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53)
이세계 편돌이-252화(253/331)
252. 킬각이 늘 최선의 수는 아니야 (11)
* * *
기어이 카드 한 장을 더 뽑고, 코를 매만진 뒤에야 항복을 선언하는 고블린. 선언하면서도 도저히 인정을 못 하겠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어투로 내게 물었다.
“살다 살다 이딴 덱에 다 당하네. 너 양심이란 게 있긴 하냐, 인간?”
헛소리하고 있다. 내가 양심이 없는 게 아니라, 니가 먼저 양심 없는 카드를 냈기 때문에 양심 없는 카드에 당한 것이다. 그러게 누가 공격력 32, 체력 32에 마법 면역 달린 개사기 카드 쓰래?
이렇게 당하는 게 싫으면 앞으로 양심 없는 카드를 안 쓰면 되는 거다. 영혼 끌어모아서 대출받지도 말고. 오늘 일을 교훈 삼아 반성하고, 참회해라….
라고 말했다간 남은 체력이 마저 차감될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양심 운운하던 고블린이 아까 뽑았던 카드를 바라보면서는 중얼거리는데, 이번엔 아쉬움이 풀풀 묻어나왔다.
“젠장, 이 카드만 뽑았어도 무조건 이기는 거였는데.”
“뭔데요. 모범고객 혜택?”
묻자, 질렸다는 듯이 카드를 들어 보인다. 마법 카드 모범고객 혜택. 대상 1체에게 이번 게임에서 마나석을 상환한 횟수에 비례한 데미지를 가한다.
플레이어에게도 사용 가능한 카드다. 이번 게임에서 마나석이 상환한 횟수가 7회로 7데미지, 내 남은 체력이 6. 저게 내 명치에 꽂혔으면 얄짤없이 졌다.
카드 게임에서 이런 가정을 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말야. 꺼낸 카드를 덱에 섞어 정리하고는, 양반다리에 팔꿈치를 얹으며 내게 묻는다.
“이봐, 인간.”
“왜요.”
“만약에 내가 대출상담가를 안 냈으면. 그땐 어쩔 생각이었어?”
카드 몇 장 더 써서 이길 생각이었다. 쥐고 있던 7장 중에 꺼낸 카드가 대나무 창, 유동적인 분탕, 가짜 무덤이었고, 나머지 3장이 대마법사의 지침서, 기록적인 풍작,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이것들 쥔 채로 계산해보니, 순서랑 코스트만 딱딱 맞춰 쓰면 40데미지는 넉넉히 입히고도 남을 상황이더라고.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꺼냈다.
“제가 졌겠죠.”
“진짜로?”
“저 이게 첫 게임이라니까요? 이거 보세요, 대전 로그 깔끔하잖습니까.”
3장 중 1장이 덱의 핵심에 해당하는 카드고, 이걸 공개하는 순간 내 승리 플랜도 낱낱이 까발려지고 만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입소문이라는데, 괜히 직접 얘기해서 피 볼 일 있나.
여기에 이 고블린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뒤에서 돈내기에 열중하던 고블린들이 그새 모여들어서는 내 폰을 일제히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난 거짓말은 안 했다.
최근 3년간 대전기록 1승 0패. 청정수 뉴비다. 그래도 아무 말을 안 하기는 또 찜찜했던지라, 서비스해 주는 셈 치고 말해줬다.
“그래도, 손패에 대출상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어떻게?”
“패 뽑을 때마다 콧등을 만지시더라고요. 딱 한 번만 빼고요.”
오프라인 게임의 특징 중 하나, 상대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카드 말고도 정보를 얻을 수단이 더 있다는 뜻이다.
이 고블린이 첫 턴의 5장부터 마지막 턴까지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콧등을 만지작거렸다. 만지작대며 내는 카드들 모두 초반 승기를 굳히는 카드들이었고.
그러다 4턴 즈음 딱 한 번 손이 멎었다. 이걸 ‘후반 보는 카드인가 보다―’ 해석했었는데, 대출 덱 카드군 중에 후반에 써먹을 만한 카드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2장?
통계에 의하면 평균 1장, 그것도 손패가 심하게 꼬였을 때를 대비한 카드 딱 한 장 들어간다. 대출상담가. 말해주자, 뒤에서 구경하던 일행을 홱 올려다보며 묻는 고블린.
“나 콧등 만졌냐?”
“만졌지.”
“그럼 왜 말 안 해줬어?”
“이 멍청이가, 인간이 니 버릇 알아차렸을 줄 내가 알았겠어?”
“난 인간한테 돈 걸었는데?”
외에도 돈 걸린 문제에 훈수질이 웬 말이냐. 니가 못해서 2만 원 날렸다. 등등.
한참을 지들끼리 옥신각신한 끝에 고블린 입에서 나온 말이, 그리 아니꼬우면 늬들도 이 인간이랑 한판 해보든가― 였다. 이어서는 날 슬슬 구슬리더라.
“눈 좋네, 인간. 나중에 서비스업 하면 대성하겠어.”
“아, 예….”
“여하튼, 한 판 질 때까지만 마저 하고 가지 그래. 아니면 다른 볼일 있어?”
그 볼일 때문에라도 여기 있을 생각이었다. 지금 시간이 9시 반. 약속한 시간까지 꽤 여유가 있고, 그때까지 밍기적대는 것 말곤 할 일도 없다.
질 때까지만 하다 가겠다고 내가 먼저 말 꺼내기도 했고. 방금 게임으로 덱 카드들 중 몇 장이 드러난 만큼 이기는 게 쉽지는 않을 터다. 그래도.
“어… 예. 그러죠, 뭐.”
나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이긴 건 이긴 건데, 상대가 영끌 대출카드를 쓴 걸 역이용했을 뿐 토끼 소녀로 이긴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상대방 킬각만 볼 게 아니라, 이 부분을 중점으로 몇 게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대답한 뒤 손수 덱을 섞은 뒤 자리를 잡자, 일행 중 다른 고블린 한 명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고 15분 뒤, 표정이 구겨졌다.
“야, 인간. 너 그 짓 하지 마라. 하지 마!”
“이 짓이요? 바위 마나석 1개로 ‘증축’ 한 번 더 시전하는 거?”
“하지 말, 이런 망할! 증축을 몇 번을 쓰는 거야!”
이 고블린은 지형지물 덱, 별칭 ‘건설회사 덱’을 쓰는 놈이었다. 마수나 마법이 아닌 지형지물 카테고리의 카드를 메인으로 채용한 덱.
매 턴 마수의 스탯을 부여하거나, 카드를 뽑거나, 상대방 마수에게 딜을 넣는 등의 다양한 효과를 지닌 지형지물을 상황에 따라 꺼내 쓰는 컨셉이다. 장점은 매 턴 확실하게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
카드군 구성 초점이 철저하게 건설과 복구에 맞춰져 있고, 템포가 느린 덱을 상대로 특히 상성이 좋다. 지형지물 자체도 강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처를 잘못할 경우엔 매 턴 +4/+4, 마수 1체에 8데미지, 3장 드로우 같은 짓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니까.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다음엔 바위 마나석 1개로 증축, 남은 바위 마나석 1개로 증축.”
마법카드 증축의 효과. 말 그대로 필드 위의 건물 1채를 증축하는 효과다. 매턴 +1/+1을 부여하는 건물은 +2/+2, 2데미지 건물은 4데미지, 1장 드로우는 2장 드로우.
후공이었던 상대 고블린의 첫 턴 플레이. 투명 마나석 2개를 사용해 필드에 지형지물 ‘광산’을 깔았다. 효과는 매 턴 카드 1장을 추가로 뽑는 것.
이 광산에 증축을 5번 사용했다. 필드 위 건물이기만 하면 피아 구분 없이 어디에든 사용할 수 있거든. 이로 인해 상대방이 매 턴 뽑아야 하는 카드가 1+6장.
지금 상대방이 손패에 7장을 들고 있다. 3장 뽑고, 4장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남은 투명 마나석 2개로 ‘사인펜’ 시전하고 턴 종료할게요.”
마법 카드 비용을 올린 뒤 턴을 마치자,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꿍얼대는 고블린.
“망할, 이러려고 아까부터 복제만 해댄 거구만….”
건설회사 덱의 단점 두 가지. 턴이 지날수록 더 큰 이득을 챙길 수 있지만, 정직하다. 컨셉상 초반이 한없이 약한 덱이고, 때문에 초반에 킬각을 잡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하나가 건물을 강화하거나 수복하는 카드는 많이 넣어도, 정작 건물을 파괴하는 카드는 거의 안 쓰인다는 것. 부숴도 상대방이 부수지, 자기가 지은 건물 부술 이유가 뭐가 있겠어.
이 고블린이라고 다를 리 없다는 생각에, 건설회사 덱인 걸 확인한 뒤로 줄곧 이것만 노렸다. 이 상태로 3턴 뒤.
“마지막으로, 투명 마나석 2개 써서 비밀 걸고 턴 종료할게요.”
비밀 마법이라 카드명 안 외치고 써야 한다. 내가 턴을 마치자, 망설임 없이 카드 한 장을 집어 필드 위에 팽개치듯 올려놓는다.
“투명 마나석 2개로 재건축….”
“비밀 발동할게요. 허술한 반마법.”
상대가 비용 3 이하의 마법을 발동할 시 무효화하는 마법이다. 카드를 뒤집자, 곧바로 손패의 카드 전부를 필드 위에 내동댕이쳤다. 죄다 지형지물, 마나석 3 이상의 카드들이었다.
“게임 졸라 더럽게 하네. 이게 게임이냐? 이게 게임이야?”
이어서는 극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사실상 GG 선언이라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애초에 손패를 뽑기 전에 먼저 카드를 냈으니 반칙패이긴 했지만….
어차피 덱에 남은 패도 0장이었다. 짱돌겜 규칙. 덱에 남은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패를 뽑아야 할 경우, ‘공허 마나석’이라는 이름의 카드를 대신 뽑게 된다.
카드 효과는 ‘자신에게 (1) 데미지, 즉시 시전.’ 괄호 안의 숫자는 카드를 뽑을수록 1씩 늘어난다. 공허 마나석을 10장 뽑으면 1부터 10까지를 다 더해서 55데미지.
“너 친구는 있냐, 인간? 너 친구 없지?”
“있죠. 친구한텐 이런 짓 안 해서 그렇지….”
“담배나 피러 갈란다. 더 있다간 코 터지겠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의 극찬을 늘어놓고는 냅다 정자 밖으로 걸어 나가는 고블린. 코가 터진다는 게 격한 존중의 표현인 듯했다. 아니면 말고.
어쨌든 2전 2승이다. 이번엔 아예 농락을 하며 이긴 만큼, 보고 있던 고블린들도 질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좋아. 다음은 내 차례야, 인간.”
“어… 예.”
“이제야 무슨 덱인지 좀 알겠네. 주문 위주 콤보덱 아니야?”
3번 타자가 헛스윙을 하며 내 앞에 앉았고, 10분 뒤 삼진으로 물러나며 배트를 집어 던졌다. 이걸로 3전 3승.
이 3판 중 토끼 소녀로 이겼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판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기니까 기분은 좋더라. 나의 시대가 온 것 같지 않음?
* * *
바로 다음 게임을 시작했고, 이 게임은 4판 중 제일 쉽게 이겼다.
“바위 마나석 4개로 마법 카드 ‘대풍년’.”
“하아, 씨….”
4번째 고블린의 덱이 최후의 불꽃 덱. 손에 이 카드 단 한 장만이 있을 때, 남은 마나석을 이 카드로 소진하는 순간 발동되는 마법카드다.
효과는 심플하다. 게임에서 승리한다. 비용은 속성 불문하고 강화된 마나석 10개.
이 카드를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마나석 강화와 손패 소진에 올인하는 덱인데, 승리 플랜이 단순한 만큼 대처법도 간단하다.
“다음엔 투명 마나석 6개로 마법카드 ‘불평등한 평등’ 시전. 턴 종료할게요.”
[ 투명 마나석 6개, 불평등한 평등 ] [ 효과 : 각 플레이어는 서로 마나석 5개를 선택합니다. 그 마나석을 파괴합니다. ]마나석을 없애버리면 된다. 어때요, 참 쉽죠?
물론 이 대처법이 완벽한 건 아니다. 파괴된 마나석이 매 턴 한 개씩 복구되기 때문에, 5턴 뒤면 마나석이 다 회복되어 카드 사용 조건도 다시 갖춰지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카드 수집가로 직접 공격하고, 턴 종료. 니 차례야, 인간.”
“예. 우선, 이전 턴에 썼던 대풍년으로 ‘대풍년’이랑 ‘불평등한 평등’ 다시 가져올게요.”
[ 바위 마나석 4개, 대풍년 ] [ 효과 : 사용 시, 사용된 턴에 사용한 모든 마법을 다음 턴에 다시 손패에 가져옵니다. ]5턴마다 계속 쓰면 된다. 게임 끝날 때까지. 대풍년의 특이사항 중 하나가, 대풍년 자기 자신조차도 그 턴에 시전한 주문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이걸 장점으로 친다면 매 턴 마나석 6개분의 주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셈이 되고, 단점으로 친다면 손패가 9장이 되어버리는 셈이 된다. 써도 다음 턴에 다시 돌아오니까.
허나 디메리트보다는 메리트가 훨씬 더 큰 카드라, 바위 마나석을 주로 쓰는 덱에서는 무조건 1장 이상 들어간다. 내 덱에서는 아예 핵심인 카드고.
“다음에는….”
“잠깐만, 인간. 너 좀 있다가 그 카드들 또 쓸 거 아니야?”
“그러려고 가져온 건데요?”
“GG.”
이후 5번째 게임. 흠.
“…이거 계속 해도 내가 지는 거 같은데. GG.”
“옙. 수고하셨어요.”
6번째 게임도 승리. 흠….
“젠장할, 3딜! 3딜만 더 넣었으면….”
“예. 수고하셨습니다….”
7번째 게임도 승리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물어봤다.
“근데요. 저 오기 전까지 서로 승수 사고팔고 계셨던 거 아니셨어요?”
“정확히는 5차 산업이지. 근데 뭐 어쩌게. 증거 있어?”
“아뇨, 제가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고.”
나한테 계속 발리기만 하고 있는데 왜 계속 게임을 하자고 그러냐. 이미 이길 대로 이긴 만큼 뉴비 코스프레를 한들 의미 없을 것 같아 물어봤다. 이러자 고블린 왈.
“너 때문에 손실이 발생했는데, 그 손실은 메꿔야지 않겠어?”
이렇다는데, 농담조로 대답하는 게 본심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지든 이기든 그냥 게임을 즐기려고 하는 건지, 뭔지.
어쨌든 7번째 게임도 결국 성사가 됐고, 내가 이겼다.
“GG. 너 다 해먹어라, 인간.”
“예. 수고하셨고요….”
이만치 이기고 나니 나도 당황스럽다. 아니, 나의 시대가 너무 긴 것 같지 않음? 왜 자꾸 이기냐?
카드 게임이란 게, 1티어 덱이라고 해서 승률이 80%, 90%가 나오고 그러는 게 아니다. 0티어 덱의 승률이 55%, 그 밑으로 1%씩 떨어질 때마다 1티어, 1.5티어, 이런 식으로 구분이 된다.
한 덱으로 7연승을 하거든, 그 덱이 사기덱인지 아닌지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방금 치렀던 7전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려던 찰나, 7번째 고블린이 대뜸 어깨를 툭 건드려왔다.
얼굴을 마주 보니, 화면을 켠 폰을 내쪽으로 내밀고 있다.
“그건 뭡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랑 거래나 하지 않을래? 인간?”
잘은 모르겠는데 안 하면 안 되냐. 대답하기도 전에 긴 손톱으로 스크롤을 휙휙 올리고는, 아예 내 눈앞에 들이미는 고블린.
“너 7승 0패잖아. 앞으로 3승만 더 하면 본선 진출이야.”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우리한테 3승만 사라고.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