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49)
이세계 편돌이-248화(249/331)
248. 킬각이 늘 최선의 수는 아니야 (7)
* * *
퇴근한 뒤, 덱과 간단한 짐만 챙겨 다시 학원지구 쪽으로 향했다. 약속 시간까지 남은 2시간 동안 할 일들을 하나씩 해두자는 생각에서였다.
우선 예선 참가 접수.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양반들이 오프라인으로 덱 실물을 보여야만 접수가 가능하게 만들어놨다. 주민등록제도 아니고 무슨….
하여 정문으로 들어가 접수대까지 일직선으로 쭉 걸었는데, 걷는 도중에도 주변 사람들 행색이 실시간으로 바뀌어 가더라. 정문 언저리만 해도 교복을 입거나 캠퍼스화를 신은 정상인만 가득했으나, 이것도 잠시.
“우선, 기가노사우루스로 마수 ‘대장 피라미’를 공격.”
― 기가―
“잠깐. 그 전에… 비밀 마법 ‘샌드백’ 발동.”
“아니?”
샌드백이란, 상대 마수가 아군 마수를 직접 공격할 시 발동하여 그 공격을 플레이어가 대신 받는 마법 카드다. 플레이어의 체력을 소모해 마수를 한 턴 보호하는 용도라 보면 된다.
필드 위의 마수를 지켜야 하는 덱에서는 필수적으로 쓰이는 카드인 동시에, 눈물을 머금고 써야 하는 카드이기도 하다. 왜냐.
“…메, 메가노사우르스로 플레이어를 강제 공격.”
― 메가― 바이트!!
“다음은, 킬로노사우르스로 플레이어를 강제 공격….”
― 킬로― 바이트!!
발동 시 다른 마수들의 공격도 강제로 플레이어에게 지정된다는 것이다. 카드 이름 그대로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게 되기 때문에 사용 타이밍을 신중히 결정해야만 한다.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상대 마수의 개체 수가 적을 때, 즉 살살 맞을 수 있을 때. 강제 공격을 선언하는 양반이 당황한 것도 이 이유에서다. 방금 마법 발동 한 번으로 명치가 거덜 나 버렸거든.
대장 피라미가 피라미덱의 핵심 카드이긴 하나, 저렇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정도까지는 못 된다. 덱에 2장 넣을 수 있으니까. 마법을 발동한 양반도 두들겨 맞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머리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애써 허세를 부렸다.
“…살짝 긁혔을 뿐이다.”
“살짝 긁혔다니, 지금 체력이 3….”
“난 원래 체력이 없었어.”
이 말에 반대편 양반은 양반대로 어이없어하고 있고. 그리고, 보는 나도 없기는 다른 의미로 어이가 없었다. 이 둘은 딱지를 왜 잔디밭, 그것도 벌레들 기어 다니는 데서 치고 있대냐?
이 둘뿐만이 아니다. 어디는 자전거를 막 타고 오기라도 한 건지 자전거 주차장 앞에 앉아 딱지를 치고 있고, 어디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운 건지 공중화장실 옆에서 딱지를 치고 있고.
보면서는 다 큰 양반들이 평일 아침에 이러고 있는 게 맞냐는 생각만 들었으나, 속으로만 곱씹고 말았다. 잠시 후엔 나도 똑같이 저러고 있을 테니까. 인생….
이렇게 노상 카드 게임 현장 열 몇 군데를 지나 대회 접수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고, 여긴 여기대로 화려했다. 아니, 이게 카드 게임 대회야, 마술쇼 공연장이야.
[ 아앗, 지금! 이 타이밍에, 챔피언의 손패에 ‘최후의 단두대’가!! ]운영용 천막에 더해 큼직한 사설 무대가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로 유리 재질의 부스 두 개가 둥둥 떠 있다. 상공 5m 높이에서 말이다.
부스 안에는 사람 둘이 들어가서 눈이 빠져라고 자기 카드들 쳐다보고 있고. 챔피언이란 얘길 했으니 전년도 대회 우승자를 초빙한 이벤트성 매치, 그런 걸 하는 듯싶은데….
[ 하지만! 지금 최후의 단두대를 내는 건 다분히 도박에 가까운… 바로 꺼냅니다!! 맞죠!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되죠!! ]“와아아아아―!!”
“저놈의 모가지를 매우 쳐라!!”
“이런 젠장, 믿고 있었다고…!”
단순한 이벤트 매치라기엔 500석은 될 좌석들이 꽉꽉 들어차 있고. 좀 더 들여다봤더니, 사설 무대 전광판 구석에 ‘현재 16연승’이라는 문구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정황상, 연승이 끝날 때까지 벌이는 끝장전이 하루가 지나서도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근데, 대체 단두대를 어떻게 써먹었길래 16연승이나 했대?
단두대 메인 덱이 파훼가 불가능한 게 아닌데 말이다. 과정을 잠깐 상상해 보려던 찰나, 접수대 쪽에서 별안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회 접수하시는 분들! 다른 데 줄 서지 말고 이쪽으로 오세요!!”
접수대 쪽을 바라봤으나, 어디에도 목소리의 주인이 안 보였다. 조신히 앉아있는 산양 코볼트 접수원, 마수 인형옷을 뒤집어쓴 인형탈 알바 단 둘뿐이다. 솜사탕도치.
목소리가 뭔가에 가로막힌 듯 들렸으니 저 알바가 말을 한 것일 텐데, 내 지인들 중에 이 상황에서 인형탈을 뒤집어쓸 만한 사람이 없….
아니다. 한 명 있구나. 접수대 앞으로 다가가자, 접수원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엉겁결에 나도 고개 숙였다.
“대회 접수하러 오신 건가요?”
“예. 여기 덱이랑 신분증… 참가비 혹시 계좌이체 됩니까?”
“앗. 네, 물론이죠. 잠시만요….”
대답하고는 곧바로 몸을 숙여 테이블 밑 상자를 뒤적이는 접수원. 가만 기다리기도 뭣하니 지인이랑 인사나 나누고 있어야겠다. 우선 확인부터 하고.
“저기, 혹시….”
말 걸며 인형탈을 바라봤는데, 이 인형 참 기괴하게도 생겨 먹었다. 원본이 젓가락 네 개 꽂힌 솜사탕인 녀석을 억지로 늘린 탓인지, 몸통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작다.
아니면 맞춤 제작일 수도 있겠고. 윤하 누나도 성격이 왈가닥이라서 그렇지, 비율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내 말에 시선을 홱 돌리며 대꾸해오는 솜사탕도치.
“…그, 사람 잘못 보셨는데요.”
아까와는 딴판인 낮게 깔린 목소리였으나, 내가 이 목소리를 하루 이틀 들은 게 아니다. 이젠 더 확인할 필요도 없겠구만.
“아니, 누나. 안전요원 일이라면서 인형탈은 왜 뒤집어쓰고 있어?”
“에이, 씨.”
더 숨겨봐야 의미 없단 걸 깨달았는지, 바로 인형탈을 벗고는 묶은 머리를 매만지려 하는 누나. 허나 솜사탕도치는 관절이 없는 구조로 제작된 마수였다.
팔을 머리 뒤로 못 넘긴다는 뜻이다. 오만상을 찌푸린 채 끙끙대다, 포기하고는 내게 머리를 불쑥 들이민다.
“뭐. 나보고 어쩌라고?”
“이마에 땀 닦아달라고! 이거 쓰고 있으니까 더워 죽겠어. 어휴.”
“그 더워 죽겠는 걸 왜… 잠깐만, 나 등록만 하고.”
딱 접수원분이 계좌번호를 꺼낸 참이다. 참가비를 이체하고 종이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자, 공손히 받아들고는 짤막하게 안내해줬다.
“예선 룰은 온라인에서, 대회장 안내는 옆 테이블 위의 안내문으로 확인 부탁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서로 아는 사이세요?”
“네, 맞아요. 저 얘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와도 될까요?”
“물론이죠. 어제부터 고생이 많으세요, 윤하 씨.”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인 게, 스스로 땀도 못 닦는 모습을 어제부터 쭉 봐왔나 보다. 접수원 걱정에 어색하게 웃어 대답하고는 이렇다 할 방향 없이 앞장서는 누나.
뒤따라가 보니 근처 나무의 그늘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하늘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한번 내게 머리를 내밀어왔다.
“땀.”
“뭘로 닦으라고. 저 천막 안에 물티슈 있음?”
“있는데, 저기 말고 나 입고 있는 솜사탕 안쪽 한 번 뒤져봐. 이 안에 별거 다 들어있어.”
자기 이전의 인형탈 착용자들이 이것저것 생필품을 집어넣었다는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솜사탕에 손을 집어넣어 보니 정말로 손에 뭔가가 잡히긴 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물이 반쯤 든 페트병, 과자봉지. 심지어는 누나 걸로 보이는 금연초 파이프까지 들어있다. 네 번째로 튀어나온 물티슈로 누나 이마의 땀을 닦아주자, 이제야 만족했는지 한숨을 푹 내쉰다.
“어휴, 이제 좀 살겠네!”
“뭐, 내친김에 입에 금연초도 물려줘?”
“그건 됐고. 솜사탕에 냄새 배겨.”
“그럼 말고. 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안전요원 일이라면서 인형옷은 왜 뒤집어쓰고 있어?
“안전요원 일 맞고… 나도 내켜서 입는 거 아냐. 이게 있어야 일이 풀려서 그렇지….”
“그건 또 뭔 소리래?”
묻자 누나 왈, 누나가 안전요원 일을 양쪽에서 다 보고 있다고 한다. 성년 대회 구역과 미성년 대회 구역.
그리고 현재, 미성년 대회 구역에서 곡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고도 하고. 적게는 일곱 살, 많게는 열여섯까지 먹은 녀석들이 서로 게임을 하는데, 아홉 살 미만 애들은 지기라도 하는 순간 아주….
“울어. 길바닥에 주저앉아서든 벽을 짚고든 한없이 우는데, 길에서 울면 위험하잖아. 킥보드도 막 돌아다니는데.”
이런 애들은 벤치에 앉혀놓든 부모님께 데려가든 해야 하는데, 우는 애들을 보는 순간 말문이 막혀서 아예 말이 안 나왔다나, 뭐라나.
이걸 어떻게든 해보겠답시고 고민하다 떠올린 방법이 인형옷을 입는 거였단다. 다 듣고 나니, 어제 있었던 일이 대뜸 떠오르더란다.
“애 대하는 거 진짜 거북한가 보네, 누나. 전에 하나도 그렇고.”
“내가 대하는 게 거북한 게 아니라… 하나?”
“어제 매장에서 본 애 있잖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애.”
“…아. 그 애.”
기억났다는 듯이 중얼거리는데, 말을 흐리는 게 이 주제로 대화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다. 옛날에 애 관련해 안좋은 일이라도 겪었던 건지, 뭔지.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자니, 이번엔 자기 턴이라는 듯 내게 묻는 누나.
“그런데, 이찬 니는 여기 왜 왔냐.”
“누나가 어제 그랬잖어. 여기서 일하고 있을 테니 심심하면 놀러 오라고.”
“그거참 기특한 소리네. 나랑 놀아주려고 카드 까서 덱까지 짜오셨어?”
“이건 농담이고, 방금 얘기한 애랑 일이 좀 있었어.”
그 애가 주워온 카드 한 장으로 트러블이 좀 있었고, 그걸 해소하려고 어찌저찌하다 보니 대회까지 나오게 됐다. 말하고 있자니, 누나가 중간에 끊다시피 다음 질문을 해왔다.
“이찬 너, 그 애랑 많이 친한가 보다?”
“난 친하다고 생각하고, 걔도 마찬가지인 것 같긴 해. 또, 뭐….”
말 나온 김에 마저 말했다. 지난달에 사거리에서 물난리가 났을 때, 게이트 위치를 알려준 게 그 애였다. 걔 없으면 나도 진즉에 실직자 됐다.
“그 애가?”
“어. 하나가 마력 감지를 엄청 잘하거든. 그것 때문에 낯을 좀 가리긴 하지만, 여튼.”
하나랑 누나 모두 매장에 자주 들락날락하는 편이고, 매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매번 어색하게 구는 건 내가 보기 싫다. 그리고, 지인들끼리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면 좋잖어.
이 바람 탓인지 자꾸 말이 길어지는 것 같다. 바로 맺었다.
“아무튼 애는 착하니까, 나중에 만나거든 아는 척이라도 해봐. 안 싫어할걸?”
“…오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니, 보답 겸 누나 기분이나 좀 풀어줘 봐야겠다. 미성년자 대회 쪽은 어렵사리나마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는 듯하니….
“누나. 어른들 대회 쪽 일할 때는 그 옷 벗고 일하는 거임?”
“어. 지금 오매불망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터 하는데. 별일은 없고?”
“별일 없겠냐. 저기 천막 안에만 해도 기절해있는 사람이 몇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