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5)
이세계 편돌이-24화(25/331)
24화. 외상 받는 편돌이 (3)
“줄곧 참고 버텨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왔소.”
읊조리는 포메라니안은 무척 진중한 표정이었다. 진중하다 해봐야 내밀고 있던 혀를 집어넣은 게 고작이긴 했다만, 아무튼….
“비록 달갑지 않다고는 하나, 태어날 적부터 이어진 주종관계이니만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다들 그렇게 사니 본견도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본견이 이상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오.”
니가 이상한 게 맞다.
“허나 사장님이 저변을 넓혀주신 덕에 생각을 달리 가질 수 있게 되었소. 주인과의 인연이, 본성을 억눌리며, 본견의 존엄성을 파괴당할 수밖에 없는 인연이라는 걸 안 지금은… 딱히 이어나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구려.”
이렇다고 하는데, 영 꺼림칙했다.
도심지 사거리가 키 30cm도 안 되는 포메라니안이 지낼 수 있을 만큼 아늑한 곳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놈이 신호등 신호 구별을 못 해 로드킬을 당하지야 않겠다만, 먹고 마시는 건 어쩔 건데? 잘 곳은?
“아이 씨, 대화를 해보라고 인마. 아니면 보호단체 가서 하소연을 하든가….”
“아니오, 어차피 언젠가는 이리될 팔자였소.”
허나 이 멍멍이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내려다보며, 내가 이 녀석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잠깐 생각해 봤다. 집 나가기 vs 고자 되기….
나도 당연히 전자 고를 것 같긴 하다.
평생 써본 적도 없고, 앞으로 써볼 일이 있긴 할까 의심스러운 신체 부위이긴 한데, 없이 살아도 괜찮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니거든. 삼각팬티 평생 못 입게 되는 거잖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포메라니안이 내게 걸어와서는 물었다.
“사장님. 염치없는 말로 들리실 건 알지만…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되겠소이까?”
“뭔데.”
“내 목에 매인 이 줄을… 풀어주시구려. 부탁이오.”
에라이, 이젠 나도 모르겠다~
고개를 푹 숙인 멍멍이의 목줄 후크를 풀고, 앞다리를 잡아 하나씩 벗겨줬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포메라니안은 푸드득 몸을 털어내고는, 로비 한가운데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주인 곧 올 텐데, 안 나가?”
“가기 전에 몇 마디만 남기고 가려 하오. 미운 정이나마 든 게 있으니.”
“뭐 도와줄 건 없냐.”
“운만 띄워주시구려. 갑자기 말을 걸면 아무래도 놀라지 않겠소이까.”
대화를 마치자마자 이놈 주인이 찾아왔다. 수십 분을 걸어 지친 탓인지, 안 그래도 부풀어 있던 복어대가리가 한층 더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자.”
내게 꼬깃 뭉친 돈뭉치를 툭 던져온다. 집어서 펼쳐보니 총 12,000원, 딱 담배 두 갑에 맥주 한 캔 값이다. 계산은 맞았지만, 당장 담배를 건네주진 않았다.
“뭐 해, 담배 줘.”
“저, 손님.”
“왜.”
운을 어떻게 띄워줘야 하나. 잠깐 고민하다 내뱉었다.
“손님 애완견이 손님께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요.”
“뭐?”
날 보는 표정이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 그대로 멍멍이를 가리키며 묻는다.
“내 애완견이?”
“네.”
“나한테?”
“네.”
“아니 씨부레, 대체 뭔 소리를 하는….”
“주인.”
멍멍이가 조용히 읊조렸다.
말을 꺼낸 멍멍이는 복어대가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으나, 복어대가리는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한 눈치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하자, 멍멍이가 재차 읊조렸다.
“이쪽이오, 주인.”
“?”
멍멍이를 내려다본 복어대가리는 더욱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 볼을 부풀렸으나, 멍멍이는 굴하지 않았다.
“이미 아는 사실을 확인차 묻는 것이니, 부디 회피하지 말고 대답해 주시오. 날 여기 맡기고 담뱃값을 가지러 간 것이 맞소?”
복어대가리는 수 초가 지나서야 대답했다.
“어… 어.”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본견을 고자로 만들려 한 것도 맞는 거고.”
“그건 난 별생각 없는데, 마누라가 하자고….”
“도대체가, 본견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맞는 거요?”
그다지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아니었을 터다.
비록 고운 정 대신 미운 정이 더 쌓인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주인은 주인이었으니까. 꼬물이일 적부터 2년을 함께 지내 온 것이다. 그땐 귀여움받았겠지.
허나 시간이 지나며 애정은 희미해진 반면, 현실은 변하지 않고 냉혹할 뿐이었다. 진심을 깨달은 포메라니안의 목소리에는 이제 노기와, 으르릉 소리마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본견이 축생의 몸인 건 본견도 알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도리는 다 보였다 생각하오. 오밤중에 가스가 샐 때에도 짖는 것이 싫다 하여 핥아 깨웠었고, 똥오줌도 잘 가렸잖소?”
“어….”
“그뿐인가? 적정량 이상의 사료를 요구한 적도 없고, 술주정 부리며 날 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것도 고통스럽긴 했으나 다 받아주었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허리가 쑤신단 말이오. 헌데 그런 본견에게 한다는 것이… 도, 돈까스라니. 돈까스라니…?”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여나오니 괜히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하필이면 돈까스를 예시로 들어가지고….
“오늘부로 본견은 본견의 길을 떠날 터이니, 잡지 마시오.”
훌쩍 코를 풀고는 마저 말을 이어간다.
“썩 좋은 인연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길러줘서 고맙소. 덕분에 건강히 자랄 수 있었으니 이쯤 줄이겠소… 그리고, 사장님.”
“난 왜?”
“나중에… 또 들러도 되겠소?”
말로 대답하긴 좀 그랬다. 앞에 선 복어대가리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부풀어 오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자, 포메라니안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몸을 홱 돌리며 말을 맺었다.
“고맙소. 장사 번창하시구려.”
그러고는 나가버렸고, 한참 동안은 편의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소리만 감돌았다. 삐걱삐걱 고개를 돌린 복어대가리가 나한테 물었다.
“도대체 뭔 일이야, 이게?”
나한테 물어보면 답이 나와?
“그건 손님 애완견께 직접 물어보는 게 더 이해하기 빠르지 않겠습니까?”
“시팔,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네.”
그러면서 나가려고 하길래, 얼른 불러 세웠다.
“저, 손님.”
“뭐.”
“담배 가져가셔야죠.”
아직 담배를 안 가져갔다. 아까 포장을 뜯은 담배를 내밀자, 받아 들고는 뛰쳐나가려 했다. 다시 불러 세웠다.
“손님.”
“또 왜!”
“잔돈 가져가셔야죠.”
맥줏값이 2,700원, 담뱃값이 9,000원이니 300원을 안 가져갔다. 짤그랑 내민 동전을 홱 잡아채고 나가려 하길래, 한 번 더 불러 세웠다.
“아, 그리고 손님.”
“이런 시발, 왜!!”
“담배 포장지 제가 버려드릴까요? 쓰레기통이 전자레인지 밑에 있긴 한데….”
“집어치워!”
저 다리 짧은 놈이 잠깐 뛰어봐야 얼마나 멀리 가겠는가. 시간을 좀 벌어보려 했는데, 이게 한계인 듯하다.
이후 복어대가리마저 뛰쳐나가고, 편의점엔 정말 혼자 남게 되었다. 포스기에 찍힌 시간이 새벽 2시 반. 바로 전화하기엔 좀 찝찝해서 문자부터 보내봤다.
[ 점장님 ]답장은 바로 왔다.
[ 응. ] [ 깨어계셨네. 대충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당장 묻지 못하면 답답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자로 운을 뗀 후, 전화를 걸어 방금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포메라니안은 뛰쳐나갔고, 복어 어인 손님은 바로 따라갔어요. 그걸로 끝.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음…. ]이후 점장이 대답하기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점장이 느끼기에도 어이없는 상황이긴 했나 보다.
[ 일단, 개는 말을 못 해. ]“그건 제 세상이랑 똑같네요. 그런데, 애초에 개가 왜 있는 거예요?”
[ 어… 그 질문은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 ]“개 머리 한 개랑 개 머리 한 사람이 왜 동시에 있냐는 의미로 말씀드린 거예요. 제 세상을 예시로 들어보면 그, 진화론이라는 게 있거든요?”
말을 마치자마자 짝 소리가 들려왔다. 뭔 소리야?
[ 아, 이제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네. ]“네?”
[ 이렇게 생각하면 돼. 개는 개로 진화한 거고, 코볼트는 코볼트로 진화한 거야. 어때? 이러면 이해가 좀 돼? ]전혀. 찰스 다윈이 이 얘기를 들었으면 무덤 관짝 걷어차고 뛰쳐나왔을 게 분명하다.
어쨌든 개가 말 못 하는 건 맞는 듯했는데, 방금 그 녀석은 유창하게 하오체를 구사했단 말이지. 이 부분에 대해 점장이 내놓은 답은 이러했다.
[ 그 포메라니안… 영물이 아닐까? ]영물? 그 멍멍이가?
[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래. 개는 말을 못 하니까, 단순한 개가 아닌 게 되잖아? ]그렇긴 한데, 직접 두 눈으로 본 내 입장으로썬 아무래도 납득이 힘들었다. 그 녀석이 대체 어딜 봐서 영물이란 말인가? 사마귀랑 싸워도 질 것같이 생긴 녀석이.
“점장님. 제가 사진을 못 찍어서 그런데, 나중에 CCTV로 한번 직접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걸요?”
[ 아마 봤어도 똑같은 말을 했을 거야. 영물은 외견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거든. ]이후 점장의 설명.
영물이란 특별한 힘을 지닌 짐승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라고 한다. 길고양이든 나무늘보든 일반적인 동물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일단은 영물로 분류된다고.
[ 영물들 대부분은 지능이 높아서, 어지간하면 언어를 다 알아듣기는 해. 근데 언어를 구사하기까지 하는 강아지가 있는 건 나도 진짜 오랜만에 보네. ]“점장님도 영물을 길러본 적이 있으세요?”
[ 나 말고, 옛날에 아는 사람이 길렀었거든. 말하는 고양이, 검은색이었구. ]이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마녀의 수정구슬 옆에 또아리를 틀고 앉은 고양이라든가, 그런 거 있잖아.
“그런데 점장님, 그 멍멍이가 영물인 줄 알았으면 개 주인이 외상용 담보로 써먹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쉽게 만나고,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영물의 직계 후손이 평범한 동물일 수도 있고, 평범하다 생각했던 동물에게서 태어난 동물이 영물일 수도 있고, 엄청 뒤죽박죽이어서. ]“태어날 확률이 낮나 봐요.”
그리고 그 멍멍이는 주인 앞에선 말을 한마디도 해본 적 없다 했으니, 당연히 주인이 알 방법도 없었던 셈이다. 나중에 마누라한테 바가지 엄청 긁히겠구만.
[ 외에도 다른 능력도 있을 수 있구. 아까 말했던 고양이도 공중에 컵 띄워서 가지고 놀고 그랬었거든. ]“글쎄요. 그 강아지는 능력은커녕, 지가 말하는 것도 신기한 줄 모르는 눈치던데….”
[ 간단한 계기만 있으면 스스로 깨달을 거야. 그 강아지 혹시 나중에 또 온대? ]“지 입으론 그러더라고요.”
[ 그럼 그때 말해줘. 쉬다 가겠다 하면 카운터에 앉혀놔도 되구.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만, 들르거든 한번 얘기는 해줘야겠다.
[ …아, 그리고 찬아. ]“네.”
[ 아까 전에 도구 얘기한 것 있잖아. 찬이는 어떤 게 좋아? ]바로 이해가 안 돼서 잠깐 기억을 되짚어봤다. 몇 시간 전에 점장이 나한테 마법 쓰는 도구 같은 걸 준다고 했던 것 같긴 하다. 그때 뭘 요구했는지도 떠올라서 대답했다.
“털 안 날리는 마대 자루요.”
[ 아이참, 그거 말구. ]“뭐가 있는질 몰라서 여쭤보기 좀 그런데….”
당장 떡갈나무 지팡이든, 엑스칼리버든 떠오르긴 한다만, 내가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물어보기도 좀 애매했다. 점장이 불쑥 말을 꺼내왔다.
[ 혹시 스마트폰도 괜찮아? ]“어… 제 꺼요?”
[ 아니, 공기계. 집에 쓸 만한 거 하나 찾았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