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3)
이세계 편돌이-232화(233/331)
232. 사후조치의 사후조치 (1)
* * *
일을 벌이기에 앞서 세 가지 전제를 깔았다. 첫째, 인정할 건 인정하자. 편돌이라는 사회적 지위로는 국회의원 아들내미를 조지기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
둘째는 언론이 우리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는 것. 일당 중 한 놈 부모님이 언론사 사장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전제가, 나는 사람을 조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전제들을 가지고 점장과 심도 깊은 토의를 나눴고, 결론과 맞닿은 의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언론을 휘어잡을 수 있는 동시에 야당 국회의원 아들내미를 조지는 데에 특화된 전문가 집단이 누구인가?
[ 뭐, (삐―)아!! 보면 알 거 아냐, (삐―)라고!! (삐―) (삐―)가 쌍으로 사람 (삐―)다고, 구제가 안 되는 (삐―)라니까…. ] [ …금일 오후, 여당에서 공개한 녹취록 중의 일부입니다.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검열이 들어가긴 했으나, 여당에서는 검열을 제외한 일체의 수정이 없었다― ]누구긴 누구야, 여당 국회의원들이지!
요새 인터넷이 제법 잘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국회의원 메일 검색하고 스크롤 몇 번만 내려도 메일 주소가 주르륵 떠오른다. 그 당에 속한 의원들 전부 다.
싸그리 긁어다가 똑같은 내용, 똑같은 파일 첨부해서 죄다 발신했다. 그중 한 명만 얻어걸려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동시에 누가 됐든 한 명은 반드시 얻어걸릴 거라고 판단했다. 이건 어젯밤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뱀파이어 놈 아버지가 보통 국회의원이 아니더라고?
[ 루슬란 의원! 그간 학생들의 교육권 보호 및 종족 차별을 규제하는 법안 발의에 앞장서 오셨는데, 아드님께서 의원님이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나요? ] [ 조사에 성실히…. ] [ 루슬란 의원, 지금껏 법안을 발의해 오셨던 속내가 의심된다는 여당의 입장 발표에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 성실히…. ]쏟아지는 질문에 맞춰 성실하게 표정을 구겨대고 있는 이 양반이 글쎄, 4선 의원이란다. 의정 활동을 안 할 때는 교육감 후보로도 거론이 됐던 양반인 동시에 마법청에 소속된 적도 있다고.
하기사, 그런 양반이 아니고서야 내 자격증을 임시 정지시키려 들 수도, 시험 심사관한테 청탁 넣어 아들내미를 합격시키려 들 수도 없을 터다. 그것도 최소한의 인맥이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 녹취록에 녹음된 폭언 욕설의 강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를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요, 의원님! ] [ ……. ] [ 여당에서는 의원님께서 이를 묵인해 오셨거나, 혹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학교에 압박을 가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 [ 한 말씀 해 주시죠, 의원님! ] [ 의원님!! ]국회 앞을 찍고 있는 화면이 무척 센세이션하다. 재킷 입은 오크며 무등을 탄 코볼트, 의원의 머리 위에 부유하고 있는 하피들까지, 아주 알록달록하다.
그중에 의원이 진한 붉은색을 담당하고 있다. 아들내미도 창백한 얼굴을 벌겋게 붉혀 가며 욕지거리를 해대던데, 이 양반은 그보다 더해. 유전인가 보다.
[ ……. ] [ 이젠 성실히 임하겠다는 말씀도 안 하시네요, 의원― ] [ 꺄악! ] [ 어, 어? 어어?? ] [ 지금 밀치시는 거예요?! 미신 겁니까?! ]도중에 공중에 떠 있던 하피 한 명이 마이크를 귓가 근처까지 들이밀었는데, 이게 의원의 리미터도 똑같이 밀어서 잠금해제 해버린 듯했다.
신경질적으로 하피의 손목을 잡아 밀어내고는, 빈틈의 실을 찾아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목이 잡힌 하피가 새된 비명을 지르고, 오크는 밀리려야 밀릴 수가 없는 몸통을 기다렸다는 듯 뒤로 자빠트리고….
[ …루슬란 의원의 자녀 학교폭력 건에 관해, 여당에서는 당 학교와의 커넥션이 있었는지. 또 후원 과정에 섞여 있을 불순물을 솎아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이 건을 어떻게든 물고 늘어지겠다. 양복 입은 하이에나들의 의지가 결연함이 보도됨과 동시에 영상이 끝났다. 다음 영상이 재생되려는 걸 정지한 뒤 점장에게 물었다.
“이 동네는 여야당 국회의원들끼리 사이가 많이 안 좋은가 봅니다, 점장님.”
“엥? 찬이네는 그 둘이 서로 친해? 어떻게?”
“어떻게 친한지는 저도 잘 모르고, 알고 보니 학교 선후배. 알고 보니 법조계 같은 기수. 알고 보니 같은 등산회 소속, 아니면 FPS 게임 같은 클랜이든 뭐든….”
“그런 기준이면, 이 동네는 말야.”
주로 종족끼리 파벌을 형성하는 경우가 잦단다. 종족별로 성향이나 사고방식이 원체 다르다 보니 법안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부터가 난관이라고.
그러다 결국에는 최후의 승자가 목소리 큰 놈이 되는데, 뱀파이어들이 이 세상 고위직들을 제법 많이 꿰차고 있다고. 목소리가 크다는 뜻이다.
때문에 뱀파이어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 통과율이 높고, 그만큼 다른 종족의 의원들이 타겟이 되기도 쉽다고. 또, 동시에….
“실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이건 찬이도 공감하지?”
“예. 제 사수 양반이 딱 그런 양반이라.”
이 파벌이 정치판에서는 어떻게 반영이 되느냐. 표면적으로는 여는 여당, 야는 야당 편을 들지만? 수틀리면 그 즉시 교수대를 건설한다. 그 자리에 같은 종족 의원이 임명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실력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핏기 없는 양반들의 경우, 정치판에서 꼬투리를 안 잡히는 것도 실력으로 본다고 한다. 근데 꼬투리가 잡혔다?
그럼 실력이 없는 거다. 실력 없는 놈과 어울려 봐야 본인 손해니, 같은 뱀파이어라고 해서 편을 들어줄 일은 없을 거라는 게 점장 의견이었다.
이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국회가 잘 굴러갈 거라는 믿음이 도저히….
“…아니. 아니다.”
“응? 뭐가 아니야?”
“저 살던 곳이랑 국회 굴러가는 게 다른 거 같아서, ‘이게 제대로 굴러가나?’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 살던 곳 국회도 제대로 안 굴러가는 곳인 건 매한가지라서….”
“어렵게 생각 안 해두 돼, 찬아. 여기도 꽤 엉망이거든.”
이걸 하도 해맑게 말해오길래, 그렇다니 그런 줄 알겠다 대답하고 다음 뉴스 영상 틀었다. 지금까지가 아버지가 조져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엔 당사자들이 조져지는 뉴스다.
[ …이렇게 폭력이 가해졌다는 정황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학교폭력대책위원회는커녕 단 한 번의 계도조차 이뤄졌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 [ 학교 관계자 (음성변조) : 저희가 모든 학생들의 교내외 활동을 꿰고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저희도 처음 접하는 사실이라서…. ]이 대화 직후, 녹취록 내용이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 (삐―)이 마법 하나만 믿고 나대는 게 같잖아서 밟아줬다고,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근데? 아무도 문제 안 삼잖아. 안 그러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 [ 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는 부분과 상충되는데요. ] [ 학교 관계자 (음성변조) :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녹취록에 목소리가 남은 다섯은 오늘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고, 현재 뭘 하고 있는지는 보도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보도 안 해줄 테고. 가해자 보호 어쩌고….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대충은 그려진다. 일단 뱀파이어 놈은 정학 확정이다. 이 세상은 종족 차별 발언을 법에 의거해 엄격히 처벌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제일 강한 리더 녀석조차 정학을 먹는 마당에 이 녀석들이 처벌을 피할 리는 없다. 정상적으로 학교 다니지는 못할 테고, 해오던 우정놀이도 알아서들 끝내겠지.
이 이후로는 잘 모르겠고. 나중에 특집 다큐 같은 거 편성해서 ‘학교폭력 가해자, 그 이후 3년.’ 이런 식으로 틀어주든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재생 바를 슬쩍 내려다봤는데, 영상이 거의 다 끝나있었다. 아나운서의 마지막 두 마디.
[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 밝힌 학교 관계자는,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도 철저히 할 것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 [ 이상으로 뉴스를 마치고, 차후에 후속 보도 전달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점장이 퇴근하거든, 전화부터 해야겠다.
생각하며 재생 버튼이 떠오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패드를 점장에게 건넸다. 받아들고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해 오는 점장.
“낮부터 꼬박 뉴스 봤는데, 찬이 얘기는 하나두 없었어. 걱정 안 해두 돼.”
“걱정은… 딱히요. 제 얘기는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저 녹취록에 변조된 내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긴 하다. 전후 내용 다 살펴보면 어떤 시험 도중이었다는 것도 명확해질 테고, 녹음자가 그 시험 당시의 심사관이었다는 것도 파헤쳐지겠지.
근데… 그 심사관이 누군데. 까치잖아?
저 시험 치른 심사관은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조류지, 내가 아니다. 교수한테 심사를 맡겠다는 의향을 밝힐 때도 특별히 인적 사항을 기입한 게 없다.
딱 가명만 보냈고, 언론이나 국회에서 백날 발품 팔아봐야 까치 둥지밖에 못 찾는다. 거기 있던 게 나라는 걸 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점장, 교수, 단 세 명.
의심 단계의 다섯 놈이 있기는 한데, 이놈들은 아예 말도 못 꺼낸다. 지들이 편의점을 터는 과정이 찍힌 CCTV 녹화본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일이 커질 대로 커진 지금은 절대 그렇게 못 한다. 그놈들이 결코 찢어질 리 없다고 믿어 왔을 빽 하나가 지금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 참이니까.
“그냥 말해 봤지. 찬이가 많이 신중한 편이잖아.”
“신중한 것보다는 사서 걱정하는 편이라곤 생각하는데… 이 일로는 안 그럴 것 같습니다. 점장님께서도 아무 일 없을 거라 해주셨고.”
“정말로 아무 일 없을 거니까 그렇지.”
“허어, 그럼 말은 왜 꺼내신 거예요?”
“그게….”
농담 섞어 묻자, 고개를 아주 살짝 움직여 매장 쇼윈도 밖을 흘겨보는 점장. 바라보는 방향을 따로 바라본 뒤, 나도 고개를 원위치시켰다.
“…저 애가 그 여자애지? 엘린이라는 애.”
“예.”
거기 있던 게 나라는 걸 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실은 셋이 아니라 넷이다. 철저히 보호받기로 약속된 피해 학생.
그 피해 학생이 지금 쇼윈도 근처에서 서성이는 중이다. 정문 벨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느라 저 녀석이 매장에 찾아온 것도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그런 거 같아서, 생각이 좀 앞섰었어.”
“그러실 만하네요.”
쟤가 어딘가에 내 얘기를 하면, 그때부턴 내 문제가 걱정할 문제가 되어버린다. 점장이랑 한 번 더 눈빛 교환 한 뒤, 내가 먼저 말했다.
“제가 따로 얘기해 볼 테니까 퇴근하셔요.”
“응. 근데 찬아, 혹시 가면 가져왔어?”
“어… 죄송합니다. 근데 그 가면 그냥 제가 사도 될까요? 착용감이 괜찮아서.”
“까먹구 안 갖고 온 거 미안해서는 아니구?”
미안한 마음 약간에, 진짜로 마음에 들어서 그렇다. 혹시라도 얼굴 팔리면 곤란해질 일이 또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렇다면야. 찬이는 직원복지로 특별히 99% 할인해줄게.”
“그래 주시면 고맙죠. 어제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점장님.”
“고생은 찬이가 더 했지. 근무 잘 하구, 내일 봐. 찬아.”
“네.”
“얘기도 잘 해보구.”
“넵.”
이렇게 점장이 밖으로 나갔고, 나가면서는 서성이던 엘프 여자애와 일부러 시선을 마주친 뒤 잠깐 멈춰 서서 대화를 나눴다.
멀어서 잘 안 들리진 않았지만, 매장 절도 사건과 관련된 대화 같다. 엘프 여자애가 연신 90도로 머리 꾸벅이고, 점장은 씨익 웃어 보이고.
마지막으로 등 툭툭 두드리고 나서야 점장이 떠났고, 이번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날 바라보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저, 심사관님.”
“어서 오십쇼, 손님.”
“아.”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 하네. 농담기 섞어 말을 건네자,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머릴 붕붕 젓고는 카운터로 걸어왔다.
어깨에 멘 가방이 꽤 두툼하다. 확인차 주변을 둘러본 뒤,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 말을 걸었다.
“뉴스 나오는 것들 봤냐.”
“…네.”
“미안하다. 너한테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이 녀석에 대해서도 어젯밤에 점장과 얘기를 했었다. 그 다섯 놈에 대한 폭탄을 터트리거든, 필시 이 녀석도 뉴스에 언급이 된다.
이에 대해 점장 의견이 이러했다. 이 애는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을 거다. 이 세상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지만, 엘프가 탄압받는 종족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언론은 관심을 먹고 사는 매체다. 엘프가 학교폭력 피해자인 것보다는, 피해자 보호법에 의거해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라 보도하는 게 파급력이 훨씬 크다.
때문에 밝혀지지 않는다. 아침에는 이 확신에 가득 찼던 탓에 아예 말할 생각 자체를 못 했었다. 방금 관련 뉴스를 보고 나서야 겨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사과부터 했다. 내 사과에, 고개를 붕붕 저어오는 엘프 여자애.
“괜찮아요. 정말 별일 없었거든요.”
“…그럼 다행이고.”
“정말이에요. 담임 선생님께서도 신경을 못 써 줘서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연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더 이상 학교에 갈 일도 없고. 중얼거리듯 말해온 내용을 그대로 되묻자, 이 녀석이 정신이 멍해질 말을 해왔다.
“자퇴…했어요. 표면상으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