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0)
이세계 편돌이-229화(230/331)
229화. 편돌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9)
* * *
이후로 1시간. 이 뒤틀린 황천의 민짜 놈들이 내 가면을 벗겨보겠다고 온갖 해괴한 짓거리들을 해왔다. 우선 허스키 녀석.
“…후우.”
목을 우두둑거리며 자세를 잡은 뒤, 앞뒷발을 땅에 바싹 붙이고는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상상 속의 눈썰매라도 끌고 있냐며 비꼬아보려 했는데, 마저 해오는 짓이 썰매보다는 스케일이 좀 더 컸다.
염동력 비스무리한 걸 써왔기 때문이다. 앞뒷발이 짚어진 곳들 기준으로 목재 바닥이 찌그러지고, 저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이나 털이 눈에 띄게 곤두서기 시작했다. 더해서.
“그르릉.”
어금니를 드러낸 채 침마저 뚝뚝 흘려대고 있고. 눈가 주름으로 봐서는 화가 꽤 많이 난 듯한데, 이건 이것대로 참신했다. 화를 내면 마법이 더 잘 써지는 경우도 있는 건가?
아니면 마법사마다 각자 루틴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점장도 마법을 쓸 때 손가락을 튕기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으니까.
수 초가량 더 마법을 감상하다, 소감을 말해줬다.
“네 녀석은 어디 취직하거든, 첫 봉급으로 턱받이부터 구매해라.”
“그르르르….”
“평판도 일을 할 때 중요한 요소고, 네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의뢰자들이 좋게 봐주지는 않을 테니까. 마법 실력과는 별개로 말야.”
그래도 실력은 확실한 것처럼 보여서 덧붙였다. 저 녀석이 마법 세기를 계속 늘리고 있는 건지, 목재 바닥이 찌그러지는 정도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흡사 수류탄이 터진 흔적처럼 보일 지경이다. 나이 열여덟에 이만큼 마법 쓸 수 있으면 충분히 재능이 있는 거라고 봐도 되지 않나….
물론 내게는 전혀 영향 없었지만 말이다. 가면 표면이 살짝 진동하긴 했지만, 손으로 매만지는 것만으로 금방 잠잠해졌다. 이 대치 상태가 약 8분.
“아, 망할! 좀 부서지라고!!”
드디어 울음소리가 아닌 다른 말을 해온다. 가면을 벗기려는 게 아니라, 아예 부숴 보겠다고 이러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그거긴 하지.
“썅! 철판도 부수는 마법인데 저게 왜 안 부서져. 작작 해, 작작 하라고!”
“…이 가면을 부순다 해도 넌 불합격이다.”
“지랄하지 마세요! 쫄아서 그러는 거 다―”
“내 얘기를 제대로 안 들었나 보군. 지금 하는 것처럼 말야.”
강당 바닥을 파손하면 불합격, 분명 말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만약에 이 녀석들이 이삿짐센터에 취직해서 짐을 나른다고 쳐보자.
이때 짐을 나른답시고 바닥, 천장을 다 때려 부수고 있으면 누가 일을 맡기겠냐고. 정확한 대상에 정확히 마법을 쓰는 걸 보여 봐라, 이 이유로 걸어놓은 조건이다.
두 번째는 보험 삼아 들어놓은 거다. 내 체질이 영향을 미치는 건 딱 내 몸뚱어리, 접촉한 물건들까지다. 이 녀석들이 강당을 통째로 뒤집어버리면 나도 손쓸 방도가 없다.
지금 보아하니 그럴 힘까진 없어 보이지만 말야. 말했으나,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날 노려볼 뿐 자세를 풀지 않았다. 그러길 2분.
“…끼이잉.”
마침내 힘에 부쳤는지 바닥에 납작 엎드려버리는 허스키. 땀으로 푹 젖은 몸을 뒤집고는, 자기 친구 놈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젠장. 너희한테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놈마저도 내 신경을 벅벅 긁어대고 있다. 꼴에 영웅심리가 발동해서 이렇게 나선 것 같은데, 추억 삼겠다고 영업 중인 매장 털어놓고는 이딴 소리가 잘도 튀어나온다. 어?
심지어 그 영웅심리마저도 비틀려있다. 지금도 구석에 자리 잡은 엘프 여자애 방향으로는 눈길조차 안 주고 있으니까. 쏘아붙일까 하다, 그냥 내 할 말 했다.
“질질 짤 힘 있으면 비켜라. 시간 낭비니까. 다음.”
내 말에 날 흘겨보고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움직였고, 세 번째 타자가 타석에 섰다. 내 앞에 서서는 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채, 풍선껌을 후욱 부는 하피.
건들거리는 태도가 건방지다. 부풀린 풍선껌을 터트려 입에 집어넣고는, 조소 섞인 목소리로 물어왔다.
“풍선껌 불어도 되죠. 심. 사. 관. 님.”
“이번 시험과 상관이 있는 행위라면.”
“글쎄요. 심사관님 말씀하시는 것도 시험이랑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네. 뭐가 잘 안되세요?”
어젯밤에 들었던 말이다. 뱀파이어 녀석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다, 말해오기 직전에 운을 떼며 했던 말. ‘뭐가 잘 안되세요?’
이 하피 녀석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 보인다. 내가 어젯밤 그 편돌이라는 거. 때문에 뭐가 잘 안되냐는 말이 나올 흐름이 아님에도 일부러 이 말을 해온 걸 테고….
허나 확신은 없을 터다. 아까 강당의 화장실 거울로 내 모습을 슬쩍 봐봤는데, 이게 나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하겠더라고. 이 녀석도 마찬가지일 터다.
“…나도 풍선껌은 자주 씹는다. 공적인 자리에서 건방지게 불어대지는 않지만 말야.”
“전 풍선껌 부는 거 싫어하냐고 여쭤본 게 아닌데요. 잘 아실 거면서.”
“그럼 다시 한번 묻겠다. 풍선껌을 부는 게 이번 시험과 상관이 있는 행위인가?”
재차 묻자, 대답이 불만스러웠는지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하피. 근데 그래서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이런다고 내가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줄 줄 알았냐?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거든 내 가면을 벗기면 될 일이다. 그럼 내가 누군지도 명확해질 테니까. 입꼬리를 올린 채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풍선껌을 씹어대기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금 풍선껌을 불어 터트렸고, 폭풍이 일어났다.
반쯤 뭉개졌던 바닥의 목재 파편이 꺾여나갔고, 건물 전체가 바람에 휘청거리는 게 느껴졌다. 강당 연설대 쪽의 붉은 베일이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끝자락을 퍼덕거려댔다.
오토바이 정도는 능히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폭풍이었고, 내게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무려 내가 입은 로브 끝자락을 잠깐 휘날리게 만들었으니까.
전조 없이 대뜸 시전된 마법이라 반응이 늦었다. 뒤로 넘어간 로브 매무새를 다듬어 돌려놓자,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하피.
“올림피아드에서 상도 받았던 마법인데… 끄떡없으시네.”
마법의 여파인지 뭔지는 몰라도 목소리가 쉬어있다. 말한 후엔 다시 풍선껌을 질겅이다, 짜증 난다는 듯 한숨을 푹 몰아쉬며 중얼거린다.
“아,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엄마한테는 합격률 50%고 자시고 무리 없이 합격할 거라고 해뒀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쉬운 방법이 있지.”
“뭔데요.”
“합격률이 50%면 시험을 두 번 치러라. 그럼 합격률도 두 배다.”
“…….”
“아니면 머리에 문제가 있나?”
진심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데, 난 매사에 진심이다. 이놈들은 내가 열받게 할 말 떠올린다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꿈에도 모를 거다.
“…안 해요. 더러우니까.”
“그럼 자리로 돌아가라. 그리고, 네 번째 응시자.”
“웨어 화장실 갔어요. 금방―”
“아니. 불합격이다. 선을 넘으면 불합격이다, 이것도 분명 언급을 했을 텐데.”
나랑 하피 녀석이 얘기하는 사이, 늑대인간 녀석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봤었다. 그러다 풍선껌이 터짐과 동시에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은신, 혹은 기척을 죽이는 종류의 마법을 쓴 건가 싶어 시야를 집중해봤는데, 이 녀석이 내 눈치를 살피며 내 뒤쪽으로 돌아오려는 낌새더라.
적당히 타이밍 재다가, 인기척 느껴질 즈음 언급했다. 말하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딱 이 녀석이 붙여놓은 청테이프 위에 발을 올린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의아해하는 표정도 잠시. 곧바로 간절한 얼굴이 되어서는, 한 방향을 바라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야, 바아란! 이 심사관 안 돼, 씨발! 우리 마법 하나도 안 통해, 너 정말 생각 있는 거 맞지? 믿는다?!”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진행해주고 좋네. 늑대인간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까부터 지금까지 앉아만 있던 뱀파이어 놈이 막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앉아있던 자리에 아까는 안 보였던 마법진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뭘 하고 있나 싶었는데, 저 밑준비를 하려고 그러는 거였구만.
“이거 처먹고도 멀쩡한지 한번 보자.”
이를 악문 채 중얼거리고는 마법진을 발로 힘껏 짓밟는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수 초 간격으로 정수리 부근이 점차 후끈해져 갔다.
“이건 뭐지. 탈모 마법인가?”
“지랄하네! 위에나 봐, 이 괴물 새끼야!”
보라길래 봤다. 천장 조명이 있어야 할 곳에 무슨, 더럽게 크고 화끈한 돌멩이 하나가 내 머리통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모난 부분이 딱 나를 향하고 있다.
그게 심지어는 점점 커지고 있, 아니. 내게 느리되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설마 이게 메테오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이미 늦었어!! 뒈져!!”
내가 보기에도 늦은 것 같다. 꼬아 앉았던 다리를 풀 새도 없이, 운석이 내 머리를 꾸욱 짓눌렀다. 의자 주변의 바닥이 검게 그을렸고, 내 몸은 열기에 휘감겨….
뒈지지는 않았고, 땀이 좀 났다. 정수리를 짓누르던 운석이 부르르 떨리는 듯하다, 여타 마법들과 마찬가지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잠깐 머리 긁적이다, 소견을 말해줬다.
“내 마력이 빠지길 기다린 후에 가장 확실한 마법으로 승부를 본다, 간단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야. 허나 보완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
“네 말대로 내가 이걸 맞고 뒈졌다면, 네 합격은 누가 시켜주나?”
감정에 휩쓸려 본래 목적조차 이룰 수 없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행동을 저지른 현재, 심사관인 나로서는 마법 시전자의 직무 적합성을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불합격이다. 말해준 뒤 가만히 반응을 지켜봤다. 자기가 발동시켰던 마법진 위에 털썩 주저앉아 망연자실해 하는 뱀파이어.
“어떻게….”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지. 내 마력이 빠지길 기다린다는 판단.”
“…시발.”
“실현 가능성이 낮은 판단이라는 걸 인지할 기회가 몇 번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발동하는 마법의 원리조차 전혀 짐작이 안 갈 테니까.”
점장의 조언 중 다른 한 가지. ‘경험 삼는 셈 치려면, 아예 한 명이 한 종류의 마법을 쓰도록 유도해 봐. 한 번에 죄다 쓰면 뭐가 뭔지 구분하기두 어렵잖아?’
이 말대로 상황을 유도해보려 했는데, 지들이 알아서 순차적으로 나가떨어져 버렸다. 이다음에 할 말도 점장과 상의하에 정해뒀었다.
“시발, 시발.”
“그걸 인지했다면 다른 응시자들의 힘을 먼저 낭비해서는 안 됐다. 남은 시간동안 그 원리를 최대한 파헤친 뒤, 그걸 바탕으로―”
단번에 승부를 봤어야 했다. 말했으나, 뱀파이어 녀석의 절규가 내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시발… 씨발, 씨발!!”
내가 이 세상서 본 뱀파이어가 몇 안 된다. 그중 가장 인상이 강했던 뱀파이어가 데커드 교수. 철저하게 마이웨이라는 부분에서는 눈앞의 이 녀석과 공통점이 있다.
근데 마이웨이의 발현 방식이 정반대다. 그 양반은 자기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린다고 이렇게 굴지는 않을 테니까.
“씨발, 당신! 심사관 당신 어제 그 편돌이지. 당한 거 가지고 지금 꼬장부리는 거 아니야?! 아니냐고!!”
날 후려갈길 기세로 달려와서는 어제 그랬듯 내 멱살을 로브째 부여잡고, 반대쪽 손 검지로 내게 삿대질을 해왔다. 말 마디마디마다 연신 침이 튀어대고 있다.
“이 망할 새끼, 애초에 불합격시키려고 작정한 거면 그렇다고 말을 해. 이딴 장난질 부리지 말고!!”
“장난질이라고 하기엔 꽤나 열심이던데 말야. 친구들한테 이렇게 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 지시도 내린 것 같고, 운석도―”
“늙은 놈 장단 좀 맞춰줘 봤다, 씨발. 당신 자신 있어?!”
자신 없으면 시작도 안 했다. 내 멱살 부여잡은 것도 아직까진 풀지 않겠다. 어젯밤 해온 짓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놈이라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다.
“이딴 장난질로 우리 다 떨구고! 반마법사 일 계속할 자신 있냐고!!”
“말을 할 거면 똑바로 해라. 아직 기회가 있으니까.”
“기회는 지랄!!”
“아직 한 명이 미응시 상태잖나.”
언급하자, 거의 목을 꺾다시피 뒤를 돌아본다. 한 시간이 꼬박 지난 지금까지도, 구석에 홀로 서서 꼼짝도 않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엘프 여자애.
“저 응시자가 이 과제를 통과할 수도 있는 거니까.”
“…허, 염병.”
“한번 기도라도 해보지 그러나?”
이 대화 꺼내 보려고 이러고 있던 거였다. 이것만 잘 마무리 지으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