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1)
이세계 편돌이-230화(231/331)
230. 편돌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10)
* * *
계획 중 가장 중요한 동시에, 운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뱀파이어 놈이 눈을 까뒤집은 채 날 노려보고 있는 지금도, 100% 확신은 없다.
내가 이 녀석을 얼마나 화나게 만들 수 있는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이유로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어휘 선택에 가장 공을 들여왔고, 지금까지는 잘 됐다. 지금까지는.
“기도? 시발 지금 날 보고 저년한테 기도하라고 한 거야? 지금??”
“아니면 내게 부탁해도 될 일이다. 선처해 달라고 말야.”
“부탁? 선처어? 지랄을 하세요, 아주. 공손―하게 부탁하면 당신이 잘도 들어주겠어. 잘도 들어주겠다고! 어?!”
“내키지 않는다면 관둬라.”
난 분명 말했다. 여하튼 본인이 내 멱살 부여잡으며 포기선언을 해버렸으니, 이젠 저 엘프 여자애 시험만 치르면 끝이다.
“6번 응시자, 이름은 엘린. 맞나?”
“……네.”
“자리를 잡아라. 네가 마지막―”
“야, 썅년아. 너 처맞기 싫으면 거기서 꼼짝도 하지 마라!”
미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가락으로 엘프 여자애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뱀파이어. 이 한마디에 다리를 움직이려던 여자애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공식 시험 심사관의 말과 학교 동창생의 말 중 후자를 우선시했다는 얘기다. 솔직히 놀랍다. 애한테 뭔 짓을 해왔길래 애가 저 지경이 되어버린 거야?
몸을 움츠리고 시선을 피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를 바로잡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꼼짝하지 말라는 말에 정말 꼼짝도 하질 않고 있다고.
저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삿대질하던 손을 내리고는, 깔아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을 이어온다.
“저년 병신이고 마법도 존나 못 쓰니까, 괜히 수고 끼치지 말란 의미로 멈추라고 했습니다? 심사관님.”
“그걸 판단하는 건, 내 일이다.”
“뭐, 씨발아!! 보면 알 거 아냐. 엘프 년이라고!! 애비 할애비가 쌍으로 사람 존나 쳐 죽였다고, 구제가 안 되는 년이라니까?!”
“저 엘프 응시자의 허리 언저리.”
“또 말 돌리네, 씨이발. 어른이면 다야?”
“신발 자국이 있다. 네 짓이냐?”
원래는 이것 말고 다른 걸 물어볼 생각이었다. 엘프들. 대전쟁 시절에 거하게 사고를 쳤던 종족이고, 현실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건 잘 안다. 근데 그게 너가 저 애를 패는 거랑 뭔 상관이냐?
허나 저 여자애가 자세를 바꾼 걸 다시 보니, 어제와는 다른 위치에 어제와 똑같은 모양의 자국이 보인다. 선명하다. 한번 확인하고 나니 도저히 무시를 못 하겠다.
묻자, 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짐짓 과하게 동작을 취해왔다. 자기 발바닥을 뒤집어 바라보고는, ‘그래서 뭐?’라는 표정을 얼굴에 빤히 드러낸다.
“아. 그게 궁금해? 씨팔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지나가면서 한 번씩 짓밟고 지나가는 년을 너는 왜 밟냐. 그 이유가 궁금하셨어요?”
“묻는 말에만 대답해라. 네 짓이냐고.”
“지금 대답했잖아! 귀먹었어?!”
안 먹었다. 여기서부턴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이 녀석을 도발했듯 내가 이 녀석 도발에 넘어가면 안 돼. 여기서 화를 내는 순간 역으로 내가 심사관 자격이 없는 놈이 되어버린다.
입장이란 게 있고, 난 지금 공적인 명목으로 이곳에 앉아 있는 거니까. 내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이번엔 자기 친구들을 한 명씩 돌아보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온다.
“이딴 시험 내서 우리 엿 먹이는 걸로는 만족 못 했나 본데 말야. 저년 말이야, 애초에 여기 올 자격조차 없는 썅년이야. 작년에 제한조치 풀리자마자 벌레마냥 숨어다니면서 공부인지 지랄인지를 하는데―”
이건 뭔 소리야. 제한조치?
“그걸 누가 좋아했을 거 같아? 우리도 힘들어요, 심사관님. 존나게 힘들어. 3대가 싹 다 사람 죽여댄 년이 사람 죽이는 기술 배운다는데, 하필이면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어. 안 무섭겠어요? 씨이발?”
혼란스럽다. 이 세상은 대체 왜, 마음에 드는 것 같다가도 이런 요소가 하나씩 튀어나오냐?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눈앞의 이놈도, 주변 녀석들 반응도. 저 여자애에게 들으라는 듯이 쏟아내는 온갖 폭언에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여대거나, 맞다며 동조하고 있다.
나도 아는 엘프가 한 명 있고, 그 엘프가 내가 모르는 자리에서 은근히 차별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저 빌어 처먹을 년이 뒤지기 싫으면 오지 마라 아무리 조언을 해줘도! 기어코 오겠대, 자기가 딴 건 몰라도 이 시험은 꼭 보고 싶대. 그래서 좀 밟아줬는데, 많이 모자랐나 봐요?”
“이 정도다, 이거지.”
“망할 년이 마법 하나만 믿고 나대는 게 같잖아서 밟아줬다고,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근데? 아무도 문제 안 삼잖아. 안 그러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몇 개 더 나왔다. 마법 하나만 믿고 나대는 게 같잖다, 이건 저 엘프 여자애가 마법 능력만큼은 시험을 통과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뜻일 터다.
그리고,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이건… 수업 시간, 하교 시간. 담당 교사가 보는 곳에서, 안 보는 곳에서….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해왔고, 사람들에게 묵인받아왔다는 뜻이겠지. 엘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최악인 것도 있겠지만, 이 녀석 한정으로는 그 이유뿐만이 아니란 걸 안다.
“이젠 대답이 됐냐고, 인권운동가 새끼야. 내가 어제 말을 약하게 해서 당신 앞길이 덜 막막해진 것 같은데, 오늘은 아주 확실히 말해놓고 올게. 알았어?!”
“그리고?”
“그리고, 라고? 오늘 하루 멀쩡해서 실감이 안 나? 당신도 어제 들어서 알고 있을 거 아냐, 내가 여기서 저년을 갈기고 짓밟아도! 아무 일 안 일어나. 보라고, 지금―”
말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됐는지, 아예 엘프 여자애 쪽으로 몸을 돌리며 주먹을 움켜쥔다. 이쪽을 바라보던 여자애가 반걸음 뒤로 주춤했다. 학습된 공포다.
“어? 움직였네?”
읊조리는 어조가 악의에 쩔어있다.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 이후로 벌어질 일을 보고 싶지도 않다.
“시험과 관계없는 행동은 하지 마라.”
“아니, 심사관님아. 불합격 때려놓고 당신이 이래라저래라할 처지야? 왜, 당신이 대신 처맞아주려고?”
“다시 말하지만, 저 애는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영향 끼치지 마라.”
“끼치면!! 영향 끼치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 없잖아! 해온 대로 계속 거기 쳐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개뿔 자격도 없으면서 나대지 말고―”
“내 마법.”
세 글자를 읊조리자,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하던 몸이 움찔했다. 저놈 말대로 내가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있는 건 없다. 작은 마법 하나 쓸 수 없다. 그래도 말야.
“마력을 다루는 마법이다. 내 마력뿐만이 아닌 타인의 마력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이놈들은 내 체질에 대해 모른다. 지금 이놈들 머릿속엔 내가 어떤 이미지일까.
정수리에 운석을 꽂아도, 폭풍을 일으켜도. 바닥을 찌그러트릴 정도로 힘을 줘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고, 이론도 정체도 전혀 짐작을 못 하고 있다. 만만하게는 안 보일 거다.
“평생 마법 못 쓰는 병신으로 만들어줄까?”
때문에 이 허세도 묵과할 수 없다. 혹시라도 정말 병신이 되어버리면 본인만 손해니까. 말을 건넨 뒤 가만히 노려보자, 잠시 후.
“…씨발. 나가자, 얘들아.”
자기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넣고는, 까딱 고갯짓한 뒤 몸을 돌려 강당 밖으로 향했다.
막지는 않았다. 심사 끝난 놈들한테 이래라저래라할 권리가 없는 건 맞으니까. 앞장서는 뱀파이어 놈을 따라 나가며,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민짜 놈들.
“매장 한 번 턴 거 가지고 진짜 쩨쩨하게 구네.”
“그런데 플로라, 저 심사관 아저씨 진짜로 어제 그 편돌이야? 냄새 맡아봐도 로브 냄새밖에 안 나서 모르겠는데….”
“딱 봐도 저게 그놈이지, 새끼야. 그나저나 어쩌냐? 바아란 저놈 화 풀리는 거 존나 오래 걸리잖아.”
“저 심사관한테 분풀이하고 나면 풀리겠지… 아, 참.”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뱀파이어 놈 달래는 걸 더 중대 사항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맨 뒤에서 걷던 서큐버스가 잠깐 멈칫하고는, 엘프 여자애에게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나중에 봐.”
이 말에 화들짝 놀란 엘프 여자애를 뒤로하며 사이좋게 퇴장했고, 둘만 남았다. 여자애는 저 인사말이 전혀 다르게 와닿았는지, 입술을 잘근 깨문 채 불안한 눈빛으로 문을 바라볼 뿐이다.
“자리 잡아, 엘린.”
“…네, 네?”
“많이 기다렸잖냐. 이제 네 차례야.”
저놈들이 나갔으니 이젠 더 연기할 필요도 없다. 편하게 말을 건네자, 아래로 시선을 내리깐 채 터벅터벅 내 앞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처음엔 속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는 거라 생각했으나, 말을 들어보니 그건 아니었다.
“저기… 정말로, 어제 그분이세요?”
“너 한 시간도 안 남았어, 인마. 이거 중요한 시험 아니냐?”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걸요. 대단하세요. 정말로….”
이후로는 내가 대단하다 느낀 이유들을 하나씩 열거해왔다. 마법을 무효화하려면 무효화할 마법의 연산과 마력량에 대해 정확히 꿰고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쳐 줬다.
나는 그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0에 수렴하고, 동작이나 어휘에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중에는 내가 했던 말들에서라도 파훼할 단서를 찾아보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하여 직전까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이렇단다.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 심사관의 과제를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 다 들은 뒤 물어봤다.
“그래서. 포기하겠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아직 시간 남았잖아요.”
“그러면?”
“포기는 안 해요. 뭐라도… 시도해볼 거예요. 포기할 수가 없어요.”
뭔가를 시도해보려는 듯 손을 들었다 내리기도 하고, 연산식처럼 들리는 뭔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자기 손바닥을 검지로 짚어 도형을 그리기도 하고.
“포기 못 해요. 못 한다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다 눈가에 차츰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따라서 먹먹해져 갔다. 자기 실력으로는 내 마법을 절대로 뚫어낼 수 없다, 단언하듯 분명히 말해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하고 있었다. 가만히 기다려줬다. 뭘 시도하든, 울든, 중얼거리든 전부 본인 자유다. 무슨 수를 쓰든 내 과제만 통과하면 된다.
이렇게 30분. 마침내 결심한 듯 한 발자국 물러서서는 내 쪽으로 한 손을 뻗으며 중얼거리듯 읊조린다. 마법을 쓴 건 아니다.
“가면을. 가면을… 벗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부탁을 해왔다. 바로 되물어봤다.
“내가 왜?”
“제가, 지금은. 지금은 많이 모자라요. 하지만 나중에 반드시. 반드시 뚫어 보일게요. 성공할 거니까. 마법사로 성공해서 돌아갈 거니까….”
“그리고.”
“도시에서도 잘 해냈다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고 말할 거니까. 당당하게. 당당하게… 흐윽.”
미처 말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버리는 엘프. 숙인 고개 밑으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으나, 내게 뻗은 양손을 내리지는 않았다.
바라보다 결론을 내렸다. 이 녀석 나보다 성적이 좋다.
“옛다.”
가면 머리띠의 후크를 풀어 건네줬다. 정말 건네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건지 날 홱 올려다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내가 어제 그놈 맞다.
매장 털려서 죽어라 쫓아갔었던 그놈.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금 고개를 푹 내리고는, 한마디 어절만 반복해서 되뇌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직 시험 중이니까, 관계없는… 아니다. 합격한 거 축하한다.”
“죄송해요….”
“이번 시험 과제 말야. 자기가 해낼 수 없는 일임을 얼마나 빨리 깨닫고 포기하는지를 보려는 시험이었다.”
예전에 교수가 내게 내줬던 실기 과제이기도 하다. 어지간한 전문가도 절대 분석 못 할 마법을 3×3 큐브에 걸어놓고는, 그걸 풀어보라 시키는 것.
풀 수 없음을 인정하고 포기하면 합격, 풀려고 시도하다 제한 시간을 넘겨버리면 불합격이었다. 내 경우엔 그 의도조차 몰라서 마법부터 풀고 봤지만, 어쨌든….
그걸 아예 벤치마킹해 봤다. 상황도 적절했고, 자기가 냈던 과제랑 똑같은 과제를 내면 반려당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도 이렇게 허락해줬고. 단, 허락을 해주며 교수가 걸어온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합격자에게는 사후조치를 철저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 능력 밖의 일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고, 다른 마법사에게 맡기면 해결될 일에 매달릴 뿐이니까. 이해했냐?”
“…….”
“이해했냐니까. 다시 가면 뺏어버린다.”
“이해, 이해했어요. 심사관님… 흑.”
“그럼 눈물 닦고, 저기 강당 구석에 의자 쌓인 곳 가서 의자 한 개 가져와 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당 안쪽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의자를 끌고 와서는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마저 할 말이 있었다.
“앉으라고 한 건, 그. 너 일정 있어?”
“아뇨… 없어요.”
“난 원래 시험시간이 11시 30분까지거든. 너 합격했다고 보고 올리고 나가버리면 모양새가 좀 그렇잖냐. 남은 시간 동안 네 사후조치라도 해 보려고 한다.”
“사후조치…요?”
“그래. 우선은, 그러니까… 아까 뱀파이어 놈이 내 머리 깨버리려고 했잖아. 그거 너도 할 수 있냐?”
묻자마자 작게, 하지만 확실히 고개를 끄덕여온다.
아까 서큐버스 녀석이 차석이었고, 정황상 뱀파이어 녀석이 학교 수석일 거라 추측된다. 리더 노릇 해 먹고 있었으니까.
그 수석 자리가 원래라면 이 녀석 자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물어봤다. 대답 듣고 나니, 이 녀석과 그 다섯의 악연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었는지도 짐작이 된다.
“저것들 진짜 유치한 놈들이네.”
“어… 네?”
“혼잣말이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리고 얘기하기 전에 잠깐, 뭐 하나만 확인해도 될까?”
사적인 일이라 양해를 구했고, 고개 끄덕이는 것 확인한 뒤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목록 버튼을 눌러, 실행 중인 어플 한 개의 상태를 살폈다.
녹음기. 녹음 시간 1시간 30분. 잘 작동했다.
저장 버튼을 누르고 폰을 집어넣던 도중, 이 녀석이 진정이 좀 됐는지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저… 스마트폰이, 작동이 되는 거예요? 밖에서….”
“그냥 긴급문자 왔나 확인해본 거야. 근데 우리 어디까지 얘기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