앉았다. 이것도 아까 점장이 말했었다. 당사자 의견 들어보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나랑 같은 결론을 낸 거겠지.
“안 된다는 말이외까…? 두 분께서도 말이오?”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가능 불가능 여부를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해달라고 에둘러 떼를 쓰는 듯 들려온다. 심호흡 한 번 한 뒤, 총대를 멨다.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냐? 멍멍아?”
“그 질문엔 나중에 얼마든지 대답하겠소! 하지만 지금은 나으리를…!”
“기억하냐니까.”
“당연히 기억하오! 기억하는데, 긴박한 상황이란 걸 잘 아시잖소. 그걸 왜 묻는 것이오?!”
“그때 내가 너한테 해줬던 걸 이젠 니가 할 차례 같다.”
말해주자, 멍멍이의 눈이 순간 초점을 잃었다. 얼이 빠진 듯 흐린 눈으로 날 바라보다, 서서히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보충해서 다시 한번 말했다.
“집에 가고 싶다잖냐. 그럼 보내줘야지.”
처음 만난 날 멍멍이가 말했었다. 집 나가고 싶다. 듣자마자 머릿속에 이 생각만 가득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할 텐데 굳이?
그래도 난 이 녀석 원하는 대로 해줬다. 존엄성이라는 이름의 땅콩이 사라지기 직전인 상황이어서인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이 녀석이 그걸 간절히 원했으니까. 목줄 풀어줬다.
풀어준 후엔 예상대로 흘러갔고 말야. 사료 먹고 살던 녀석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살게 됐고, 방석이 아닌 그루터기 밑 흙더미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길거리 생활하는 건 매한가지고.
“까놓고 말해서, 난 니 그러고 사는 게 아직도 이해 안 돼, 인마. 그냥 우리 집 들어와서 사료 받아먹고, 햇볕 들어오는 데서 낮잠 자고 그러면 훨씬 편하지 않냐?”
“…….”
“내가 이렇게 말해도 안 그러겠지. 그게 니가 원하는 삶이 아니니까. 찍찍이랑 네 상황이 우리 상황이랑 똑같은 거라고.”
마찬가지로 삶이 걸린 문제다. 마찬가지로 집에 관련된 문제고. 딱 한 가지가 반대이긴 해. 집을 나가냐, 집 안에서 사느냐.
사생활이라곤 쥐뿔도 없고, 주사 맞고, 유일한 낙이라고는 쳇바퀴 돌리는 게 전부인 유리상자 안에서의 삶의 뭐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쥐가 아니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오.”
여전히 미련이 남은 건지 울먹이며 중얼거리는 멍멍이. 한참을 말을 못 잇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 말이 참….
“그래 버리면… 본견은 아무것도 한 게 없게 되지 않소이까. 늘 그랬듯 말이오….”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 떠오르는 걸 말하려 했는데, 유니폼 옷자락 끝이 밑으로 꾹 잡아당겨졌다. 점장이 잡아당긴 거였다.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점장이 머리를 작게 저어왔다.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 같다. 그러라는 의미로 고개 끄덕이자 작게 숨을 내쉬고는 쭈그려 앉는 점장.
앉은 그대로 쥐를 뚫어져라 바다보다 오른손 손가락을 한 번 튕겼는데, 아니 뭔 짓을 하는 거야?
“이거 허가받고 쓰시는 거 아니잖아요, 점장님.”
“걱정 마, 찬아. 겨우 깜지 스무 장짜리밖에 안 돼.”
“깜지 몇 pt로 쓰셔야 되는데요. 아니, 말을 좀 하고 쓰시지….”
“나 혼내는 건 나중에 하구, 상자 잘 봐줘. 나 마흔 장 쓰긴 싫어.”
그러라길래 혼내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신발 상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상자 주변이 일렁이는 게 점장이 확실히 마법을 쓰긴 쓴 듯한데….
“이… 뭔 마법 쓰신 겁니까.”
“주제를 정한 뒤에,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르게 하는 마법이야. 이게 생각 정리하는 데에 엄청 도움 됐거든.”
“왜 그런 마법을 고르셨대요?”
“이렇게 비틀어서 마법 쓰면 크게 뭐라 안 하더라구. 뭐라 하기 좀 그런가 봐.”
나였어도 뭐라 하기 좀 그럴 것 같다. 거 18살 여자애가 구름으로 장난 좀 칠 수도 있지….
주제는 ‘집 밖.’ 점장 읊조림에 맞춰 상자에서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한없이 먹구름에 가까운 검은색이었다. 그것도 장마철마냥 쉴 새 없이 솟구치고 있다.
솟구친 구름이 떠오르려는 게 편의점 조명을 가려버릴 것 같아, 멈출 때까지 손으로 휘휘 저어 없앴다. 잠잠해질 즈음 점장이 짧게 해석해줬다.
“바깥이 무섭대.”
“그래 보입니다.”
“멍멍아. 이 애 원래 있던 곳에 돌려보내야 될 것 같아. 도와줄 수 있겠니?”
몸을 일으킨 점장이 밝게 물었으나, 멍멍이가 이젠 시선조차 마주치질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머리 밑 바닥만 바라볼 뿐이다.
그 바닥에 물방울이 몇 개 늘어나 있다. 두 방울이 더 늘어나도록 대답이 없던 멍멍이가, 메인 목소리로 말해왔다.
“12… 다시 7….”
“12―7번 건물?”
“고양이. 고양이 양반이 그리 말하고. 말했고, 본견이 따라갔. 끄으윽.”
“고마워, 멍멍아.”
“아니오. 미, 민폐. 끼쳐서, 참으로 미안하오….”
한마디라도 더 말 걸었다간 이 녀석 울음보가 펑 터져버릴 것 같다. 다행히도 12―7이라는 말만으로 충분했다. 찍찍이가 든 신발 상자를 조심스레 들어 올리는 점장.
“나 퇴근하기 전에 잠깐 들렀다 갈게, 찬아.”
“괜찮으시겠어요?”
“잠깐 산책하는 셈 치구 다녀오지 뭐. 실험실… 사람들도 곤란해하고 있을 거구.”
실험실 분들이 아닌 사람들. 점장도 그 양반들한테 존칭 붙일 기분까진 못 되나 보다. POS기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10시 반이 다 됐다.
“잘 다녀오시고, 내일 봬요. 점장님.”
“응. 그리구 찬아. 멍멍이.”
잘 달래줘라. 생략된 말에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 끄덕인 뒤, 점장이 매장을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문을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한 뒤 돌아와, 의자에 앉은 채 멍멍이를 내려다봤다. 여태 봐온 것 중 상태가 제일 심각해 보인다.
“끄으으으….”
이 녀석이 두 발로 서서 흐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앞발은 카운터 밑 서랍을 짚은 채고, 다른 앞발로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최대한 가볍게 물어봤다.
“멍멍아. 소감 한마디 해줘라.”
“별로… 별로 안 좋소이다….”
마른걸레를 쥐어짜는 목소리로 대답한 뒤, 코를 훌쩍이며 말을 잇는 멍멍이.
“참말로, 참말로 죄송하오. 사장님께도… 대사장님께도. 찍찍이 나으리에게도 전부….”
“거 고만 좀 미안해해, 인마. 네가 나쁜 의도로 그런 것도 아니고… 어우.”
말하다 말았다. 이 녀석이 축축해진 얼굴을 서랍장에 콩 박아버려서다. 미끄러지려는 몸을 두 앞다리로 지탱하는데, 팔이 바들바들 떨리다 못해 진동을 하고 있다.
“아니오! 결코 좋지 않은 의도였소. 한낱 자기 위안이었단 말이오!!”
목청 참 우렁차다. 이걸 손님이 들어와서 들었다간 난장판이 벌어지겠지만,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다. 두 가지 생각에서였다. 하나는 자기 위안이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돼서.
“본견! 마침내 뭔가를 이뤄냈다 생각했소! 그 유리상자에서 나으리를 꺼낼 때, 축 늘어진 나으리를 바라볼 때. 여기로 모셔왔을 때! 해냈다 생각했다오. 본견의 성사, 본견의 결과! 본견이 이뤄낸 업적이라고!”
“그러냐.”
“나으리를 다시 돌려보낸다 했을 때 본견이 머뭇거렸잖소, 미련을 가졌잖소! 나으리께서 정신을 차리게 해달라!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게 분명하다. 그게. 그게….”
과연 순수한 의도였냐는 거다. 말 못 하는 영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려운 영물들을 구하고, 진정 그들이 원래 삶아야 할 삶을 살게 돕자는 의도에서였는가?
“본견을 위해서였소!! 나으리께서 다시 돌아가면, 본견이 헛수고를 한 게 되어버리니까! 또다시 아무것도 이룬 게 없게 되어버리니까. 계속 뿌듯하고 싶었으니까!”
때문에 탈진한 쥐를 붙들고 몇 번이나 말을 걸었고, 점장과 내게도 염치 불고하고 떼를 썼다는 것이다. 멍멍이는 머릴 박은 서랍에서 주륵 미끄러지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이해할 생각 따위 전혀 하지 않았소이다!! 그저 납득해 주기만, 두 분께서 본견 말을 들어주기만을 바랐소. 본견이 구해 왔다, 떠나보내지 마셔라. 보아 달라고. 인정해 달라고….”
“…….”
“그래서였소. 그저. 그저… 나으리를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을 뿐이란 말이오. 엄연히 삶이 걸린 문제인데. 그래서는 안 됐는데….”
이상, 편의점 바코드기를 십자가 삼아 이뤄진 고해성사였다. 더 이상 서 있을 여력조차 없는지 자기가 흘린 눈물 위로 엎어져 버린 멍멍이.
위로해줄 말이야 많다. 그 마음 나도 이해한다, 이유야 어쨌든 도와주려고 한 거 아니냐. 그런 의도가 있었다 인정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다….
전부 속으로 씹었다. 후회하는 자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위로가 아니다.
“이번에는 네가 많이 성급했다, 멍멍아.”
“…….”
“성급할 수밖에 없었던 거 알아. 내일부터는 투입하는 용액을 좀 늘려볼까― 라고 떠들어댔다며?”
“…그랬소….”
“건너 들은 나도 찝찝했는데 넌 오죽했겠냐. 그래도 생각해보면, 용액량을 늘리는 게 한 번만 있었던 일은 아닐 거잖아. 그 양반들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용액량을 늘렸을 거고.”
‘나중에 의식이 멀쩡할 때에 맞춰 찾아가 얘기를 나눠 본다’라는 선택지를 골라야 했단 얘기다. 난이도야 훨씬 더 높겠지만, 최소한 오늘 같은 결과는 안 나왔겠지.
“네가 첫 일이라 많이 들떠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난.”
“…….”
“그러니까… 다음엔 좀 더 침착하게 해봐. 멍멍아. 가능하면 나한테도 언질 먼저 해주고.”
이게 내 위로다. 똑같은 일로 두 번 후회하지 않게 하는 것. 같이 머리 맞대고 생각해주고, 후회할 일도 안 일어나게 하는 것.
잘은 못 해도 말이다. 그래도 진심은 담았다. 말을 마친 뒤 잠시 기다리자, 멍멍이가 엎드린 채 내게 한 가지 부탁을 더 해 왔다.
“…사장님.”
“왜.”
“본견이 좀, 좀만 더. 울어도, 괜찮겠소이까.”
대답하기에 앞서 의자에서 일어나, 카운터 문 잠그고 돌아왔다. 이후엔 등을 두어 번 토닥여줬다. 이게 두 번째 이유였다.
“흐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 아아아….”
남자도 눈물 없이는 쏟아낼 수 없는 감정이 분명 있다. 내가 아니면 이 녀석 이러는 걸 누가 받아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