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4)
이세계 편돌이-233화(234/331)
233. 사후조치의 사후조치 (2)
* * *
말하고는 덧붙이길, 온전히 스스로 내린 결정은 아니라고 한다. 학교 선생들이 먼저 표면상의 자퇴를 권했단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게 낫지 않겠냐며 말야.
“서로를 위해서라는 건 또 뭔 소리냐. 그 작자들이 너 사는 곳 차례로 찾아가서 대면 교육이라도 해주겠대? 당번제로?”
“그건 아니고요. 이젠 제가….”
학교에서 교육받을 필요가 없지 않냐는 논지에서였다. 시험 통과해서 마법사 자격증 취득했으니까.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내 경험에 어떻게든 대입해본다면….
…대충, 수시에 합격한 취급이라 봐도 되지 않을까.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도, 수시 합격한 놈들은 학교를 나오건 말건, 학교에서 퍼질러 자건 선생들이 쥐뿔도 신경 안 썼었다.
자 출석 부른다. 1번. 네. 2번. 네. 3번… 이놈은 왜 대답이 없어. 얘 수시 합격했냐? 네. 알았다. 다음 4번 누구, 네.
학교마다 차이야 있겠지만, 내 모교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일 처리 했었다. 헌데.
“그럼 니 졸업장은. 준대?”
“네. 출결은 정상적으로 처리해줄 테니, 시험 기간 때만 학교에 나와 달라고….”
가지가지들 한다. 시험 기간 전에 학교 선생이 ‘여기서 시험문제 나온다’라며 밑줄 그으라고들 하잖은가. 밑줄을 그은 놈들이랑 못 그을 이 녀석, 둘 중 누가 시험점수가 더 잘 나오겠냐고….
생각하다, 그냥 머리를 비웠다. 더 이상 왈가왈부해봐야 의미 없는 주제다. 이 녀석이 내게 자퇴에 관해 의견을 물어보러 온 게 아닐 테니까. ‘자퇴했어요. 표면상으로는요.’
의견을 물으러 온 게 아니다. 이미 정한 결정을 내게 전달하러 왔을 뿐이다. 눈을 마주쳐 봤는데, 눈가에 기미가 져 있긴 해도 오늘 아침보다는 표정이 밝다.
후련해 보인다. 마저 바라보다, 사소한 것부터 빙 둘러 물어봤다.
“오늘 시험 끝난 직후엔 어땠냐. 뭐 했어?”
“기숙사로는 안 돌아갔고… 근처 카페에 있었어요. 카페에 있다가, 교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학교 안 가고?”
“네. 오늘 시험 치른 게 출석으로 인정돼서….”
“아하. 하긴, 바로 학교 가기도 뭐했겠다. 그놈들 마주쳤을 테니까.”
“……네.”
“그놈들이랑 있었던 일들 때문에라도, 학교 계속 다니기도 뭐했을 거고.”
방금까지 해왔던 말들 중 귀에 유난히 깊숙이 박힌 게 하나 있다. 자퇴라는 선택지를 스스로 생각해 내린 결정은 아니라는 것.
나였으면 뭐, 출결 인정도 해준다니 개꿀이네― 이러면서 덥석 제안을 물었겠지만, 이 녀석이 나만치 단순한 놈은 아니다. 정확한 이유가 뭘까….
떠오르는 이유가 하나 있고, 이게 맞다는 확신이 있어 일부러 물어봤다. 내 말에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살짝 떨구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무릎을 꿇으셨어요. 아까 말씀하시면서.”
“이야. 무릎까지 꿇었어?”
“네. 휴게실에서 얘기했거든요. 옆에는 교감선생님이랑 학생주임님 계셨는데 안 말리셨고… 아니지. 말리려고 하셨나? 어깨를 잡고 일어나라 하시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미안해서 이러는 거라며….”
이 대화가 이뤄질 때의 광경이 어땠을지를 나름대로 상상해 봤다. 테이블을 사이에 낀 1인승 소파 넷. 교감선생, 학생주임, 담임, 이 녀석 넷이 하나씩 소파를 잡아 앉는다.
그 후에는 일단 커피 한잔 마시렴, 하며 담임이 커피 타 주고. 커피를 홀짝이는 엘린 이 녀석 눈치를 보며, 어떤 종족인지도 모를 양반들 셋이 눈빛으로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거다.
당장 공론화되고 있는 게 무엇이냐. 학교 학생 다섯에게 괴롭힘을 받았다는 사실뿐이다. 만약, 이 엘프 녀석이 ‘피해 사실을 알고도 무시했다’라며 자기들 얘길 해버린다면?
그땐 사이좋게 밥줄 끊기는 거다. 이걸 막겠다고 고른 방법이 자퇴고, 종용하겠다고 고른 방법이 무릎을 꿇는 것. 제자님! 이렇게 담임선생님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됐습니까!
이게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효과가 있었을 거다. 동급생이 같은 짓을 했으면 모를까, 자기 가르치던 사람이 자기 앞에서 무릎 꿇는다는 게, 솔직히… 충격적이잖어?
아, 선생님께서 얼마나 미안했으면 무릎까지 꿇으실까.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 녀석도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있고.
“그렇게 무릎 꿇으셔서요. 저도 따라서 일어나고, 마음 잘 알겠다고 말씀드렸거든요….”
“실제로도 마음 잘 알겠든?”
허나, 효과가 발휘되는 과정은 정반대였다.
“…아뇨. 아니에요. 정말 미안하신 거면 문제가 되기 전에,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얘기를 들어주셨어야죠. 그게 맞잖아요. 선생님이니까.”
난 공감한다. 선생님이 신처럼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병신처럼 아무것도 해결 못 해서는 안 되는 거잖은가. 흐린 눈으로 날 바라보다, 맥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냥… 허무했어요.”
“…하긴.”
“어른이신데. 선생님이신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한테 이렇게 무릎을 꿇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예 이럴 일 없도록 떳떳하게 사는 게 맞잖아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어요. 교감선생님도, 학생주임님도 전부. 그 생각이 들고 나니까, 학교에서 제가 어떤 시선으로 비칠지를 싫어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자퇴했다. 그 사람들 죄다 다신 만나기 싫어서.
가라앉은 어조로 한 번 호흡 없이 말을 쏟아내고는, 시선을 피하며 한마디를 더 내뱉어왔다.
“제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지만요. 그래도.”
이 발언은 첨삭을 좀 해줘야겠다. 계산대 위를 짚으며 말했다.
“방금 한 말 말야. 자격 어쩌고.”
“네?”
“그 말을 왜 하는지 이해는 한다. 못 한 거랑 안 한 거, 결국 결과가 똑같은 건 맞아.”
그러게 왜 당하고만 살았어. 인권센터든 어디든 찾아가서 말을 했으면 된 거 아니야? 말 안 한 너도 잘못한 게 있지 않아?
이딴 말을 해대는 놈들이 있다. 매사 논리적으로 구는 게 지적인 것과 동의어인 줄 아는 빡대가리들. 그러다 지적받거든, 자긴 제3자로서 객관적으로 의견을 말할 뿐이다, 난 잘못 없다며 말을 돌리고….
이게 문제다. 똑 부러진 녀석들은 자기 자신조차 객관적으로 본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서도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할 뿐,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까진 생각을 못 해.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 들 수 있어. 힘들다고 포기하는 순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분명 생각했겠지. 너 머리 좋으니까. 그래서 힘들어도 해내야 돼. 해내야 된다고 생각을 분명 하는데.”
“…….”
“막상 그놈들이랑 같이 있으면 말 한마디에도, 눈빛에도. 심지어는 머리 긁겠다고 팔 들어 올리는 몸짓에도 움찔하게 돼. 심지어는 그게 보통 놈들도 아니야. 네가 잘못 대처했다간 네 꿈, 네 미래. 전부 다 박살 낼 수 있는 놈들이었잖아.”
“…….”
“이 생각조차 책임회피라 여길 수 있어. 딴 놈들이야 얼마든지 지껄일 수 있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전제를 깔고, 잘 풀릴 일을 왜 시도하지 않았냐면서 떠들어댈 수 있다고. 근데.”
“…….”
“난 아냐. 네가 믿을지 말지는 네 자유인데, 난 그럴 생각 없다.”
시험이 오전 11시 반에 끝났다. 그리고 교수 왈, 내가 심사관으로 등록된 서류상의 기한은 오늘 하루로 처리될 거라고 했었다.
아직 일이 안 끝났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가 지나기까지 아직 1시간 반이 남았다. 폰으로 시간을 슬쩍 확인한 뒤,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던 녀석에게 물었다.
“누구한테 얘기한 적 없을 거 아니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욕 들었는지도.”
“네.”
“이런 대화 하게 된 것도 내가 처음일 거고.”
“…네.”
“두서없어도 된다. 오늘 하루로 안 될 거 같으면 나중에 전화로 해도 돼. 전화 싫으면 찾아와서 얘기해도 되고. 어떻게 하든 괜찮으니까, 그냥―”
“심사관님.”
거의 토해내듯 날 불러온다. 나도 말하려던 걸 멈추고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애 표정이 참 간절해 보인다. 뾰족한 귀마저 밑으로 축 처져 있다.
“그… 심사관님.”
추측이지만, 이 녀석이 부탁 같은 걸 해본 적이 거의 없을 거다. 똑 부러지게 구는 만큼, 자기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고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능숙할 테니까.
지금도 열심히 판단하고 있을 테고. 솔직히, 푸념한다고 해서 뭔가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은가? 내가 이렇게 힘들었는데 같이 좀 힘들어해 줘라, 부담만 줄 뿐이지….
“그러니까… 이러실 필요가 없으시잖아요. 왜 굳이.”
“필요가 있어. 개인적으로.”
내가 말솜씨가 모자랐나 보다. 운을 뗀 뒤엔 잠깐 고민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거짓말 하나 섞어서.
“나도 괴롭힘 많이 받았거든. 중학생 때.”
1학년 첫 등교 때 일이다.
실내화를 살 돈이 아까워서 오래 쓴 실내화를 어디서 주워다 신고 왔는데, 애들이 그걸 보고는 이러더라고. 뭐야, 너 왜 딴 사람 슬리퍼 신고 있냐? 거지야?
그게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서는 슬리퍼 살 돈도 없는 거지가 되어버렸는데, 그런 게 있잖은가. 한번 놀림거리가 되기 시작하면 그게 밑도 끝도 없이 발전해버리는 거.
근데,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도 “실내화 가방 기워 쓰는 놈이다, 거지다” 하며 나 놀린 놈 쫓아가서 주먹다짐하던 놈이었단 말이다. 초등학생 때 당한 걸 중학생 때도 당하기는 싫더라고?
그렇다고 중학생 돼서도 주먹다짐하기도 그렇고. 초등학생 때야 몸이 물렁한 만큼 서로 갈겨대도 금방 낫는다지만, 중학생 때는 피를 보게 되니까.
이 생각에 담임에게 일러바쳤는데, 우리 담임이 다혈질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극대노해서는 애들을 죄다 책상 위에 무릎 꿇린 뒤, ‘애를 놀릴 걸 놀려야지!!!!’ 하면서 회초리로 후려갈기더라고?
차라리 나도 똑같이 후려갈겼으면 몰라, 이 양반이 그 와중에도 나는 빼놓고 딴 애들을 죄다 후드려 팼다. 그 매타작 직후에는 애들 눈빛이 거지를 보는 눈에서 원수를 보는 눈으로 바뀌어버렸고, 그 이후로는 뭐….
“머리에 돌도 맞아보고, 길 가다 발 걸려서 자빠져도 보고.”
“…참, 이상한 분을 만나셨네요….”
“그러게 말야. 아무튼… 그랬다고. 3년.”
돌이켜보면, 그때는 말을 잘못했다간 일이 더 커질 거라는 두려움만 가득했던 것 같다. 실제로 말을 했다가 일이 더 커진 걸 어떻게 해.
지금이야 어이없고 쪽팔리기만 한 일이라, 점장을 포함한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해본 적 없다. 이 녀석이 처음이다. 내 말에 생각이 깊어진 듯 잠깐 고개를 떨궜다가, 정문 쪽을 바라봤다.
달이 중천이다. 착한 중고등학생들은 집으로 향하고, 고생한 직장인들은 호프집 맥주잔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대다.
텅 빈 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날 돌아보며 마저 말해온다.
“저요. 이것도 처음인데요. 어머니께도, 늘 잘 지내고 있다고만 해왔고….”
“어.”
“그래도요… 많이, 힘들었어요.”
“어.”
“얘기 들어주실 수 있나요?”
목멘 목소리다. 마지막으로 폰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전원 끄고 카운터 밖으로 나와 물어봤다.
“막차 몇 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