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22)
이세계 편돌이-221화(222/331)
221화. 편돌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1)
* * *
늘 그래왔듯 지 할 말만 하고는 등을 홱 돌려 자기 차 운전석 쪽으로 걸어가는 교수. 차 타고 어디 같이 가자는 의도로 보여 조수석으로 향했는데, 교수가 곧바로 쏘아붙여 왔다.
“거긴 왜 갑니까?”
“타려고요. 저희 어디 가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뒷좌석 열고, 안에 있는 종이봉투를 가져가십시오. 당신 거니까.”
말하고는 자기 자동차 리모컨을 삑 누른다. 말해온 대로 뒷좌석의 종이봉투를 꺼내 나오는 사이, 내용물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는 교수.
“각각 수십만 원 상당의 마법초. 건강검진 예약서. 양과자 세트. 햄버거 세트 쿠폰. 침수된 편의점 상품들에 대해 보상할 것이 명시된 문서. 그리고.”
“그리고요?”
“요강은 그냥 동일 금액을 드릴 테니, 그분께 알아서 구매하라 하십시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엘레나, 울프 어르신, 하나, 멍멍이, 점장, 찰리 양반 요청이다. 보상이 늦어지길래 ‘나랏일이 다 그렇지 뭐―’ 생각했는데, 이 양반들이 그래도 일을 안 하는 건 아니구만?
“헌터분께서 요청하셨던 휴가는 고위층 지인에게 연락해 뒀으니, 조만간 답신이 올 겁니다. 마지막으로, 경찰분의 노고에 대한 치하…는.”
“예. 그건 어떻게 됐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탁이니, 그분께 달리 원하시는 게 있는지 여쭈십시오. 이상입니다.”
어째 내던지는 듯 말을 맺어오는데, 썩 좋게 들리지는 않았다. 아니, 딴 건 다 해주면서 왜 경관분 일은 처리를 안 해줘? 내가 어려운 거 부탁했냐고.
진짜 별거 아니었다. 이분이 민중의 지팡이로서 모범을 보이셨으니, 지팡이 손잡이에 훈장까지는 힘들더라도 짝대기 하나만 더 그어줘라―
곱씹고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탁 맞는 거 같다. 내가 굽혔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이것들 챙기느라 고생하셨겠네.”
“감사 인사를 하려거든 차후에 제 조교와 대학원생들에게 하십시오.”
“예? 대학원생이요?”
“말 그대로의 뜻이고, 들을 겁니까? 안 들을 겁니까.”
이건 아까 나오면서 했던 일 얘기 같은데, 지금 내 뒷주머니에 반마법사 자격증이 들어있다. 이 세상에서는 신분증 대용에, 가끔 잘난 척하고 싶어질 때 써먹고 있다.
잘난 척을 계속 하려면 매달 나랏일 두 건을 해내야 하는데, 내가 할당량 중 절반을 이미 채웠다. 점장이랑 같이 경관분 따라가서 보물고블린 잡은 걸로 말야.
지금은 6월 둘째 주밖에 안 됐고. 시간이 넉넉하단 얘기다. 마음 같아선 안 한다 하고 다음 주나 다다음 주 즈음 천천히 고민해보고 싶기는 한데….
“어떤 일이길래.”
이 양반이 안 듣겠다는 대답 들으려고 아침 일찍 시간 내서 찾아온 건 아닐 터다. 내 대답에 자기 차에 어깨를 기대며 입을 여는 교수.
“두 갭니다. 하나는, 도난 사건이 발생한 학원지구 내 건물의 보안 강화.”
듣자마자 이건 안 되겠단 생각부터 든다. 근데, 도난 사건?
“어디 도둑이라도 들었어요?”
“연구 시설. 연구되던 쥐 한 마리가 도망쳤고, 외부 요인에 의해 기물이 파손된 흔적이 있었습니다. 연구실 도어락에 날카로운 뭔가로 긁은 듯한 스크래치 세 갈래.”
“…….”
어…….
“흡사 고양이 발톱 자국 같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묵살했습니다. 한낱 길고양이가 그 건물에 침입할 이유도, 그럴 능력도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유, 물론이죠. 그렇지 않지가 않죠.”
“…이 자국 외에도 보안 마법이 파손된 흔적이 있어 반마법사의 자문을 받아야 할 것 같다더군요. 생각 있습니까.”
여기에 대답하기에 앞서 내 투룸이 있는 방향을 힐끗 바라본 뒤, 현 상황을 저주했다. 이 털뭉치 놈이 다녀올 거면 곱게 좀 다녀오지, 손톱으로 도어락은 왜 긁고 간 거야.
“그, 혹시 다른 흔적은 또 없었습니까?”
“진흙에 소형견 발자국이 남아있었습니다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떠돌이견 짓이겠죠. 헌데 말투가 왜 그렇게 공손해졌습니까?”
“제가 원래 공손한 놈이잖습니까. 여튼, 이 일은 저한테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심 팔아먹을 일이라 어렵다. 멍멍이랑 털뭉치를 구치소에 넘기는 것과 도난 사건 범인을 알고도 입 닫고 있는 것, 둘 다 똑같이 양심 팔아먹을 가불기이긴 하지만….
똑같이 가드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후자를 택하겠다. 앞으론 그러지 말라고 따끔하게 주의 줬으니 사건이 재발하지도 않을 테고.
“어려워서 못 하겠다. 확실합니까?”
“확실해요. 바로 말씀드린 게 못 미더우실 거 아는데, 대충 생각한 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건.”
이다음 건이라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단 생각에 귀 기울여 듣기는 했는데, 이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짓은 아니게 들렸다.
“마법사 계열 자격증 취득 시험을 치르는 고등학생들. 이들의 심사관 일입니다. 응시자는 60명, 심사관은 현 반마법사 자격증을 보유 중인 10명.”
“1명당 6명꼴로 심사한다는 얘기시네요.”
“10명 중 한 명은 저고, 나머지 인원들 중 미달이 한 명 생겼습니다. 급히 인원을 충원해야 할 일이라 경력을 고려요인 삼지 않고 있고.”
내가 경력을 핑계 삼아 둘러댈 거라 짐작한 건지 먼저 말해오는 교수. 듣기 전까지는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듣고 나니 갑자기 핑계가 대고 싶어지는….
생각하던 중, 귀에 밟혔던 게 있어 바로 물어봤다. 급한 일?
“시험일이 언제인데요?”
“내일 9시 30분이 실기시험 시작 시간입니다.”
“그건 무슨, 미달 낸 그 사람은 시험 전날에 펑크를 낸 거예요?”
“예. 그걸 메꾸는 게 내 일입니다. 그래서 할 겁니까, 말 겁니까.”
물은 후엔 더 말없이 날 가만히 바라본다.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것 같다. 헌데, 이게 내게는 깊게 생각할 일이 안 된다.
이것도 내가 못 할 일 아닌가?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심사하기는 누구를 심사해. 애초에 나부터가 자격증 딴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허나 교수가 말했다. 경력을 고려요인 삼지 않겠다, 이건 내가 지난달에 똑같이 심사 치른 놈이란 것도 감안하고 말해온 거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결정하면 됩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가져오든 그것부터 묻는군요.”
“거 나쁘게만 보지 마시고, 심사숙고하는 거라 생각해 주십쇼.”
“저도 나쁜 뜻으로 말한 거 아닙니다. 기한은 오전 7시.”
다른 것도 물어봤다. 만약에 내가 안 한다 하면 어떻게 할 거냐.
그때는 자기 랩실의 조교나 대학원생 중 한 명에게 임시 자격증을 발급한 뒤, 심사관 대타로 내세울 거라고. 이 양반은 자기 대학원생들이 굴렁쇠로 보이나….
“…그럼 오늘 밤까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한참 고민하다 결국 이렇게 대답했다. 이 양반 휘하 사람들 굴러다니는 게 안쓰러워서는 아니고, 진짜로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으면 할 거다. 약간은 무리할 생각도 있고. 근데 이게 무리다 아니다 판단할 기제가 하나도 없다. 반마법사 시험이 뭔지는 직접 치러봐서 안다 치고, 마법사는 뭔 시험 치르는데?
이걸 대답해줄 전문가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의견 묻고 그때 대답해도 늦진 않을 거다. 그래서 오늘 밤. 내 대답을 듣자마자 자기 리모컨을 삑 누르는 교수.
“알겠습니다. 그럼.”
“아니, 뭔 오자마자 바로 가셔. 대답 바로 안 드려서 그런 거예요?”
“더 용건이 없는데, 계속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삐진 게 아니란 것도, 이 양반 행동 원리가 어떠한지도 나도 알고는 있다. 실리, 효율… 꼴까닥.
“그래도 이왕 오신 김에 뭐, 혈액팩 한 팩 들이마시면서 잡담이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저 7시 출근입니다.”
“7시 출근이시면, 지금이― 오메.”
“당신 제안은 차후에 고려해보겠습니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봤더니 6시 50분이다. 알았으니 얼른 가라고 말하려 했는데, 교수가 이미 반쯤 실행에 옮긴 뒤였다. 어느새 차에 타서는 운전석 창문을 올리고 있다.
나도 슬슬 집에 가서 자야겠다. 움직이려던 찰나, 닫고 있던 운전석 창문을 다시 내리는 교수. 그러고는 머리를 불쑥 내밀어 내게 물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습니까.”
뭘 어떻게 지내? 잘 지냈지. 뜬금없게 느껴진 탓에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다시 창문 올리며 툭 내뱉는다.
“예.”
그러고는 차 끌고 가버렸다. 그래, 장족의 발전이다 아주.
* * *
집으로 돌아와서는 옷 집어 던진 뒤 이불에 냅다 드러누웠다. 그 위에 드러누워 있던 털뭉치 놈 치운 후에.
“이야. 리본 주니까 그래도 꼬박꼬박 차기는 하네.”
“우냥?”
“우냥은 뭔 우냥이야. 야, 며칠 마시라고 사둔 걸 하루만에 다 먹으면 어떻게 해?”
어젯밤 이 녀석에게 물려 보냈던 고양이 우유. 분명 6개입을 사놨는데, 이불 근처에 우유팩 6개가 굴러다니고 있다. 정확히는 반 토막 난 우유팩 12개.
하기사, 이 녀석이 입구만 뜯어 물그릇에 조신히 따라 마실 이유가 없긴 하다. 그래도 어디에 우유를 흘린 자국은 없는 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고 핥핥 핥아댄 듯하다.
“그리고 씨, 너 어제 거기 다녀온다고 도어락 손톱으로 할퀴었다더만. 왜 그랬냐?”
“냐앙, 냐아아아옹.”
“아, 그랬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무려 냐앙, 냐아아아옹 해서 그랬다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도 계속 말을 거는 난 또 뭐 하는 놈인지.
“하아아악.”
“뭐라고 하는 거 아냐, 짜샤. 그냥 농담이지. 넌 나랑 멍멍이 부탁대로 한 거고. 일이 커질 뻔하긴 했지만….”
“냥?”
“커질 뻔만 했지 안 커졌으니까 신경 쓰지 말란 얘기야. 아, 그리고.”
“냐옹.”
“나 자고 일어날 때까지 너 먹은 거 치워져 있으면, 그땐 6개입 또 사 온다. 콜?”
말한 뒤엔 대답 안 기다리고 눈 감았고, 눈 뜬 뒤엔 반은 기대. 반은 니는 왜 말 안 들어 처먹냐며 핀잔줄 의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맙소사, 이놈이 진짜로 치워놨다. 내일 내 머리에 운석이라도 떨어지나 모르겠다.
물론 치운다고 해봐야 쓰레기통에 우유팩 던져 넣은 게 고작이긴 하다. 더해서 내 말을 듣는단 게 언짢았던 건지 그 쓰레기통을 화장실에 갖다 놓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물론 생각만 하고 입밖으로는 안 꺼냈다. 이걸 들었다간 이놈이 또 의기양양해져서는 매물을 두 배로 요구해올 게 뻔해.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도 골골송이 들리는 게 집구석 어딘가엔 있는 것 같으니, 내 일이나 하기로 했다. 지금 몇 시인지 보고, 슬슬 출근 준비나―
“어?”
순간 폰 고장 난 줄 알았다. 아니, 왜 여기에 9시 40분이 찍혀있지?
눈 두어 번 끔벅인 후, 고장 난 게 내 폰이 아닌 현실감각이란 걸 깨달았다. 바로 씻고 옷 갈아입은 뒤에 뛰쳐나갔고, 매장까지 죽어라 달리고 나니 9시 58분.
숨만 겨우 고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손님이 꽤 많다. 그것도 교복 입은 애들.
점장은 막 계산이 끝났는지 카운터 앞 손님에게 가격을 말하고 있었고, 그 옆엔 반가운 얼굴 한 명이 주섬주섬 봉투에 물건을 담… 오?
“윤하 누나. 거기서 뭐 함?”
진짜 왠지는 몰라도 누나가 카운터에서 일을 보고 있다. 다가가서 묻자, 날 홱 올려다보며 반갑다는 듯 소리쳐오는 누나.
“뭐 하긴! 봉투에 물건 담고 있지. 근데 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러게. 미안.”
점장이랑 인수인계하는 게 평균 5초도 채 안 걸리긴 하지만, 길 땐 3분도 간다. 이걸 생각해서라도 5분 전에 출근하는 게 맞다. 분명 맞는데….
내가 이젠 이 일을 쉽게 느끼고 있나 보다. 딱 10시가 된 시계를 돌아보고 있자니, 누나가 당황한 건지 덧붙여오더라.
“뭐야, 얘는 그냥 농담한 건데 왜 갑자기 쭈그러들었어. 언니, 언니.”
“어, 윤하야. 왜?”
“지금 몇 시야. 얘 지각했어?”
“시간? 이제 딱 10시인, 아. 찬이 왔구나!”
날 보자마자 반색해서는 다음 손님 계산을 마친 뒤, 카운터 밑으로 숙여 나오는 점장. 그러고는 유니폼을 벗어 내게 건네며 속삭이듯 하는 말이, 무척 급한 일이 있단다.
“어떤 일요?”
“나 깜지. 깜지 쓰러 가야 돼, 찬아.”
깜지는 뭔 깜지. 잠깐 얼타다, 점장이 어젯밤에 멍멍이를 돕는다고 마법을 썼던 게 떠올랐다.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고?
“당연히 진짜지! 안 쓰면 큰일 나, 매일 두 배로 늘어난다구.”
“그…거 단리입니까, 복리입니까?”
“복리. 근데 윤하 얘기 들으니까, 찬이 진짜로 쭈그러든 것처럼 보이네. 오늘 늦잠 잤구나?”
예. 짤막하게 대답한 뒤, 건네 온 유니폼 걸치고 바코드기를 집어 들었다. 상품 바코드를 찍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는 착 가라앉은 어조로 말해온다.
“다음에 또 늦잠 잘 거야?”
“아뇨.”
대답하자, 곧바로 표정을 푼다. 어조도 한껏 해맑아졌고.
“그럼 봐줄게. 오늘 인수인계 사항 딱히 없구,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줘야 돼. 알았지?”
“…그렇게 할게요. 고생하셨습니다, 점장님.”
“응. 그럼 수고! 빠이!”
이러고는 곧바로 정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문벨이 흔들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누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감상을 말했다.
“언니가 못 하는 것도 다 있네. 니를 혼내는 건지, 마는 건지….”
“저거 혼내신 거 아닐걸? 누나.”
“그럼 뭔데?”
“늦은 거 털어내라는 얘기인 거 같은데. 아마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방금까진 내가 초심을 잃어서 이러는 거다― 찌질거리기 직전이었는데, 점장 말 듣고 난 지금은 그럴 마음까진 안 들고 있다.
찌질거리면서 손님 받다간 표정에도 다 드러날 테고 말야. 속으로만 곱씹고 있자니, 애매하게 고개 끄덕이고는 동의해오는 누나.
“확실히 찌질하긴 했다. 진짜 늦은 것도 아닌데 뭐 속으로 꿍얼대고 있어.”
“사례가 남으니까 문제인 거지, 누나. 누나도 지각해본 적 있을 거 아냐. 안 찝찝해?”
“있지. 찝찝하진 않았지만. 학교 다니면서 지각했을 땐, 그냥 교무실에 휘파람 불며 들어가서는 당구채 시원하게….”
“아니, 미친. 당구채로 팼다고? 누나를?”
“내가 당구채를 팼지. 한 여덟 개쯤 부러트려 먹었나.”
다니던 학교 학생주임이 오크였는데, 맞을 일 생길 때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마력을 컨트롤했다고 한다. 맞다, 누나 헌터지….
“이찬 너는 학교 다닐 때 안 맞았냐?”
“당연히 안 맞았지. 누나랑 살아온 세대가 다른데.”
“뭐? 한 살 차이면 그렇게… 아, 이 망할 자식.”
나이 갖고 놀리고 있단 걸 깨달은 누나가 내 정강이를 후려 찼고, 속으로 울부짖었다. 감히 나를, 학생주임에게도 맞아본 적 없는 이 몸을…!
한 대 맞은 후엔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했고, 얼추 손님을 내보내 한가해진 뒤로는 주욱 이야기만 했다. 우선 누나가 왜 여기 있는가.
“뜬금없이 휴가가 생겼단 말이지. 소장이 얼른 쓰래서 썼고, 할 일 없어서 놀러 왔는데… 언니 엄청 바빠 보이더라고. 그래서 몰래 들어왔다.”
“아, 그거구만. 그 휴가가, 그… 오늘 오전에 교수 만났는데, 교수 누군지 알아?”
“전에 게이트 열렸을 때 우리 뒤 봐준 뱀파이어? 그 사람이 진짜 말을 했다고? 나한테 휴가 주라고?”
“자기 입으로는 그러던데? 그러고는 할 말 마저 하고 가버렸고.”
“와,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이걸 진짜 주네… 근데 어떤 할 말.”
원래라면 이걸 점장과 상의했겠지만, 점장이 어제 비허가 마법을 사용한 후폭풍으로 마법청에 깜지를 쓰러 가고 말았다. 누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누나에게 교수에게 받은 제안에 대해 말하자, 막 물건을 담은 봉투를 내밀고는 천장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그러다 꺼내 온 말이, 아주 잘은 모른다.
“어느 정도 알긴 한데, 제대로 아는 건 헌터시험뿐이라서. 근데 너는, 뭐….”
“나 뭐?”
“어지간한 건 다 잘하지 않겠냐? 니 잔머리가 적당히 예사로워야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게 민짜들 시험 치르는 거 심사하는 일이잖아. 잔머리 굴린다고 돼?”
설령 잔머리를 요리조리 잘 굴려본다 쳐도, 시험이 그런 거잖은가. 합격 불합격을 시키거든 응시자한테 납득시킬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나?
근데 문제가, 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무언가가 없다. 할 줄 아는 것도 다 정적인 것들뿐이고. 이미 발동된 마법을 지우는 거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외엔 뭐….
“눈 부릅뜨고 저놈 마법 썼어요! 하는 게 전부잖아.”
“야. 그것도 어지간한 반마법사들 엄두도 못 내.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 거면 좋겠, 아. 누나.”
“뭐.”
“드래곤들 있잖어. 드래곤들.”
이 얘길 하고 나니, 오늘 새벽에 잡았던 쌍둥이 드래곤이 덩달아 떠오르더라. 이왕 말 나온 거, 똑같이 시연도 해 보이며 마저 말했다.
“어제 매장에서 드래곤 두 마리 만났는데 말야. 그 양반들이 은신 마법 쓰고 있더라고.”
“그건 또 뭔 소리야?”
“말 그대로임. 전에 말했다시피, 매장에 어린 드래곤 단골손님이….”
여기까지를 말하며 눈을 부릅떴는데… 지금.
“이 짜식은 왜 말을 하다 말어?”
“…그.”
“그 뭐?”
“누나 잠깐 카운터 좀.”
뭔가가 보인다. ATM 구석에 용이 또 숨었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다. 여러 곳이 일그러져 보인다. 이건 또 뭔 일이래?
일그러진 곳들 중 가장 가까운 곳을 먼저 가봤다. 두 번째 코너, 과자 진열대 밑에서 두 번째 줄. 곧바로 머리를 박고 바라봤는데, 외관상으로는 이상한 점이 없다.
그럼에도 일그러져 보인다. 뚫어져라 바라보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뻗어 일그러진 부분의 정중앙을 건드려봤다. 초콜릿 과자 상자.
그러자 사라졌고, 진열대가 텅 비어버렸다. 깔끔하게.
“…….”
몸을 일으킨 뒤, 다음엔 세 번째 진열대로 갔다. 커피믹스가 주로 진열된 곳의 커피 상자. 방금 했던 대로 똑같이 손가락을 대봤는데,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네 번째 진열대의 생필품 코너, 음료수 진열대도 전부 마찬가지다. 이 시점에서 뒤에서 인기척 같은 게 느껴졌는데, 다 모르겠고 그냥 화만 치밀어올랐다.
“이런 시팔.”
“야, 너 욕하는 건 처음 들어 보, 왜 여기 음료수 텅텅 비었냐?”
“매장에 도둑 들었어. 누나.”
정황상 그래 보인다. 이 말을 잠깐 곱씹다, 간결히 의견을 말해오는 누나.
“어우, 시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