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20)
이세계 편돌이-219화(220/331)
219화. 과보호가 원인이다 (3)
* * *
나도 하나 녀석 어머니를 뵌 적이 있긴 하다. 지난달 말 이사 오기 직전, 공원에서 멍멍이 픽업해 매장으로 돌아올 때 딱 한 번.
그마저도 얼굴 윤곽마저 흐릿하게 보일 거리에서 잠깐 눈 마주친 게 전부였지만, 그때 느낌을 못 잊어서 기억하고 있다. 십 수 미터 넘게 떨어져 있음에도 압박감이 무슨, 코앞에서 날 노려보는 것처럼 확….
착하단 인상은 못 받았단 얘기다. 찬양이나 경외할 마음도 안 들었었고. 허나 둘이 말해오는 걸 듣고 있자니, 내 감상을 말해봐야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소리밖에 못 들을 것 같았다.
“마님께서는 내게 쌀밥을 주셨다. 그것도 고봉밥으로 말야.”
“그… 회사가 중식 제공인가 봅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섬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복지를 제공하셨는지 아나? 집과 자동차, 심지어는 대학 입시비용 지원까지!”
“한비 너 입시비용 지원 안 받았잖아.”
“난 체질상 책을 읽을 수가 없으니까. 멀미 난다.”
이것 말고도 연가 및 교통비 지원을 비롯해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줄줄이 늘어놓는데, 듣는 도중엔 딴생각만 자꾸 들더라. 생긴 건 멀쩡한 양반이 하는 소리는 왜 죄다 맛이 가 있냐?
이걸 지켜보던 여자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정리해줬다.
“어머님께서 저희 회사로 데려가시고, 양복 입혀주시면서 딱 두 마디 하셨어요. 늦지 않게만 출근하고 일은 천천히 배워도 된다.”
“난 그때 매주셨던 넥타이를 아직까지도 풀지 않고 있다…!”
“누나로서 부끄럽긴 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리고, 저는… 도시에서 부대껴 지낼수록, 이렇게까지 챙겨주고 두 마디로 끝내는 게 엄청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고요.”
사람 도와주고 생색 안 내는 게 어려운 일 맞긴 하다. 난이도에 비해 보상은 불안정하지만 말이다. 도움받은 상대가 얼마나 염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니까. 여튼.
시골에서 데려온 이 둘을 하나 어머니께서 알뜰살뜰 챙겨줬단다. 외에는 추측이지만, CEO라는 신분으로도 꽤 허물없이 둘을 대해준 듯하고.
그게 남자에게는 경외와 존중, 여자에게는 친절함으로 와닿았나 보다. 하기사, 생각했던 것 이상을 받았을 테니 부정적인 감정이 들래야 들 수가 없었겠지….
…근데,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회사 직원들은 이렇게 잘 챙겨주면서 애랑은 안 놀아준 이유가 뭐야. 직원 챙겨주는 건 일이고 애 봐주는 건 집안일이라서?
“아무튼 저희는 그래요. 그런데, 이건 어째서 물어보셨던 거예요?”
“별 이유 없었습니다. 그냥 흐름 타서 여쭤봤던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저도 궁금한 거 여쭤봐도 되나요?”
“어떤 거요?”
“아까 저희 숨어있던 거 찾아내신 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희 실수는 아닌데….”
이 질문에는 남자도 날 바라보는데, 쌍둥이가 짓고 있는 표정이 똑같다. 대답 안 해 주면 오늘 잠 못 잘 것 같다는 얼굴이야.
이러니 대답을 하긴 해야겠는데, 말만으로는 신빙성이 없을 것 같다. 아예 뒷주머니에서 자격증 꺼내 보이며 말해줬다.
“부업으로 반마법 쪽 일 하고 있거든요. 매장 카운터 보는 게 본업이고요.”
“…표지의 금박이 아름답군. 물론 아가씨와 마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말야.”
“한비 너 자꾸 얼빠진 소리 할래?”
“난 사실만 말한다. 얼빠진 건 이 세상이야.”
“아, 몰라. 사장님, 본업이랑 부업을 바꿔 말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딴 건 몰라도 직업 정체성만은 확고합니다. 제대로 말한 거 맞아요.”
반마법 쪽 일이 부업이 맞고, 체질이 특이한 덕에 야매로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된다. 이번에 두 분 찾아낸 것도 그 일들 중 하나다―
내 눈가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마저 설명해주자,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몇 발자국 떨어져서는 속닥대는 둘.
“한비. 우리 반마법사한테 들킨 적 없지 않아?”
“두 번 마주쳤었고, 두 번 다 아무 일 없었다.”
“그치. 우리가 일은 서툴러도 마법 못 쓴다는 얘기 들은 적은 없잖아. 고향 분들한테도 말야.”
“무언가 담을 주머니라곤 머릿속이 전부였고, 담아온 거라곤 마법뿐이었으니까.”
“내 말이. 넌 이거 납득 돼?”
“아니. 좀 더 확실히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자기들 딴에는 목소리를 죽인답시고 죽였는데, 이야기에 꽤 열중한 건지 몰래 몇 발자국 다가가도 전혀 눈치 못 채더라. 이대로 뒀다간 내 몸뚱어리 질문만 주구장창 대답해야 될 흐름인데….
그러기는 싫다. 난 돌팔이나 다름없는 놈이고, 밑천 드러내고 싶지도 않다. 슬쩍 몇 발자국 떨어진 뒤 화제를 바꿔 말을 걸었다.
“저기요, 두 분.”
“…아, 사장님. 네?”
“여기 계속 계셔도 괜찮습니까? 다른 업무 있으신 거 아녜요?”
“오후 3시 30분경에 아가씨의 소풍이 끝날 때까지 호위하는 게 우리 업무다. 회사에 복귀하는 건 그다음이야.”
“어… 하나 돌보는 거 외에 회사 업무도 따로 보시는 건가 봅니다.”
“네. 자원해서 하는 거예요. 그만큼 잔업은 늘지만요.”
자기들 외에도 회사에 드래곤들이 많고, 자기 업무 보면서 그때그때 여유 되는 드래곤들이 서로 합의해 하나를 돌봐주는 거란다. 하나 어머님께도 당연히 보고하고.
들으면서는 ‘이렇게 자원하는 구조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싶었으나, 여태껏 아무 문제도 발생한 적이 없단다. 왜냐.
“다들 하나를 좋아하거든요.”
“아하.”
“못 돌봐줘서 안달일 정도로요. 오늘도 제비뽑기로 정했고요.”
“오늘만을 위해 그간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다. 누군가가 무심코 버린 운을 줍기 위해서….”
진심으로 운을 모아 당첨제비를 뽑은 거라 생각하는지, 뿌듯하다는 양 자기 주먹을 불끈 쥐는 남자. 그래, 앞으로도 쓰레기 잘 줍고 다녀라….
“헌데, 네 녀석 말야.”
“저 뭐요.”
“아가씨께서 네 녀석을 무척 신뢰하는 걸로 보인다. 오랜 기간 함께했던 우리보다도 더.”
“어… 그렇습니까?”
“그렇게 보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아, 맞아요. 이건 나도 궁금했어.”
여자도 고개 크게 끄덕이는 게 적잖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 얘기 하는 것도 내키진 않지만, 내 몸뚱어리 얘기를 늘어놓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을 것 같다.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매장 안에서부터 묵혀뒀던 말들을 하나씩 꺼내 봤다. 우선 처음 만났던 때부터.
“하나가 어른들 착하고 나쁘고, 이걸 뿔로 감지하잖습니까. 마력이요.”
“그래.”
“저한테는 그게 안 된대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체질이 요상해서, 마법 같은 게 잘 안 통하거든요. 그런 제가 신기한 건지 편한 건지, 매장 와서는 가위를 달라고 했었는데….”
가위값이 없어서 내가 아예 매장 가위를 빌려줬었고, 가위 빌려준 김에 쓰는 것도 같이 도와줬었다. 어버이날에 어머니 드릴 선물 만드는 거.
그러다 보니 서로 말문도 트고 편하게 대하게 됐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이거다. 내가 나쁜 어른이 아닌 거 같대. 친구 같댄다.
“친구…라고.”
“예. 우습게 들리시겠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실제로도 우스운 상황 맞다. 뭔 씨부레, 30줄 다 된 편돌이가 7살 먹은 드래곤이랑 친구를 먹었대. 이거 지나가던 경찰이 경광봉을 꺼내 들 만한 발언 아닌가?
그래도 난 내가 잘못했다고는 생각 안 한다. 7살 나이에 엄마 말, 어른들 말 잘 듣는 애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게 맞아.
그렇게 안 해주면 나처럼 삐뚤어지고 말테니까. 저 애만은 나처럼 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노력해왔고, 지금까지는 나름 잘 해냈다 자평하고 있다. 두 분은 어떻게 해오셨느냐.
“난 늘 아가씨께 최선을 다했다. 물론 오늘은 아가씨를 실망시켰지만―”
“그걸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그… 아까 하나가 그랬잖습니까. 시킨 대로 다 했는데, 두 분께서는 왜 자기 말 안 들어주시냐고.”
“…그랬지.”
“보통 친구끼리 그런 말 안 하잖습니까?”
이 둘과 하나의 관계는 친구와는 거리가 멀다. 아까도 그랬잖은가. 하나가 서운해서 하는 말에 둘 다 제대로 대답 못 하고 쩔쩔매고.
“사장님. 그래도 저는 하나가 최대한 덜 부담 갖게 하려고는 했는데요….”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 거 같아서요. 저 애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 잘 안되시지 않아요?”
아까 이 얘기도 짧게 나눴었다. ‘난 그냥 애 입장에서 생각할 뿐이다.’ 이 말에 여자 반응이 이러했다. ‘그게 어떻게 되지?’
살아온 세월이 달라서? 이건 이유가 못 된다. 183세나 29세나 7살 애랑 친구 먹기 힘든 건 매한가지잖은가. 원인을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저 애요. 자기를 동등하게 여겨주는 사람을 바라는 거 같아요. 간절하게요.”
“…….”
“그게 저 애한테는 친구인 거고.”
이 쌍둥이들은 하나를 우러러보고 있다. 그러니 동등하게 여길 수도 없다.
나도 이해는 한다.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재직 중인 회사 CEO의 딸과 직장인의 관계이기도 하고, 혼혈과 순혈. 이건 내가 이세계 짬밥을 덜 먹었으니 추측으로만 남겨두고.
“또, 하나가 보통 똘똘한 애가 아니잖아요. 눈에 보였을 테고요.”
둘 마음도 봐왔을 터다. 애를 예뻐한다 했으니 하얀색에 가깝겠지만, 다른 색이 섞여 있다. 이 애는 우리와는 다르다는, 더 높은 무언가라는 이질감.
“그게 정확히 뭔지는 저 애도 몰랐을 겁니다. 이건 인생 경험 문제니까. 하지만 밝은색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 색이 어떤 색이었을까요?”
“보라색요.”
고귀함과 화려함, 갈등과 이질감을 전부 상징하는 양면적인 색이다. 하나에게는 단 한 가지도 어울리지 않는 색이기도 하다.
저 애는 고귀하지도 화려하지도, 갈등과 이질감과도 하등 없으니까. 세상 착하고, 또래보다 약간 더 어른스러운 애일 뿐이다. 그게 다야.
의견을 말하자,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감탄하는 여자.
“오오. 아는 게 참 많으시네요, 사장님.”
“쓸데없이 기억력만 좋아서 이래요. 중학교 다닐 때에 미술 선생님이 창밖에 무지개 뜬 거 보라면서 이 얘길 했는데, 참 분위기 파악 못 한다―”
“분위기?”
“무지개 예쁘잖습니까. 예쁜 거 보면서 뭐 이런 어두운 소리를 하냐, 이 생각이랑 같이 머릿속에 남아버렸단 얘기에요. 그리고, 뭐… 뭔 말 하려고 했었더라?”
대화가 잠깐 딴 데로 새서인가. 꺼내려고 준비해둔 말이 아니라 ‘뭔 말 하려고 했었지?’란 잡생각밖에 안 떠오른다.
계속 생각을 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아, 포기하고 말을 맺었다.
“말이나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편하게 해 주셔라,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두서없이 들리셨다면 죄송하고. 제가 말을 잘 못해요.”
“확실히 네 녀석이 말을 못하긴 한다.”
“아니, 그렇다고 진짜 말을 못한다 하시면….”
“난 사실만 말한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잘 알겠어.”
“나도.”
이러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쌍둥이.
뭘 알았다는 건지 물어보려 했는데, 이 둘이 물어볼 기회 자체를 안 줬다. 발을 옮겨 정문 계단을 내려가서는 동시에 날 뒤돌아보며 한마디씩 해왔다.
“난 선처해 달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 반드시 선처해라. 알았나?”
“이… 이 뭔?”
“법카를 차 안에 두고 왔거든요. 나중에 먹을 거 잔뜩 사러 올 테니까, 오늘은 봐주세요. 네?”
잘 알았으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가셔라. 대답하자 남자는 까딱 고개 끄덕이고, 여자는 왜인지는 몰라도 자기 눈가에 손가락을 댄 뒤 튕기듯 떼고는….
“…9시까지는 매장에 계실 것 같은데, 차 안에서 뭐 할까?”
“밥 먹자. 나 배고프다.”
“한비 너 아침밥 안 먹었어?”
“아가씨께서 첫 소풍을 나가시는 기념비적인 날인데, 날 보고 밥을 먹으라고?”
“네가 소풍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네가 들떴어. 그리고, 아까 사장님께서 마음 편하게 먹으라 하셨잖아. 그렇게 말하지 좀 말고.”
“그게 그 뜻이었나?”
이런 말들을 남기며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바라보다, 적당히 생각하며 매장 안으로 돌아왔다. 내가 하나랑 놀아주는 건 안심하겠다. 이런 의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