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4)
이세계 편돌이-243화(244/331)
243. 킬각이 늘 최선의 수는 아니야 (2)
* * *
어이가 없어서 더 말을 못 하겠다. 카드가 놓여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도중, 유리가 방금 상황에 친절히 설명을 덧붙여줬다.
“씁쓸하군, 이라는 대사요. 솜사탕도치가 카드나 공격에 의해 파괴되었을 때 출력되는 대사예요.”
친절하기는 한데, 정작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적당히 받아주고 말았다.
“그러냐. 솜사탕 녀석, 갈 때도 아주 예술로 가는구만….”
“근데 단가는 왜 물어보셨나요, 오빠.”
내가 새벽까지만 해도 저 카드를 10장당 1,000원에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풀 더빙에 3D 홀로그램 기능까지 들어있는 카드 소매가가 왜 장당 100원이야. 새 카드팩 출시 기념 창고 대방출인가?
아니면 ‘이렇게까지 해주면 뭐가 남나요?’라는 말 듣는 게 회사 사장 소원이기라도 한 건지, 뭔지. 나름대로 이유를 추론해보려 했으나, 유리가 재차 해온 질문에 생각이 끊겨버렸다.
“단가를 왜 물어보셨는지를 물어보는 걸 허락해주실 수 있으세요? 오빠?”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야, 인마. 그냥… 저 카드 한 장 단가가 얼마일지가 궁금하더라고. 마침 니 마법과 재학 중이기도 하고.”
인쇄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건 맞을 텐데, 이다음 진도로 나아가질 못하겠다. 묻자, 그래도 나름 전문가랍시고 도움이 되는 대답을 해줬다.
“제 명의로 특허를 출원하는 날이 오거든, 그때 대답해 드릴게요.”
“그날이 오긴 와?”
“글쎄요.”
공장에서 만드는 건 맞되, 마법도 마찬가지로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거란다. 특허받고. 솔직히 이것도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이긴 했지만….
마법사 수백 명을 목장갑과 함께 갈아 넣는다는 내 발상보단 차라리 이쪽이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유리 반응을 보니, 점장이 이 얘기를 왜 안 해줬는지도 바로 짐작이 됐고.
이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내 세상에선 어땠냐― 같은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 했던 거다. 하기야, 나도 대량생산품에 일일이 마법을 거는 기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피차일반이긴 하다.
이렇게 의문 하나는 해결이 됐으나, 더 큰 의문이 남았다. 유니폼을 벗어 걸어둔 뒤, 다시 돌아와 인수인계부터 건넸다. 그래도 일은 끝내야지.
“아까 본 대로 카드팩 다 팔렸으니까, 누가 이 얘기 하거든 전번초가 다 팔아서 없다 하고 말어. 그리고, 오늘부터 저 앞에서 카드대회 하거든?”
“네. 학교 동아리 같은 데에서 참가자도 막 모집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근데, 저게 걔네들한텐 축제여도 우리한텐 장례식이란 말야. 무진장 바쁠 거고, 며칠은 서로 고생 좀 해야 될 것 같다. 오늘 인수인계는 이게 끝이고….”
“끝이고?”
“이 짱돌겜 재미는 있대?”
이것도 방금 말이 대답이 되어주기는 했다. 아까 들었던 대로 카드가 예쁘고 사운드가 좋은 게 장점의 전부라면, 대학교 동아리에서 참가자까지 모집하진 않을 거 아냐.
그래도 확답이 듣고 싶어 물어봤다. 게임이 다른 건 둘째 치고 재미가 있어야지. 내 질문에 잠깐 천장을 올려다보다, 마침내 현답을 해오는 유리.
“압도적으로 긍정적이에요.”
“…흠.”
종합평가 95%에서 100% 사이를 유지 중이라고 한다.
“흐음….”
“지금 검색해보니까 98%네요.”
“흐으으으으음….”
“목캔디라도 드려요, 오빠?”
* * *
퇴근한 뒤, 이불에 누워 폰에 검색어를 입력해봤다. 히어로즈 오브 스톤 입문 가이드.
아까 튀어나온 솜사탕도치 때문에 잠도 다 깼겠다, 잠기운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라도 때워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이러다 잠이 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조금이라도 알아두거든 누군가가 똑같은 주제를 꺼냈을 때 적당히 끼어들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게임성, 사운드, 그래픽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갓겜 중의 갓겜이니까.
하여 적당한 걸 고른 뒤 내용을 천천히 훑어봤다. 우선은 게임 구조.
구조 자체는 간단했다. 플레이어 2명이 각자 40장의 카드를 한 묶음으로 구성해 일대일로 대결하며, 각자 40의 체력으로 시작한다. 먼저 상대의 체력을 0 이하로 깎는 쪽이 승리.
대결은 선공과 후공을 정한 뒤 서로 5장의 카드를 뽑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매 차례마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한 장 뽑고, 마수를 소환하거나 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자원인 투명한 마석을 하나씩 제공받는다.
마석은 자원으로 소모된 차례에서는 비어버리지만, 다음 차례가 되면 재충전된다. 차례가 올 때마다 자원을 더 필요로 하는 카드들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차례에는 최대 2개, 세 번째 차례에는 최대 3개.
이다음이 게임의 핵심인데, 플레이어는 매 차례마다 마석들을 원하는 색의 마석으로 가공하는 게 가능하다. 적, 청, 녹, 황, 백, 흑색으로 총 6종류. 가공 효과를 지닌 마수, 혹은 마법을 통해서 말이다.
이 효과를 지닌 카드들은 투명한 마석을 자원으로 쓰는 카드들보다도 성능이 낮게 설정되어 있으나, 색이 부여된 마석을 자원으로 쓰는 카드들은 반대로 성능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말인즉, ‘마석을 가공하는 동안 약한 타이밍’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 이 구간을 플레이어 간의 치열한 수 싸움으로 얼마나 무사히 넘기는지가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
라고 입문 가이드 서문에 적혀 있었는데, 이 부분은 난 잘 모르겠다.
“이건 핀트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고민하다, 적당한 예시를 만들어 대입해봤다. 상대방이 투명한 마석으로 평균적인 성능의 마수를 계속 소환하고 있는데, 내가 미래를 위해 마석만 가공하고 있다고 쳐보자.
그럼 상대 마수 공격으로부터 날 지켜줄 마수가 없거나 적게 되고, 이 경우엔 내게 직접 공격이 들어온다. 맨몸으로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헌데, 이 짱돌겜이 상대를 두들겨 팬 횟수가 많을수록 이기는 게임이 아니란 말이다. 0 이하로 만들어야 이기는 게임이지. 이론상 체력이 1이 될 때까지는 맞으면서 버티는 게 가능하다.
그럼 종국에는 내가 이길 테고. 이게 수 싸움으로 성립되려면 ‘마석을 전혀 가공하지 않고 투명한 마석만 사용하는 플레이’가 버티기 힘들 만큼 위협적이어야 하는데, 이러면 게임 근간 자체가 붕괴되는 거 아닌가?
그냥 투명한 돌로 패면 될 것을, 왜 굳이 돌에 코팅해가며 예쁘게 패야 하냐는 소리다. 나도 생각한 이 부분을 카드 회사에서 생각 못 했을 리가 없다. 틀어막았을 게 뻔해.
이러면 마석 가공 타이밍으로 수 싸움을 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언제가 됐든 가공을 해야만 유의미한 플레이를 할 수 있으니까. 물론 마석을 최소한으로만 가공한 뒤, 효율적으로 짱돌을 휘둘러댈 수야 있겠지만….
“이것도… 똑같이 막는 게 맞지 않나? 아닌가?”
예전에 카드 게임 심판 알바를 할 때도 이런 카드 뭉치를 들고 온 양반들이 몇 있었다. 서로 머리 쓰라고 판 깔아줬더니, 그 머리를 상대방 명치에 들이받는 데에만 쓴다든가.
이 경우엔 당하던 양반은 둘째 치고, 지켜보는 내가 재미가 없었다. 적당히 들이받다가 못 이기겠다 싶으면 GG 치고 항복해버렸으니까… 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이드를 맨 밑으로 쭉 내려 댓글을 살펴봤는데, 이걸 보고 나서야 이 가이드 핀트가 왜 어긋났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이 가이드 지금 따라 하는 흑우들 있지? 일단 너부터ㅋㅋ
― 출시 초창기에는 밸런스가 덜 잡혀서 이게 가능했는데, 이젠 황밸이라 옛말이에요. 돈 트라이 디스 앳 홈
― 이거 작성자 오크임 내가 봄
가이드 작성연도가 수년 전이더라. 이런 망할, 잠기운만 안 돌고 있지 내가 피곤하긴 한가 보다.
잠깐 창을 닫고 생각하다, ‘짱돌겜 카드’ 검색어로 한 번 더 검색을 해봤다. 방금 읽은 걸로 지금 유행인 카드덱은 몰라도 게임 구조가 어떤지는 대충 알았으니까.
나머진 카드로 판단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첫 항목 밑의 문구를 보고 그냥 폰 던져버렸다.
[ 히어로즈 오브 스톤 카드들의 원리에 대하여 ] [ 히어로즈 오브 스톤의 카드에 기록된 연산식은, 카드 보유자의 마력을 극미세량 사용함으로써 발동됩니다. 마법청에서 정해준 마력 기준치를 철저히 준수하였기에 신체에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이기는 개뿔, 이 원리면 마력 없는 나 같은 놈은 뭐 어쩌라고. 이거 똥겜 아냐? 왜 난 몬스터 소환 안 시켜줘?
* * *
씻은 뒤에 내장 그래픽카드마저 없는 컴퓨터가 된 기분으로 눈 감았고, 허탈감 덕분에 잠은 잘 왔다. 눈이 떠졌던 게 오전 11시 반.
느닷없이 울려대기 시작한 전화벨 때문이었다. 눈 질끈 감은 채로 수신 버튼이 있을 곳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는데, 유리 전화였다.
[ 오빠. 저기요. ]“뭐. 나 왜….”
[ 저기 말인데요. 저기, 그게요. ]매번 뚱하게만 말해오던 녀석이 지금은 말까지 더듬어가며 다급하게 말해오고 있다. 눈 게슴츠레 뜬 채 머리 꾸벅이고 있자니, 이 녀석이 전화를 돌렸다.
“언니는 점장님 얘기야, 아니면 누구 얘기야….”
[ 누구 얘기기는, 내 얘기지! 야, 이찬! ]이번엔 윤하 누나 목소리다. 뭔, 이 누나는 해가 중천인데 헌터 일 안 하고 편의점에서 뭐 하는 거래?
[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고, 혹시 지금 잠깐만 매장 와줄 수 있냐? ]“뭐… 때문에 그러는데.”
[ POS기 에러 나서 계산이 안 돼, 짜식아! 선물 줄 테니까 일단 와봐! ]이런 식으로 편돌이가 매장에 임의로 출두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느냐를 묻는다면, 극히 드문 현상이다. 거름망이 두 겹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겹은 편의점에서 밤샘 근무 끝난 놈을 부를 만큼 큰일이 잘 안 일어난다는 건데, 지금은 경력 1주 차 알바생 근무 중에 POS기에 에러가 난 상황이다. 이건 큰일 맞다.
다른 한 겹은 연락받고 뛰쳐나가는 편돌이가 흔하진 않다는 것. 근데 하필이면 내가 흔한 편돌이가 아니라 정직원으로 채용된 편돌이네?
이러면 뛰쳐나가야지, 뭘 어째. 머리에 급하게 물만 묻힌 뒤 슬리퍼 신은 채로 죽어라고 달려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매장 상황이 내 예상과는 판이하게 개판이었다.
매장에 대기 중인 손님만 넷이었기 때문이다. 계산이 안 되면 다른 편의점을 가면 될 일이지, 뭔 이유로 죄다 여기에 죽치고 있는―
“저기요, 사장님! 혹시 여기 기계 바로 고쳐주실 수 있나요?”
“어… 바로요.”
“네, 바로요! 저 카드 빨리 사서 가봐야 된다고요. 그러니까 한 팩만…!”
“저도요. 엄청 중요한 일인데!”
“엄마, 나 카드. 카드으….”
저마다 곳곳에 자리 잡은 채 곡소리를 내고들 있는데,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싶다. 카드 없다고 보란 듯이 정문에 써 붙여 놨구만, 왜 없는 걸 여기서 찾고 있어?
생각하던 도중 바닥에 눈에 익은 박스 2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카드팩 박스였다. 확인한 뒤 누나를 바라보자, 곧바로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붕붕 저어왔다.
유리는 뚱한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고. 상황 파악이 될 듯 말 듯 하다. 일단 당장 파악한 것부터 어떻게든 해보자면….
“…기사님.”
“어… 어?”
“이거 다른 매장 물류랑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누나가 선물 어쩌구 얘기를 했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카운터나 계산대에 올려진 물건이 없다. 유일하게 늘어난 게 딱 이 카드팩 두 박스뿐이다.
그러니까 이게 그 선물이겠지. 사무적인 관계를 가장해 말을 걸자, 멀뚱멀뚱 날 바라보던 누나가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여대며 중얼거렸다.
“그게… 네, 맞아요. 요새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제가 참….”
“카드으으으!”
“저기요! 그, 다른 매장 물건인 건 알겠는데, 아들한테 딱 한 팩만―”
“죄송합니다, 손님. 이거 저희가 팔면 절도죄예요.”
이 말에 엄마 손님이 날 독촉하기보단 애를 달래기로 방침을 바꿨고, 천만다행히도 20대 초반의 오크를 위시한 호전적인 손님이 있진 않았다. 그저 절박한 손님만 있을 뿐.
“그치만, 저 딱 두 팩만 까면 원하는 거 나올 것 같거든요!”
“아까 예선 등록 얘기하셨는데… 저기서 카드대회 하시는 거 얘기면, 내일도 예선 진행하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팩― 네? 정말요?”
“매장 코앞이라 고생하시겠다면서 진행요원분들이 따로 알려주셨었어요. 경기 끝날 때마다 카드 구성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니까, 그리 급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나도 어제 규정 읽어봐서 안다’보단 이게 더 설득력 있게 들릴 것 같아 말해봤다. 이 설명에 슬금슬금 카드팩 개수를 늘리던 손님도 조용해졌고, 마지막 손님.
“그럼 저, 카드팩 사지는 않고요! 그냥 사진만 찍고 갈게요.”
이 손님은 반인반수에 가까운 흰여우 코볼트였는데, 사진 찍을 팩을 주겠답시고 상자를 뜯어 열어줬다간 겨우 꺾은 다른 손님들 의욕에 다시 불이 붙어버릴 게 뻔했다.
그래서 카운터로 들어가 꿍쳐둔 카드팩 하나 꺼내서 건네줬다. 어젯밤에 점장에게 사진 찍는 손님이 있었단 얘길 들은 뒤, 설마 하는 마음에 내 돈으로 하나 사뒀었다.
“이거 제 껀데, 테이블에서 사진만 찍고 돌려주세요.”
“어… 감사하긴 한데, 조명이 안 살아서.”
“그럼 그냥 돌려주시고요.”
안 돌려주면 내가 영업방해로 고소하고 만다. 흰여우 코볼트가 내게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을 감지한 건지, 더 말하지는 않고 얌전히 테이블에 카드팩을 올려놓더라.
이러고는 사진을 찍는 사이에 손님들이 머뭇거리며 한 명씩 밖으로 나갔고, 마지막에는 흰여우 코볼트가 빠져나가며 중얼거렸다.
“아웃스타에 올려야지.”
그러든가 말든가. 이렇게 손님을 내보내고 난 뒤, 매장에는 나와 누나. 그리고 미안하단 얼굴로 내 눈치를 보는 유리가 남았다.
난 이 녀석 감정표현을 사람 평균의 1/10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거든, 실제로는 10배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거지. 아니면 말고.
그래서 조용히 POS기만 들여다봤는데, 이 녀석이 조작을 실수해 에러가 난 건 아닌 듯했다. 뭔가가 하나 깨진 것 같은데, 내가 IT에 젬병인 놈이라 원인은 모르겠고….
“…밤새셨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오빠.”
“유리 너, POS기 에러 났을 때 고치는 법 점장님께 들었었냐?”
“…네.”
배운 걸 순간 못 떠올린 건가 보다. 아까 있던 손님들이 카드팩에 반쯤 눈이 돌아가 있었으니, 이 녀석도 꽤 당황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내가 다 팔아서 없다는 생각에 따로 인수인계를 하진 않았었으니까. 나라고 누나가 이 시간에 카드팩 두 박스를 구해올 줄 알았겠냐만….
“그럼 나한테는.”
“…아뇨.”
“나는 에러 났을 때 이렇게 고치거든. 한번 봐봐.”
이 말 하는 게 이 녀석 인상 펴는 데에 도움이 되진 않을 터다. 유리 등 툭 두드린 뒤, 고개 든 걸 확인하고 POS기 밑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해줬다.
“어쭙잖게 고쳐보겠다고 만지작거리다 잘못 건드리면 더 큰일 나. 어지간하면 그냥 껐다가 켜.”
“네. 근데 버튼 위치가 기억이 안 나서….”
“기억 안 날만 해. 나도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니까.”
알아서 따라오겠거니 생각하며 마저 말했다. 우리 매장 POS기가 구형이라, 전원 버튼이 자판에 없다. 자판 밑 철제 기판을 밑으로 열어젖혀야 한다.
열어젖힌 뒤엔 전원 버튼 꾹 눌렀고, 잠시 후에 다시 전원을 켜자 터치스크린에 버튼이 다섯 개 떠올랐다. 나머지 네 개는 알 필요 없고, 맨 위에 하나만 알면 된다.
“판매등록 누르고, 아이디랑 비밀번호는 여기 옆면에. 보여?”
“네.”
“이거 입력하면 평소 계산하는 화면 뜬다. 어떠냐?”
설명을 마치자마자 로딩이 끝났고, 화면에 딱 계산 화면이 떠올랐다. 멀쩡해진 화면을 바라보던 유리가, 기판을 다시 한번 열어보고는 대답했다.
“조심할게요….”
“조심한다 생각하지 말고, 잘 모르겠다 싶으면 전화를 해. 사고 나는 것보단 이게 낫잖냐.”
“…….”
“모르는 거 물어보는 게 잘못도 아니고… 네가 계속 까먹고 계속 전화할 애도 아니고.”
마지막 말은 내 나름대로 핀잔이랍시고 줘본 거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거든, 계속 까먹고 계속 전화할 애로 알아듣겠다는 의미다.
그러고 싶은 마음 전혀 없고, 이 녀석도 전혀 그럴 일 없겠지만 말이다. 이 녀석이 당황해서 실수를 할지언정 똑같은 일로 두 번 실수한 적은 없다.
이번엔 유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이번엔 누나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 이게 뭔 일임?”
“…뭐….”
말을 하다 말고 바닥의 카드팩 박스를 내려다보다, 발로 굴리듯 내 쪽으로 박스를 툭 걷어차는 누나. 그러고는 시원스레 덧붙였다.
“하나만 줄려고 했는데, 그냥 둘 다 너 가져라.”
“이걸 내가 가져다가 어디에 써먹으라고. 그리고, 이건 어디서 난 거야?”
“관계자한테 사은품 받았다, 짜샤.”
말하고는 잠깐 텀을 둔 뒤, 금연초를 손가락에 끼워 돌리며 말을 이었다.
“대회 기간 동안 저 앞에서 안전요원 일 하게 됐거든. 한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