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
이세계 편돌이-22화(23/331)
22화. 외상 받는 편돌이 (1)
마침내 거리의 자동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오크들이 붙은 막고라 때문에 자동차 한 대가 아예 반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이 답답해하는 게 차 움직임만 봐도 빤히 보일 정도이니 오죽했겠는가.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고. 싸움도 끝났겠다, 사진이나 한 장 찍어두기로 했다.
도중 어르신의 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화면을 바라보던 어르신이 내게 폰을 보여주시고는 물어 오셨다.
“사장님. 혹시 이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어… 이 식당이요?”
“이곳으로 찾아와 달라고 콜이 왔는데, 제가 이 근방 지리를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 대리운전 콜 받으신 거구나. 곧장 답했다.
“저도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지도 앱 보고 찾아가면 되니까요.”
스마트폰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다, 지도 화면을 띄워놓고는 슬쩍 내게 말을 건네오셨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앞으로도 가끔 와서 쉬다 가도 되겠습니까.”
대리기사 하시는 분들이 사거리 앞 편의점 와서 쉬다 가시는 일이 잦긴 하다. 언제 어디서 콜을 받을지 모르니 어디서 콜이 오든 바로 찾아갈 수 있게 움직이기 편한 곳을 거점으로 삼는 거지.
나야 상관없었다.
“편한 대로 하셔요.”
난 오는 손님 안 막는다. 오바이트한 다음 날 찾아와서 사랑이 대체 뭐냐고 묻는다든가, 인간 놈들 다 뒈져야 된다고 폭언 욕설 하지만 않으면 돼.
외에도 떠오르는 게 있어 슬쩍 권해봤다.
“어르신. 혹시 개인 명함 만들어 두신 거 있으세요?”
“있긴 합니다.”
“별건 아니구요. 매장에서 대리운전 불러야 될 일 생기면 좀 부탁드려도 될까 싶어서.”
편의점 앞 길가에 주차해 놓고 근처 술집에 들어가서는 몇 시간이고 차를 안 빼는 양반들이 제법 된다. 가만히 냅두면 다음 날 아침까지 세워져 있고 그래.
이러면 차 몰고 편의점 찾아온 손님들이 주차를 할 수가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이걸 면해보겠다고 차주한테 자동차 치워달라고 전화를 걸어도 지가 술을 마셔서 운전을 할 수가 없다는 둥, 대리기사 비용이 아깝다는 둥 변명을 해댄다.
이게 걱정돼서 어르신 명함을 받아두려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치워서 좋고, 어르신은 일감이 늘어나니 좋고. 상부상조하자는 거지.
이를 설명하자, 어르신은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명함을 건네왔다. 이걸로 받은 명함이 두 개째다.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드릴게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
그러고는 꾸벅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난다. 난 나대로 건네받은 대리기사 명함을 이리저리 뒤집어 살펴보다 ‘대리’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슥슥 문질러 봤다.
당연히 지워지진 않았다. 근데 씨, 저 어르신 아무리 봐도 단순한 대리기사 아닌 것 같은데….
* * *
이후 제법 한산해졌다. 오크들이 치고받은 것 때문에 술기운이 죄다 달아나기라도 한 건지, 뭔지.
간간이 오는 손님을 받는 동안 바깥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걸 틈틈이 구경했는데, 어느새인가 삑삑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러 온 것이다.
경찰 머리 색이 익숙하게 느껴져 자세히 바라봤더니, 어제 왔다 간 여성 엘프 경관이었다. 표정은 피곤에 쩔은 게 빤히 보였고, 경광봉을 휘두르는 팔의 움직임도 힘이 없다.
이 동네 경찰은 정말 개고생한다 싶다. 나야 편의점 안에 짱박혀 있을 뿐이다만, 저 엘프는 사거리를 포함해 관할이 제법 넓을 것 아닌가.
심지어는 일어나는 사건도 무지막지하고. 난 자동차 때려 부숴가면서까지 싸워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관람료 낸 셈 치고, 다음부턴 저런 거 안 보게 해주면 안 될까? 세상아?
손님 두어 셋을 더 보낸 뒤 스마트폰을 보니, 점장에게 보낸 사진에 대한 답장이 와 있었다.
[ 뭐야? ] [ 밖에서 싸움 난 건가? ] [ 괜찮아? ]답장하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저 괜찮아요, 점장님.”
[ …그럼 다행이고. 어휴, 찬이 네가 정말 별일을 다 겪네.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마귀라도 씌였나.”
[ 그건 아닐걸? 찬이 네 체질 때문에 달라붙질 못할 테니까.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진짜 마귀가 있어?
[ 편의점 안에 들어오지도 못할 거고. ]“그것도 뭔가 방지가 되어있나 봐요?”
[ 물론이지, 마귀들이 얼마나 위험한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이 마귀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스스로 변이까지 일으키거든. 자칫하면 온갖 재액이 다 일어난다구. ]이 마귀야말로 내 세상의 코로나, 감기 바이러스랑 비슷한 건가 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코로나는 사람을 육체적으로 조지는 반면, 이 마귀들은 정신적으로 사람을 조진다는 것 정도일까.
[ 마법진도 잔뜩 그려놨고, 부적도 붙여 놓고, 업체랑도 계약해 놨으니까 그 부분만큼은 안심해도 돼. ]여차하면 매지컬―보안업체에서 찾아올 테니 안심하란다. 점장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해진 반면, 난 더 우울해졌다.
“점장님. 그러면… 그냥 제가 재수가 없다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 …그게… 그렇게 되네…. ]의기양양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시무룩해졌다. 나중에 시간 나면 성당 가서 고해성사를 하든지 해야겠다. 내가 업보가 너무 많아.
그래도 우울함이 금방 가시긴 했다. 최소한 진상들은 더 안 맞겠다는 막연한 기대감 덕분이었다. 바깥 거리가 얼추 다 정리된 와중에도 손님이 찾아오질 않았을뿐더러, 행인도 눈에 띄게 적어졌었으니까.
오늘은 객관적으로도 할 만큼 했다 생각하고, 더 일이 터졌다간 내 멘탈이 못 버틴다. 아침까지 버틸 수만 있다면, 토요일 아침이니 손님도 덜할 거고….
작게 정문 벨이 울렸다.
“점장님, 손님 오셔서 잠깐 끊을게요.”
[ 응. ]전화를 끊은 뒤, 일어나서 인사를 하려 했… 아니, 저건 또 뭐냐?
“담배, 저거 두 갑만 주쇼.”
들어온 건 배불뚝이에, 입술 두꺼운 복어 대가리를 한 손님. 저게 어인으로 분류되는지, 인어로 분류되는지는 잘 모르겠고, 얼굴이 부풀어 있는 게 취해서 그런 건지, 화가 나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이런 건 쥐뿔 중요치 않았고, 문제는 이 손님이 애완견을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흰색 포메라니안, 소형견, 네 다리로 선 키가 30cm도 안 되는 그 견종.
코볼트 말고 진짜 강아지 말야. 니가 진짜 여기서 왜 나오냐?
내 세상에선 이게 전혀 놀랄 일이 아니긴 한데, 치와와니 리트리버니 개대가리를 한 손님들만 보다가 진짜 개를 보니까 오히려 넋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이건 분류를 뭘로 해야 되는 거야. 코볼트야, 포유류야….
“뭐 해? 담배 달라니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냈다.
“손님, 애완견은 매장 안에 데리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왜. 얘 안 짖어. 오줌도 잘 가리고.”
“그게 아니라, 알레르기 가진 분들이 나중에 오시면 문제가 생겨서요.”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털 날리고, 어디에 오줌쌀지 몰라서 그런 게 맞긴 하다. 좀 더 보태면 강아지 무서워하는 손님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되는 것도 있기도 하고.
어쨌든 안 되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좀 알아먹어 달라는 심정으로 말했으나, 이 복어대가리는 전혀 굽힐 기세가 아니었다.
“담배랑 맥주만 사서 금방 나가면 되잖아.”
“음….”
그래도, 금방 나간다면야 뭐….
이게 명목상으론 안 되는 게 맞는데, 유도리에 달린 문제이기도 해서 말이다. 근육빵빵 핏불테리어 같은 놈을 데려오면 기겁하고 뜯어말리는 게 맞지만, 이 포메라니안은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앙증맞은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댈 뿐이다. 최근 며칠 새 날씨가 좀 더워지긴 했지.
“그러셔요, 그러면.”
“어.”
짧게 답하고는 냉장고 코너로 가 맥주를 집고는, 계산도 안 한 담배의 포장을 뜯어 주머니에 쓰레기를 욱여넣는다.
“자.”
그러고서 카드를 내밀어 오길래, 리더기에 꽂아 결제를 해보려고 했다. 한도 초과란다.
“손님, 한도 초과라고 나오네요.”
“에이, 씨. 기다려 봐.”
이어서 내밀어온 다른 카드로 결제를 시도해 봤으나, 이것도 한도 초과라고 나왔다.
“이것도 그렇네요.”
“잠깐만. 그럼 다른 거… 어….”
구석구석 주머니를 뒤지고, 입고 있던 셔츠 가슴팍의 주머니까지 젖혀 확인하고 나서는 내게 무뚝뚝하게 말해온다.
“미안, 카드 안 갖고 왔네. 잠깐 집 좀 갔다 올게.”
“어… 안 되는데요, 손님.”
“이건 또 왜 안 되는데?”
왜 안 되긴? 담배 포장 뜯었잖아, 방금.
물건 두고 집 가서 돈 가져오겠다 하면 난 아무 참견 안 한다. 그런데 포장이 뜯어졌으니, 이 담배는 이제 무조건 지금, 이 자리에서 팔아야 한다. 포장 뜯은 담배를 팔 순 없잖아.
근데 이 복어대가리가 나가서 안 돌아오면, 이 담배는 어떻게 해. 내가 피워? 담배 끊은 지가 몇 년인데?
하물며 손님이 정상이면 몰라, 이 복어대가리도 정신이 말짱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애완견 데리고 새벽 1시에 편의점에 산책하러 나온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술버릇 참….
“그럼 어쩌라는 건데.”
“계좌이체는 안 되시나요?”
“폰 안 갖고 왔는데.”
거참 까다롭네.
어쨌든 내가 물기는 죽어도 싫었고, 그렇다고 여기 붙잡고 있어봐야 없는 돈이 생겨날 리도 없고. 떠오르는 대로 말해봤다.
“그…러면, 잠깐 뭐라도 맡기고 다녀오십쇼. 차 키라든가, 뭐….”
“차 키도 없는데.”
“뭐든 상관없고, 나중에 찾으러 오실 만한 거면 됩니다.”
복어대가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
개 목줄을 내게 내밀어왔다.
“손님?”
“얘 안 물어. 집 10분 거리니까 금방 다녀올게.”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영 찜찜해서 그런다. 이게 도의적으로 맞는 거냐?
곁눈질로 포메라니안을 슬쩍 내려다봤다. 자기 개 목줄이 건네졌단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나와 복어대가리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왼쪽 오른쪽으로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반려견 협회 정회원도 아니고 개 주인이 개를 어떻게 하든 참견할 권리도 없긴 했다만, 나라면 자기 개를 담보로 집에 담뱃값 가지러 갈 생각은 차마 못 할 거 같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해도 이건 좀….
“아니면 그냥 갔다 오고.”
“…다녀오십쇼.”
그래도 이 개 목줄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남은 거라곤 바지 벨트 정도뿐인데, 이걸 벗겨다가 담보삼을 수도 없잖아.
이렇게 복어대가리 손님이 나가버리고, 매장에는 포메라니안과 나, 단둘이 남았다.
이후 5분간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
손님이 오지는 않았는데, 이 포메라니안을 보면 볼수록 안쓰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졸지에 담뱃값을 담보로 저당 잡힌 셈이잖아?
내가 개를 싫어하는 게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나 사는 원룸은 애견 금지라 개를 들여오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개를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고. 귀엽잖아, 강아지.
물론 핏불테리어는 빼고. 그건 개의 형상을 한 프로틴 덩어리다. 개가 아니라.
“이상한 주인 둬서 고생이 많다, 인마.”
한번 말을 걸어봤으나, 무슨 소리냐는 듯 헥헥대며 고개를 갸웃해올 뿐이다. 여전히 내게서 시선을 떼질 않고 있길래, 심심해서 물어봤다.
“아니면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포메라니안이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하다만….”
잠깐 뜸을 들인 뒤 덧붙여 온다.
“이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아닌지를 고민 중이었던지라 대답이 늦었소. 미안하구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