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0)
이세계 편돌이-239화(240/331)
23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5)
* * *
말한 뒤, 단상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으로 향하는 점장.
나도 말없이 뒤따라갔다. 우리 헛소리 두 마디로 강당 사람들이 죄다 벙찐 지금, 지금이 아니면 못 나간다. 점장이 반쯤 연 문을 마저 열어 나오는 찰나, 강당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들 말을 하다 말고 어딜 가?”
“찬아, 우리 계단으로 갈까?”
“예.”
짧게 한마디 주고받은 뒤, 서로 말없이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층계 세 층을 지나 지하주차장까지 내려온 후 자동차 출입용 통로를 통해 탈출.
로비로 당당히 나가려 했다간 붙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외주차장을 가로질러 경찰서 부지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안심했다는 듯 입을 여는 점장.
“좋아. 자연스러웠어.”
이러고는 멜빵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날 올려다보는데, 차마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어서 대꾸를 못 했다. 물끄러미 날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는 내게 말해온다.
“찬이 지금 표정이, 만취한 손님 들어오는 거 봤을 때. 딱 그 표정이야.”
“그때 제 표정이 어떤데요?”
“착잡해 보이지. 겉으로는 안 드러나지만 말야.”
겉으로 드러내질 않았다면서 이건 또 어떻게 아는 건지. 대답없이 주행도로와 맞닿은 광장 끄트머리에서 경찰청 쪽을 계속 바라봤는데, 경찰들이 따라나올 기미는 안보였다.
그래, 일이나 실컷들 하셔라. 폰 꺼내 문자 한 통을 보낸 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말했다.
“점장님. 저는 이게 진짜로 저희 고생했다고 주려는 건 줄 알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 실제로 잘했었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아주 맞는 말도 아니다. 이게 우릴 위한답시고 주는 상이 아냐. 계산하에 자기들을 위해 주는 상이었던 거지. 그러니까….
…흐름이 이러했을 거다. 우선 지난달 학원지구 도처에 게이트가 나타났었고, 난리가 났었다. 다른 지역 근무자마저 충원해 쓸 정도로.
이루엘 경관이 이 연유로 이 근방에서 근무하게 됐다 했었으니까. 허나 타 지역 근무자를 끌어다 씀에도 민원을 모두 소화해낼 수 없었다. 경찰청장 왈, ‘인력이란 인력은 다 빠져나가고, 아주 죽을 고생을…’ 어쩌구.
때문에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가 필요했는데? TV와 언론에서 연신 이런 내용을 보도해대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아들내미가 엘프 동급생을 두들겨 패고 폭언 욕설을 일삼았다.
종족차별이 이슈가 됐단 소리다. 경찰 양반들은 뉴스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테고. ‘이 건으로 어떻게 이미지 마케팅 못 하나?’ ‘저희 최근 종결된 사건 중에 써먹을 거 하나 있잖아요. 소수종족 민간인들이 엘프 도와서 마약 조직 잡았던―’
그리고 이런 이슈들은 길어봐야 1주일밖에 못 간다. 파급력 떨어지기 전에 감사패 부랴부랴 만들고, 쥐여준 뒤엔 홍보할 생각이었겠지. ‘저희 경찰은 소수민족의 사회활동을 적극 지지합니다―’ 어쩌고.
“원래 상 주는 목적이 이런 거란 건 잘 압니다. 간첩 신고도 공익차원의 일이지만 신고하면 돈 무진장 주잖습니까. 열심히 신고하라고. 그래도….”
줄 거면 똑같이 다 주든가. 경관은 왜 내보내냐?
경관 나가는 걸 보면서도 설마설마했다. 엘프 차별이 경찰청 강당까지 따라와서 이러는 게 아니라, 잠깐 용건이 있어서 불려 나가는 건 줄 알았지.
근데 갈수록 가관이더라. 읽으랍시고 인쇄해준 소감문도 두 장이었고, 경찰청장이 언급했던 고생한 인물도 두 명이었다. 애초에 경관에게 상 줄 생각이 없었단 뜻이다.
이번에 이슈가 된 종족이 엘프이니만큼 경관을 내세우는 게 파급력이 제일 확실했을 텐데도 말이다. 이것도 이유를 대라면 댈 수는 있다. 있는데, 나이도 먹을대로 먹었을 양반이 설마 미쳤다고 그러겠….
“그 경찰청장님 말야.”
“…예.”
“경관님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눈치였어.”
점장도 나와 생각이 같나 보다. 엘프 꼴보기 싫어서 그랬다는 거.
그 양반이 경례를 1분 넘게 했는데도 안 받아줬었다. 한참 뒤에야 진절머리 난다는 듯 손사래 치면서 받아줬었고, 받아준 후에도 경관 쪽은 쳐다도 안봤다.
별로 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경관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용납을 못 하겠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자기 의견을 말한 후, 뒤이어 사회 통념을 언급해오는 점장.
“연세 많으신 분들이 엘프분들을 싫어하시는 건 맞으니까. 전쟁 끝난 다음, 부모님께 엘프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자라온 분들도 있을 테구….”
“전쟁에서 살아남은 분도 계실 테고요.”
“응.”
대답하고는 내 말을 기다리는 듯 다시 날 올려다본다. 눈을 바라보긴 했으나, 딱히 말을 더 하진 않았다. 이 주제로 얘기를 시작했다간, 대낮에 문 연 술집을 찾아다니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참아보려 했는데, 답답함에 말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아무리 그래도… 고생한 건 좀 챙겨주지.”
나도 점장도 고생을 했지만, 경관이 구른 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보물고블린 놈을 잡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오크 깡패들이 30명은 족히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걸 경관이 다 때려잡았다. 진압봉 하나 달랑 쥐고 사정없이 후려치며 자기 피도 봤고, 근무복도 곳곳이 찢어졌었다.
그 보답으로 이렇게 무시만 받고 끝난다는 게, 나는… 진짜 납득을 못 하겠다. 싫고 좋고의 문제를 떠나서, 고생한 만큼은 챙겨줘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찬이, 이제 집에 갈 거야?”
“…네?”
“시간 애매하면 같이 밥이라도 먹구 가자. 나 카드 챙겨왔거든.”
난 따로 챙겨온 건 없다. 감사패 받을 때 주황 봉투에 보상금도 같이 챙겨줄 테고, 그 돈으로 밥을 사겠다는 생각이었거든.
결국 돈이며 상패며 죄다 내치고 나온 셈이 되어 버렸지만, 이젠 쥐뿔 아쉽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폰을 조작하며 점장에게 말했다.
“좋죠. 근데 바로는 말고, 저 뭐 좀 확인해 봐도 될까요?”
“어떤 거?”
“방금 경관님한테 톡 보냈거든요. 지금 뭐 하고 계시나 해서.”
말하며 어플을 열자, 내 톡에 경관이 그새 답장을 보내온 뒤였다. 경관님 지금 어디 계세요?
[ 경찰청 맞은편 돼지국밥집입니다 ] [ 수여식은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맞은편을 바라보며 점장에게 말했다.
“경관님 아침밥 안 드셨다네요.”
“아하. 그거 여쭤봤던 거야?”
“그건 아닌데, 지금 저기 있는 국밥집 계신다고 답장 와서요. 국밥 괜찮으세요?”
“국밥 좋지. 난 반끼만 먹어도 든든하거든.”
* * *
바로 횡단보도 건너 국밥집으로 향했다. 신발장에 오크, 고블린, 조인족 등의 종족 맞춤 슬리퍼 몇 켤레를 제외하면 구두 한 켤레만 달랑 들어있었다.
안쪽 구석에는 경관이 정모를 벗은 채, 굳은 자세로 테이블 앞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서 말 걸었다.
“경관님.”
“……아.”
우리가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맞은편에 앉아, 노룩으로 점장에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저희 끝나고 왔습니다. 근데 여기 맛 어때요, 경관님?”
“…먹을 만합니다. 이 구역 근방에 순찰이 잡히거든, 근무가 끝나고 나면 늘 여기서 밥을 먹었습니다.”
어느 지역 국밥집이든, 그 동네 경찰이 국밥 맛을 제일 잘 안다는 통설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경관 인증 맛집이라면 맛 괜찮겠지, 뭐.
정작 뭘 먹을지가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컵에 물을 따르고 식기를 꺼내 놓을 때까지도 메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점장이, 에라 모르겠다는 듯 메뉴판을 내게 내밀며 말해왔다.
“그냥 순대국밥 먹어야겠다. 찬이는?”
“좀…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메뉴 중 몇몇이 눈에 띄게 아방가르드해서였다. 예를 들어 메뉴판 최상단에 여름 특식이라는 부연 설명이 적힌 메뉴. 이 만드라고라 냉면은 대체 정체가 뭐냐?
인쇄된 이미지는 냉면에 손바닥 크기의 인삼이 하나 담가져 있을 뿐이긴 한데, 그 인삼이 자라난 터가 안 좋았는지 표정이 썩 좋지가 않다. 그릇 테두리에 살짝 걸친 게 어째, 냉면 그릇에 빠지기 싫다며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 속 냉면도 하필이면 물냉이고. 입에 해당하는 부분이 기괴하게 벌어져 있는 걸 가만 바라보고 있는데, 점장이 내 쪽으로 몸을 슥 기울이며 같이 메뉴판을 바라봤다.
“아. 이거 먹어볼래, 찬아? 다른 냉면집에서 몇 번 먹어봤는데, 살짝 씁쓸하긴 해도 맛있어.”
“저도 그냥 국밥… 아니다. 해장국 먹어야겠습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가격이 15,000원이다. 뭔 냉면값이 15,000원이나 해?
심지어는 그냥 국밥조차도 만 원에 팔아먹고 있다. 그나마 해장국이 천원이 싸길래 해장국 시켰고,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이 손에 국밥을 들고 왔다.
경관이 미리 와서 시킨 게 미리 나왔나 보다. 자기 앞에 놓인 국밥을 힐끗 내려다본 뒤, 먹질 않고 말을 해오는 경관.
“수여식이 일찍 끝났나 봅니다.”
“말씀하시지 말구 일단 식사 하셔요. 경관님.”
“예. 저희 폰이나 들여다보고 있겠습니다.”
“아뇨….”
식으면 맛없으니까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하자. 말해도 경관이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 수저를 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표정도 내가 여태 봐온 경관 표정 중 제일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옆에 놓인 물컵에 잠깐 시선을 떨구고는, 괴롭다는 목소리로 말해온다.
“제가… 실은 뜨거운 걸 잘 못 먹습니다.”
“허어.”
“고양이 혀입니다.”
때문에 국밥집 식사 시간이 다른 동료 경찰들의 두 배라고. 기다리게 하기 싫어서 매번 혼자 밥을 먹어왔는데, 국밥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묘하게 마음이 편안하단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워서 어디 얘기를 안 해봤다나, 뭐라나. 정말로 해본 적 없는 얘기인지 경관답지 않게 묘하게 말이 많다.
듣고 나서는 점장 표정을 잠깐 확인해 봤는데, 입술 꾹 다물고 있는 게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다. 이러면 말을 내가 받아야겠구만.
“그럼, 뭐… 식을 때까지 대화하시죠.”
“예.”
“수여식은 일찍 끝났습니다. 잘 풀렸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더니, 웃고 있던 점장이며 곤란해하던 경관이며 금세 표정이 묽어졌다. 씨알도 안 먹힐 말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하긴, 맨몸으로 간 놈이 나왔는데 손에 감사패고 감사장이고 들려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착한 거짓말도 못 된다.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잘 풀리진 않았고, 도중에 빠져나왔습니다.”
“흠.”
“제가 그런 자리에 익숙하질 않아서.”
점장도 마이크에 키가 안 닿아서 말 한마디 못 해봤다며 농담 섞어 토로했고, 다 듣고도 경관이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이다, 대뜸 이런 말을 해왔다.
“경찰공무원은… 상·하급자를 비난·악평하거나 서로 다투어서는 아니 되며, 늘 협동심과 상부상조의 동료애를 발휘해야 합니다.”
어조에 고민이 좀 섞여 있었다. 때문에 뜬금없게 느끼기보다는, 이 말을 꺼낸 의도가 무엇일까를 먼저 고민해봤다. 금방 답이 나왔다.
“…그것도 법은 아니잖습니까.”
“예. 복무규정 제 7조, 일상 행동에 대한 규정입니다.”
지금 상하급자의 비난, 혹은 악평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거다. 이윽고 옆에 놓아둔 정모를 집어 바라보고는, 찌그러진 부분을 매만지며 말을 시작했다.
“아까 절 불렀던 올빼미 종족분. 계급은 저보다 상위입니다만, 제 직속상관은 아닙니다.”
“그럼 부르는 대로 따라 나가실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니세요?”
“예, 업주님. 하지만… 규정이라는 게 늘 지켜지는 건 아니니까요.”
자기도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다. 말하고는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인 뒤, 툭 내뱉었다.
“나가서는, 참석하지 말라더군요. 그림이 안 산다는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