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255)
이세계 편돌이-254화(255/331)
254. 킬각이 늘 최선의 수는 아니야 (13)
* * *
듣고 나서 잠깐 고민하다, 제일 중요하다 싶은 것부터 물어봤다. 오늘 날씨 많이 덥지 않냐.
[ 내! 삐질삐질해여. ]“그럼 만나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자. 지금 혹시… 주변에 무대 같은 거 있어?”
질문을 할 땐 하더라도 애 땀부터 식혀주고 봐야겠다. 피쳐폰 쓰는 애한테 어디냐고 물어봐야 의미 없을 것 같아 다르게 물었는데, 잠시 후 외치는 하나 목소리가 환했다.
[ 우아! 하늘에 상자가 떠 잇서여! 유리로 되어 있구! ]“나도 그거 신기하긴 하더라. 근처에 아이스크림 파는 트럭도 보이지, 하나야.”
[ 에… 내! 쩌어기. ]대회 운영장 근처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서 있던 걸 봐뒀다. 그 밑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5분가량 운영 천막 있는 곳까지 죽어라고 달렸다.
도착하고 보니, 하나가 아이스크림 트럭 밑에 세워진 메뉴판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맨 위에 붙은 3단 초코아이스크림 그림.
등 뒤에 설 때까지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정신이 팔려있다. 이러면 메뉴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사장님. 3단 초코아이스크림 한 개, 라지사이즈 통으로 한 개씩 부탁드릴게요.”
“예. 통에는 어떤 맛 담아드릴까요?”
“어… 초코랑 바닐라 반반요. 하나야, 더운데 고생 많았다.”
“엣.”
직접 말을 걸고 나서야 나를 홱 올려다보는데, 어리둥절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죽어라고 뛰어온 보람이 있구만.
“오랜만이애여, 아조씨!”
“그러게 말이다. 오전 수업 잘 받았어?”
“내. 오늘은여! 가게놀이 하구, 놀이터애서 물놀이하구….”
다른 걸 묻기에 앞서 의식의 흐름대로 꺼낸 질문이었으나, 마저 해오는 말들이 또 예상외였다. 고무 호스로 물을 쏴대는 수준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아예 물의 정령을 소환해주셨다….
“정령?”
“내! 정령님께서여, 미끄럼틀애 물도 부어주시구, 물장구칠 수 있게 물방울도 만들어주셧구….”
물놀이를 끝낸 뒤에는 물의 정령님께 다 같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고. 다 들은 뒤, 아는 상식선에서 물어봤다.
“선생님께선 괜찮으시고?”
“에… 피곤하시다구 하셧어여. 햇볕을 많이 쐬셧다면서.”
햇볕 때문이 아니라, 애들 물놀이 시켜주겠다고 몸에 있는 마나를 탈탈 털어버린 탓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은 유치원 선생님조차도 극한직업이야.
“그러케 놀구, 다음에는 몸 닦구. 점심 먹구.”
“그럼 간식 먹기는 딱 좋네. 그런데, 하나야.”
“내.”
“어머니께서는 이 근처에 어쩐 일이시래?”
이것도 원래는 다르게 물어보려고 했다. 리무진 뒷좌석 타고 다니는 대기업 CEO도 잠깐 짬 내서 애 보러 올 수 있지, 뭐….
“그게여, 엄마야께서 오늘 오후 일이… 캐… 캔…?”
“캔슬?”
“내! 그래서여, 슬비 아주머니한테여.”
애 만나러 갈 거니까 준비해둬라. 상사로서 합리적인 명령을 내렸는데, 이걸 들은 슬비 양이 하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스피커폰으로 바꿔 대답했다고. 12시부터 3시까지는 낮잠 시간이다.
여기에 ‘이전에 내게 보고한 사항이 아니잖느냐’ 하며 반문하고, 슬비 양은 올해 쭉 이어져온 커리큘럼의 일환일 뿐이라 따로 보고할 필요성이 없다 판단했다― 대답하고.
이 대답에 수긍한 애 엄마가 잠시 후 내린 결론이, ‘저녁 일정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3시까지 이 근처에 있겠다’ 라는 거였다. 수행하는 건 용 쌍둥이 둘.
“한비 아저씨는 뭐래?”
“아조씨 만나러 가면 댄다구 하셨서여. 그리구, 약속은 지키라구 있는 거라고도 하셧구.”
내 약속이 중요한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직전, 하나 엄마랑 눈이 마주쳤던 때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밧줄로 온몸이 꽁꽁 옭아매진 듯한 압박감.
단순한 행인A 행세를 하고 있을 때만 해도 그 정도였는데, 나란히 아이스크림 핥아 먹는 게 발견됐을 땐 어떤 반응이 나올지 상상이 안 간다. 나 드래곤 브레스 맞는 거 아니냐?
“아조씨?”
“…그래. 약속 지키라고 있는 거 맞지.”
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무섭진 않더라. 브레스 그까잇거 일단 한 대 맞고, ‘이게 다 사정이 있는데요’ 하면서 해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 반마법사잖아.
브레스를 안 맞게 처신하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고 말이다. 예정보다 약속을 일찍 끝내면 그만이니까. 게임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오전이었다면 이 결론을 못 내렸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나 이찬, The 히어로즈 오브 스톤 대회 본선 진출 확정자. 예상 최저컷보다 몇 승을 더 따냈으니 확정된 거 맞겠지.
경험도 충분히 쌓았겠다, 앞으로는 킬각이 아닌 다른 최선의 수를 보면 될 터다. 누가 봐도 토끼소녀가 아니면 못 이겼을 그런 환장의 게임을….
“아이스크림 나왔습니다, 손님. 꼬마 아가씨 것도.”
…할 수 있나? 12판 내내 상대방 뒤통수만 신나게 후려쳤지, 토끼소녀 메인으로 이긴 판이 한 번도 없었는데….
“감사해여. 저… 아이스크림 아조씨.”
와중에 대화 소리가 들려 내려다보니, 하나가 발뒤꿈치를 들어 아이스크림 쪽으로 양팔을 뻗고 있는 채였다. 아이스크림 아저씨는 당황스럽다는 듯 혀를 낼름거리고 있고. 샐러맨더여서다.
“아이스크림 아저씨?”
“제, 제송해여.”
“아니, 죄송할 일은 아니고….”
말꼬리를 늘이면서는 날 바라보는 샐러맨더. 겹눈을 꿈벅거리는 게 애 좀 어떻게 해보라는 의도 같다. 얼른 아이스크림 받아들고, 계좌 이체한 내역 보여준 뒤에 빠져나왔다.
나와서 시간 확인해보니 12시 반. 원래 예정대로라면 3시까지 노닥거리다 애를 돌려보내게 됐겠지만….
“우리 이거만 다 먹고… 아이스크림 어디서 먹을까. 저기 그늘 있는 곳?”
좀 서둘러야겠다. 애 엄마가 언제 변덕 부릴지 모르잖아. 근처에 사람 십수 명이 잔디밭에 앉아 있는 게 보여 물었는데, 하나가 곧바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저어는여… 저기.”
[ 세 번째! 챔피언이 세 번째 단두대를 시전합니다, 필드가 열세에 놓여있음에도 과감한 선택!! ] [ 속성 마나석 3개, 세 번째 단두대 ] [ 체력 6 ] [ 효과 : 이 지형지물이 필드 위에 놓여있는 한, 매 턴 상대 필드 위의 마수 1체를 처치한다. 이 지형지물이 파괴될 시, ‘네 번째 단두대’를 손으로 가져온다. ]스피커 소리에 곧바로 묻혀버렸고. 하나가 올려다본 방향이 한창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사설 무대였다. 스크린에 떠 있는 대전 현황이 현재 9턴, 우측 상단에는 23연승이라 적혀있다.
저 챔피언이 3년 치 운을 오늘 다 쓰고 있는 것 같다. 연승 밑으로는 필드의 마수 현황도 같이 떠 있었는데, 도전자 쪽 마수가 여섯.
여섯 마수의 공격력 총합이 24, 챔피언 체력이 25이다. 저 필드를 정리 안 하고 턴을 종료하면 다음 턴에 피가 딱 1남는다. 하지만.
[ 그리고 곧바로 턴 종료! 도전자가 여기에 단 1 데미지라도 추가할 수 있다면, 챔피언의 연승 행진은 여기서 종료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스크린으로 양쪽 손패가 모두 공개되고 있는데, 도전자 쪽의 손패가 셋. 세 장 중 어떤 카드를 써도 데미지를 추가할 수가 없다.
이번 턴에 뽑게 될 카드로 끝을 볼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챔피언이 이미 수를 부려놨다. ‘서투름’. 다음 턴에 상대가 뽑는 카드를 손패가 아닌 무덤에 놓는다.
[ 카드는 뽑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도전자, 필드를 정리하는 선택을― 아니네요! 모든 공격을 챔피언에게 가합니다! 이로써 체력은 1!! ]“저 멍청이가, 어차피 킬 못 딸 거 필드라도 정리해야 할 거 아냐!”
“아니지. 정리하면 다음 턴에도 킬 못 내는데, 그러면 미래가 없잖아. 단두대가….”
결말이 임박한 상황이어서인지, 숨 죽여 지켜보고만 있던 관중들이 보따리가 터진 듯이 훈수를 쏟아내고 있다. 스피커랑 관중 쪽을 번갈아 바라보던 하나가 날 올려다보고는 물었다.
“아조씨. 지금 저분들 깨임 하시는 거져. 무대애서.”
“어. 근데 좀 게임장이 큰 거지. 그러니까… 저게 이벤트 매치 같은 거거든?”
“이밴뜨?”
왼쪽 부스에 앉은 사람이 전년도 우승자고 오른쪽이 도전자다, 지금 카드를 내는 족족 가운데 무대에서 뭐가 솟아나고 있는데, 그것도 다 마법으로 장치가 되어있는 거다―
가능한 한 흥미가 돋워지도록 설명했다. 하나가 전에 없이 눈을 반짝이고 있어서였다. 내 설명을 듣고는, 이번엔 무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하나.
“머찌다….”
“그럼 우리 저거 보면서 먹자, 하나야.”
“그래두 대여??”
관람료도 안 받는데 안 될 거 있나. 하나 손을 붙잡고, 가능한 무대를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 의자에 까치발을 해 앉고는, 무대를 올려다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리는 하나.
“오오….”
[ 자, 이제 챔피언의 턴입니다! 이전 턴에 속도를 끌어올렸으니, 이번 턴에 무언가를― 아아! 이미 키 카드를 모두 뽑은 상황이었군요! 역시!! ]흥미를 돋우기 위함인지 챔피언 쪽은 도전자와는 달리 손패가 공개되지 않은 채다. 뒷면으로 놓인 카드 일곱 장 중 첫 번째 카드, ‘싱크홀.’
필드 위에 존재하는 한, 모든 지형지물을 즉시 무덤으로 보내는 지속 마법 카드다. 세 번째 단두대의 매 턴 1체 처치 효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죽이거나 죽느냐의 싸움이니까.
단두대가 파괴됨과 동시에 네 번째 단두대가 손으로 들어왔으나, 다른 카드를 내미는 챔피언. 투명 마나석 3개를 소모해 손패의 무작위 지형지물을 필드에 내놓는 마법 카드였다. 부동산 처분.
이걸로 네 번째 단두대가 필드에 나타났고, 싱크홀의 효과로 소환과 동시에 파괴됐다. 이걸로 손패에 쥐여지게 된 최후의 단두대의 사용 조건.
마나석 외에도 직접 소환한 아군 마수 3체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현 시즌 짱돌겜에서 유일무이한 조건을 갖춘 카드인 동시에, 그 효과도 파격적이기 짝이 없다.
[ 이걸로 피날레입니다! 이미 정해진 승리였다는 듯, 손패의 마수 3체를 일시에 꺼내는 챔피언! 그리고, 곧바로 나옵니다!! 최후의 단두대!! ]소환한 턴에 상대의 모든 마수를 파괴하고, 플레이어의 체력을 1로 만든다. 외에도 사기적인 부속 효과가 더 있긴 하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준이다.
[ 마수도, 마나석도, 온전해 온 체력조차도 단숨에 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걸 여유라 봐야 할지, 인성질이라 봐야 할지…! ]마법으로 1 남은 체력을 없애면 그만이니까. 챔피언이 마지막으로 내민 카드는 ‘새총’, 대상 1체에 1데미지를 넣는 0코스트 마법 카드.
[ 이걸로 24연승, 이젠 이 말을 듣는 관중분들조차 질리시겠군요! 그 사용하기 어렵다는 최후의 단두대 덱으로 무려 24연승을 따내는 전년도 챔피언―!! ]“저기여.”
“응.”
“단두대가 머애여, 아조씨?”
잠깐만 올라가 있어도 삶에 대한 의욕이 마구 솟구치는 마법의 도구다. 최대한 에둘러 설명해주려다, 뭔 말을 써도 대답이 못 될 것 같아 말을 돌렸다.
“어… 우린 몰라도 되는 거?”
“그치만여, 새상 일 모르는 거자나여.”
“저건 진짜로 몰라도 돼. 진심이야.”
“아하.”
질문에 답변하는 사이,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해설자.
[ 자! 그럼, 챔피언은… 괜찮다고 하는군요. 또 다른 도전자는 없습니까?! 승리하면 무려 100만원 상당의 상품과 영예!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는데, 당장 관중석엔 멀리서만 봐도 흐뭇하다는 사람들밖에 없어 보인다. 하기사, 카드 게임으로 24연승을 박은 사람 상대로 도전할 용기 가상한 양반이 누가 있겠냐마는….
“저기, 아조씨.”
“왜.”
대답하며 바라보자, 하나 녀석이 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한숨 반 막연함 반으로 되물었다.
“뭐. 나보고 저기 나가보라고?”
“그… 안 대나여?”