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2)
이세계 편돌이-241화(242/331)
24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7)
* * *
국밥 싹 비우고, 버스에 타면서도 점장이 입장을 굽히질 않았다. 지인들이 딴 사람들에겐 털어놓지 않을 내용들은 내겐 유독 잘 말하는데, 이게 이유가 따로 있지 않겠냐.
“요번에 경관님도 그렇구, 엘레나 씨도 그렇구, 윤하나 어르신이나 전부 다. 찬이한테는 허심탄회하게 이것저것 얘기하시는 것 같단 말야.”
“예…….”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도 하시구. 이게 마법이지, 아니면 뭐겠어?”
옆에 앉은 점장이 눈을 반짝이며 이런 얘길 하는데, 나도 이젠 이 세상 짬밥을 먹을 만큼 먹었단 말이다. 연산식이고 마력이고 내가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마법은 뭔 마법?
다 떠나서, 난 마법을 못 쓸 거라고 제일 먼저 말해준 사람이 점장이었다. 지적하자, 윽 하며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계속 말을 늘어놓는 점장.
“그래두, 찬이도 이건 이해해 줘야 돼. 그러니까… 출신이 다른 사람 만나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거든.”
딴 세상에서 날아오는 게 흔한 일이 아닌 만큼 반마법 말고도 특별한 뭔가가 더 있지 않겠냐. 왕년의 대마법사로서 이 호기심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이 소리였다.
위험수위의 발언이긴 했지만, 지금 버스에 탄 승객이 우리 둘뿐이다. 자리도 기사님께 방해되니까 맨 뒤에 앉자, 얘기하고는 냉큼 뒷좌석에 자리 잡아 버렸고.
점장이 이 주제를 짚고 넘어가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낯부끄러운 얘기 좀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 동네에 마력 없이 쓸 수 있는 마법이 있어요?”
이럴 때 장단 맞추는 게 사회생활이지, 지금 아니면 언제 맞추겠어. 묻자, 이 질문엔 또 당연하다는 듯 수긍하는 점장.
“없지. 연료 없이 시동 걸리는 차 없잖아.”
“그럼 마법 아닌 거잖습니까. 멍멍이나 제 집 털뭉치 녀석이 마법 비스무리한 걸 쓰기는 하지만, 제가 영물인 것도 아닐 테고요.”
“…혹시 그건가?”
“전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사실 나도 그래. 이게 참, 막막해. 마법이나 영물 관련된 게 아니더라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리는데, 그에 비해 표정이 어둡지는 않다. 답이 없어서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얼굴이야.
“아니면 뭐, 따로 생각해두신 거라도 있어요?”
이 생각에 그냥 물어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날 홱 바라보고는, 흠흠 헛기침을 한 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여는 점장.
“이것두 옛날얘긴데, 찬이랑 사례가 비슷한 사람이 있었단 말야.”
“사람 말 잘 들어주는 걸로 역사책에까지 실렸어요?”
“역사가 아니구, 동화책 얘기야. 옛날에 힘은 세지 않아도 어려운 사람들 말을 잘 들어주고, 빨리 친해지는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동화의 배경이 된 시간대가 딱 전쟁 발발 수년 전. 아직 세상에 낭만이란 게 존재했던 시절이었고, 세상 각지를 떠돌며 마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여행자도 있었단다.
“조수 마법사 한 명을 데리구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마을 사람들이 감동해서는 너는 영웅이다, 나중에 네가 힘들 때면 우리도 힘이 되어주겠다, 그러기도 했구.”
“리턴 확실하네요.”
“그치. 그러다 전쟁이 나서 세상이 힘들어지니까, 이번엔 세상을 돕겠다면서 그 사람이 갑옷을 입었어. 도와줬던 마을 사람들한테 검이랑 방패랑 갑옷을 받구, 전쟁터로 나가서는….”
국지적, 혹은 대규모 전투를 경험하며 성장했고, 마지막에는 마왕성에 도달해 마왕과 사투를 벌여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단다. 동화 끝.
다 듣고 나서는 뭐 이런 나사 빠진 동화가 다 있냐 싶었는데, 디테일한 건 생략하고 요점만 말한 거란다. 그래도 점장이 뭘 말하고자 했는지는 알겠다.
“그러니까, 제가 그 동화 속 용사랑 비슷하다?”
“응. 최소한 특징 하나는 공유하지.”
대답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동화 속 인물과의 유사성을 따진다면 나도 아기장수 우투리와 닮은 점이 무척 많다. 팔다리가 두 개씩 달렸다거나, 머리카락이 있다거나….
다 떠나서 용사는 무슨, 이 시국에 용사가 나설 자리가 있기나 해? 이거 그냥 명예직 아니야?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세상 구하는 것도 분업화가 아주 잘되어 있잖은가. 자연은 환경부에서 구하고, 경제는 기획재정부에서 구하고, 사람 목숨은 소방청이나 병원에서 구하고….
이 세상에야 게이트니 뭐니 기괴한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것도 헌터나 전문 마법사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있고 말야. 내 반응이 워낙 시큰둥하게 보였는지 말미에 덧붙이는 점장.
“공유하는 특징이 좀 크지만 말야. 동화 속 용사도 그 일들을 마법으로 이뤄낸 건 아니었으니까. 잘은 몰라도 신비한 힘이 있다― 이렇게만 묘사됐었지.”
“허어….”
“여하튼 그래. 반은 진심, 반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얘기해 봤어.”
“반은 진심이셨다고요?”
“응. 난 그 동화책 좋아하거든.”
말하는 도중엔 얼굴에 만연하던 웃음기가 빠지고, 푸근한 얼굴로 말을 맺는다.
“찬이도 좋아하구. 그래서 닮은 점이 있구나― 이 생각에 말해봤어.”
“…예.”
“좀 허무맹랑하긴 해도, 시간은 잘 갔지?”
창문 밖으로 고갯짓하며 묻는다. 바라보자, 슬슬 익숙한 건물들이 눈앞에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지하철역 앞이다.
“그러게요. 점장님, 근무교대 하시기 전까지 시간 좀 남지 않았어요?”
“응. 매장 들어가서 교대할 때까지 유리랑 노닥거리려구.”
“좋은 계획이네요. 그럼 저도 뭐….”
“찬이는 오늘 잠 안 잤잖아.”
잠도 안 오니 거들어드리겠다, 미처 말하기도 전에 점장이 말을 잘라버렸다. 이 대화 직후에 버스가 멈춰 섰고, 내려서는 등을 툭툭 두드려주더라.
“들어가서 얼른 자. 대학생 애들 방학했으니까, 내일부터는 밤에도 바쁠걸?”
“그럼 얼른 자야겠네요. 시간 맞춰 나가겠습니다, 점장님.”
인사 나눈 뒤엔 점장은 매장으로 들어갔고, 난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면서는 내가 이 세상 용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걸 한 번 더 생각을 해봤으나―
심심풀이 이상은 되지 못했다. 내가 지인들 얘길 들으려 하는 게 특별히 대의가 있어서 하는 짓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답답한 거 있거든 서로 털어놓고 사는 게 좋지 않나. 그 생각에 그냥 듣는 거다. 동화속 양반이야 좀 더 원대한 계획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용사가 됐겠지….
* * *
집에 가서 일단 잤고, 일어나자마자 폰으로 위키부터 켰다.
자면서 꿨던 꿈이 하도 괴랄해서였다. 꿈속의 내가 편의점 유니폼이 아닌 번쩍거리는 갑옷에 보석 박힌 검을 쥐고 있었는데, 하의는 쫄쫄이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다리 가렵더라.
가렵다는 감각이 뚜렷하게 남을 정도의 자각몽이었고, 깬 뒤에는 점장 얘기가 머릿속에 내 꽤 잘 박혔나보다― 이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용사란 양반에 대해 좀 알아볼 겸 위키를 켜본 거였는데, 별 실속은 없었다.
[ 이 문서는 다수의 요청에 의해 열람·작성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이 문장을 시작으로 밑에 열람이 금지됐던 기록이 쭉― 적혀있는데, 내역이 예사롭지가 않다. 열람을 금지하는 최대 기간이 15일인지 15일 간격으로 금지된 건수가 수백 개야.
“이 양반은 뭐가 적혀있길래 열람금지를 이렇게 많이 당했냐?”
더해서 본인 요청으로 열람이 금지된 건 봤어도, 다수 요청으로 금지된 문서는 또 처음 본다. 논란이라도 있는 건지, 뭔지….
위키 끄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동화책까지 나왔다는 양반치고는 전혀 언급이 없고. 중고 책 거래의 절판 기록이 나와있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 검색 기록이다.
검색어를 바꿔볼까. 앉은 채로 생각하다, 의미없는 짓 같아서 관뒀다. 털뭉치 녀석 밥 채우고 출근이나….
아니, 베란다 창문은 또 왜 열려있어.
“야. 너 또 어디 나갔냐?”
불러도 대답은 없고, 베란다 쪽으로 가보니 바닥에 붉은 리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베란다의 방충망도 딱 고양이 한 마리가 나갈 만큼만 열려있다.
나간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이건 이유가 짐작이 안 된다. 이 녀석이 나갈 일이래 봐야 멍멍이 도와주는 것 말고 더 있나….
“그래, 니 알아서 해라.”
뭐가 이유가 됐든 알아서 돌아오겠지. 적당히 생각하며 출근준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슬슬 걸어 매장에 도착했는데, 여긴 여기대로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럼 언제 들어옵니까? 사장님.”
“오늘은 다 팔려서 없구요. 아마 내일―”
“네?? 저 그거 사러 오려고 했던 건데, 없어요?”
“진짜루 다 팔려서 없어요. 그러니까 내일 이맘때쯤 오시면….”
손님이 몇 있기는 했으나, 줄을 서 있는 게 아니라 카운터를 반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클레임 받아주는 점장은 딱 봐도 난감하다는 기색이고.
“제가 필요해서가 아니고, 아들 사다 주려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말 없나요?”
“네. 죄송해요, 손님.”
정황상 매장에 수요를 못 따라가는 뭔가가 새로 공급된 듯했는데, 괜히 근무교대 하자고 끼어들었다간 똑같은 소릴 듣게 될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손님들이 일제히 맥빠진 소리를 냈다.
“그럼 내일 다시 찾아올테니, 내일은 꼭 팔아주세요.”
“에이, 뭐야. 다른 곳에서는 다 팔던데….”
“확실히 인기가 많기는 많나 보다. 그치, 자기야.”
“그러게. 오늘 말고 내일 다시 찾아보자.”
이후엔 우르르 빠져나갔다. 활짝 열린 정문을 슥 닫은 뒤 카운터로 다가가자, 눈 마주친 점장이 곧바로 계산대 칸막이를 들어 올리더라.
“점장님. 오늘 매장에 뭐가 들어왔길래….”
“쉿. 찬아. 조용히 하구, 일단 들어와봐.”
목소리 죽여 말하는 게 어째 밀수라도 하는 거 같다. 일단 시키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바닥에 아침까지만 해도 없었던 상자 두 박스가 놓여있었다.
상자 겉면엔 이렇게 적혀있다.
[ 히어로즈 오브 스톤 : 태동하는 영웅들 60EA ]직역하면 돌의 영웅들. 줄여서 말하면… 윽, 갑자기 머리가…!
“새로 발매된 카드팩이야, 찬아. 석 자로 줄이면―”
“굳이 줄여서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점장님. 아까 손님들께서 이거 사러 오신 거예요?”
“응. 아까부터 이걸루 엄청 난리였어.”
곧바로 설명을 시작해오는 점장. 아까 매장에 와서 유리랑 노닥거리다, 유리가 이런 얘기를 꺼냈단다. 자기 다니는 대학교에서 최근 들어 카드 게임 얘기를 자주 한다고.
주로 신규 팩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걸 들은 점장이 물류 발주 카탈로그를 확인해봤는데, 어제만 해도 없던 카드팩이 버젓이 놓여있었다나?
편의점 업주로서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발주를 넣었고, 저녁 즈음에 윤하 누나가 원래 물류에 카드팩 네 박스를 더해 가져다 놨고.
그 네 박스 중 두 박스만을 진열해 놨는데, 그게 5분도 안 되어 죄다 동이 나버렸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후, 지금 생각해도 진저리가 나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덧붙였다.
“한 박스는 아예 통째로 사재기 해가셨어. 고블린분이….”
“이게 사재기까지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품목이에요?”
“그건 잘 모르겠어. 여태껏 이건 취급 안 했었거든.”
나도 애들 캐릭터 그려진 카드팩을 몇 번 판 기억은 있지만, 이 물류는 오늘 처음 본다. 사재기꾼까지 나타날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폰을 켜고 검색어를 입력해 봤는데, 상품 목록보다 더 상위에 떠오르는 탭이 하나 있었다. 눌러서 내용을 확인한 뒤 점장한테 말했다.
“점장님.”
“응.”
“무슨 대회가 열린다는데요? 요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