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37)
이세계 편돌이-236화(237/331)
236.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
* * *
머리 위로 보란 듯이 봉투를 몇 번 휘적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점장. 바로 현관을 열어주자, 양팔의 양복과 봉투를 내 눈께로 들어 올리며 생글 웃어온다.
“요새 날씨 엄청 덥다. 그치, 찬아.”
“그러게요. 이젠 돈 준다고 해도 이불 덮고는 못 자겠어.”
이 이유에서인지, 점장이 편의점에 입고 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옷차림을 하고 왔다. 멜빵 달린 청반바지에 베이지색 셔츠.
살짝만 움직여도 하늘거리는 게 셔츠 재질이 얇아 뵌다. 보면서는 느낀 게, 좀 이따가 제복 입은 경찰들 무리에 끼어 감사패를 받을 차림새라기엔 지나치게 캐주얼하지 않나?
생각하다 관뒀다. 잘 어울리는 거 입어줬으면 됐지, 이런 걸 가지고 뭐라고 하겠어. 건네 온 양복과 봉투를 받아 들자, 손에 든 양복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덧붙이는 점장.
“그래서 양복도 얇은 걸로 챙겨왔지.”
“예… 점장님께서는 평상복이신데, 저만 양복 챙겨입고 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치만 찬이, 마땅히 입고 나갈 옷 없지 않아?”
“그렇기는 한데, 이거 값이 꽤 나갈 거 같아서….”
“아닌데? 오다가 주운 건데?”
입수경로가 그렇다기엔, 양복에 걸린 택에 여섯 자리 숫자가 적혀있다. 심지어는 포장된 비닐 안에 넥타이가 하나 포함되어 있는데, 이건 사은품인지 뭔지….
오늘 밤에 근무 교대할 때 양복값 챙겨가겠다. 말하려 했으나, 점장이 먼저 선수를 쳤다.
“사실 농담이구… 찬이 어깨가 넓은 편이잖아.”
“제가요?”
“응. 오면서 잠깐 생각하고 나니까, 양복 입은 모습이 한번 보고 싶어졌어.”
“허어.”
옛날에 어머니께서 어깨가 넓은 편이란 말을 자주 하시긴 하셨다. 그게 부모님 특유의 팔불출이 아니라 객관적인 팩트였다고?
“그러니까, 음… 생일선물로 치자. 어때?”
이 말이 내겐 돈 준다고 해도 안 받을 거란 얘기로 들려서, 결국 알겠다고 했다. 나도 점장 생일 되거든 지갑 탈탈 털어보든 해야지….
이렇게 국보 1호가 되어버린 양복을 거실에 고이 포개둔 뒤, 봉투에 든 아침밥 내용물들을 꺼내 봤다. 토스트 두 개에 이온음료.
내 집 꼬라지 대비 훌륭한 메뉴선택이다. 집 내부를 슥 둘러보고는, 웃음기가 희미해진 얼굴로 집들이 소감을 말해오는 점장.
“일단은 이렇게 챙겨 먹구, 낮에 찬이랑 같이 밥집 갈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예.”
“…집에 진짜 아무것두 없네.”
말하고는 작게 한숨까지 쉬었는데, 이건 나도 할 말이 있다. 아무것도 없긴 뭐가 없단 말인가? 싱크대도, 세탁기도, 옷장도, 심지어 화장실에는 샤워기까지 있는데.
“저 샤워기도 큰 결심 하고 산 겁니다. 무려 만 오천 원이나 주고 산….”
“…….”
“그, 제가 원래 집에 뭘 잘 안 들여놓습니다. 점장님.”
내가 원래 세상에서 달고 살았던 병이 하나 있다. 계좌 잔고가 내 바이탈 사인으로 보이는 정신편력에 기인한 착시현상이다. 자가 진단이긴 하지만, 아마 맞을 거다.
이 병이 말기에 치달아서는 아끼면 안 될 것도 일단 아끼고 본다는 증세로 악화되었는데, 이게 내 삶의 질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지더라고?
예를 들어, 냉장고? 평소에 덜 사고, 사 온 것들 미지근해지기 전에 다 먹어 치우면 되는 거 아닌가?
더해서 밥은 구내식당이 있는 곳이나 식비를 지원해주는 직장 구하면 그만이고, 여가생활이야 폰으로 동영상이나 보면서 살면 되는 거고―
하나하나 쳐내다 보니, 예전에 살던 집에도 들여놓은 게 몇 안 됐었다. 밥솥이랑 와이파이. 무제한 요금제보다는 와이파이 들여놓는 게 더 싸더라.
“진짜 그렇게 지냈어?”
“전기밥솥도 충동적으로 산 건데, 그것만 있어도 어떻게 살아지긴 하더라고요. 제가 특별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걸 누군가한테 말해보는 건 점장이 처음이다. 나도 특이하게, 힘들게 산다는 말 들을 생활 패턴인 줄은 잘 알거든. 힘들게 산다고 어디 광고하고 다닐 일 있나.
옛날엔 집에 누군가 찾아올 일도 없었고, 덕분에 특별히 감추려는 노력을 안 해도 은밀하게 불편히 살 수 있었다. 오늘 점장이 말없이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그치만 찬이, 하나한테는 간식 사주고. 유리한테는 밥 사주고 그랬으면서.”
“걔네한테 돈 쓰는 건 안 아깝거든요. 그리고, 뭐… 여기서 지내면서 증세도 완화되고 있기도 하고요.”
점장이 들고 온 양복도 옛날이었으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환불했을 텐데 말이다. 뭔가에 쫓기면서 살질 않다 보니 사람이 점점 여유로워지는 것 같어.
이 생각이라 집에 가전제품들도 차근차근 들여놓을 생각이다. 말하자, 이제서야 표정을 풀고는 부스럭부스럭 토스트 포장을 까는 점장.
“찬이네는 세상이 어떻길래 그렇게 지낸 건지가 궁금하네.”
“최소한 제 걱정 해주는 사람은 없었죠. 직전에 다니던 직장에 상사랑도 형식적인 얘기만 했었고.”
“그래? 그분은 찬이한테 관심이 없으셨던 건가?”
“아닐걸요. 출장 다닐 때는 밥 꼬박꼬박 잘 챙겨줬거든요.”
“그건 당연히 챙겨줘야 되는 거 아냐?”
“그렇긴 하네요. 그것 말고도 가끔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가끔은 제가 좋은 놈이니 뭐니 칭찬도 해주고 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들 하며, 토스트는 싱크대 앞에 서서 서로 우물거렸다. 딴 건 몰라도 테이블은 빠른 시일 내에 주문을 하든지 해야겠다.
다 먹은 후에는 오늘 일정 이야기.
“찬아. 울프 어르신께서도 오늘 오신대?”
“글쎄요. 지금 한번 여쭤볼―”
오시거든 점심에 식사라도 같이 하시자. 여쭤보려 했는데, 어르신께서 이미 톡을 보내두셨었다. 우선 세 줄.
[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 [ 헌데, 사건 당시에 제가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 [ 감사장을 전달받을 정도의 공헌을 해냈는지가 의문이었습니다만…. ]지난주에 우리가 보물 고블린 놈을 잡을 때, 어르신께서 하신 일이 차 운전. 그리고 도망치려는 고블린 놈의 막타를 치신 거였다. 근데 막타 치면 MVP 아닌가?
허나 나와 견해가 달랐던 어르신께서는 감사패 수여를 사양하려 하셨고,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고민 끝에 어르신께서 답장하시기를.
[ 급히 처리해야 할 용무가 있어 불참할 수밖에 없다 전달드렸습니다 ] [ 심려 끼치게 되어 송구스럽군요 ] [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쉽게 말해 못 오신단다. 용무 때문에 못 오신다는 거야 당연히 그렇다 치는데, 급히 처리해야 할 용무가 있다는 부분이 눈에 밟힌다. 밤에 운전하시는 분이 낮에 웬 용무?
“그때, 어르신께서 마지막에 그 고블린분 붙잡아주셨잖아. 그치.”
점장은 나와는 다른 부분이 눈에 밟히는지, 내 옆에 바싹 붙은 채 톡 화면을 바라보며 말해왔다. 생각하던 걸 멈추고 점장 말에 대답했다.
“그랬었죠.”
“그럼 충분히 할 일 하신 거잖아. 굳이 사양하실 필요 없지 않나?”
듣고 나서는 나는 그때 뭘 했는지를 생각해봤다. 돈가방 나르는 놈 붙잡는답시고 화장실에서 잠복도 했었고, 그러다 일이 꼬여서 오크 조폭들 십수 명이 나 있는 곳으로 쳐들어오려고도 했었고…?
되새겨 보니, 난 받을 자격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적당히 대답해 줬다.
“공적인 자리 나가시기가 좀 애매하신 거 아닐까요? 어르신 신분이 좀 특수하시잖아요. 알아보는 사람이 있진 않겠지만, 뭐….”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제가 나중에 따로 받아서 전달드릴게요. 근데 저희 언제 어디로 나와라, 이런 얘기 전달받은 거 있으세요?”
내 물음에, 집안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대답해오는 점장.
“어디 있을지 말씀드리면 그쪽으로 데리러 오시겠대. 그래서 찬이 집 앞에 있겠다구 했지.”
“아하.”
“그래서 말인데, 나 10시까지 고양이랑 놀구 있어도 돼? 찬아?”
* * *
구태여 집까지 찾아온 이유가 내 걱정이 9할, 털뭉치 녀석에 대한 호기심이 1할이었다고 한다. 영물들 중에 이렇게까지 마법을 잘 다루는 영물이 드물다나, 뭐라나.
그런데 1할짜리 호기심이라기엔 점장 눈이 무척 초롱초롱했던지라, 그러라고 했다. 낯선 사람 왔다며 난리를 쳐댈 게 뻔했지만, 내가 나중에 치우면 그만이고….
솔직히, 나도 졸라 짱쎈 투명고양이의 마법이 정확히 얼마나 졸라 짱쎈 건지 궁금하긴 했었다. 옆에서 점장 감상을 들어보려 했는데, 점장에게도 내게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안 나왔다.
“야옹아. 지금 내려오면 안 잡아먹… 아이 참, 이젠 레파토리도 다 떨어졌는데.”
“먀아아아아아아아옹….”
“야. 협상을 하자는 거야, 뭐야. 아니면 거기 꿀이라도 발라놨어?”
“…….”
털뭉치가 옷장 위로 숨어서는 40분이 넘도록 1묘시위만 해댔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날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해오는 점장.
“안되겠다. 찬아, 나 무등 좀 태워줘.”
“그… 럴 가치가 있는 일일까요? 점장님?”
무등을 태워달라 할 거면 유니콘을 데려와야지, 그걸 왜 나한테….
“가치가 있어! 엄청 커! 난 저 애 머리를 쓰다듬고 싶단 말야.”
이젠 마법 어쩌구 호기심 핑계를 대지도 않는다. 영원한 18세가 1×8세가 된 것처럼 떼를 써오는데, 직장 상사 명령이라고 해도 내가 이것만은 차마 못 하겠다.
하여 시간을 슬쩍 확인한 뒤, 최대한 그럴싸한 말을 골라 둘러댔다.
“저 녀석이 그거라고 하셨잖습니까. 그, 사람을 마력으로 구분하는 재주가 있다.”
“알지. 그래서 최대한 숨기고 있는 건데… 그럼 무등 말구, 나 손 좀 잡아줘.”
이건 뭔 뜻인지 알겠다. 점장이 내밀어온 손을 잡은 뒤, 마력과 관련된 뭐가 됐든 간에 없애보자는 의도로 체질을 써보려 했다. 허나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정확히는,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마력을 없애보자. 생각하는 순간, 멀미가 확 밀려왔다.
“…우읍. 와, 씨.”
“찬아?”
“잠깐. 잠깐만요. 점장님.”
고통인지 멀미인지 분간이 안 된다. 눈 안쪽에서 쇠 맛이 나는 느낌이야. 바로 손을 뗀 뒤, 잡고 있던 손을 옷장에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숨도 잘 안 쉬어진다. 묽은 침을 두어 번 삼켜 넘기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 등을 툭툭 두드려대는 점장.
“뭔가 잘못된 거야?”
“저도 모르, 모르겠습니다. 마력을 없애보자, 이 생각이었는데….”
“…아하.”
듣자마자 뭔가를 깨달았는지 쓴웃음을 짓고는 말없이 내 등을 계속 두드리기만 한다. 호흡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싶어 점장을 바라보자, 이번엔 자기 손등으로 내 눈가를 슥 쓸어내리며 말해왔다.
“찬이도 자주 들어서 지겹겠지만, 내가 왕년에는 좀 잘나갔단 말야.”
“그건 알죠. 아는데요.”
나도 이젠 체질 다루는 데에 나름 익숙해졌고, 이게 꽤나 위력이 센 체질이라는 것도 안다. 건드리는 것만으로 게이트 하나를 소멸시킬 수 있고, 그러고 나서도 살짝 멀미가 나는 데에만 그쳤었다.
근데 점장 상대로는 아예 엄두가 안 난다. 두 번 다신 이런 짓 하지 마라, 몸이며 머리며 태업을 하는 느낌이야.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답과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게 결과가 이렇게 되네요. 점장님한테는 제가 반마법사 명함도 못 내민다는 거.”
점장 마법과 내 반마법. 점장이 작정하고 쓴 마법을 내가 지우려 하면 어떻게 될까, VS놀이 하는 느낌으로 망상을 해본 적이 있다.
당연히 망상으로만 끝냈지만 말이다. 그랬다간 점장이 무한히 깜지를 쓰게 될 테니까. 내 말에 한 번 더 쓴웃음을 짓고는, 농담기 섞인 목소리로 말해온다.
“찬이가 명함 주면, 난 비싸게 코팅해서 보관해둘 건데?”
“말이 그렇다는 거죠. 말이.”
“알지. 그리구, 찬이 말도 아주 맞는 건 아냐.”
“예?”
“아직은 명함도 못 내미는 거야. 아직은.”
내가 근무 초창기 때에만 해도 딱 마법을 지우는 것만 할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지운다와 지우지 않는다, 딱 두 가지만 가능했다.
그게 한 달 반이 지난 지금은 마력을 원하는 만큼 지우거나 마력을 눈으로 감지하는 등으로 발전해왔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점장 의견이었다.
“지금은 발동이 잘못된 거구. 잘못된 마력을 지운다― 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마력을 전부 지우려고 시도해버린 거 아닐까?”
“…그, 마력량이 얼마나 됩니까. 수치화가 돼요?”
“무진장 많아. 왕년에 잘나갈 정도로 많이.”
수치화는 안 된단다. 듣는 도중에 한 번 더 헛구역질이 밀려와 입을 가리자, 또다시 내 등을 두드리며 마지막으로 덧붙여왔다.
“그래도 나―아중에 되면, 찬이도 현직으로 잘나가는 반마법사 될 테니까.”
난 부정적이다. 내가 백날 잘나간다 한들, 점장한테만큼은 비슷한 짓을 다시 시도해보진 않을 것 같다. 털뭉치 놈 구슬려보겠다고 이게 뭐 하는 일이야….
고개만 슬쩍 들어 올려다보니, 털뭉치 놈도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지 빨간 리본을 내 쪽으로 빼꼼 내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올려다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는 점장.
“찬이, 몸은 이제 괜찮아?”
“…좀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미안. 괜히 이상한 부탁 해가지구….”
“아뇨. 제가 무식한 짓 해서 이런 거지, 잠깐만요.”
가쁜 숨 몰아쉬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 때문이다. 차 한 대 겨우 드나들 골목에서 엔진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점장과 나란히 베란다로 나가보니, 낯선 차량 한 대가 어느새 코앞에 정차해있는 채였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이 우릴 올려다보고는 경례를 해왔다.
“두 분, 안녕하셨습니까.”
경관이었다. 허리춤에 경광봉을 매단 평소와는 달리, 2층에서 내려다봐도 각 잡힌 게 빤히 보이는 정갈한 제복을 입고 있다.
눈 밑의 기미와 검은 머리 색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우릴 올려다보고는, 경례를 하던 손을 내리며 물어왔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아뇨. 아니에요, 잠깐 속이 안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