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6)
이세계 편돌이-235화(236/331)
235.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 * *
이 상황이 일어날 걸 상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이 다섯 놈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날 물고 늘어질 경우,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시험 건이야 내가 가명이며 가면이며 별짓을 다 했으니 심증밖에 못 건졌다 쳐도, 이놈들이 날 불러낼 수 있는 건수가 하나 더 있단 말이다. 편의점 절도.
이걸 경찰에 자백한 뒤, 진위를 확인해보라며 날 경찰서로 소환하는 거다. 그러거든 자식들의 결백을 주장하러 온 부모도 죄다 맞닥뜨리게 될 테고.
그 자리에서 미리 얘기를 들어둔 부모들이 철면피 깔고 내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다. ‘저희 아들딸이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죄송합니다. 어디 조용한 자리에서 차라도 한잔하면서―’
그 차 한 잔이 내 코로 들어갈 테고 말이다. 이걸 상상한 직후 내린 결론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놈들이 자백까지 해가며 그런 짓을 하겠어?
“말이 없어지셨다구요. 오빠.”
“야, 나 좀 가만 냅둬봐. 생각 좀 하게….”
“어떤 생각요.”
이놈들이 하룻밤 새에 미쳐버렸을 수도 있겠다는 것. 관련이 없다 치부하기엔 톡이 온 타이밍이 지나치게 절묘하다. 또, 다 떠나서 이거 말고 경찰이 날 부를 일이 뭐가 있….
― 부웅.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경관이 전화를 걸어온 거다. 와 씨, 이걸 받아야 돼, 말아야 돼.
“곤란한 전화면 제가 대신 받아 드릴 수도 있어요.”
“네가 받으면 뭔 소용이야, 그게. 나 바꿔 달라고 하면 뭐라고 할 건데?”
“오빠 바꿔야죠. 오빠 전화인데.”
“…그, 너 그냥 담배나 세고 있어라.”
“담배 세고 있으면 오빠 긴장이 좀 풀릴까요?”
긴장은 몰라도 어깨에 힘은 쭉 빠졌다. 수신 버튼 누르고 귀에 폰을 가져다대자, 늘 그래왔듯 피곤에 쩔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예….”
[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급히 의견을 여쭤봐야 할 일 같아, 부득이하게 이 시간에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냥 여쭐 일도 아니고 급히 여쭤봐야 할 일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경찰에게 급히 의견을 말해야 할 일을 한 적이 없―
[ 다름이 아니라, 감사장 수여식 참석 여부에 관해…. ]“예? 표창장요?”
[ 지난 주, 마약 조직 검거에 협조해 주셨던 건에 대해서입니다.]“어… 아, 아아. 그거요….”
지난 달, 우리 매장이 불법적인 돈의 유통 장소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이놈들을 붙잡는답시고 점장과 함께 경관을 따라갔었고, 도중에는 지나가던 어르신도 합류하시고, 하여튼 신나게 구른 끝에 전달책 수장인 보물고블린 놈에게 수갑도 채우고 그랬다.
그 건으로 경찰 쪽에서 소정의 보상 및 상패가 지급될 거다, 이런 얘길 들은 기억이 분명히 있긴 하다. 이 얘기를 새벽 6시, 그것도 내가 찔릴 짓을 한 다음 날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그 건으로 업주님과 이찬 님, 울프 님께 경찰청장으로부터의 감사패, 감사장 수여 및 소정의 포상금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그래도 날 잡아가겠다고 연락 온 게 아니란 걸 알고 나니 마음이 배는 편안해졌다. 식은땀을 쓸어내고 나니, 물어봐야 될 것 같은 것도 자연스레 떠오르더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게 언제 결정된 일이에요?”
찾아오라는 얘기를 왜 오늘 아침에 하는지가 의문이다. 감사장을 줄 생각이었으면 몇 월 며칠에 찾아오셔라, 진즉에 고지를 해주는 게 맞지 않나?
묻자, 잠깐 뜸을 들이고는 가라앉은 어조로 말해오는 경관.
[ 금일 새벽 4시에 결정된 일입니다. ]“아…니. 새벽 4시에요?”
[ 일정이 있으실 테니, 구태여 금일 참석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가겠습니다. 제가 일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솔직한 심정으로는, 별로 가고 싶진 않다. 경찰청장 명의의 감사장이면 경찰청장이 직접 건네주는 것일 텐데, 그러면 규모도 꽤 클 거잖아?
온갖 이종족들이 멋들어진 정복 빼입고 있을 테고. 반면 나는 방수 잘 되는 바람막이를 보물 1호로 삼은 놈에 불과할뿐더러, 그런 공적인 자리에 나가 본 적 자체가 아예 없는 놈이다.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헌데, 금일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나한텐 이렇게 들리더라. 오늘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와 줘라.
어차피 맞을 매라면 미리 맞는 게 낫지 않나. 또, 경관이 이렇게 얘기를 해오는데 쪽팔린다는 이유로 거절하기도 뭐하고….
“점장님께나 어르신께도 톡 보내셨어요, 경관님?”
[ 문자는 발송했습니다만, 아직 답신은 못 받았습니다. ]“아… 저는 참석하는 걸로 할게요.”
[ 예.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이렇게 통화 끝냈고, 꺼진 폰을 들여다보며 아까 통화를 되새겨 봤다. 어젯밤이나 낮에 결정된 게 아니고 아예 새벽 4시? 뭐 일 처리가 이러냐?
이걸 대답하는 경관도 썩 반기는 어조는 아니었다. 하기사 이 시간에 연락 줄 정도면 오늘도 밤샘 근무를 했다는 건데, 밤새고 끌려 나가는 판이니 불만스러울 만도 하겠지만….
“엄청 바쁘게 사시네요, 오빠.”
생각하던 도중, 정수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 녀석이 유니폼 앞으로 공손히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만 내려 날 내려다보고 있다. 긍정해줬다.
“그러게 말이다….”
처음 출근할 때만 해도 얌전히 바코드나 찍자, 딱 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정도면 평생 할 좋은 경험은 이미 다 했다고 봐도 되지 않나….
“저는 시험 끝나서 한가한데.”
“이게 누굴 놀리… 야. 너는 어디 나가서 상 받아본 적 있어?”
“상 받을 일을 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나는 용감한 시민상이랑 감사패 받으러 간다, 인마. 부럽냐? 부럽지?”
놀림만 받는 게 어째 열받는다. 한번 부러워해 보라는 의도로 해봤으나, 씨알도 안 먹혔다.
“와, 정말 부럽다.”
불쌍해서 대꾸해 준다는 어조다. 근데, 솔직히 나도 내가 부럽지가 않아서 부정을 못 하겠어. 감사패를 받아서 어디에 써먹냐고, 진열할 곳이 싱크대밖에 없는데….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퇴근이나 할란다. 유니폼을 벗어 창고에 놓고 카운터로 돌아왔는데, 그 짧은 사이에 유리가 폰을 매만지고 있었다.
인수인계 사항은 아니지만, 아까 하려다 만 말이 몇 마디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말해봤다.
“어젯밤에 그놈들 얘기해 줘서 고맙다, 야. 덕분에 잘 해결됐어.”
“고생은 오빠가 제일 많이 했죠.”
“오냐. 잘 해결됐으니까, 너도 니 시간대에 일 났다고 마음 쓰지 말고. 또… 너 오늘부터 방학인 거냐, 그럼?”
“7월 중순까지요. 왜요?”
“그냥 물어봤다. 폰 보는 거야 네가 알아서 조절할 테고… 나 간다.”
말한 뒤 대답을 기다리자,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대뜸 이런 말을 해왔다.
“다른 건 괜찮은데요. 이따가 화만 내지 마요.”
“화? 나 오늘 화낼 일 있냐?”
“서비스예요. 어제 고생하셨으니까. 잘 가요, 오빠.”
이러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길래 일단 알았다 하고 나왔다. 저 녀석이 그새 아는 사람한테 또 뭘 물어본 것 같은데, 마력 쓰는 일이란 걸 알게 되고 나니 재차 캐묻기도 뭣하고….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화낼 일이 생겼다. 아니, 내 보물 1호가!!
“야! 그만하고 내려놔라. 이 망할 놈이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이야.”
“…….”
“아, 닉값 그만하고 내려놓으라고! 인마!!”
현관문 열고 들어온 직후에만 해도 거실에 놓여 있던 빨간 리본이 잠깐 씻고 나오는 사이에 위치가 옮겨졌다. 활짝 열린 옷장의 두 번째 칸.
여기에 바람막이를 걸어놨었는데, 바람막이가 옷걸이째로 허공을 이리저리 부유해대고 있다. 그것도 옷 끝자락이 팽팽히 당겨진 채로 말이다.
지퍼 부근에서 투두둑 소리가 들리는 게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다. 말을 해도 아예 대답이 없어서, 옷장에 머리를 박고 재차 말했다.
“진짜 뭐가 불만이어서 이러냐. 내가 뭐, 우유 트럭이라도 한 대 훔쳐다 줘야 되냐?”
“…냥.”
“진짜 훔쳐 달라는 소리야, 뭐야. 야, 의견을 주장하고 싶거든 협박부터 할 게 아니라 대화로 차근차근―”
“냐하아악!!”
조곤조곤 말로 설득해보려 했는데, 이놈이 갑자기 성을 내기 시작했다. 휘날리던 바람막이를 바닥에 패대기치고는, 성큼 뛰어내린 뒤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따라가서 리본이 멎은 곳을 바라봤더니, 사료배급기가 텅 비어 있더라.
“하아악, 하아아악!! 냥! 냐앙, 냐아앙!”
“어. 그래….”
“냐아아아아옹! 냐앙, 냥. 냐아앙!!”
쉽게 말해, 반려동물을 기르기로 정했거든 그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지라는 것이었다. 외에는 사료 봉투 찢어먹지 말라고 했으면 니가 알아서 채워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우유를 달라고 하길 했냐 뭘 했냐….
옹알이가 하루종일 이어질 판이라, 늦게나마 협상을 제안해봤다. 폰을 켜서 어플을 잠깐 조작한 뒤 화면을 내밀며 말했다.
“야. 우유 시켰다. 내일 오후 3시 배송이야.”
“…….”
“문 앞에 두고 가라 적어뒀으니까, 기사분 들어다 집어 던지고 그러지 마라. 알겠냐.”
아까 유리 녀석 조언을 적극 반영한 제안이다. 내가 저 사료배급기 세팅을 정량 배급으로 해놨고, 이후로 건드린 적이 한 번도 없다.
3일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사료가 충분히 남아있었단 말이다. 이놈이 지 배고프다고 배급기 세팅 버튼을 지 마음대로 건드린 거다. 그래놓고 나한테 화를 내는 거라니까?
그래도 참을 인 자 새기고 생각해 보니, 길고양이 출신 녀석이 사료배급기를 다뤄봤을 리가 없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기껏해야 누르면 밥 나오는 매―직 버튼, 그 정도 인식밖에 없지 않을까?
이 생각이 드니 마냥 화내기도 뭣하고, 반은 신경을 안 쓴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아 더 말 안 했다. 폰을 향하고 있던 빨간 리본이 잠시 후, 옆으로 홱 돌아갔다.
“매옹.”
활짝 열린 베란다 방향으로 울음소리를 내고는, 주섬주섬 바람막이를 띄워 옷장에 걸어놓는 털뭉치. 옷걸이 방향이 반대이긴 해도 잘 걸어놨다.
이러고는 다시 사료배급기로 돌아갔고, 사료 깨작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마저 귀 기울이고 있다가, 일부러 들으라고 말했다.
“나 잔다, 인마. 9시에 깨워라.”
“웅냠냠….”
“싫음 말고.”
어차피 알람 맞춰놨으니 알아서 일어날 수 있다. 옷가지를 죄다 벗어 던진 뒤 드러누웠고, 오전 9시 3분.
알람소리도 알람소리인데, 숨 쉬기가 힘들어서 잠을 못 자겠다. 분명 정신은 멀쩡한데, 푹신한 무언가가 내 코를 짓누르고 있다.
몸을 일으키자, 눈 앞에서 빨간 리본이 배를 타고 허리께로 굴러떨어졌다. 이놈이 발바닥 젤리로 내 코를 딛고 서 있었나 보다.
제딴에 깨워보겠답시고 말이다. 바라보다, 소감을 말해줬다.
“날 암살한다고 이 집 명의가 니 꺼가 되는 게 아니야, 인마.”
“하아악.”
“농담이야, 인마. 깨워줘서 고맙다.”
턱이 있을 부분을 손가락으로 슥슥 쓸어 올려 봤는데, 꼬리로 내 허벅지를 두들겨 대기는 해도 싫다는 눈치는 아니다. 여튼 잠은 깼고, 이제는….
연락부터 해야지. 폰 꺼내서 바로 전화를 해 보려 했는데, 이미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와있었다. 점장 전화였다.
바로 전화하자, 신호음이 반절도 채 울리기 전에 점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이, 찬아. ]동시에 들려온 게 오토바이가 부웅 시동을 거는 소리. 잠깐 멍해졌다가 떠오르는 대로 물었다.
“예, 점장님. 근데 지금 밖에 나오신 거예요?”
[ 밖이지. 찬이도 경관님께 연락 받지 않았어? ]“어… 맞네. 점장님께서도 받으셨겠네요.”
[ 응. 그래서, 지금 어딘가로 급하게 가고 있는데 말야…. ]말 도중에 점점 장난기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어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엔진음이 점점 멀어지고 고요해졌고, 점장 목소리도 좀 더 또렷해졌다.
[ 내가 지금 어디루 가고 있게? ]서 가시는 거겠죠. 대답하려다, 수화기 너머로 우렁찬 강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 밖에서 들려온 소리와 똑같다.
이거 느낌이 쎄하다. 대충 벗어 던졌던 옷가지를 세탁기에 쑤셔 박은 뒤, 세제 들이붓고 버튼을 눌렀다. 다음에는, 다음에는 또 뭐 해야 하냐?
[ 찬이 많이 바쁜가 부네? ]“글쎄요?”
[ 그럼 맞춰봐. 나 어디루 가고 있게. ]잘 알겠으니까 나 이불 갤 시간만 줘라. 팔다리를 죄다 써가며 이불을 다 걷은 직후에 베란다로 달려 나갔다. 익숙한 머리카락이 보였다.
[ 못 맞추면 선물은 없는 걸루. 3, 2…. ]“그걸 점장님께서 어디 쓰시게요?”
베란다에 팔 얹은 채, 귀에서 폰을 떼고 목소리 높여 물어봤다. 내 물음에 똑같이 귀에서 폰을 떼고는 날 올려다보며 대답해오는 점장.
팔에는 양복으로 보이는 옷 한 벌이 곱게 포개어져 있다. 날 올려다보고는 햇살이 따가운 건지 아니면 내 반응이 못마땅한 건지 눈썹을 찌푸리는 점장.
“에이. 재미없게.”
“아무튼 맞췄으면 됐죠. 저 금방 내려―”
“아냐. 거기 있어, 찬아.”
“네?”
이번엔 내가 눈썹 찌푸릴 차례였다. 가려져 있던 반대쪽 팔을 들어 내게 보이는데, 불투명한 흰색 봉투가 팔목에 걸려 있었다.
“찬이, 아침밥 안 먹었지.”
“어… 예.”
“그럼 찬이 집에서 밥 먹구 가자. 아침밥 포장해 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