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1)
이세계 편돌이-240화(241/331)
240.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6)
* * *
어떠한 설득도 설명도 없었고, 자기한테 딱 한 마디만 하고 말았단다. 그림이 안 사니까 빠져라. 여기에 경관도 마찬가지로 한 마디. 알겠습니다.
딱 이만치를 말하고는 더 말없이 우릴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눈가의 다크서클이나 흑발을 화장과 염색으로 가리기는 했으나, 눈동자는 가릴 수 없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혼탁해 보인다. 바라보면서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라. 경관도 오늘 일이 이렇게 될 줄 짐작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국밥 한 숟가락 뜨지도 않은 속이 벌써부터 더부룩해지는 것 같다. 서로 바라만 보던 중, 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나올 때요, 경관님.”
“예.”
“별말은 안 했어요. 찬이는 집에 간다고만 하구, 저는 마이크에 키가 안 닿아서 아예 말 못 했구.”
할 말이야 많았다. 그중 하나가, ‘이 영광을 오크 깡패놈들과 1 대 30을 붙으며 피를 보셨음에도, 수여식에는 참석도 못 하고 계시는 이루엘 순경님께 바칩니다’ 어쩌고.
문제가 될 게 뻔해서 안 했을 뿐이다. 불독 양반이 썩어도 경찰청장인데, 그 자리에서 경관 실명 언급하며 이래서 보이콧한다― 라고 대놓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냐고.
승진길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질 게 뻔하다. 헌데 이걸 빼고 말을 해보려니 떠오르는 말이 전혀 없더라. 그래서 그냥 집에 간다고만 했다.
점장도 이게 염려돼서 별말 없이 끝낸 것일 테고. 뒤에서 바라봤을 땐, 점장이 까치발을 좀만 더 높게 들면 충분히 말하는 게 가능했었다. 점장 말에 경관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예.”
이러고는 또 침묵. 평소에도 말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따라 경관이 유난히 말수가 적은 것 같다. 정확히는, 이 주제로 더 말하고 싶다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면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든가. 경관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너 신경 안 써주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상 걷어차고 나왔다는 말을 듣거든, 난 여기에 뭔 대답을 했을까….
돈이라도 받고 나오지 아깝게 왜 그랬냐며 핀잔부터 줬을 것 같다. 생각하며 주방 안쪽을 힐끗 바라봤으나, 음식이 나올 기미조차 안 보였다. 잠깐 고민하다 말 꺼냈다.
“식사 끝나고 바로 서로 돌아가시는 거죠, 경관님.”
“예.”
“다른 건 아니고, 짧게 뭐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말씀하시죠.”
“…그,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경찰을 하려는 이유야 다양할 터다. 국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모범답안부터 시작해, 경찰 오토바이가 멋있어 보여서, 공무원이라서, 집안이 경찰 집안이어서, 등등.
그만큼 때려치우는 이유도 다양할 테고. 업무가 힘들어서, 야근이 잦아서, 승진길이 안 보여서, 직장 내 따돌림이 심해서.
경관 경우엔 이것들이 죄다 해당된단 말이다. 오늘 겪어보니 특히 더 잘 알겠다. 수여식장에서 나랑 점장을 빼고, 경관이 없는 데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나?
차라리 이직을 하지, 이런 가시밭길을 왜 버티면서 걷고 있는 거냐. 이 이유가 나로선 도저히 짐작이 안 돼서 물어봤다. 머리 색이 나날이 변색되어 가는 거 볼 때마다 늘상 궁금했던 의문이었다.
타이밍이 안 나와서 못 물어봤을 뿐이지. 질문에 날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깔며 중얼거렸다.
“제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말주변이 썩 좋진 않습니다.”
“알아서 알아들을게요.”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고.”
“다른 분이랑 이런 얘기 해 보신 적 있으세요? 경관님?”
옆에서 점장이 끼어들어 왔다. 경관이 고개를 젓자, 날 올려다보며 낭랑하게 말해온다.
“말주변도 말을 해야 는다구요. 그치, 찬아.”
“뭐… 그렇겠죠?”
경관 경우엔 말을 주고받을 사람 자체가 아예 없었던 게 아닐까. 싶었으나, 추측일 뿐이라 애매하게 동의하고 말았다. 점장 말에 느리게 눈을 두어 번 끔벅이다, 자기 폰의 화면을 잠깐 켰다가 끄는 경관.
이러고 나서야 말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6년 10개월 24일 전. 고향에서 불이 한 번 났었습니다.”
“불이요.”
“꽤 큰 불이었습니다. 30m 이상 세계수가 두 그루, 10m 미만 주거용 세계수가 23그루, 교육 목적으로 쓰이던 세계수 한 그루가 전소. 사망자는 없었지만 12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그중에는 경관의 집과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당시에 경관은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사냥 중이었기에 화를 면했다고.
“사냥꾼이요? 경관님께서?”
“예. 상경하기 전에는 고향에서 일반 마수를 포함한 유해조수들을 사냥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따로 직위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경관을 따라 경찰차에 탔을 때, 뒷트렁크에서 나무로 된 활 같은 걸 본 기억이 난다. 그게 범죄자 진압용으로 서에서 주는 게 아니라 고향에서 가져온 경관 명의 활이었나보다. 여하튼….
화재가 난 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돌아왔으나 현장에 직접 들어가진 못했고, 화재가 진압된 후에야 피해 상황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집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고.
그러다, 반쯤 녹아내린 유리병을 발견했단다.
“안에서 휘발유와 유사한 냄새가 나더군요.”
“허어….”
“허나, 향이 훨씬 더 짙었습니다.”
휘발유를 베이스로 해 마력이 첨가된 발화 보조제. 발견한 자리 주변을 확인해보니, 일정 경로가 화재 피해 수준이 다른 세계수에 비해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고 한다.
그 경로를 역행해 흔적을 따라갔다. 병이 버려진 건 내용물을 다 쏟아냈기 때문일 테니까.
화재 피해가 멎은 지역부터는 바닥을 수색했다. 거주지역 외에는 길이 험한 곳이기에, 저지른 화재를 피해 도망칠 때도 분명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렇게 흔적을 쫓은 끝에, 낭떠러지 언저리에서 작은 고드름 조각을 하나 발견했다.
“빙결 마법으로 만든 얼음을 세공해 의식과 목적을 부여하면, 실력 있는 마법사 기준으로 최대 20분간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
“단점은 두 가지입니다. 의식 부여 마법을 쓰는 동안 조각을 거치시킬 지반이 필요하다는 것, 강도를 높인 만큼 공기 중에서는 얼음이 녹는 데에 수십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고드름 조각은 얼음을 거치시키기 위해 바닥과 함께 얼린 흔적이 남은 것이다, 최소 한 명 이상의 사람을 태우고 날았을 얼음새는 호수로 갔을 것이다. 물에 빠트리면 자연스레 증거가 인멸되니까.
여기까지 흔적을 뒤쫓은 것을 관할서에 찾아가 그대로 얘기했다고 한다. 이건 자연발생한 화재가 아닌 계획된 화재다, 상식적으로 습한 8월에 이렇게 큰 화재가 발생하는 게 말이 안 된다.
현장 주변의 호수들 몇 군데를 찾아봐라, 그중 한 곳에 불을 지른 놈의 흔적이 남아있을 거다. 말하던 도중,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끊어버렸다고.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하더군요.”
“…그, 뭐 때문에 바빴답니까.”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당시에도 처리하던 사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지들이 바빴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떠먹여 줬으면 바쁘다고 넘겨버릴 게 아니라 메모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관할서는 1년이 넘게 바빴고… 고드름 조각은 진즉에 녹아버렸죠. 보관해보려 했으나, 당시 법률상 엘프는 신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마법 외에는 쓸 수 없었습니다.”
쓰는 방법도 몰랐고.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이고는, 숟가락을 잡아 국밥을 두어 번 휘휘 저어보는 경관.
진즉에 다 식어 김조차 안 올라오고 있다. 그대로 숟가락을 그릇에 담근 채, 다시 우릴 올려다보며 말을 잇는다.
“그 일은 그렇게 미제로 남았고, 엘프들은 다 떠나버렸습니다.”
“떠나셨다구요? 살던 곳에서 안 사시구?”
“예, 업주님. 태어난 세계수와 일생을 함께하는 전통, 아십니까?”
“잘 알죠. 잘 지키시는 분들 중에는 세계수 안에서만 생활하시던 분도 뵀거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피난소에서… 암묵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고향은 더 이상 우릴 지켜줄 수 없다. 떠나야 한다.”
화재로 몸을 못 가누게 된 엘프도, 전치 12주의 부상을 입은 엘프도, 일생 동안 세계수를 가꿔온 엘프도 모두 그렇게 떠나가고, 마지막으로 경관의 부모님과 경관만 남았다.
밑동조차 안 남은 세계수 앞에 선 경관에게 부모님이 말하길, 이루엘, 따라와라. 우리가 갈 곳에 마수들이 있거든 네가 도와줘야 한다.
“그때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습니다. 경찰이 되겠다고.”
“아하.”
“반대가 극심하셨었지만… 이 부분은 자신 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힘을 주어가면서까지 말해온다. 숨 삼키고 고개만 끄덕이자, 미안했는지 시선을 내리깔고는 더듬더듬 마저 말을 이었다.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는지가 명확히는 기억이 안 납니다. 부모님을 돕는 게 가끔은 지겹게 느껴지긴 했지만, 싫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예.”
“…고향에는 좋은 기억뿐입니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활 쏘는 법도 알려주고, 나무를 타는 법도 알려주고. 생계도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사냥에서 나온 부산물을 팔면 돈이 됐으니까요.
허나 이젠 전부 불타버렸고, 활 한 자루만 남았습니다.
가끔 부모님께 안부를 묻더라도, 부모님께서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너 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그러니? 그건 누군가가 불을 지른 게 아니야, 우리 살던 곳이 잘못된 곳이었을 뿐이야.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화범은 어딘가에 살아있을 테고, 그 방화범을 붙잡는다면 다는 아니더라도 많은 게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 생각에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시작은요.
경관이 이렇게 말을 맺었고, 동시에 온갖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밖에서 울려오는 타종 소리.
― 데에엥―
“어맛!”
“어우, 깜짝이야.”
경찰청 광장 방향에서 들려왔다. 바라보자 청동 동상이 느릿느릿 종을 치려 움직이는 게 보였는데, 울림 소리에 비해 종을 치는 자세가 꽤나 힘겨워 보였다.
다리가 풀린 듯한 자세로 겨우 붙잡은 지팡이를 서서히 가슴께로 들어 올려, 창을 찌르듯 종을 향해 내민다. 어설픈 자세에 반해 종소리만은 우렁차기 짝이 없다.
이 주변 사는 사람들은 알람도 필요 없겠다. 저게 정신 번쩍 차리게 해주니까. 와중에 등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식 나왔어요, 총각. 거기, 그릇 두는 곳만 어떻게 안 될까?”
“예? 아, 네.”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온 분이 조류. 분류로는 백조에 가까운 조인족이었는데, 깃털이 방열재 역할을 해주는 건지 팔팔 끓는 국밥 그릇을 맨 날개로 잡아서 상 위에 올려놓고 가더라.
내 앞에 올려진 국밥을 가만히 보며 드는 생각이, 이거 안에 깃털 빠진 건 아니겠지? 아니면 이것도 레이시스트나 할 법한 발상인가?
“찬이 꺼가 왜 더 맛있어 보이는 거 같지?”
“과연 그럴까요?”
“…두 분.”
마지막으로 경관 목소리. 밥도 나왔겠다, 숟가락 잡고 경관 쪽을 봤는데, 경관이 손에 숟가락이 아닌 다른 걸 들고 있다. 무전기.
― 이루엘 순경. 일 끝났으면 얼른얼른 와라. 당장 선배들은 일손 딸려서 죽겠―
막 이런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경관이 우리 들려주긴 좀 그랬는지 곧바로 무전기 볼륨을 줄여버렸다. 야이 씨, 설마.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마가 아니라 진짜로 밥 내버려 두고 가야 한단다. 당장은 ‘에에? 이제야 밥 식었는데 먹지도 못하고 그냥 가세요?’라고 말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에에? 이제야 밥 식었는데, 먹지도 못하구 그냥 가시는 거예요?”
“오늘 업무가 꽤 바쁘다고는 들었습니다.”
점장이 먼저 말해버려서 할 말이 없어졌다. 무전기를 허리춤에 고정한 뒤, 카운터 쪽을 바라보는 경관.
“계산은 제가 하고 나가겠습니다.”
“괜찮으니까 그냥 가십쇼, 경관님. 식사도 못 드신 분이 계산은 무슨….”
“이야기 들어주셨잖습니까.”
들은 사람이 재밌다며 돈을 내면 모를까, 반대 경우는 또 처음 겪어본다. 마지막으로 손에 쥔 정모를 매만지며 짤막하게 말을 맺는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그럼.”
이후, 고개를 꾸벅여 인사해온다. 평소대로의 경례가 아니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반응을 못 했는데, 그새 경관이 계산을 마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경관이 나간 정문을 바라보던 점장이, 알쏭달쏭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찬아. 나는, 다른 사람 얘기 들어주려구 해두 나한테 말을 많이 안 해주거든?”
“어… 네. 그래서요?”
“근데 찬이는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말을 잘 해주는 거 같단 말야. 경관님도 그렇구, 찬이는 그걸 다 귀담아듣구.”
점장이 자주 꺼내는 동시에 내가 늘상 부정하는 그 주제였다. 내가 사람들 얘기 잘 들어준다는 거.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게 아니라, 들어줄 사람 없거든 나한테라도 말해보라는 거지 뭘….
허무맹랑한 얘기 그만하고 식기 전에 밥이나 먹자. 말하려 했는데, 이번 대화는 이전까지 들어온 것과 좀 달랐다. 드물게 진지한 얼굴로 계속 말하는 점장.
“내가 봤을 땐, 찬이가 반마법 말고도 다른 재능이 있는 게 분명해.”
“…아. 이게 마법 같은 거란 말씀이세요? 제가 쓰는?”
“응. 특화 분야로.”
여태 들었던 것보다 배는 더 허무맹랑했다. 연산식도 마력도 없는 놈이 마법은 뭔 놈의 마법?
“그야 모르지. 아직 정밀 분석을 안 해봤잖아.”
“정밀 분석은 어디서 하는데요?”
“보통은 시설 가서 하지. 제대로 하려면 마탑 같은 곳 가면 되구.”
“마탑은 또 뭐 하는 곳이, 탑이요? 저 탑 등반해야 되는 겁니까?”
“응. 층계는 따로 없구, 계단만 600개쯤 오르면 돼.”
“…그, 일단 국밥 먹고 마저 얘기합시다. 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