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
이세계 편돌이-23화(24/331)
23화. 외상 받는 편돌이 (2)
포메라니안의 목소리는 중후하고, 울림이 있었다.
멀리서 들었다면 목소리 뭐야… 하며 감탄했을 정도로 말이다. 이 조막만 한 목의 어디서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너 말할 수 있었어?”
“그렇소.”
“그런데 아까는 왜 말 안 했어?”
“원래 평소에도 말을 별로 하질 않소.”
“그럼 지금은 왜 말하는 건데.”
“할 말이 있냐 먼저 여쭤본 건 사장님이시지 않소?”
그건 맞는데, 그렇다고 진짜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빈말이 아니라, 3일 동안 근무하며 겪어온 상황들 중 지금 이 상황이 내겐 제일 괴랄하게 느껴지고 있다.
개머리 코볼트나 오크 놈들이야 원래 저렇게 생긴 놈들이니 이해하겠다만, 이 녀석은 어디를 어떻게 돌려봐도 나 사는 동네 포메라니안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지금도 그저 혓바닥을 내민 채로 헥헥대며 날 올려다보고만 있을 뿐이고. 원래 이 동네 개들은 다 이러나?
“야, 어… 너 이름이 뭐냐.”
“멍멍이라 하오.”
“주인이 널 그렇게 부른다고? 멍멍이?”
“그렇소.”
이름 참 대충 지었다. 지 개한테 관심이 없나.
“아무튼 그래, 멍멍아. 궁금한 게 있는데, 너 말고 다른 개들도 다 말할 줄 알아?”
“잘 모르겠소. 그 질문에 확답할 수 있을 만큼 본견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지라.”
“너 몇 살인데.”
“올해로 두 살이오.”
두 살인데 말은 또 왜 이렇게 잘해?
아무튼 본견은 나이가 어려 잘 모르겠다 하니, 내 나름대로 역산을 한번 해봤다.
이 녀석이 생후 6개월 즈음부터 바깥 산책을 다녔다 치면, 최소 1년 반 동안은 자기 말고 다른 개가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 정도면 개들이 다는 아니어도, 대부분은 못 하는 거라고 봐도 되지 않나….
물론 확신은 없다.
아예 점장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일 것 같긴 한데, 그러기엔 또 시간이 애매해서 문제다. 녀석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대략 15분 정도가 남았는데, 통화하고 있다간 시간이 다 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궁금증을 해소하기보다는, 뭔 말을 못 꺼내고 있어 고민이라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나 좀 들어봐야겠다.
“멍뭉아. 너 아까 뭐 하려던 말 있지 않았어?”
“음… 이런 경우가 자주 있나 싶어서….”
“어떤 거. 주인이 너 여기 맡겨두고 담뱃값 가지러 간 거?”
“그렇소.”
있겠냐고. 그냥 네 주인 술버릇이 괴팍한 거다. 대답을 들은 포메라니안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렇구려….”
“너도 별로 내키는 상황은 아닌가 보다.”
“아무래도 좀, 그렇소.”
“이런 게 싫으면 네 주인한테 말을 해. 함부로 무시는 못 하지 않겠냐?”
“그것도 좀 곤란한 게….”
시무룩한 채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걸 축약해 봤더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자신은 자기 주인한테 말을 걸어본 적이 없고, 주인도 자기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모른단다.
“왜 말을 해본 적이 없어?”
“그… 어렸을 적에, 주인과 안주인이 얘기하는 걸 얼핏 듣게 되었는데 말이오. 본견이 자꾸 시끄럽게 굴면, 서… 성? 그게 뭐였더라?”
“성대 제거 수술?”
“그게 맞는 것 같소. 그걸 해야 된다 하길래, 이후로 주인 앞에선 아예 짖은 적이 없다오. 말도 당연히 해본 적 없고.”
이걸 당사자 입으로 듣자니 어이가 없긴 했으나 이해는 잘 됐다. 자기 자신을 벙어리로 만들겠다는데 어떻게 말을 꺼낼 수가 있겠어.
“그리고 다른 개들도 말을 잘 안 하길래, 다들 그게 무서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고.”
“그건 잘 모르겠다. 다른 개들도 말을 안 한 거지, 짖긴 했을 거 아냐.”
“음… 그건 또 그렇구려….”
그냥 이놈이 특별한 게 맞는 것 같다. 이젠 귀까지 축 늘어뜨린 포메라니안은, 잠시 주저하다가 내게 물어왔다.
“혹시 다른 개들이 어찌 사는가에 대해서도 잘 아시오?”
그걸 내가 알겠냐고 대답하려다, 애완견을 기른 경험담 몇 가지를 들었었던 게 떠올랐다. 이거라도 대답해 줘야겠다.
“뭐, 귀여움받고 이쁨받고 그러지. 나 아는 놈은 자기 강아지 데리고 해외로 여기저기 나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
“그건… 좀 부럽구려.”
“네 주인은 그런 거 잘 안 해줘?”
“밤에 가끔 산책 나가는 걸 제외하면 나가지도 못한다오. 외에도….”
이후 포메라니안의 푸념이 이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식사에 관한 것이었다.
개 사료를 먹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밥시간 때 자기 무릎에 앉혀놓고 자기는 치킨을 시켜 먹는 게 그렇게도 부럽다나 뭐라나.
이외에도 술 먹고 집에 들어와서 부리는 진상 받아주는 것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며, 주인이 출근한 동안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단다.
다 들어준 뒤, 감상을 말해줬다.
“그냥 네가 애완견 체질이 아닌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시오?”
내 생각엔 그렇다. 집 문 열린 사이에 뛰쳐나가서 안 돌아오는 개들이 단순히 답답해서 뛰쳐나가는 건 아닌 것 같거든. 바깥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음….”
심경에 변화라도 오고 있는지 말꼬리를 늘이기 시작한다. 걱정돼서 덧붙였다.
“근데 그렇다고 집을 나갈 것도 아니잖아.”
“…….”
“농담 아니야, 인마. 야,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진짜. 심지어 니는 포메라니안인데, 밖에서 돌아다니다 보신탕 트럭에 잡혀가기라도 하면 어쩔라고 그러냐?”
실제로 보신탕 트럭이 이 사거리를 돌아다니지는 않겠지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겁줄 생각으로 말해줬다.
흔들리는 포메라니안의 눈망울을 보건대, 효과가 있는 듯했다.
“그렇긴… 하오만….”
“그러니까 주인이랑 잘 대화해서 산책 좀 자주 다녀달라고 하고, 아무튼 대화를 한번 해봐.”
이후엔 조용히 있었다. 이 녀석 주인의 예상 도착 시간이 임박하기도 했고.
한참을 조용히 있던 포메라니안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죄송하오만, 질문 하나만 더 해도 괜찮겠소?”
“뭔데?”
“그… 주인이 말하기로는, 본견이 뭘 해야 한다고 하던데 말이오.”
좌우로 고개를 몇 번씩 갸웃거리다가, 단편적인 생각들을 입에 담아가기 시작한다.
“그때 나왔던 말이, 저… 정… 중… 하여튼 무슨 수술이었는데.”
“…중성화 수술?”
“그게 맞는 것 같소. 사장님은 참으로 유식하구려.”
알아들어 줘서 기쁜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날 바라보다 물어온다.
“헌데 그게 도대체 무엇이오?”
야이 씨, 이놈 돈까스집 가게 생겼다.
“멍멍아. 아까 말한 거 취소할 테니까 그냥 집 나가라.”
“아까 하신 말씀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그래서 취소한다는 거잖냐. 농담 아니라 너 진짜 큰일 났다고, 인마. 너 돈까스 먹게 생겼다니까?”
“돈까스 좋지 않소? 주인이 먹는 걸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만, 냄새가 아주 좋았거든. 그러니 돈까스도 맛있을 게 분명하오.”
글쎄다. 돈까스집 한번 다녀오면 생각이 달라질걸?
얼른 포스기의 시간을 확인했다. 이놈 주인이 오기까지 3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간략히 돈까스가 무엇인지, 돈까스를 먹고 온 애완견들이 어째서 무척 시무룩해지는가를 최대한 에둘러서 설명해 줬다. 두 살 먹은 소형견이 받아들이기 힘들 현실이라 생각돼서였다.
허나, 허사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이해한 듯, 몸을 와들와들 떨며 중얼거렸다.
“본견이… 고자가 된다, 그 말이오…?”
“그래, 인마….”
“어째서… 본견이 그런 잔인무도한 짓을 당해야 하는 것이오…?”
중성화 수술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건강적인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고환암, 나이가 들며 생기는 전립선비대증, 방광암 예방 등에 도움이 되며, 성적 충동과 공격성을 억제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하다. 호르몬 분비 체계가 꼬이는 탓에 비만, 우울증 등에 걸리기가 쉬워지며, 특히나 성장기 때에 알을 떼버렸다가는 성장이 불균형해지고 골격 구조도 이상해질 가능성이 있다.
근데 이건 하기 싫다 말 못 하는 녀석들 얘기고, 이놈은 말을 하잖아.
다른 개들이 ‘내 알 어디 갔지?’ 하며 어리둥절해하든 말든 난 잘 모르겠으나, 당사자가 하기 싫다는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온다면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네 주인이 수술 언제 한대?”
“월요일 아침… 이라고 들었던 것 같소.”
지금이 일요일 새벽 2시니, 집행 시간까지 대략 28시간쯤 남은 셈이다. 오늘 아니면 기회가 없다.
“너 시간이 별로 없어, 인마. 빨리 주인이랑 타협을 해보든가, 드러눕든가 해. 너도 고자 되긴 싫을 거 아니냐?”
“…아니오.”
단호하게 대답해 오는 포메라니안. 몸의 떨림은 멎은 채였다.
“이제야 겨우 결심이 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